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3화 (13/288)

상인과 대장장이(3)

‘···일단 올라가서 이야기하세.’

댈런의 금화 한 줌 소리를 들은 상단주가, 머뭇거리다 마침내 꺼낸 말이었다.

그렇게 댈런은 상단 직원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에 올라와 있었다.

“흠.”

댈런은 입맛을 다셨다. 직원이 내온 과일과 차는 진작에 동이 났다.

그는 문득 자신이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늘 먹고 마신 것만 해도 얼마냐.’

여관의 점심식사에, 원로 마법사를 만나며 마신 커피와 간식, 르베론의 맥주와 이곳 상단의 다과까지.

원래 큰 덩치 때문에 많이 먹는 편이긴 했으나, 그럼에도 오늘 그가 먹은 양은 평소의 배 이상이었다.

뭐지, 키가 크려나?

달칵.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상단주 볼크마 갈리오스가 응접실에 들어왔다.

땀범벅이었던 그는 몸을 씻고 깔끔한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은 차림이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며 상단주가 말했다.

“휴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사업 초기에는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 일이 많거든. 체계가 갖춰지기 전까지는 함부러 지휘봉을 놓아서는 안 돼. 그랬다가는 금방 망해버리지.”

“수고가 많소.”

“아닐세. 다 나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뭘. 그래서 금화 한 줌. 그건 대체 무슨 소린가?”

찻주전자를 기울이던 볼크마는 안에 남은 차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직원을 불렀다.

그가 직원에게 다과를 더 내오라고 하는 사이, 댈런이 입을 열었다.

“금화 스물여섯 닢이 필요하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으로.”

“···자네 설마 도박에 또 발을 들인 건 아니지?”

“아니오.”

게슴츠레 눈을 뜬 볼크마의 말에, 댈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지인의 가족이 빚을 졌소.”

“빚? 금화씩이나?”

“사업 자금으로 낸 빚이었지. 그게 부풀고 부풀어서 십수 배로 불어난 거고.”

댈런은 간단하게 전말을 풀어놓았다.

르베론이 대장간을 열면서 진 빚과, 그 빚을 건네받은 텔리아 상회.

그리고 상회가 어떻게 빚을 키웠고, 지금은 어떤 협박을 일삼고 있는지까지.

모든 이야기를 전해들은 볼크마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행이군. 자네가 다시 도박장을 찾은 게 아니라니.”

아니 이 양반아, 나 이제 도박 안 한다고.

“원래 중독이라는 게 무서운 걸세. 한 번 시작하는 건 쉽지만, 다시 빠져나오기란 여간 여려운 일이 아니지.”

“그래서 돈은 줄 거요, 말 거요?”

“거 참, 자네 나한테 백금화라도 맡겨놨나?”

쪼르륵.

볼크마는 툴툴대면서도 댈런의 잔에 차를 따라줬다. 그는 차향을 가볍게 음미하고서 말했다.

“그런데 자네는 그 대장장이와 무슨 관계인 건가? 친구? 먼 친척?”

“말했잖소. 지인의 가족이라고.”

“···결국엔 남이라는 거 아닌가?”

볼크마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고블린을 학살하던 그 날 밤에도 생각했지만, 자네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야.”

“칭찬으로 듣지.”

댈런은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볼크마는 느닷없이 껄껄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맞네. 칭찬 맞아. 아무래도 범인이 영웅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딸랑.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을 울렸다.

“어찌됐건 좋네. 내가 누군가? 이래봬도 도시연합에서 나름 알아주는 상단의 주인일세. 금화 스무 닢 남짓 정도야 당장 내어줄 수 있지.”

그의 말이 떨어지자, 그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종소리를 듣고 들어온 직원은, 금화를 준비하란 말에 질문 하나 없이 돈주머니를 대령했다.

볼크마는 주머니를 슬쩍 열어 돈이 잘 들어있는지 확인한 뒤, 댈런에게 건넸다.

“금화 스물여섯 개일세. 부디 그 대장장이가 하는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구만.”

댈런은 돈주머니를 받았다. 금화 스물여섯 개는 묵직했고, 그걸 담은 가죽 주머니와 끈은 고급스러웠다.

