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3화 (23/288)

동부 지구 전선(3)

먼저 달려든 건 괴인들이었다.

크아아아!

캬아아!

가면 쓴 사교도들은 은가면 사도가 한 방에 쓰러진 걸 보고 오히려 겁을 집어먹고 주춤했으나.

이성을 제거당한 괴인들에게는, 그런 종류의 공포심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껏 그들을 묶어두었던 족쇄가 풀린 셈이었다.

괴인들이 안개 속에서 얌전했던 건, 은가면 주문쟁이가 그들을 제어하고 있었기 때문이니까.

크아아아―!

끼에에!

파도가 덮쳐든다.

살과 근육, 발톱, 이빨로 이루어진 파도가.

댈런은 그 파도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어깨를 휘휘 풀었다.

그의 뒤로,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튀어나온 침묵중대원들이 대형을 이뤘다.

“쐐기진― 펼쳐!”

침묵중대장, 가웨인이 외쳤다.

선두의 댈런을 꼭짓점으로 두고, 양쪽 뒤로 날개처럼 펼쳐진 쐐기 형태의 방어선.

그 방어선이 구성된 직후.

캬아아―!

크에에에!

발톱과 이빨의 파도가, 방어선의 첨단을 덮쳐들었다.

캬아―칵!

콰직!

댈런의 검이 번쩍였다. 덤벼들던 괴인이 두 동강 난 채 뒤로 넘어간다.

창자를 흩뿌리는 놈의 상반신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댈런의 검이 세 번 더 번쩍였다.

콰지지직!

세로로 쪼개진 머리 하나.

깔끔하게 잘린 목 하나.

허공을 수놓는 우악스런 손아귀의 팔이 셋이었고, 쩍 갈라져 내장을 줄줄 흘리는 허리가 둘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선두의 괴인들을 죄다 갈아버린 댈런.

다만 발톱과 이빨의 파도는, 댈런만을 향해 덮쳐오지 않았다.

더 많은 숫자가 그의 양옆으로, 거리를 가득 메우고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물론 당연하게도.

“침묵중대! 제자리에―”

괴인들의 발톱이 눈앞에서 번쩍이는 정도로, 침묵중대가 물러서지는 않았다.

“방패― 올려!”

철컥!

강철 방패가 올라간다. 날카로운 창검이 목표를 겨눈다.

후열의 인원들은 방패를 앞 사람의 등에 대고, 이어질 충격에 버틸 수 있도록 받쳐주었다.

그리고.

“버텨―!”

남루한 로브와 번쩍이는 판금갑주로 이루어진 방파제에, 살덩이의 파도가 부딪혔다.

꽈광! 쾅! 콰직!

캬아아아!

스각! 후두둑―

크엑! 크에엑!

“으아, 으아아!”

비명과 괴성. 찢기고 베어내는 파육음.

잘려나간 팔다리가 땅을 구르고, 방패에 메달려 괴인들이 몸부림친다.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살점과 내장이 치덕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캬아―!

창날에 머리 반쪽이 날아간 괴인이, 단말마의 괴성을 지르면서 침묵중대원의 목을 물어뜯었다.

“커흑! 크흐······.”

목이 뜯긴 중대원은, 눈을 부릅뜨고 절명해가는 순간에도, 마지막 남은 힘으로 동료의 방패를 붙잡은 괴인의 목을 잘라버렸다.

첫 격돌만으로 순식간에 스물에 가까운 괴인과, 침묵중대원 두엇이 쓰러졌다.

하지만 방파제는 파도를 버텨냈다.

그리고 그건 곧, 반격의 신호였다.

“침묵중대! 전진―”

땅에 뿌리박은 듯 단단하게 고정되었던 전열이, 한 걸음씩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몰아치는 파도는 여전히 거셌으나, 첫 돌진만큼의 충격은 주지 못했다.

거리를 쐐기꼴로 막아선 침묵중대의 전열은, 마치 칼날 달린 전차가 보병들을 짓밟듯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선두에 있는 건, 무심한 표정으로 괴인들을 도살하는 댈런이었다.

키에에―칵!

벌린 아가리를 폼멜로 찍어버린다.

크르륵! 컥!

자세를 낮추고 돌격하는 놈을, 방패를 휘둘러 으스러뜨린다.

별 감흥 없이 손발을 움직이는 대로, 목이 떨어지고 몸뚱이가 동강나고 머리통이 으스러졌다.

댈런은 뚱한 얼굴로 그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뭔가 이상하다.’

전황은 유리했다.

댈런을 위시로 한 침묵중대는, 괴인과 사교도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고 있었다.

후방에서 따라오는 8구역 경비대 역시, 뒤로 새어나간 괴인들을 잘 마무리해주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분명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대응을 지켜보는 내내 기이한 위화감이 사라지질 않는다.

