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과 대장장이(4)
거리에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빛의 원반이 멈춘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주문······?”
빛의 원반처럼 보였던 건 손도끼였다.
깔끔하게 판석을 반으로 쪼개버리고, 그 밑 땅에 머리를 깊숙히 파묻은 손도끼.
“주문이 아냐?”
누군가 맥없이 중얼거렸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페니의 목에 단검을 들이대고 있던 건달이었다.
“씨발! 다들 정신차려! 습격이···커억!”
소리치던 건달은 입에서 피를 컥 토한 뒤 스르르 엎어졌다. 놈의 등판은 무슨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푹 내려앉은 채였다.
건달이 쓰러지면서, 놈이 붙잡고 있던 페니의 몸도 같이 휘청거렸다.
그걸 부드럽게 받치는 손길이 있었다.
“머저리들.”
쓰러진 건달의 시체 곁.
안개를 뚫고 걸어나온 댈런이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의식을 잃은 페니를 조심스레 땅에 눕혀놓은 그는, 건달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건달들은 댈런의 주먹과 겨울 바람에 펄럭이는 천옷, 유일한 무기였던 땅에 박힌 손도끼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누군가 외쳤다.
“저 새끼 무기 없어! 지금이 기회다!”
“씨, 씨발!”
“조져!”
건달들이 와아아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
“으어. 괴, 괴물······.”
우드득!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달아나던 건달이, 목이 휙 돌아가서 죽었다.
댈런은 쓰러진 건달의 시체를 잠시 내려다봤다. 흥 하고 코를 푼 그는 거리에 눕혀놓았던 페니를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쳐맸다.
“자, 자네는 대체······.”
대장장이 르베론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더듬거렸다.
댈런이 마흔 명에 달하는 건달을 처리하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칼로 찌르면 검면을 쳐내거나 손목을 부러뜨려 버린다. 무작정 달라붙으려 하면 그냥 얼굴에 주먹 한 방 먹여주었다.
수백 마리의 프로그맨 군세를 무기 없이 돌파한 그다.
애당초 이런 동네 건달 따위로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오히려 르베론이나 다른 시민들을 생각해, 어느정도 손속에 사정을 두는 게 더 어려웠을 지경.
다행히 힘조절은 대충 성공적이어서, 건달들은 목이 돌아가거나 허리가 꺾이는 정도로 곱게 죽을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로변 근처에서 사십 명분의 내장을 늘어놓을 순 없으니까.’
판석에 박혀있던 도끼를 회수한 댈런은, 아직까지도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르베론에게 다가갔다.
“여기, 금화 스물여섯 개요.”
르베론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그는 잠시 돈주머니를 바라보고 있더니,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겐가?”
댈런은 어깨를 으쓱했다.
“대장장이랑 친해서 나쁠 건 없거든. 말했듯이 갑옷이나 잘 만들어주시오. 칼이랑 방패도.”
“······.”
르베론은 말이 없었다. 음, 조금 시간이 필요하려나.
혼이 빠진 듯한 대장장이를 잠시 뒤로 하고, 댈런은 엎어져 있던 건달 중 하나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으, 으아악!”
“어디서 뒈진 척이냐, 새꺄.”
손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한쪽 다리가 기괴하게 꺾인 건달.
놈은 아까 전, 르베론을 협박하며 페니의 얼굴을 쓰다듬던 놈이었다.
아무래도 이 건달 무리의 대장쯤 되어보이는 것 같아, 한 놈만 살려두었던 것.
텔리아 상회가 왜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는지, 그 이유 정도는 알아야 하니까.
“네가 이놈들 대장 맞냐?”
“으윽. 마, 맞다.”
“이름.”
“···반칼.”
스스로를 반칼이라 말한 건달은, 이를 악문 채 댈런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눈에 독기가 가득한 게, 왠지 울분에 찬 표정이었다. 댈런이 물었다.
“너 나 아냐?”
“크윽, 아냐고? 당연히 알지. 네놈이 열흘 전, 우리 여관 식구들을 처참하게 살해한 장본인인데! 그날 당한 식구들의 한을···어억!”
존나 말 많네.
건달 대장의 뺨을 적당히 어루만져준 댈런은, 르베론이 들고 있는 금화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 달 이자까지 합쳐 이십육 플로린이다.”
“으어, 으어어어.”
“하지만 네놈들 윗대가리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겠지?”
부러진 이빨을 후두둑 뱉어내면서, 건달 대장은 고개를 열심히 가로저었다. 눈에 품었던 독기는 어디가고 순한 양 같았다.
“그럼 말해봐라.”
댈런은 다시 건달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놈의 발끝이 땅에서 떨어져 버둥거렸다.
“상회 놈들이 뭐라고 했지?”
건달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댄 채, 댈런은 또박또박 힘주어 물었다.
