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5화 (15/288)

상인과 대장장이(5)

댈런은 창밖을 응시했다. 거리 건너편의 저격수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놈이 순간 움찔하는 게 보였다. 댈런은 씩 웃었다.

그의 손이 흐릿해졌다.

패래래랙―!

거리를 가로지르는 손도끼에, 내리쬐는 아침 햇살이 부서진다.

햇빛을 난반사하며 무슨 빛의 원반처럼 보이는 손도끼는, 방금 전 화살이 날아온 궤적을 그대로 되짚어 따라갔다.

그 궤적의 끝은 화살이 시작된 곳.

저격수의 석궁이었다.

콰직!

손도끼가 석궁을 부수고 저격수의 얼굴에 틀어박힌다.

놈이 뒤로 넘어가는 걸 본 댈런은, 손을 슬슬 털며 감각을 넓혔다.

방금 넘어간 저격수를 포함해, 근방의 지붕 위를 점령한 암살자는 모두 열하나.

두 명은 머리 위에 있었고, 나머지는 근처 건물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냥 건달이 아니군. 사교도들이 육성한 전문적인 암살자들이다.’

댈런은 어깨를 슬쩍 풀었다. 강한 적은 더 많은 경험치를 준다. 그리고 레벨업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내가 올 때까지는 나오지 마시오.”

“···알겠네!”

침대 밑에서 새어나오는, 이를 악문 채 속삭이는 볼크마의 목소리.

댈런은 피식 웃으며 침대 곁의 옷장을 넘어뜨렸다.

쿵!

값비싼 원단의 옷이 가득한 옷장이라면, 임시방편으로나마 저격수의 화살을 막아줄 수 있을 터.

침대의 틈을 그렇게 막아둔 댈런은, 지체 없이 창틀 위로 몸을 날렸다.

탁!

창틀을 박차고 높게 떠오르는 몸.

몸의 탄력을 이용해 공중에서 자세를 반 바퀴 돌리며, 초인적인 악력으로 지붕의 처마를 붙잡고 끌어당긴다.

후웅―

“···누구냐!”

단숨에 지붕 위에 안착하자, 대기하던 암살자가 움찔하고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댈런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콰직!

말없이 내뻗은 발차기에 암살자의 안면이 으스러진다. 놈이 쓰고 있던 하얀색 가면이 박살나 사방으로 흩날렸다.

댈런은 몸을 숙였다. 그의 머리 위로 날카로운 비수가 스쳐 지나갔다.

“이런!”

비수를 날린 암살자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댈런은 지붕을 박찼다.

타닥.

화살처럼 날아간 그의 몸이, 암살자 곁을 스치고 지나 지붕의 반대편 끝에 내려앉았다.

“···어억.”

선혈을 토하며 고개를 숙이는 암살자. 움푹 내려앉은 가슴팍에서 붉은 피가 울컥거리며 흘러나온다.

놈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가슴에 난 구멍을 더듬거리더니,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걸로 셋.’

처음에 도끼를 꽂은 놈이 하나. 방금 처리한 게 둘. 남은 건 여덟 명이었다.

쐐애액―!

그때 멀리서 화살이 날아왔다. 댈런은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잡아냈다. 그리고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리 반대편의 지붕 위. 저격수가 석궁을 이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댈런은 사납게 웃었다.

“······!”

가면 너머로도 드러나는 당혹감. 댈런은 다시 한 번 몸을 날렸다.

지붕 위의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암살자들은 비수와 암기를 날리고, 석궁을 쏘아대며 댈런의 사각을 노리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투사체들 중 댈런에게 통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댈런은 그것들을 피하거나, 맨손으로 쳐내거나, 아니면 아예 잡아서 되돌려 던져버렸다.

마지막 암살자는 그렇게 되돌아온 석궁 화살에 머리가 뚫려 죽었다.

마지막 놈을 쓰러뜨린 댈런은, 감각을 한 번 더 넓혀서 근처를 훑었다. 걸리는 건 없었다.

그는 처음 쓰러뜨린 암살자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놈의 머리에서 손도끼를 뽑아냈다.

쩌적―!

도끼를 뽑자, 두 쪽으로 갈라진 황금 가면이 얼굴에서 떨어졌다.

입이 큼직하게 과장된, 역행의 사도들 특유의 가면이었다.

‘나머지 열 명 중에서도 황금이 하나 있었지. 그밖에는 모두 하얀색이었고.’

총 열한 명 중에 황금이 둘, 하얀색 가면이 아홉이었다.

‘이놈들, 진짜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단순히 건달들만 동원하는 게 아니라, 괴인에 사도들까지 직접 풀어놓았다.

‘그것도 백가면에 금가면이라.’

