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0화 (20/288)

한밤의 불장난(5)

작은 원형 방패가 허공을 날았다.

허공을 빙그르르 돌며, 활강하듯 바람을 가르는 원반.

21세기의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흔히들 공원에서 던지고 받는 프리스비를 떠올릴 장면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쐐애애액―!

그 재질이 철로 바깥을 보강한 나무에다, 활에서 쏜 살 수준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는 것.

크에에―칵!

콰드득!

경비병 하나에게 달려들려던 괴인이, 그 살상용 프리스비에 맞아 두 조각으로 쪼개진다.

놈의 몸이 명치를 기준으로 위아래로 나뉜 채, 뒷골목 흙바닥을 나뒹구는 걸 확인한 댈런은 시선을 돌렸다.

크아아!

챙! 챙!

“으아아아!”

괴성과 비명,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섬칫한 파육음.

좁은 골목들을 가득 메운 횃불 수백 개의 일렁임과, 지면을 너저분하게 뒤덮은 피와 내장.

그리고 그걸 짓밟아가며 혈투를 벌이는 경비병과 사교도들까지.

미궁도시의 청동 구역이라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남부 지구의 정경이, 비록 평소에도 언제 어디서 칼에 찔릴 지 모르는 무법지대이긴 했으나.

“으아아! 으아아아!”

카아아악!

이렇게 괴성과 비명으로 점철된 전장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그래도 다행히 경비대가 시간을 맞춰줬군.’

댈런은 턱을 쓰다듬었다. 워낙 급조된 작전이다보니, 경비단이 중간에 말을 바꾸지는 않을지 내심 걱정했었다.

청동 경비단 입장에서야, 댈런 하나만 믿고 뛰어드는 이 작전은 여러 의미에서 도박수에 가까웠으니까.

‘원체 NPC가 통수 치는 일이 많은 게임이기도 하고.’

그러나 청동 경비단은 약속을 지켰다.

주문으로 피워올린 불꽃으로 건물에 불을 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댈런은 저 멀리서 접근하는 수백의 횃불을 볼 수 있었다.

역행의 사도들이 보초로 세워둔 사교도들을 죄다 학살하며 다가오는 수백의 경비병들.

훌륭한 무장과 철저한 훈련으로 준비된 병사들은, 비록 초인이 아니었음에도 자신들보다 두 배는 많은 사교도의 군세를 효과적으로 몰아세웠다.

물론 그 기저에는 댈런의 역할도 크게 작용했다.

애당초 가장 핵심 전력인 상회주와, 놈의 괴인 군단을 홀로 처리한 게 그였으니까.

습격을 보고하러 올라온 사교도들을 맞이한 건, 그들을 이끌어줄 지휘관이 아니라 맨손으로 사람 수백을 쳐죽일 수 있는 괴한이었다.

뒤늦게 내부의 적을 알아챈 사교도들이 수십에 달하는 병력을 추가로 올려보냈으나, 상대는 상회주마저 일격에 썰어버린 전사.

올라온 사교도들 중 내려간 이는 단 하나도 없었고, 사교도들은 지휘체계가 마비된 체 싸워야 했다.

덤으로 주인 잃은 무기를 한가득 얻게 된 댈런은, 고층 건물에서 이를 투척하며 전장의 적재적소를 지원해줄 수 있었다.

‘덕분에 레벨업도 했지.’

상회주와 괴인 무리를 때려잡고도 아슬아슬하게 레벨업에 닿지 못한 경험치를, 전장의 포탑 역할을 하며 마저 채워낸 것.

추가 능력치는 체력에 투자했다.

스윽.

댈런은 적당한 크기의 도끼를 집어들었다. 사교도들이 남긴 무기 중 마지막이었다.

평소에 쓰던 것과는 달리, 약간 더 두툼하고 긴 손잡이와 좀 더 넓적하고 큼직한 도끼머리.

주무기로도, 투척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도끼였다.

“흠.”

댈런은 잠시 턱을 긁적이며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더이상 그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았다.

경비단의 피해가 심각하긴 했지만, 사교도의 군대는 아예 궤멸 직전.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승기를 잡아가는 듯했으니까.

댈런은 거기에 한 손 더 보태서, 전투를 빠르게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용혈의 재생 인자 때문에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하는군. 얼른 끝내고 쉬어야겠어.’

우드득.

뻐근한 어깨와 목을 푼 댈런은, 전장의 적당한 곳을 점찍고 가볍게 발을 굴렀다.