“저, 전부 다 잡아오라고 했어.”
“누구를.”
“장인들. 상인들. 잡아오거나, 그게 안 되면 죽이라고 지시하셨다.”
“누가?”
건달은 머뭇거렸다. 댈런은 멱살 잡은 손아귀에 힘을 조금 더 줬다.
숨통이 조여와 켁켁대는 건달에게, 댈런은 한 번 더 물었다.
“누가 시켰나.”
“테, 텔리아···상회주···보리스 텔리아···으으, 으어어어!”
건달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댈런의 초인적인 감각이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건달의 몸속.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거칠게 요동치는 심장과 헐떡이는 폐, 잔뜩 긴장한 근육들에서 기이한 이질감이 묻어났다.
두근.
맥박이 상승한다.
“흐으으.”
날숨 속에 역한 피비린내가 녹아난다.
건달의 눈동자 속 총기가 이지러짐을 본 댈런은, 곧장 놈을 건물 벽으로 던져버렸다.
으르르르!
날아가면서도 짐승처럼 울부짖는 건달.
커억―!
벽에 부딪히고 튕겨나오며, 놈의 등 뒤로 피와 살점이 후두둑 비산한다.
댈런은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도끼를 뽑아 내리그었다.
끄억―!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하던 건달의 머리가 땅에 툭 떨어졌다.
까각. 까가각.
머리 잃은 몸이 꿈틀대며 발광했다.
피부가 검붉게 물들고, 팔다리가 각질 같은 것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바닥을 긁어대는 게, 무슨 괴기영화의 귀신을 보는 듯했다.
다행히 발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찌됐건 머리 없는 몸은 죽은 몸이었다.
“···이럴 수가.”
축 늘어진 몸뚱이를 잠시 지켜보고 있자, 르베론이 입을 열었다.
“저건 대체 뭐란 말인가?”
댈런은 짧게 대답했다.
“괴인.”
괴인.
역행의 사도들이 내세우는 주전력.
놈들의 재생력 부여 기술은 아직까지 부족한 점이 많지만, 괴인화 하나만큼은 이 시점에도 실전에서 사용하기에 크게 모자람이 없었다.
평범한 인간도 시술을 거치면, 성인 장정을 뛰어넘는 힘을 내는 괴인이 된다.
고위 사도들의 지시 아래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아랑곳않고 달려드는 괴물의 군대.
그리고 프로그맨 같은 마물과는 달리, 괴인의 군대는 짧은 시간에도 폭발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었다.
청동 구역에 널리고 널린 게 걸인들.
그들을 납치해 시술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썩을.”
아무래도 놈들이 결단을 내린 모양이다.
이런 괴인은 절대 대로변에 풀어둘 존재가 아니다.
청동 경비단이 아무리 뒷골목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도, 민란 문제에 대해서는 극도로 철저하기 때문.
거기다 장인과 상인들을 납치하고, 그들의 기술과 돈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했다.
스윽.
댈런은 도끼를 허리띠에 끼우고, 지금까지도 한쪽 어깨에 메고 있던 페니를 르베론에게 넘겨주었다.
“들어가서 눕혀놓으시오. 순간적으로 목이 졸려서 의식을 잃은 것뿐이니, 별 문제는 없을 거요.”
“자네는 어디로 가려는가?”
페니를 들처업은 르베론이 물었다. 댈런은 안개 가득한 길거리로 고개를 돌렸다.
“갈리오스 상단. 당신 손에 있는 금화는 그 상단의 금고에서 나왔소.”
그는 널브러져있는 시체 중 하나를 툭툭 차며 말했다.
“이놈들이 내 돈 많은 고객 하나를 노리는 것 같거든.”
고용한 건달들을 풀어 사람을 징용한다.
거기다 건달들 중 몇몇에게는 이미 괴인화 시술까지 진행했다.
댈런은 텔리아 상회의 이런 움직임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역행의 사도들. 그놈들이 대계를 앞당겨 실행하려 하는군.’
그들의 대계란, 일곱 성벽을 무너뜨리겠다는 대사도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
곧 도시와의 전면전을 말한다.
그리고 이미 전면전을 작정한 이상, 눈에 거슬리는 건 모조리 치워버릴 심산일 터.
댈런이 걱정하는 건 갈리오스 상단주의 안위였다.
‘내게 맡기려 하는 의뢰가 텔리아 상회와 엮인 일이랬지.’
칼 쓰는 용병에게 의뢰를 맡기려는 것만 봐도, 상단주가 텔리아 상회와 썩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건 자명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미래에 큰 힘이 되어줄 상단 하나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볼크마 그 양반이 수다쟁이에 좀 속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인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의 속물은 되어야 할 일.
그만큼 유능하다는 뜻도 되기에, 앞으로 얼마든지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으리라.
터벅.
