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2화 (22/288)

동부 지구 전선(2)

“넌 뭐야?”

드르륵!

배불뚝이 7구역 경비대장이 의자를 끌며 일어섰다. 갑옷 틈 사이로 뱃살이 출렁거렸다.

어이구, 많이도 해먹으셨나 보네.

댈런이 뚱한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자, 배불뚝이는 두꺼운 눈썹을 사납게 치켜세우며 다시 말했다.

“어디서 온 놈이냐? 보니까 경비단 소속도 아닌 것 같은데, 어디 용병 나부랭이가 경비대장들의 회의에 들어온 거지?”

“내가 모셔왔소이다, 7구역 경비대장.”

침묵중대장, 가웨인이 입을 열었다.

“텔리아 상회를 제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용병이시오. 이분이 없었다면 이미 청동 구역 곳곳이 사교도의 손에 넘어갔을 터. 회의에 참석할 자격은 충분하다고 보오.”

배불뚝이는 순간 놀란 듯, 두툼한 턱살을 파르르 떨었다. 그는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래, 역시 침묵중대장이시군. 항상 특별한 사건만 쫓아다니셔서 그런지, 발상도 아주 특별해지셨소? 지휘관도 아닌 저런 용병에게 도움까지···.”

“경비대장 양반.”

댈런이 끼어들었다.

그는 피곤한 눈으로 관자놀이를 잠시 문지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테이블을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툭. 툭툭.

‘이걸 그냥 도끼로 찍어버려?’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충동.

정상적인 지구인이라면 하지 못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땅에 떨어지고 어떤 갈등이든 해결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자, 이런 충동은 종종 그를 찾아오곤 했다.

마치 허리띠에 꽂힌 도끼가, 자신을 날려달라고 애타게 부르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건 해결책이 아니다.’

툭툭. 툭툭.

초인적인 자제력으로 참아낸다.

게임이었다면 한 번쯤 찍어봐도 상관없겠으나, 여긴 현실이었다.

인간이고 마물이고 다 썰어죽이며 화를 풀다가, 무덤덤하게 새 게임을 클릭하는 게 불가능한 현실.

칼을 뽑아야 할 때와, 혀를 놀려야 할 때를 구분해야 했다.

댈런이 입을 열었다.

“7구역에는 유서 깊은 철광이 많이 있지.”

“······!”

부릅뜬 배불뚝이의 눈이 순간 커졌다.

마치 뒤에 이어질 말을 예상이라도 한 듯한 눈빛. 회의장의 웅성거림 역시 잦아들었다.

댈런은 말을 이었다.

“다들 50년, 60년 이상 된 철광들이고, 지금까지도 꾸준한 품질을 보장하는 신뢰도 높은 광산이라고 알고 있소.”

톡. 톡.

검지가 규칙적으로 원탁을 두드린다.

“하지만 요새는 벌이가 좀 좋지 못해졌다지. 10년쯤 전부터인가, 8구역에서 양질의 철을 생산해내기 시작했으니까 말이야.”

“네, 네가 어떻게 그런 걸······.”

“귀관의 고향도 마침 7구역이라고 알고 있소. 친척들 중에 큰 광산을 하나씩 맡은 광산장도 여럿 있다고 하던데. 요즘 8구역이 번창하면서 다들 가세가 기울었다더군.”

“······.”

배불뚝이 경비대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늘어진 턱살이 다시 한 번 파르르 떨렸다.

댈런은 턱을 괴었던 팔을 내려놓고, 두 손을 테이블 위에 모아쥐었다.

“오면서 본 그쪽 병사들은 모두 무기와 갑주에서 빛이 났소. 흔치 않은 일이지. 청동 경비단은 예산이 늘 부족하니까. 헌데 귀관의 7구역은, 예산 분배를 굉장히 잘 하신 모양이오.”

배불뚝이 경비대장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댈런은 그걸 보며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

병사들을 봤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댈런이 방어선에 도착한 건 고작 몇 분 전.

오자마자 회의장으로 향했기에, 7구역 경비대원들을 찾아볼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때문에 그가 지금 말하고 있는 건, 다 게임에서 익혔던 배경 설정들.

하지만 이미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온 이상,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큰 상관이 없었다.

“아직까지 그 예산 분배 능력이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한데. 이번 기회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귀관의 능력을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군.”

“이, 이익!”