사교도들의 최하 계급은, 임시 신도를 나타내는 검은색 가면.

그 위로 정식 신도인 하얀 가면과, 관리자급인 황금 가면이 이어진다.

간부 계급인 은가면 수준은 아니지만, 백가면과 금가면 역시 역행의 사도들의 주 전력이라 여겨지는 바.

이 정도 전력을 대놓고 드러낸다는 건, 더이상 자신들의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놈들도 마냥 당해주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거겠지.’

만약 게임에서 지금의 댈런 같은 먼치킨 캐릭터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적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두들기는 게 가능했을 테다.

하지만 이 세계는 살아 숨쉬는 곳.

멸망 시나리오의 주축이 되는 존재들 역시, 더이상 알고리즘에 지배받는 데이터 덩어리가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라면, 변수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게 당연한 법. 댈런은 놈들의 대응을 가늠해봤다.

‘대계가 실행되기까지···남은 시간이 많이 없겠어.’

대계는 도시와의 전면전을 의미한다.

그건 청동 구역뿐 아니라, 그 너머의 다른 구역들까지 전복하기 위한 사교도들의 맹렬한 공세였다.

그 목표가 목표인만큼, 적어도 보름 이상은 준비해야 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보름이면 댈런이 놈들의 거점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파괴하기 충분한 시간이었고.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주 전력까지 밖으로 내보내는 걸 보면, 그보다 더 신속하게 준비를 마칠 생각인 게 분명하다.’

댈런의 두뇌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만약 목표를 바꿔 청동 구역, 그 중에서도 일단 일부만이라도 점거하려는 속셈이라면······.’

초인적인 지능 수치와 고인물의 지식을 바탕으로, 사교도들의 계획을 역산해 그 일정까지 예측해낸다.

‘···길어야 일주일. 짧으면 나흘 내외로 준비가 끝나겠군.’

댈런은 손도끼를 허리띠에 끼웠다.

놈들이 전략을 바꿨다면, 이쪽도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도시는 쑥대밭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전에 놈들의 기세를 꺾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시에나의 역할이 중요해졌군.’

하수도의 마법사를 죽인 이후, 댈런은 시에나에게 순은 가면을 넘기며 조사를 부탁했었다.

그리고 단기간에 결전을 벌이게 된 지금, 그녀의 빠른 정보수집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선제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적들이 어디에 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는지 먼저 알아내야 했으니까.

‘최대한 빨리 찾아가봐야겠어.’

그녀의 능력에 대해 걱정하진 않았다.

시에나가 구축한 지하 정보망은, 현 시점에서도 청동 구역에서 따라올 이가 없으니까.

볼크마의 상황을 얼른 수습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까마귀 둥지로 향한다.

그렇게 생각한 댈런이 발걸음을 내딛은 순간.

쉬이익―!

날카로운 파공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쨍!

본능적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손끝이 살짝 저릿할 정도의 충격이 느껴진다.

도끼에 맞아 튕겨나간 건, 길쭉하고 두꺼운 강철 침.

‘암기.’

타닷!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흐릿한 신형이 접근한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암살자였다.

쉬익―!

놈이 유려하게 휘어진 단검을 휘둘렀다.

댈런은 도끼를 마주 그었다.

휘릭!

베이는 감각이 없었다. 찰나의 순간에 놈이 몸을 뺀 것이었다.

암살자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 옆 건물의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크흐흐···네놈이 그 전사로구나. 델릭을 죽였다는 은패 용병.”

마치 쇠로 만든 톱날이 서로 긁히며 내는 소음처럼 들리는, 음산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그 소식을 듣자마자 네놈의 피를 맛보고 싶더군. 으흐흐흐···용맹한 전사의 피는 언제나 맛있는 법이니까.”

암살자가 고개를 들었다. 머리를 둘둘 두른 검은 천 사이로, 은빛 가면이 반짝거렸다.

은가면.

하수도의 마법사와 같이, 간부급에 속하는 놈이었다.

‘암살자 은가면. 하급 뱀파이어. 암기와 독을 특기로 삼는 놈이다.’

댈런의 높은 지능 수치가, 기억 속에서 놈에 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취합해낸다.

놈은 다섯 명의 은가면 사도들 중, 게임에서 가장 짜증났던 보스몹이기도 했다.

허접한 기본 캐릭터로는 놈이 날려대는 암기에 반응조차 하기 힘들었으니까.

과연 지금은 어떨까.

댈런은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 웃음은 강력한 육체에서 비롯된 기이한 호승심 때문이기도 했으나,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밤하늘을 가르는 암살자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은가면의 머리 위에 주르르 나열되는, 놈이 잡아먹은 캐릭터를 나타내는 메시지.