콰앙―!

5층 건물의 두 배 높이까지 뛰어올랐다가, 절대 가볍지 않은 속도와 무게로 낙하하는 그의 신형.

후우우우―

그 목표는 남아있는 사교도 병력들 중 가장 큰 무리였다.

꽈아아앙!

착지하는 것만으로 세 놈을 으스러뜨린 그가, 다리에서 증기를 피워올리며 일어섰다.

믿기지 않는 광경을 봤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뜬 사교도들.

급기야 금가면 사도 하나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 무슨? 누구···!”

서걱!

댈런은 굳이 대답해주지 않았다.

허공을 빙그르르 돌아서 낙하하는 금가면 사도의 머리.

콰직! 스걱!

그 머리가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크아악!”

“어억···컥!”

“사, 살려줘! 괴물!”

그의 도끼가 번뜩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

전투는 머지않아 끝났다.

물론 그 대미를 장식한 건, 마지막에 난입한 댈런의 활약.

도끼 하나로 금가면 사도 세 명이 포함된 사교도 부대를 갈아버리는 댈런을 보고, 몇 안 되는 사교도 측 생존자들은 너도나도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끝나버린 전투의 현장.

댈런은 머리가 빠져버린 도끼자루를 짚고 삐딱하게 기대선 채, 경비단이 현장을 수습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붕대 가져와! 없으면 천이라도 찢어서 줘!”

“경상자는 일단 응급처치만 하고, 복귀하면 치료 받게 한다!”

“내, 내 손! 내 손이···!”

“재생 포션 어디 있어! 여기 복막이 터진 중상자가 있다!”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병력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경비단 측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사지 중 하나가 떨어져나간 병사, 동료의 흘러내리는 내장을 주워담으며 포션 희석액을 들이붓는 의무병, 전투의 충격으로 인해 웅크린 채 덜덜 떨고만 있는 소년병까지.

곳곳에 만연한 죽음의 그림자는, 경비병들이 승리를 자축할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때 원로 마법사한테 포션을 받아둘 걸 그랬나.’

엘가이아 마탑의 원로 마법사, 펠버 발렌티노가 처음에 제시했던 추가 보상.

마탑제 재생 포션이 한 다스 넘게 들어있는 그 가방은, 포션 희석액마저도 아껴 쓰고 있는 이 전장에서 가장 필요한 물건이 아닐까.

어쩌면 눈앞에서 죽어간 몇몇 병사들은, 그의 선택에 따라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댈런은 고개를 저었다.

‘모든 생명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인간이었다.

저기 악을 쓰고 신음을 흘리며, 어머니를 찾는 병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

편안하고 안락했던 삶에 향수를 품고, 이 야만적인 땅에 싫증을 내는 지구인.

그는 성자가 아니었다.

신은 더더욱 아니었고.

평범한 인간인 그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약간의 도움과 묵념뿐이다.

그마저도 이 초인적인 육신을 입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아니었다면 저기 누워있는 싸늘한 주검 중 하나가 자신이 되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 땅을 밟고 선, 원래는 이 땅의 주민이 아니었던 사람.

댈런은 스스로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포션 대신 보상으로 받아낸 약속이, 후에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어쨌든 그는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하고자 할 것이다.

그건 멸망을 피해내기 위한 그의 길과 크게 빗겨가지 않을 테니까.

물론 그 전제는 그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였다.

애당초 멸망을 막을 유일한 변수인 자신이 죽으면, 결국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철컥. 철컥.

뚱한 얼굴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댈런은 고개를 돌렸다. 한 남자가 병사 몇 명을 동반한 채 걸어오고 있었다.

이 병사들의 복장은 다른 경비병들과 달랐다.

피와 살점으로 범벅됐음에도 값비싸 보이는 전신 판금갑옷.

그와 어울리지 않는, 몇 번이나 기운 흔적이 있는 남루한 로브.

댈런은 보자마자 이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청동 경비단의 침묵중대.’

경비단에서도 특수한 임무만을 맡거나 지원하는, 엄격하게 선발된 엘리트 전사들.

넝마와 같은 로브는 그들의 특징이었다. 처음 지급받았던 로브가 숱한 싸움을 거치며 찢어지고 헤어져도, 끝내 다시 기우고 손질해 입는 것.

‘바꿔 말하면, 많이 헤어진 로브를 걸친 중대원일수록 베테랑 전사라는 소리지.’

