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불장난(1)
독이 파고든다. 피부가 따끔거린다. 눈과 코, 입의 점막에 붙은 미세한 맹독 가루들이, 순식간에 세포를 괴사시키고 염증을 유발했다.
두근.
그리고 심장이 맥동했다.
두근.
사지 말단까지 뻗어나간 혈관 속에서, 평소 잠잠하던 어떤 기운이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치이이이―!
죽은 세포가 불타 없어진다. 새로이 자라난 세포가 그 자리를 메꿨다. 다시 죽으면 또 다른 세포가 기다렸다는 듯 그 역할을 대신했다.
피부를 뚫고 들어오던 독기가, 그 비상식적인 재생의 파도에 주춤거렸다.
혈관에서부터 밀려오는 열기는 오히려 독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끄, 끄으으. 뜨거워.”
댈런은 고개를 돌렸다. 은가면 암살자는 그의 손아귀에 붙잡힌 채 늘어져 있었다.
으스러진 놈의 손부터 팔목까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댈런의 몸에서 뿜어지는 고열의 증기에 익어가는 것이다.
“끄으으. 어떻게. 어떻게 이 맹독을 버티는 거냐!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 설령 네놈이···!”
존나 시끄럽네.
“커어억!”
댈런은 은가면 암살자의 목을 틀어쥐었다.
놈은 독안개를 들이마시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아주 힘차게 버둥거렸다.
뱀파이어답게 성인 남성을 한참이나 뛰어넘은 힘. 댈런은 평소보다 손아귀에 조금 더 세게 힘을 주었다.
우드득!
암살자의 시체가 축 늘어졌다. 아무리 뱀파이어라도 목이 부러지면 죽는다.
‘고위 뱀파이어라면 좀 다르겠지만.’
고위 뱀파이어라면 댈런의 손에 잡혔을 때, 이미 몸을 박쥐나 그림자 따위로 변환시켰을 터. 물리적인 방법만으로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였다.
물론 당장은 그런 놈들을 상대할 일이 없었다. 댈런은 생기 잃은 육신을 툭 내려놓았다.
치이이―!
독무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민간 피해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놈이 쓰는 맹독은, 치명적인 만큼이나 의외로 쉽게 분해되어 사라지는 종류.
암살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댈런은 무심코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가, 이내 오만상을 찡그렸다.
“······시발.”
눈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손가락에 아직 잔여 독이 묻어 있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다행히 하수도에서 얻은 스킬, 용혈의 재생 인자는 섬세한 조직인 눈마저도 재생시킬 수 있었다.
치이이이―
“······.”
그렇다고 고통까지 없애주는 건 아니었지만.
눈에서 한바탕 김을 뿜어낸 뒤, 댈런은 바닥에 생성된 시체를 확인했다.
잿빛으로 물든 암살자의 시체.
피가 전부 빨렸는지 미라처럼 앙상한 몰골이 된 시체는, 그가 오래 전에 키우던 암살자 캐릭터의 최후였다.
[밤하늘을 가르는 암살자의 시체]
- 놀라운 도약 능력을 가진 암살자의 시체다. 단 한 번의 발디딤으로 지붕을 넘나드는 모습이, 마치 밤하늘을 가르는 유령처럼 보였다고 한다. 암살자치고 이상하게 강한 근력의 보유자라는 소문도 있었다. 은가면 사도 스트레이 루터하픈의 암살을 기도했으나, 역으로 당해 피를 빨렸다.
‘분명 힘캐로 키울 생각이었는데, 어쩌다가 암살자한테 어울리는 스킬을 배워버렸었지.’
잊고 있었던 과거 생각에, 무심코 픽 웃음이 났다.
아직 게임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을, 초창기 플레이 때 키웠던 캐릭터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에게 더없이 큰 힘이 되어줄 과거의 유산.
댈런은 손을 내밀었다.
‘시체 흡수.’
[밤하늘을 가르는 암살자의 시체를 회수했습니다. 능력을 계승합니다.]
[계승 보상 : 근력 +3, 도약(E)]
꾸드드득―!
근육이 요동친다. 안 그래도 사람같지 않던 근육이, 이제는 마치 강철 섬유처럼 단단하게 얽혀들었다.
콰르르―!
“이런.”