부들부들 떠는 배불뚝이 경비대장과, 입꼬리를 올린 채 그걸 지켜보는 댈런.

7구역 경비대장이 광산장들에게 많은 뒷돈을 받고 있다는 건, 사실 경비단 안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외부인, 그것도 소문을 퍼뜨리기 가장 적합한 직업군인 용병의 입에서 그 이야기가 나온다는 건.

그 용병이 마음먹기에 따라, 이 공공연한 비밀은 곧 날개 달린 말처럼 청동 구역 전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는 뜻.

쉬운 말로 그냥 협박이었다.

내가 당신의 약점를 쥐고 있고.

당신이 내 눈밖에 나는 순간, 그 약점은 온 도시에 퍼져나갈 것이라는 협박.

“···미안하게 됐소.”

부들거리는 목소리로, 배불뚝이 경비대장은 간신히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댈런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괜찮소. 부디 이번 작전이 민간인들의 큰 피해 없이 끝나, 8구역의 고품질 철광업에 7구역도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으면 하는군.”

“······사려가 참으로 깊으시구려.”

배불뚝이는 그 말을 끝으로 막사를 나갔다.

지휘관 몇 명이 그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가며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막사에는 곧 정적이 내려앉았다.

톡톡. 톡톡. 톡.

그리고 댈런은 테이블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보시다시피, 내가 아는 게 좀 많소.”

끼이익.

댈런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가볍게 웃었다.

“좋은 정보상을 곁에 뒀거든.”

옆에서 가웨인의 표정이 살짝 굳는 게 보였다. 댈런은 신경 껐다.

지금 그쪽 친구네 가게 무료로 광고해주는 거다, 이 양반아.

막사 안. 지휘관들의 집중된 시선을 받으며, 댈런은 다시금 천천히 운을 띄웠다.

“이번에 사교도들의 거처 습격 작전에 참여했던 지휘관이라면 알 것이오. 놈들이 어떻게 괴인을 만들어내고, 그 괴인의 전투력은 얼마나 되는지.”

몇몇이 고개를 끄덕인다. 침음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대충 모인 인원의 삼분의 일쯤 되는 숫자.

댈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놈들은 거리의 걸인과 부랑자들을 잡아다가, 괴인화 시술을 거쳐 병기로 만들고 있소.”

침음을 흘리는 머릿수가 좀 더 늘었다. 이 사실을 처음 안 지휘관들이겠지.

이런 중세풍 군대에서 촌각을 다투는 정보 공유는 어려운 법이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역행의 사도들이 지금 잠잠해 보이는 것은, 괴인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증거. 머지않아 8구역 시민의 절반은 괴인이 될 거요. 나머지는 그 괴인들의 식량이 될 거고.”

댈런은 고개를 돌렸다. 천막 입구는 겨울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흔들리는 횃불빛 사이로, 거리를 두고 경계를 선 경비병들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하나 둘.

그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지휘관이 늘어났다.

“밖에 있는 병사들 중에는 8구역의 경비병들도 있겠지.”

댈런은 그 시선들을 의식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가족과 집을 빼앗기고, 불안에 떨고 있을 테요.”

빠드득. 누군가 이를 갈았다. 이를 악문 사람이 누군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가장 많은 것을 빼앗긴, 눈 밑에 그늘이 짙은 8구역의 젊은 경비대장이리라.

“귀관들의 심정은 이해하오. 비록 내가 용병 나부랭이라 하지만, 그렇기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더 잘 알고 있소.”

이 년.

댈런이 용병 생활을 해온 시간.

안락하고 평화로운 현대인의 삶을 빼앗기고, 칼과 주먹이 곧 법인 세계에서 적응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아무리 초인적인 육신을 지녔다고 해도, 그 속은 치킨에 캔맥주를 좋아하던 서른 먹은 아저씨였으니까.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이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지. 그것도 내 목숨만이 아니라, 내 동료들, 부하들, 내 친구들의 목숨까지도.”

댈런은 첫 의뢰에서 동료를 잃었다.

칼질 한 방으로 도적을 두 동강으로 토막낸 직후였다.

내장을 쏟아내는 시체를 보고 되레 겁을 먹어, 전장 구석으로 도망가 무기마저 던지고 벌벌 떨었던 것이다.

‘신참! 야 이 좆 같은 신참 새끼야, 일어나! 안 일어나면 뒈진다고! 얼른 이 칼 잡고 도적 새끼들을 썰어버리란 말이다!’