‘애당초 어떻게 우리의 습격을 알아챈 걸까.’

정찰을 보냈다기엔 경비단의 준비가 너무나 신속하고 은밀했다.

밤늦게 작전 회의가 끝나고서, 새벽에 기습적으로 출진할 때까지의 간격은 기껏해야 몇 시간.

이렇게 안개를 활용한 은폐 마법까지 준비할 정도면, 적어도 출진 세 시간 전에는 놈들이 낌새를 눈치챘다는 소리다.

짧은 상념이 끝을 맺은 건, 모든 적들이 땅에 쓰러질 무렵.

결론은 하나였다.

‘첩자가 있다.’

콰득!

“컥, 커헉···!”

마지막 사교도의 배에 검을 박아넣으며, 댈런은 생각했다.

쫘좍!

옆구리를 가르고 빠져나온 검이, 그 출구로 우르르 내장을 끌고 나왔다.

댈런은 고통에 눈이 뒤집힌 사교도의 머리를 툭 잘라주었다.

데굴데굴 굴러가던 머리통은 꿈틀대는 몸 곁에서 멈췄다.

품이 넓은 로브에 덮인, 호리호리한 체형의 꿈틀거리는 몸뚱이.

손도끼에 얼굴이 이등분된 은가면 주문쟁이를, 댈런은 뚱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아직도 안 뒈졌냐.”

“킥! 키힛, 사도는 쉬, 쉽게 죽지 않···지!”

주문쟁이는 반으로 갈린 입술로 피를 칵칵 토해내며 웃었다.

댈런은 그녀의 목 위에 발을 얹었다. 그리고 지그시 누르려다가, 멈췄다.

위화감.

첩자의 존재 하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위화감이 그를 막은 것이다.

“왜 웃지?”

“크히! 대계는, 쿨럭! 완성···될 것이다! 누구도, 키히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피 섞인 기침과 어눌한 말투가 거슬렸다.

그는 허리를 굽혀, 주문쟁이의 머리에 박힌 도끼를 뽑아들었다.

쩌적―

“끄아아―악!”

도끼가 빠져나가며 주문쟁이가 새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녀는 곧 다시 킬킬거리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뭉클거리는 진액이 잘린 뇌를 서서히 이어붙이는 걸 확인하고, 댈런은 다시 물었다.

“예상하지 못한 방법?”

“키힛, 너희는 대사도님의 그림자조차 따라가지 못해! 그분은 이미 계획을 완성하셨다. 제물도 준비되었고! 이제 남은 건···꺄아아아!”

주문쟁이가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우드득.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댈런이 발을 들어, 그녀의 얇은 손을 손가락 끝에서부터 천천히 즈려밟은 것.

손끝에서 손목까지를 잘 다져진 고깃덩이로 만든 댈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점만.”

“으흐, 으흐흑. 아, 알았어······.”

주문쟁이는 피눈물을 흘리며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번에는 어눌하게 말하지도, 과하게 수식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기습적인 출진에 대비할 수 있었고, 이 습격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전말을 전부 들은 댈런은 핏물 들어간 코를 흥 풀었다.

“끄···어억.”

우드득!

그리고 덜덜 떨고 있는 주문쟁이의 목을 즈려밟아, 길었던 고통을 끝내주었다.

그즈음 병력을 수습한 가웨인과 경비대장이 그에게 다가왔다. 경비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침묵중대 사망자 셋, 8구역 경비대 사망자 둘입니다. 나머지는 경상자들입니다.”

“심문은 끝나셨습니까?”

가웨인은 그렇게 말하며 주문쟁이를 슬쩍 내려다봤다.

한쪽 팔이 다져진 고깃덩이가 되고, 반으로 쪼개진 채 바닥을 구르는 머리통에서는 진액이 줄줄 새어나오는 광경.

그저 심문이라기엔 과할 정도로 잔혹한 광경을 만든 장본인은, 무심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없이 천천히 턱을 쓰다듬으며, 주문쟁이가 토해낸 내용을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누가 배신했는지.

대사도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결론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썩을.”

아무래도 이놈들, 같이 죽기로 작정을 한 것 같다.

***

그 시각. 다른 부대들 역시 비슷한 습격을 받았다.

백여 마리의 괴인과 사교도 수십으로 구성된 적들의 기습적인 공격.

몇몇 부대는 큰 타격을 받기도 했으나, 다행히도 패주한 부대는 전무했다.

덕분에 작전했던 바와 같이, 경비단은 좀 더 나아간 곳에 전진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사교도들이 자리잡은 광산을 중심으로, 원래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포위망.

그렇게 새 방어선이 구축되고 난 이후, 후방에서 기존의 방어선을 지키던 부대들 역시 천천히 합류했다.