댈런은 그걸 그대로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가 말했다.

“뭘 원하오?”

“허허,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원하다니. 내가 뭘?”

“이 금화의 대가.”

볼크마는 손을 내저었다.

“아, 신경쓰지 말게. 내가 자네에게 뭘 바라겠나? 자네는 머지않아 이 도시를 떠들썩하게 할 신성인걸. 나는 자네와 아주 긴밀한 사이라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네.”

그는 진짜로 별 게 아니라는 긋, 찻잔을 들어 차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댈런은 그의 눈동자에서 미처 숨기지 못한 탐욕을 엿볼 수 있었다.

아주 긴밀한 사이라. 음흉한 장사꾼 같으니라고. 댈런은 살짝 웃었다.

“당신은 상인이오, 볼크마. 은화 몇 푼은 몰라도, 금화를 허투루 쓸 양반은 아니지.”

끼이익.

댈런은 두 손을 모으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의자가 가냘픈 비명을 질렀다.

댈런의 덩치가 거대해서일까. 볼크마는 순간이지만 거인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듯 느꼈다.

꿀···꺽.

그가 입에 머금은 찻물을 간신히 넘기는 사이, 댈런이 말을 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찜찜한 걸 좋아하지 않소. 어중간한 말장난 역시 선호하는 편이 아니지. 만약 진짜로 거저 줄 게 아니라면, 지금 말하시오. 내게 뭘 원하는지.”

달칵.

볼크마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보도록 하지.”

그는 큼큼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긴 하네. 아니, 부탁이 아니라 의뢰가 맞겠군.”

“의뢰?”

“공교롭게도 이 일 역시 텔리아 상회에 관한 일이네. 그 상회는···생각보다 뒤가 구린 집단이거든.”

볼크마는 손끝으로 콧수염을 문질거렸다. 초조한 손짓이었다.

“자세한 건 내일 말해주도록 하지. 아래층에 정리할 게 산더미라서.”

“그렇게 말하니 얼마나 편하오.”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로 몸을 젖혀, 푹신한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볼크마는 막혔던 숨을 푸욱 내쉬며 말했다.

“보수금은 지금 주는 금화 외에 따로 챙겨주겠네. 자네의 능력을 충분히 아니, 섭섭하게 주지는 않을 거야.”

“좋소.”

댈런은 돈주머니를 품에 넣었다. 그는 쟁반 위의 사과 조각과 방울토마토 한 줌을 입에 털어넣은 뒤 일어섰다.

“차 잘 마셨소. 내일 보도록 하지.”

“그래. 조심히 들어가게.”

쿵.

댈런이 떠난 방 안.

“휴우.”

온몸에 힘이 빠진 볼크마는 의자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기댔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볼크마 이 머저리 자식, 상인 경력이 몇 년인데 이렇게 사람 볼 줄을 몰라서야 되겠나.’

괜히 떠봤다가 오히려 심리적으로 눌리고 말았다. 볼크마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긴 의자에 아예 누워버렸다.

“쯧. 아버지를 따라가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군.”

똑똑똑.

그때 직원이 문을 두르렸다.

“상단주님, 오늘치 물건 전부 내렸습니다. 하던 대로 정리할까요?”

“그래. 내가 시켜놓은 대로 해놓도록 해라. 곧 내려가겠다.”

아직 할 일이 많았다.

텔리아 상회와의 알력다툼이 아니어도, 새로 시작한 가죽공방 사업 자체가 원체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

하지만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

볼크마는 잠시 쉬기로 했다.

***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일어난 댈런은, 거리에 내려앉은 새벽 안개를 뚫고 대장간으로 향했다.

겨울 새벽의 공기는 찼다. 뿜어내는 입김마다 김이 서렸다.

그럼에도 댈런은 여전히 헐렁한 천옷 하나만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도시에 도착하면 솜옷이라도 구해다 입으려 했는데, 이상하게 춥지가 않군.’

그의 초인적인 육신은 원래부터 추위를 잘 타지 않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구에 있을 적처럼 막 춥다고 느끼진 않더라도, 냉기 속에서 몸이 미세하게 굼떠지거나 하는 건 피할 수 없었기 때문.