댈런은 이들의 너덜거리는 로브 끝자락을 곁눈질하며 생각했다.

실제로 침묵중대의 전투력은, 경비대의 다른 부대들과 비교했을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조금 전의 싸움에서도, 이들은 몇몇씩 짝을 지어 선두에서 전열을 돌파하며 사교도 진영을 헤집어놓았다.

댈런 다음으로 가장 많이 활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철컥.

가장 앞서서 걸어오던 남자가 댈런 앞에 절도 있는 자세로 멈춰섰다. 그가 말했다.

“용병 댈런 맞으시오?”

댈런은 약간 피곤한 눈으로 끄덕였다. 실제로 피곤했다.

내장이 진탕이 된 걸 용혈로 재생한 여파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몰려오기 시작했으니까.

남자는 그런 그의 반응에, 변화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청동 경비단 소속 침묵중대를 맡고 있는 가웨인이라고 하오. 귀관의 계책과 적절한 지원 덕분에, 경비단의 큰 피해 없이 사교도들의 습격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소.”

남자는 무뚝뚝한 얼굴 그대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청동 경비단을 대표해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요.”

“감사만?”

“······.”

침묵중대장의 낯빛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 댈런은 낮게 웃었다.

“농담이었소. 경비단에 금화가 넉넉하지 않은 건 알고 있으니.”

“북쪽에서 온 전사답지 않으시구려.”

“말 잘한다는 소리는 또 자주 듣지.”

“······.”

가웨인은 잠시 할말을 잃은 표정이 되었다. 댈런은 씩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원로 마법사에게 내 이야기를 전해준 게 당신이라 들었는데.”

“맞소이다. 까마귀 둥지의 정보상을 통해 맡긴 의뢰마다, 기대 이상의 결과물로 보답하는 게 눈에 띄었지.”

그는 화마가 점점 삼켜가는 상회의 창고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번 일로, 귀관의 실력이 내 생각 이상임을 알게 되었소. 언젠가 또 의뢰를 맡게 되시면 잘 부탁드리오.”

“그러지.”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도끼자루를 바닥에 툭 던지고는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할 일은 끝났다.

현장이 수습되는 것도 확인했고, 앞으로를 위해 한 번쯤 만나봐야겠다 생각하던 침묵중대장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경비단은 상회에서 증거를 수집해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역행의 사도들을 찾아낼 것이다.

자잘한 사교도 집회 정도야 그들끼리 처리할 수 있을 터.

그리고 대사도를 위시로 한 나머지 은가면들은, 그가 직접 찾아가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일단 쉬어야겠군.’

용혈의 여파로 어지러워지는 시야를 붙잡고서, 댈런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뒤에서 침묵중대장이 지나가듯 말했다.

“가능하다면 갑옷 정도는 입고 다니시오. 아무리 강인한 몸이라도, 언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댈런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어깨 위로 휘휘 손을 저어줄 뿐이었다.

***

새벽이 다 되어 여관에 들어온 댈런은, 아예 하루 온종일을 침대에서 보냈다.

침대에서 아침 햇살을 두 번째로 맞이하고서야 그는 눈을 떴다. 피로가 가득하던 몸은 어느새 개운하게 회복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군.’

내장이 진탕이 된 터라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능력치와 스킬로 빚어진 초인적인 육신은 그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댈런은 늦은 아침을 먹고 여관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갈리오스 상단 지부.

텔리아 상회로 쳐들어가기 전, 경비단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댈런은 상단주에게 요구에 가까운 부탁을 했다.

그건 바로 대장장이 르베론 아하킴이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입지 좋은 상단 지부 곁에 대장간을 마련해달라는 것.

‘그 골목길의 허름한 대장간에서 벗어날 때가 됐지.’

상단주 볼크마는 잠시 망설였지만, 구해준 목숨값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단번에 그러겠다 했다.

마침 상단 지부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매물을 내놓은 대장간이 하나 있었다. 상단주는 즉시 그걸 매입했다.

그리고 시에나가 가운데에서 중재를 잘 했는지, 대장간 계약은 르베론에게도 굉장히 유리한 조건으로 맺어졌다.

볼크마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었다.

어찌됐건 르베론은 머지않은 미래에 전설적인 장인으로 거듭나는 바, 그 이웃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상단 지부와 가죽 공방 역시 몇 배의 혜택을 보게 될 테니까.