이들은 몇 안 남은 사교도의 잔당을 처리하고, 건물마다 숨어있는 민간인들을 구출해냈다.

“아브아! 으아아앙―”

“으흑, 여보!”

“이제 살았어!”

사교도들에게서 피해 숨어있다가, 구출되자마자 긴장이 탁 풀리며 울음을 터뜨리는 생존자들.

재회한 가족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몇몇 8구역 경비대원들.

살아남은 이들의 울음 섞인 환호는, 경비단의 사기를 크게 끌어올렸다.

그렇게 노랫소리와 함께 해가 저물어갈 무렵.

예상 밖의 손님이 경비단을 방문했다.

구웅―

해질녘의 불그스름한 색조가 뒤덮은 거리 위.

울퉁불퉁한 석재가 촘촘하게 박힌 도로를 따라, 기이한 울림이 퍼져나갔다.

구웅―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던 병사들마저 화들짝 놀라 막사 밖으로 달려나왔다.

몇몇은 그 짧은 사이에 무기와 갑옷까지 갖춰입은 채였다.

구웅―

거리의 자갈들이 우르르 튀어오른다. 지진이 난 것도 아닌데 땅이 들썩이는 것만 같았다.

해질녘의 노을을 등진 채 대로를 따라 걸어오는 건, 흙빛의 로브를 뒤집어쓴 일단의 무리.

그들의 곁, 말을 타고 따라오던 침묵중대원이 소리 높여 무리의 정체를 밝혔다.

“순은 구역의 엘가이아 마탑에서 보낸 지원군이오!”

구웅―

한 걸음.

땅이 울린다.

땅과 교감하는 대지술사들의 행진은, 그 자체로 주변을 압도하는 기세를 발했다.

몰려나왔던 경비병들이 우르르 몰려나며 길을 텄다. 당황 섞인 웅성임이 경비병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마법사?”

“엘가이아 마탑이래.”

“순은 거리에서 지원군을···?”

소란은 길지 않았다. 머지않아 경비대의 지휘관들이 마법사들을 맞이하러 나온 것이다.

가장 앞에서 걸어오던 마법사가, 그 모습을 보고 머리를 깊이 덮고 있던 두건을 걷어올렸다.

갈색으로 길게 길러 묶은 수염과, 기이하게 번뜩이는 갈색 눈동자.

엘가이아 마탑의 원로 마법사 펠버 발렌티노는, 지휘관들 사이에서 삐딱하게 서 있는 댈런을 보며 웃었다.

“오랜만일세, 댈런.”

“오랜만이오, 노인장.”

댈런은 대충 고개를 숙였다. 그 건성의 인사를 받은 노인은 느닷없이 껄껄 웃어젖혔다.

“으하하! 으하! 내 오래 살기를 잘했어. 원로 마법사가 되어 용병에게 노인장 소리도 들어보다니!”

“불편하면 다른 호칭을 써드리겠소.”

“끌끌, 아닐세. 아니야. 그래서 자네가 마음에 더 드는 것이니까.”

웃음기 머금은 노인의 눈이, 순간적으로 이채를 발했다.

“그 사이 주문에도 한 발을 담궜구먼. 그래, 자네는 대체 어디까지 올라갈 생각인가?”

“글쎄.”

댈런은 어깨를 으쓱했다.

시체야 뭐, 주울 수 있는 대로 최대한 주워먹어야지.

그의 짧은 대답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원로 마법사는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자네의 잠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내 꼭 확인해보고 싶네만···이 자리는 적절하지 않은 듯 하군.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합세. 그나저나, 여기 책임자가 누구인가?”

저벅.

펠버의 말에, 댈런의 곁에 있던 가웨인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왔다.

“원로께서도 알다시피, 청동 경비단은 순은 기사단과 다르게 지휘권이 철저하게 분산되어 있소. 나는 임시 대표일 뿐이고. 그와 별개로, 엘가이아 마탑에서 따로 지원군을 보낸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소만······.”

“내 저기 있는 젊은 친구와 약조한 게 있어서 말일세. 개인적인 보상을 거절하고, 도시를 위해 마탑의 도움을 청할 기회를 택한 친구지.”

“···그렇소이까?”

하수도에서 금발의 젊은 마법사를 구해낸 다음날.

댈런을 만난 원로 마법사는 감사의 의미로 추가 보상을 제안했다.

원래는 한 다스가 넘는 마탑제 재생 포션이었던 추가 보상.

하지만 댈런의 혈관에 용혈의 재생 인자가 흐르는 걸 간파한 마법사는, 그 대신 다른 보상을 제안했다.

‘도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네가 요청한다면 내 최선을 다해 한 번은 도와주도록 하지. 그 위기가 크던 작던, 어디에서 일어나건 상관없이 말이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개 용병에게 건넨다기에는, 뭔가 굉장히 이상한 어감의 제안.