하지만 하수도에 들어갔다 나온 이후, 그의 육신은 달라졌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옷 사이를 파고든다. 그럼에도 몸이 굼떠지기는커녕, 따뜻한 봄날이나 다름없이 만전인 상태.

심지어 당연히 돋아야 할 닭살조차 돋지 않았다.

무슨 게임에서 추위 저항력이라도 붙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늘어난 체력 능력치 때문인가? 아니면 용혈?’

혼자서 답을 낼 수 있는 고민은 아니다. 댈런은 다음에 원로 마법사를 만나면, 용혈에 대해 물어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그 양반이 왜 굳이 나를 만나러 청동 구역까지 온 건지도 듣지 못했지.’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하나씩 의문이 늘어만 간다.

수백 회차를 플레이했음에도, 모니터 너머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지금처럼 초인적인 스펙을 시작부터 거머쥔 적이 없기도 하거니와, 모니터 너머에서의 이 세계는 어디까지나 게임이었기 때문.

아무리 짜임새가 좋은 게임이라 해도, 그 내용물은 0과 1의 데이터로 구성된 캐릭터와 플롯.

살아 숨쉬는 지금의 현실에 비할 바 못 되었다.

“흠.”

걷다보니 대장간이 머지않았다. 댈런은 품속에서 반쪽짜리 가면을 꺼내들었다.

피와 진액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은빛의 가면. 입이 크게 과장된 이 가면은 역행의 사도들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시에나는 잘 하고 있으려나.’

어제 낮, 원로 마법사를 만나러 가기 전.

보수금을 받으러 까마귀 둥지에 들렀던 댈런은, 시에나에게 가면의 나머지 반쪽을 건네며 이 가면과 관련된 조직을 알아내달라 부탁했다.

머잖아 도시 최고의 정보상이 될 그녀는, 과연 지금쯤 역행의 사도들에 대해 어디까지 알아냈을까.

의문이 많아지긴 했지만, 이렇듯 미래를 어렴풋이나마 아는 그의 지식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게임 설정들 중에는, 정보상인 시에나조차 쉬이 접근할 수 없는 비밀들도 많았으니까.

단적인 예로, 텔리아 상회가 있었다.

‘그 상회랑은 어떤 식으로든 엮일 거라 생각했지.’

텔리아 상회.

사교도 집단, ‘역행의 사도들’이 양지에 키운 단체.

상회는 지난 몇 년간 누구보다 공격적으로 이 청동 구역의 상권을 장악해왔다.

그 결과 비약의 재료와 무기 수급, 그밖에도 집단을 운영하기 위한 수많은 자잘한 필요들이 모두 텔리아 상회를 거쳤다.

사실상 사교도들의 숨통이나 다름없는 곳이 텔리아 상회.

안 그래도 어떤 꼬투리든 잡아서 밟아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알아서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니 반가울 따름이었다.

‘지금쯤 저쪽도 나를 알아차렸을 테지. 싸움은 피할 수 없다.’

댈런은 턱을 쓰다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상회로 쳐들어가서 다 부수고 상회장을 족치고 싶었다.

하지만 텔리아 상회는 엄연히 상인 길드의 인정을 받은 합법적인 상인 조합.

하수도의 흑마법사를 처리할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일단 르베론을 놈들의 손아귀에서 빼내는 게 우선이다.’

댈런은 반쪽짜리 가면을 품속에 넣고, 볼크마에게 받았던 돈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장기전이 될 지도 모르는 싸움이다.

그리고 르베론은 먼 미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중요한 인재.

이 싸움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이상, 르베론과 상회 간의 연결고리는 하루빨리 끊어놓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러고보니 갈리오스 상단주도 상회랑 사이가 안 좋아보였지.’

볼크마는 텔리아 상회에 관한 의뢰가 있다고 했다.

뒤가 구린 집단이라는 말도 덧붙였고.

어찌됐건 칼 쓰는 용병에게 의뢰를 맡긴다는 건, 무력 충돌이 필요할 만큼 관계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

‘상단과 상회의 갈등을 이용하면, 생각보다 쉽게 텔리아 상회를 밟아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음지의 싸움과는 달리, 양지의 힘은 또다른 양지의 힘으로 제압해야 뒤탈이 없는 법.