한순간에 용병에서 덩치 큰 어린애가 된 그를, 동료 용병은 끝까지 격려해 일으키려 했다.

그리고 결국, 적의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후우.

댈런은 낮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말을 이었다.

“설령 귀관들이 선제 공격을 반대하더라도, 순은 구역의 지원만을 기다리자고 주장하더라도 이해하오. 나 역시 잃는 게 두려워 물러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얼굴에 튄 동료의 핏방울.

스르르 무너져가는 육체의 무게.

자신을 향한 불신과 책망을 담은 채, 식어가던 동료의 눈빛.

동료들이 모두 목숨을 잃고 나서야, 그는 칼을 다시 집어들었다.

모두가 죽었더라도, 자신만큼은 살아남고 싶어서.

그날 첫 의뢰를 완수했다.

“하지만 그 끝에 얻은 교훈은 하나였소. 잃는 게 두려워서 물러나는 순간, 더 쉽게 잃을 뿐이라는 것.”

휘이이―

바람이 천막 입구를 들썩인다. 횃불이 흔들리며 지휘관들의 얼굴에 다채로운 음영을 자아냈다.

“비록 8구역 경비대는 패퇴했지만, 잃어버린 집과 가족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한 번 지켜낼 기회는 아직까지 남아 있소이다. 그 기회를 줄 수 있는 건 귀관들이오.”

끼이익.

댈런은 다시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가 할 말은 이제 끝이었다.

막사 안에는 한동안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시오?”

가만히 침묵을 지키던 가웨인이 입을 열었다.

“사흘.”

댈런은 확답했다.

“사흘 안에 공격해야 될 거요.”

***

회의는 머지않아 마무리됐다.

선제 공격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자, 경험 많은 지휘관들이 순식간에 작전을 고안해낸 것이다.

그 골자는 이랬다.

사교도들의 세가 불어나기 전에, 방어선을 좁히며 놈들을 압박해 들어가는 게 첫 번째.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 놈들의 본거지에 총 공격을 가하자는 것.

몇몇 지휘관을 제외한 전원이 이 작전에 찬성하자, 넓은 방어선은 밤중부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훈련된 경비병들은 한밤중에 떨어진 소집령에도, 침낭에서 벌떡 일어나 무장을 갖추고 대기에 들어갔다.

준비는 신속했고, 동시에 철저했다.

다음날 새벽, 방어선을 지킬 절반을 남겨둔 채, 나머지 절반의 병력이 방어선 안쪽으로 들어섰다.

댈런은 8구역 경비대와 동행했다.

한 번 패퇴했기에 가장 약세라고 판단되는 이들에게, 댈런이라는 조커를 붙여 균형을 맞춘 것.

저벅. 저벅.

이백에 달하는 경비병들이 거리를 따라 걸었다.

사분의 삼은 이미 한 차례 패배를 겪고 위축된 8구역 경비병들.

그리고 나머지 사분의 일은, 댈런과 함께 경비대를 지원하기 위해 합류한 침묵중대원들이었다.

새벽 안개가 거리를 낮게 뒤덮고 있었다. 댈런은 감각을 넓게 퍼뜨리며 선두에서 걸었다.

그의 곁에는 8구역 경비대장이 따라 걷고 있었다. 밤사이 더 헬쓱해진 얼굴이었다.

“걱정되시오?”

댈런이 물었다. 젊은 경비대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가 그리 걱정이시오.”

“그 괴인들, 단순히 저희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었습니다.”

경비대장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부하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팔다리가 잘려도, 배에 창이 박혀도 달려들더군요. 거기다 가면 쓴 사교도들은 베이고 찔린 상처를 순식간에 회복했습니다.”

“흠.”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미완성의 재생 기술을 사교도 전원에게 시술한 모양이었다.

하긴, 놈들 입장에서도 똥줄이 탈 테지.

며칠 만에 은가면 사도 절반 이상이 죽어나질 않나, 난데없이 경비단이 대대적인 습격을 가하질 않나.

한숨을 푹푹 쉬어대는 젊은 지휘관의 생각과 달리, 전황은 명백하게 유리한 쪽이었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승산이 있을지······.”

“이길 거요. 귀관의 대원들 또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고.”

“후우, 그러면 정말 좋겠습니다만. 지원군이 있다면 좀 더 마음이 편했을 텐데······.”