무심코 지붕 위의 굴뚝에 손을 얹었는데, 벽돌 굴뚝이 모래성처럼 바스라질 지경.
몸을 꽉 채우다 못해 터져나갈 듯 요동치는 고양감 속에서, 댈런은 한동안 스스로를 가라앉히느라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스읍―”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척추부터 허벅지를 지나 발끝까지, 온 정신을 집중한다.
순수한 근력으로 해내는 동작이 아니다.
단순한 도약이라도 스킬로 발현될 때는, 어느 정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바.
과하지 않게, 하지만 필요한 만큼의 힘을 담아낸다.
어느새 저 멀리 떨어진, 거리 건너편의 갈리오스 상회 건물을 바라보며.
터엉―!
자리를 박찬 댈런의 신형이, 하늘 높이 솟구쳐 사라졌다.
***
볼크마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무리 청동 구역이 무법 지대라지만, 광장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대로만큼은 안전한 일대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 안으로 날아든 화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은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안전은 개뿔. 툭하면 야만족과 치고받는 북부의 차르국도 이 정도는 아니겠군. 성벽 안에서 화살이 날아다닌다니, 전쟁터나 다름없잖은가!’
대체 왜 이 도시에 지부를 세울 생각을 했을까. 가죽공방 사업에는 왜 관심을 가진 것일까.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텔리아 상회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밤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텔리아 상회는 청동 구역에서 가죽공방 사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기에,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암살이라니.
이런 벌건 대낮에 암살이라니!
‘진정하자. 아직 내 목은 잘 달려 있다.’
볼크마는 힘차게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댈런이 침대 밑에 숨어있으라곤 했지만, 그 말만 믿고 가만히 있을 순 없는 일이다.
아무리 고블린을 두 동강 낸 대전사라도, 결국 피륙을 입은 인간 아닌가.
언제나 위험을 최소화하라는 상인들의 격언에 따라,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스스슥.
볼크마는 재빠르게 침대에서 기어나왔다. 그리고 옷장에서 통짜 소가죽 갑옷과 검을 꺼내들었다.
본인 딴에는 은밀하게 한다고 했지만, 엉성하기 그지없는 동작들.
어렵사리 혼자 힘으로 갑옷을 걸치고 나서, 그는 조심스레 창밖을 내다봤다.
“······.”
조용했다.
화살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상상했던 것과 달리, 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웠다.
소와 말의 울음소리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의 소음만이 거리에 가득할 뿐.
‘댈런은···어디에?’
불현듯 불안감이 엄습한다.
볼크마는 천천히 창문에서 멀어졌다.
거리가 조용하다는 건, 전투가 오래 가지 않았다는 뜻.
그리고 아무리 댈런이라 해도, 화살을 쏘아대는 저격수들을 이 짧은 시간에 처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반대라면 몰라도.
‘댈런, 부디 살아있기를 바라네···!’
볼크마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뭐라도 해야 한다.
직원들을 모아 건물 안에서 농성을 시작하고, 경비단이 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으리라.
판단을 마친 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방문 손잡이를 잡은 순간.
콰지직! 와지끈!
지붕과 천장을 뚫고 사람 형체의 무언가가 방으로 떨어졌다.
“······허억.”
너무 놀라서 숨도 내쉬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떨어진 인영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더니 말했다.
“쯧, 이거 힘 조절을 좀 더 세밀하게 해야겠군······상단주는 거기서 뭐하시오?”
“어, 대, 댈런?”
“침대 밑에 잘 들어가 있으라니까. 왜 또 나와서 난리요.”
댈런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그 여상한 태도에, 볼크마의 시선이 잠시 방황했다.
댈런의 몸에 붙은 기와 조각과 나무 파편들. 천장에 뻥 뚫린 구멍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잔해들과, 움푹 가라앉은 방바닥.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은 후, 볼크마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쩌면 눈앞의 저 전사는, 피륙을 입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
반쯤 혼이 빠진 볼크마의 정신이 돌아오는 데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가 걸렸다.
그리고 댈런은 암살자 무리를 쳐죽이는 것보다, 사람 하나 진정시키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직원들에게 방을 청소하고 수리하게 지시해둔 뒤, 두 사람은 일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볼크마는 여전히 소가죽 갑옷을 입고, 장식 가득한 검을 곁에 둔 채였다.
“그래서···암살자들은 다 처리했다는 말이지?”