자세한 건 의뢰를 들어봐야 할 일이다. 댈런은 돈주머니를 던졌다 받았다 하며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음?”

그때 그의 감각에 무언가 걸려들었다.

골목 안쪽. 그가 향하던 대장간 방향.

‘베로 씨의 대장간 앞이다.’

대장간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댈런은 순식간에 오감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

“······!!”

욕설, 고함, 거친 숨소리와 비명.

땅을 낮게 진동시키는 발구름.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음. 안개를 타고 아주 옅게 느껴지는 혈향.

본격적으로 초인의 경지에 들어선 감각이 수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인다.

동시에 처음부터 그 경지에 머물렀던 지능 수치가, 받아낸 모든 것들을 뒤섞어 하나의 어렴풋한 이미지를 구축해냈다.

‘총 숫자는 마흔셋. 하나는 페니, 다른 하나는 르베론. 나머지는 둘과 대치중이군.’

육감이라 일컬어도 될 법한 그 기이한 감각 속에서, 댈런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골목 저 안쪽의 상황을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건달들이다. 모두 무기를 들었어.’

그는 곧장 달렸다.

휙―!

안개가 갈라지며, 그 틈 사이로 신형이 꺼지듯이 사라졌다.

***

“영감, 그냥 순순히 따라오셔. 빚을 갚기는 뭘 갚는다고 그래? 우리가 그깟 돈 몇 푼 받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

건달이 실실 웃었다. 르베론은 이를 악물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빚 갚으라며 독촉하던 건달이, 박살난 양쪽 손목을 늘어뜨린 채 돌아갔을 때부터.

어쩌면 그 훨씬 이전부터, 텔리아 상회가 조직적으로 그의 숨통을 조여올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제 그 댈런이라는 남자는 소식이 없는 건가?’

르베론은 마른침을 삼켰다.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고 생각했다.

빚을 갚아주겠다며, 수십 플로린의 거금이 별 것 아니라는 듯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을 봤을 때.

수백 마리의 프로그맨을 뚫고 마법사를 구출해냈다는, 믿기지 않는 무용담을 페니에게 들었을 때.

희망은 없다 생각했던 그의 삶에, 말도 안 되는 기적이 벌어졌다고 느꼈다.

‘차라리 기대하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그렇기에 마음속 한켠에서는 배신감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의 절박한 기대를 저버린 용병을 향한 배신감이.

하지만 르베론은 곧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짐이고.’

어제 처음 본 사내에게 그 짐을 떠넘기는 치졸한 짓은, 그의 장인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이, 영감님?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있거든?”

“···못 간다 이놈들! 네놈들은 처음부터 빚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어. 내 기술과 실력을 탐낸 게야!”

“어이쿠, 그걸 이제야 눈치채셨네.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돈은 빌리셨고, 우리 애들이 이렇게 와 있는데.”

건달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비웃었다.

르베론은 망치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왕년에는 그도 용병 일을 해본 바 있다. 이런 뜨내기 건달들이라면 몇이든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는 건 어렵지 않다.

이미 건달 몇 놈은 그를 강제로 끌고 가려고 달려들었다가, 차가운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하지만.

“어이구, 그렇게 노려보면 안 되지. 자꾸 그러면 그쪽의 어여쁜 조카따님을 우리가 해코지하는 수가 있어. 응?”

“크윽···!”

건달들이 페니를 붙잡고 목에 단검을 드리우자, 르베론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이 개 같은 놈들! 언젠가 네놈들의 대갈통을 망치로 부숴주고 말리라!”

“크하하하! 그러면 영감한테 머리가 깨지기 전에, 얼른 이 반반한 계집을 실컷 맛봐야 되겠는걸?”

간교하게 생긴 대머리 건달은, 부하 건달이 붙잡고 있는 페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킬킬.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겨서는 말이야.”

건달이 징그러운 문신을 새긴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끝이 의식을 잃은 채 붙잡힌 페니의 얼굴을 쓰다듬는 순간.

“어디 한 번···.”

패래래랙!

안개 사이로 번쩍이며 나타난 빛의 원반이,

“끄어어억!”

쾅!

놈의 손목을 가르고, 그대로 땅의 판석에 틀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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