이 새끼가. 니 옆에 있는 사람은 지원군 아니냐?

잠시 턱을 긁적이던 손이 멈칫했지만, 댈런은 심신미약 상태의 경비대장을 위해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순은 구역에서 올 지원군을 기다리는 거라면, 곧 올 거요.”

“정말입니까? 어떻게···지휘부에서도 아직 답이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지휘부가 요청한 지원은 아니요.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있거든.”

모두가 분주하게 작전을 준비하던 어젯밤, 댈런은 가웨인을 통해 순은 구역으로 파발을 한 명 보냈다.

가장 말을 잘 타는 중대원으로 선별해서 보냈다고 하니, 그 파발은 지금쯤 목적지에 도달하고도 남았을 터.

댈런은 확신했다.

빠르면 오늘, 늦어도 내일 안에 지원군은 도착할 것이라고.

“하, 하지만 어떻게 고작···아니, 아닙니다.”

“어떻게 고작 은패 용병이 순은 구역에서 지원군을 불러올 수 있냐고?”

젊은 경비대장은 본인이 말하고도 민망한 듯,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댈런은 낮게 웃었다. 그러다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도끼를 뽑아들었다.

그가 말했다.

“정지.”

“···정지! 전원 정지!”

기침하던 경비대장이 손을 들어올렸다. 부대 전체가 자리에 멈춰섰다.

8구역 경비대장은 댈런을 힐끔거렸다.

덥수룩한 머리를 한데 묶은 용병은, 안개 너머를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봤지만, 보이는 건 짙은 겨울 안개뿐.

그 너머에서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

대체 뭘 보고 있는 건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쯤.

“장난치지 말고 나와, 새끼야.”

댈런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답이 돌아왔다.

“키히히, 감이 좋잖아?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한 야만인 전사라고 생각했는데.”

스르르.

안개가 걷힌다.

마치 무대의 장막을 걷어내듯이, 거리를 뒤덮고 있던 안개의 일부가 환영처럼 걷혀나갔다.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건, 기백은 되어보이는 괴인 무리와, 수십 명의 사교도.

그리고 그 선두에 선,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은가면 사도였다.

“마법에도 소양이 있을 줄은 몰랐네. 급해서 대충 설치하기는 했지만, 경비단 중에라면 몰라도 너 같은 칼잡이가 내 은폐 마법진을 간파해낼 거라곤 생각 못했는걸?”

댈런은 눈썹을 슬쩍 들었다.

오른손의 지팡이. 카랑카랑한 목소리. 얇은 손발에 새겨진 주술적인 문신들.

이 여자는 은가면 사도들 중에서도 드물게 그를 죽인 적 없는, 진법과 불 마법이 주특기인 은가면 마법사였다.

쉽게 말해서, 그냥 지나가는 보스몹.

그가 말했다.

“말 많은 주문쟁이군.”

“어머, 그런 투박한 단어로 부르면 섭섭하다고. 그런 말은 델릭 같은 반푼이에게나 어울리는 거지, 깔깔깔!”

주문쟁이 은가면은 깔깔 웃으며 양 팔을 활짝 펼쳤다.

그녀가 잡은 지팡이의 수정이 불길한 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손의 주술 문신도 불길하게 빛났다.

스으으―

마치 의지를 가진 듯, 스멀스멀 움직이는 일대의 안개 사이에서 그녀가 외쳤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역행의 사도들 중 일원이자, 대사도에게 은가면을 하사받은 유일한 마법사! 볼카누스 대마탑의 제자이자 안개의 술법을 몸에 새긴―!”

주문쟁이의 고개가 팍 꺾였다.

그녀는 마치 누가 등 뒤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이, 뒤로 붕 떴다가 석재 도로에 우당탕 널브러졌다.

8구역 경비대장은 눈이 휘둥그레 떴다. 넘어간 마법사는 이마 한가운데 도끼가 박혀 있었다.

너무 깊숙히 박혀, 아예 머리가 반쯤 쪼개진 거나 다름없게 된 채 움찔대는 마법사의 몸.

옆에서 댈런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말 존나 많은 거 빼곤 똑같네.”

스릉―

댈런은 검을 뽑았다. 방패도 끌러내려 왼손에 들었다.

정적이 내려앉은 괴인과 사교도의 군세 앞에서, 그가 말했다.

“어서 덤벼라, 머저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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