댈런은 안개 가득한 길거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며칠만 문 잘 잠그고 있으시오.”
“······.”
“일이 끝나면 갑옷이랑 무기를 찾으러 오겠소.”
거구의 전사는 곧 안게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르베론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
댈런은 골목을 따라 달렸다.
팔시온은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고, 대장간에서 갈리오스 상단 지부까지는 마차로도 한참이 걸리는 거리다.
거기다 슬슬 불어나기 시작하는 아침 대로변의 인파는, 그 한참에 또 한참을 더할 게 뻔했다.
‘썩을. 이미 붐비기 시작했군.’
골목길의 출구에서 댈런은 멈춰섰다.
눈앞의 대로는 벌써부터 사람과 말, 마차로 발 디딜 틈이 없어보였다.
빌어먹을 교통체증.
그는 발끝에 힘을 줬다.
탁!
가볍게 땅을 밀어찬 그의 몸이,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건물의 창틀을 잡고 몸을 끌어올리며, 동시에 발로 벽을 다시 한 번 박찬다.
탁! 타닥!
그렇게 몇 번 반복하자, 그는 어느새 4층짜리 건물의 지붕에 올라와 있었다.
‘가볼까.’
댈런은 다시 달렸다.
대로에 가득한 인파를 무시하고, 지붕과 지붕 사이를 넘나들며 질주한다.
누군가가 그를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댈런은 신경 껐다.
고작 이 정도로 신상이 노출될 일은 없었다. 여기가 지구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지구였다면 다들 휴대폰을 들이대고 인터넷에서는 벌써 난리가 났을 테니까.
‘아니, 애당초 이렇게 지붕 위를 뛰어다닐 일이 없겠지.’
실없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땀이 차오른다. 댈런이 뛰는 속도는 거의 평지에서 말이 질주하는 수준이었다.
댈런은 오랜만에 몸뿐 아니라 머리까지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도시에서 보낸 열흘은, 초인적인 지능 수치가 머릿속에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시간.
댈런의 두뇌 안에는, 청동 구역을 대략적으로 그린 3차원 네비게이션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진짜 네비게이션과의 차이는 명백했다.
정상적으로 다니라고 만들어둔 길을 죄다 무시하고, 최대한 직선으로 뻗은 경로를 개척한다는 점에서.
탁!
다시 난간을 밟고 뛰었다. 저 멀리 상단 지부가 보였다.
그때 넓게 흩뿌려진 댈런의 감각에, 수상한 몇몇 기척이 걸려들었다.
‘선객들이 있군.’
댈런은 그들에게 감각을 집중했다.
기이이익― 철컥.
도르래가 고탄력의 시위를 당기고, 방아쇠에 줄을 걸치는 소리. 저격을 위한 적재적소의 위치 선정.
암살자들. 그것도 석궁을 소지한 전문적인 저격수들이다.
댈런은 멈추지 않았다. 놈들을 하나하나 쫓아가는 건 시간 낭비였다.
상단의 건물을 둘러싼 저격수들의 배치. 놈들이 노리는 건 하나뿐이었다.
‘갈리오스 상단주.’
댈런의 눈이 빠르게 상단 건물을 훑었다.
이른 아침. 일꾼들은 벌써 일을 시작했지만, 상단주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을 시간.
‘상단주의 처소는 4층···저기 있군.’
창문 위로 흐릿하게 난반사되는 햇빛을 뚫고, 댈런의 뛰어난 시각이 갈리오스 상단주의 모습을 잡아냈다.
그는 잠옷 바람이었다.
‘이제 막 일어났나 본데.’
댈런은 피식 웃었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달리던 속도를 실어 디딤발을 내딛는다.
쩌적!
발밑에서 회반죽 지붕이 갈라지고.
콰앙!
그의 거체가 하늘을 날았다.
대로를 뛰어넘어 십여 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간 댈런은, 그대로 건물의 4층 창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콰장창!
“뭐야! 누구냐?”
잠옷바람의 볼크마가 화들짝 놀라 얼어붙었다. 융단 위를 한 바퀴 구른 댈런은, 일어나자마자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우악스런 손길로 그의 어깨를 잡았다.
“대, 댈런?! 자네가 왜···?”
“숙이시오.”
갈리오스는 일단 몸을 던졌다. 경험 많은 상인의 생존본능이었다.
피피피잉―!
바닥에 처박은 그의 귓가로 섬칫한 파공성이 연이어 들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영원 같은 찰나가 흐른 뒤.
“거기 있었군.”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덤덤한 말투에, 볼크마는 실눈을 떴다.
댈런의 양손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화살 네 발이 잡혀 있었다. 그가 말했다.
“침대 아래에 잠시 숨어계시오.”
“그, 그래. 알겠네.”
볼크마는 황급히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댈런이 사납게 웃으며 도끼를 뽑아드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