이미 초인적인 육신이 한층 더 강력하게 빚어질 거란 기대감에, 댈런은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당돌한 놈이구나.’

은가면 사도, 스트레이 루터하픈은 씩 웃었다.

그가 날린 암기의 위력을 실감하고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호승심 넘치는 미소를 짓기까지 하다니.

또 다른 은가면 사도인 델릭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굉장한 놈일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정말로, 정말로 기대 이상이야. 녀석의 달콤한 피맛에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는군.’

스트레이는 입맛을 다셨다.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같은 은가면 사도라고는 하나, 델릭과 그의 무력은 하늘과 땅 차이.

애당초 델릭이 은가면을 하사받은 건, 수백의 프로그맨 군대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 하나 때문이었다.

본신의 무력으로는 단 10초도 그에게 맞설 수 없으면서, 마치 일인군단이라도 된 양 뻗대는 모습이 얼마나 재수없던지.

‘대사도님만 아니었어도, 내가 직접 놈의 멱을 따버렸을 텐데.’

빈말이 아니다.

스트레이에게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충분했다.

그 재수 없는 마법사의 목을 그어놓을 때까지도, 놈이 이끄는 프로그맨 군세는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테였으니까.

바꿔 말하면.

은가면 델릭을 쓰러뜨렸다는 이 용병의 업적마저도, 그를 두렵게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스으윽―!

스트레이는 단검을 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왼손에는 길쭉한 강철 침, 그리고 오른손에는 둥글게 말린 가죽 주머니였다.

‘힘 하나는 장사인 용병이야. 정면으로 상대할 수는 없지.’

스트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 놈이 암기를 막아내고 첫 합을 주고받았을 때 느낄 수 있었다.

드워프제 기계장치에서 발사된 암기를 가볍게 튕겨내고, 그 상태에서 곧바로 그에게 도끼를 내리찍던 용병.

그 관성을 무시한 듯한 움직임과, 내리긋는 도끼의 말도 안 되는 속도가 보여주는 근력은 뱀파이어인 그마저도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정면 승부만이 답은 아닌 법.

결국 승자를 가리는 건 누가 더 빠르고 강하냐가 아닌, 누가 마지막에 살아남았느냐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스트레이는 남들이 비겁하다고 말하는 방법이라도 서슴없이 써먹을 자신이 있었다.

저벅.

기울어진 지붕 위. 천천히 옆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용병의 시선이 그에게 못 박힌 듯 따라왔다.

스트레이는 용병의 호흡과 어깨의 움직임을 보며, 타이밍을 쟀다.

그러던 어느 순간.

휘익!

오른손의 가죽 주머니를 집어던졌다.

휘이―!

단단하게 말린 가죽 주머니가, 마치 투석병이 날린 돌처럼 공기를 가르고 날아간다.

용병의 도끼가 번쩍였다. 스트레이의 뛰어난 감각으로도 잡아내기 쉽지 않은 속도.

가죽 주머니는 그 번쩍임에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스트레이는 비릿하게 웃었다.

퍼엉!

두 쪽 난 가죽 주머니의 안에서, 암녹색의 연기가 터져나온다.

순식간에 지붕 위를 뒤덮은 연기는, 맹독을 품은 독무(毒霧).

평범한 인간이라면 닿기만 해도 살이 타오르고, 한 호흡이라도 들이마시는 순간 고통스럽게 죽게 되는 맹독이었다.

타닷!

스트레이는 지붕을 박찼다. 그는 강철 침을 손에 쥐고 독무 안으로 들어갔다.

주문 하나 쓰지 못하는 저열한 하급 뱀파이어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인간을 초월한 육체.

독 내성이 높은 뱀파이어 종족의 특성상, 스트레이는 독무 속에서도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었다.

‘저기 있군.’

짙은 암녹색 안개의 한가운데.

거구의 전사가 죽은 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이를 악물고 무너지는 몸을 붙들고 있는 중인지.

어쩌면 말 그대로 선 채로 죽은 건지도 모른다.

스트레이는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강철 침을 쥔 왼손을 뻗었다.

저 두꺼운 목을 단숨에 꿰뚫을 기세로 뻗어나가는 그의 손.

턱.

곰의 발바닥처럼 두꺼운 손아귀가, 찰나의 순간에 그 손을 잡아챘다.

“눈이 따갑군.”

용병이 말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입안에서 하얀 증기가 뿜어졌다.

치이이―

그는 온몸에서도 마찬가지로 하얀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스트레이는 눈앞의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용병이 다시 말했다.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을 할 때가 떠올라.”

“화···뭐?”

용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무감정한 눈으로, 스트레이의 손을 감싸쥔 손아귀에 힘을 줬을 뿐.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손뼈가 수십 조각으로 으스러지는 고통에, 스트레이는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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