‘슬슬 갑옷을 받아보러 갈 때가 되었지.’

변변찮은 갑옷과 무기도 없이 너무 오랫동안 몸을 혹사시키긴 했다.

능력치의 불균형으로 말미암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장비는 필수적이었다.

깡―! 깡―!

가게 앞에서부터 망치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가판대에는 아직 물건이 몇 개 없었다.

그래도 종류별로 고급 품질의 무기가 하나씩은 있는 걸 보니, 일단 가게 홍보용으로 만들어서 내놓은 모양.

댈런은 조용히 가게 안으로 들어가, 열심히 작업중인 대장장이를 슬쩍 바라봤다.

깡! 깡! 치이이―

망치를 내려칠 때마다 떨어지는 땀방울. 장인의 결의가 희미하게 깃든 눈동자.

얼마 전의 비참한 패배자의 얼굴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댈런은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렸다.

“어머, 댈런 씨?”

그때 묵직한 주머니를 양손에 뒨 채 가게로 들어오던 페니가 댈런을 발견했다.

댈런은 조용히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가져다댔다. 그는 대장장이의 집중을 깨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갑옷과 무기만 받고 가겠소.”

“어, 네. 근데 삼촌이 댈런 씨가 오시면 꼭 말해달라고 했는데······.”

“르베론에게는 나중에 다시 찾아올 거라고 전해주시오.”

“아아······네, 알겠어요.”

페니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정리가 덜 되어 널브러진 주괴와 가죽, 촘촘하게 엮인 쇠사슬 사이에서 그녀는 상자 하나를 찾아서 가져왔다.

“삼촌이 밤을 새면서 만든 작품이에요. 당장에는 댈런 씨의 명성에 비하면 하잘것없는 장비겠지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도 덧붙이셨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댈런 씨에게 어울리는 갑옷과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장인이 되겠다면서.”

페니는 마치 자신이 르베론이 된 것처럼, 두 손을 꽉 모아쥐며 결의를 다졌다.

댈런은 그 모습을 보며 낮게 웃었다. 그는 상자를 열어보았다.

차르르―

댈런의 체형에 딱 맞게 만들어진, 가죽과 사슬이 복합적으로 이어진 갑옷이었다.

흉부와 등, 어깨에는 철판을 추가로 덧대고, 허리 아래는 사슬로 짧은 치마가 하반신을 보호해주었다.

상자에는 손등과 손목 부위를 철판으로 마감한 가죽 완갑과, 튼튼해보이는 각반, 그리고 부츠까지 세트로 담겨 있었다.

“무기는 정확히 어떤 걸 선호하실 지 몰라서, 종류별로 만들어봤다고 해요.”

페니는 그렇게 말하며 가게 앞쪽의 가판대를 가리켰다.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저게 가게 홍보용이 아니라 나 가지라고 만든 거였어?

시험삼아 검 하나를 들어보니, 굉장한 명검이었다. 날카롭게 갈린 날에 적절하게 배치된 무게중심이 인상적인 검.

거기에 보통의 검보다 좀 많이 묵직한 게, 힘이 센 그를 위해 일부러 무겁고 튼튼하게 만든 것 같았다.

댈런은 진열대에서 한손검과 방패, 그리고 손도끼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가 말했다.

“기다릴 필요 없겠군.”

“네?”

페니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댈런은 낮게 웃으며 덧붙였다.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좋은 장비들이오. 감사하다고 전해주시오.”

“어, 어어······.”

“다음에는 제값을 주고 사겠소.”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페니. 그녀를 보고 피식 웃던 댈런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돌렸다.

“······?”

페니는 저도 모르게 덩달아 고개를 돌렸다.

거리에는 시민들만 오갈 뿐, 별다를 건 없어 보였다.

다그닥. 다그닥.

그때 저 멀리서 말에 탄 경비병 몇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빠르군. 이번에도.”

댈런이 중얼거렸다. 페니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사이 다가온 기마병들은,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댈런에게 다가갔다.

철컥. 철컥.

전신을 뒤덮은 판금 갑옷. 그 위에 걸친 넝마 같은 로브.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댈런에게, 가장 앞에 선 남자가 투구를 벗어들며 말했다.

“댈런. 생각보다 빨리 귀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됐소.”

“사교도들이오?”

남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놈들이 남은 세력을 한데 집결했소. 동부 지구의 8구역이 이미 놈들의 손에 넘어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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