“그렇소.”
벌써 몇 번째 묻는 건지.
댈런은 답답한 속내를 달래기 위해, 딸기를 입 안에 털어넣고 씹었다.
달달한 과육향과 살짝 설익어 아삭거리는 식감. 이 정도 식감과 맛이면 상당히 비싼 품질이었다.
“아무튼 가죽 공방을 여셨다는 거요? 상회와는 경쟁 업체다보니 마찰을 좀 빚었던 거고.”
“그렇지. 물론 내가 좀 공격적으로 영업을 하기는 했네. 하지만 그랬다고 암살 시도라니, 말이 되는가?”
볼크마는 말하면서도 답답한지, 찻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단숨에 찻물을 전부 마셔버린 후, 한숨을 내쉬며 잔을 내려놓았다.
“후우. 상인의 싸움은 돈을 풀고 인맥을 끌어들이는 것일세. 이렇게 칼과 화살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그런 당신도 나를 고용하려 하지 않았소?”
“그건 이미 저쪽에서 두 번이나 우리 직원들을 습격했기 때문이었네. 그것도 근 사흘 이내에.”
흠, 그런 뒷사정이 있었던 거군.
볼크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댈런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역행의 사도들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그 움직임에 대응하려면 이쪽도 빠르게 나설 필요가 있었다.
“아무튼 진정이 된 듯하니, 나는 이만 가 보겠소. 차 잘 마셨소.”
댈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까마귀 둥지로 갈 심산이었다.
똑똑똑.
그때, 직원이 문밖에서 방문을 두드렸다.
“상단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지금 손님 맞을 상황이 아니다. 다음에 오시라고 전해드려라.”
“그, 그게.”
끼이익.
문이 열렸다. 댈런은 눈썹을 살짝 들어올렸다.
진작에 유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인데.
또각. 또각.
굽 낮은 구두가 경쾌하게 바닥을 울린다.
직원은 방 안에 난입한 손님을 어쩔 줄 몰라하며 잡으려 했지만, 그녀의 손짓 한 번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검고 긴 머리에 마찬가지로 검은 눈동자. 복슬거리면서도 고급스러운 어두운 빛깔의 털옷.
긴 속눈썹이 예쁜 여자는, 댈런을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댈런.”
“마침 찾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어떻게 알고 온 거요?”
“후후. 이번에는 당신도 좀 놀랐나 보네.”
시에나가 미소지었다. 매력적인 눈웃음이었다.
빠른 눈치로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한 볼크마가, 머뭇거리는 직원에게 나가 있으라 손짓했다.
덜컹.
문이 닫히고, 시에나는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합석했다. 그녀는 볼크마를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새로 시작하신 사업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어요, 갈리오스 상단주님. 텔리아 상회가 놀랄 정도로 많은 돈을 쏟아부으셨다죠?”
“···설마 까마귀 둥지의 정보상인가?”
볼크마는 확신 없는 어조로 말했다. 시에나는 싱긋 웃었다.
“네, 맞아요. 까마귀 둥지의 시에나라고 합니다. 소문을 퍼뜨리는 능력이 출중하신 데 비해, 다른 소문을 기억하는 부분은 약하시군요.”
“뭐, 그런 편이지. 돈이 되는 게 아니라면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일세.”
음. 저거 수다쟁이 상단주면서 정보 수집 능력은 약하다고 돌려까는 건데. 못 알아들었나 보군.
‘본인만 기분 나쁜 게 아니라면 상관없겠지.’
댈런은 그렇게 생각하고 딸기를 한 줌 더 우물거렸다.
그 사이 시에나는 지도를 꺼내, 테이블 위에 넓게 펼쳤놓았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건네준 은가면. 어떤 조직인지 알아냈어.”
“누구요?”
댈런은 모른 척 물었다. 시에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알고 있으면서 왜 모른 척하냐는 눈빛이었다.
“놈들은 악신을 섬기는 사교도들이야. 스스로를 ‘역행의 사도들’이라고 부르지. 당신이 건네준 것처럼, 입이 크게 과장된 가면을 상징처럼 쓰고.”
댈런은 다시 딸기를 털어넣었다. 마지막 한 줌이었다.
반면 볼크마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녀의 말을 경청중이었다. 이쪽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
“내가 이걸 알아낸 건, 비단 내 능력이 좋아서만은 아냐. 타이밍이었지.”