댈런은 잠시 고민하다가, 포션 가방 대신에 그 약조를 받아내기로 했다.

그 결과는 바로 지금 이 광경이었다.

경비단의 요청에도 묵묵부답이던 순은 구역의 지원군을, 단 한 명의 목소리로 불러낸 것.

“결과적으로는 자네 덕에 맺어진 인연 아니겠나? 자네의 공도 없진 않다네.”

펠버는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 댈런은 뒤늦게 확답을 얻은 셈이 됐다.

저 노인장이 나한테 지명의뢰를 맡긴 거, 침묵중대장의 추천 때문이 맞았다는 거지.

“어찌됐건 환영하오. 마탑의 지원은 언제나 환영이지. 미리 연락을 받지 못해, 순은 구역의 손님들에게 어울리는 잠자리는 갖추지 못했소. 양해 부탁드리오.”

“끌끌, 아닐세. 우리야 등을 받쳐줄 넉넉한 대지의 품만 있다면, 어디서든 쉬고 눈을 붙일 수 있네.”

“배려에 감사드리오.”

가웨인은 몇몇 경비병들에게 마법사들을 숙소로 안내하도록 했다.

서른 명쯤 되어보이는 마법사의 무리는, 그 안내를 따라 새로 구축된 방어선 근처의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 등장할 때와는 달리, 그들의 발걸음은 더이상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대지 않았다.

‘하여간 겉멋만 잔뜩 들어서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댈런은 불편한 얼굴로 눈썹을 까딱거렸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그는 이상하게 주문쟁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밤이 깊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새로 구축된 방어선의 분위기는 한창 달아올라 있었다.

이대로 사교도들의 본거지인 광산까지 밀고 들어가, 놈들을 일망타진하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올 정도.

중대원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은 가웨인은, 약간 피곤해진 얼굴로 진영의 외곽지대에 발걸음을 들였다.

인적 없는 진영의 외곽.

보름달이 휘황찬란하게 내리쬐는 빛 한가운데, 오늘 작전의 일등 공신이 멘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언제나 뚱한 표정이었던 평소와는 달리, 어딘가 약간 들뜬 듯한 얼굴을 한 채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오셨군.”

크으. 작게 내뱉는 숨에서 고소하면서 씁쓸한 향이 퍼져나간다.

그 향취는 희미했지만, 가웨인의 예민한 감각은 이를 맡아낼 수 있었다.

다시보니 댈런은 수통을 끌러 연신 그 내용물을 마시고 있었다. 가웨인이 물었다.

“술이오?”

“술만큼이나, 아니 대륙에서는 희귀한 편이니 어떤 의미로는 술보다 더 좋은 거지.”

가웨인은 살짝 멍한 얼굴이 되었다.

흔히 술보다 더 희귀하고 좋다고 하면, 뭘 의미하는가?

‘설마, 마···약······?’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웅이라고 칭송받아도 모자람이 없는 용병이, 치열한 전장 한가운데서 약쟁이 짓을 한다고?

당장 오늘만 해도 은가면 사도 하나를 반 죽여놓은 뒤, 심문해서 적들의 정보를 캐낸 장본인이었다.

깊은 밤중에 이런 으슥한 곳으로 불러냈기에, 그 정보에 대해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커피일세. 이상하게 이 친구가 커피를 좋아하더군. 까마귀 둥지에 물어보니, 다도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고 하던데.”

후두둑.

발밑에서 자갈과 흙먼지를 굴리며, 원로 마법사 펠버 발렌티노가 나타났다.

“······!”

가웨인은 순간이지만 등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청동 경비단에서 한 손에 꼽는 실력자인 그마저, 순간적으로나마 기척을 놓쳤다.

미궁의 입구가 있는 순은 구역에 괴물 같은 실력자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피부로 직접 겪는 건 다른 법.

가웨인이 펠버로 인해 기이한 경쟁심과 향상심을 느끼고 있을 무렵, 댈런은 못내 아쉬운 듯 수통의 뚜껑을 닫았다.

“다 모였으니 이제 이야기해도 되겠군.”

댈런은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그가 말했다.

“침묵중대장께선 알고 있겠지만, 오늘 은가면 사도가 하나 더 죽었소.”

“다행이군. 놈들의 악행은 나도 익히 들었네.”

원로 마법사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다행이지. 그리고 그냥 죽인 게 아니고, 죽이기 전에 심문을 좀 했소. 회의를 열지 않고 이렇게 두 분을 따로 모신 건 그 내용 때문이오.”

“설마 첩자가 있는 것이오?”

가웨인이 끼어들었다.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그리고 그보다 심각한 사실도 하나 알게 되었고.”

후. 댈런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놈들의 대사도가 악마를 소환하려 하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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