“타이밍?”
시에나는 또 다른 종이뭉치를 꺼내들었다.
표 안에 빼곡히 적힌 숫자와 글자들. 거기에는 익숙한 플로린이나 실링 따위의 단위가 섞여 있었다. 볼크마가 소리쳤다.
“이거, 장부 아닌가!”
“맞아요. 텔리아 상회의 장부죠.”
그녀가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댈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요점만 말할게. 텔리아 상회주는 역행의 사도들의 일원이야. 그것도 간부급인 은가면이지.”
“어쩐지. 놈들의 극악무도한 방식은 상인이라면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네!”
볼크마가 의분을 터뜨리며 벌떡 일어났다. 시에나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지난 며칠, 텔리아 상회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자를 사들이고 있어. 주로 약초, 무기, 금속 위주로. 상인들 사이에서는 매점매석을 하는 게 아니냐, 남쪽 제국과 독점적인 거래 계약을 맺은 게 아니냐 하는 소문도 돌고 있을 정도야.”
“이런! 상도덕도 없는 놈들! 그렇게 죄다 사들이면 중소 상단들은 어쩌라는 건···!”
“하지만 다 헛소문이지.”
울분을 토하던 볼크마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시에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그를 한 번 흘겨보고는, 지도의 한 지점을 짚었다.
“사들인 물자들은 바로 여기로 모여들고 있어. 텔리아 상회가 오래 전에 구매한 이후, 방치해뒀다고 알려진 창고로.”
댈런은 뚱한 눈으로 지도를 쳐다봤다. 그도 알고 있는 장소였다.
뒷골목에서 흔하지 않은 5층짜리 건물. 시에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이 근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
“가면 쓴 사교도들이 목격되나 보군.”
“정확해. 거기다 놈들이 납치해간 상인과 장인들, 더불어 돈을 주고 고용한 건달과 길거리의 부랑자들까지도.”
댈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건달에 부랑자라.
괴인으로 만들기 그만큼 쉬운 먹잇감도 없지.
건달은 힘과 돈을 주겠다고 유혹하면 되고, 뒷골목의 부랑자는 빵 한 덩이에 목숨도 거는 이들이었으니까.
사도들을 결집하고, 괴인의 군대를 육성한다. 동시에 상인들의 자금과 장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군대를 무장시킬 병장기를 찍어낸다.
“곧 전쟁을 시작하겠군.”
“맞아.”
시에나는 허리를 폈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종을 딸랑 울렸다.
그녀는 들어온 직원에게 다과를 좀 더 달라고 부탁했다.
그걸 본 볼크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럴 수가. 내 상단 안에도 사람을 심은 건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볼크마를 향해, 시에나는 도발적인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당연하죠. 아니면 댈런이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겠어요? 응접실까지는 또 어떻게 올라왔고?”
“······.”
머지않아 다과가 도착했다. 댈런은 딸기를 한 줌 더 입에 털어넣었다. 그가 말했다.
“청동 경비단에서는 별 이야기가 없소? 침묵중대장과 잘 알고 지내지 않으시오.”
“일단 말은 해 뒀어. 그쪽에서도 협력하겠다고 했고. 하지만······.”
“하지만?”
시에나는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자신감 넘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를 모으고 상황을 파악하기는 했는데, 그 다음 대안은 세우기 힘든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댈런 같이 간접적으로라도 수백 번의 회차를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급변하고 있는 사교도들의 움직임에 어떻게 적절한 대응책을 딱 내놓겠는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음모론에 가까운 조직의 민낯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시에나는 차를 홀짝이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경비단이라고 해도, 명확한 증거 없이 상단 건물을 습격할 순 없다고 하더라. 그것도 순찰권 밖인 뒷골목에 있는 창고라면 더더욱.”
“그거야 문제될 거 없지.”
댈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허리띠의 도끼에 손을 턱 얹었다.
“내가 경비단이 개입할 만한 명분을 만들어 주면 되는 거 아니오?”
시에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댈런은 씩 웃었다.
“아무리 순찰 구역 밖인 뒷골목이라도, 경비단인 이상 불이 나면 그걸 끄러 달려와야겠지.”
괴인과 사도로 득시글한 사교도들의 5층짜리 창고라.
밤중에 불장난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