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성검(6)
“확실한 정보 맞나?”
민머리의 이야기를 들은 탐험가가 되물었다.
그는 꽤 실력있는 탐험가로 보였는는데, 민머리의 설득에도 의심이 가시지 않는지 께름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이라니까. 괜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토벌대를 꾸렸겠소?”
이에 질세라 속삭이는 민머리의 목소리.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는 인파의 북적거림에 쉽게 묻힐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댈런의 초인적인 감각과 이를 해석해내는 지능수치는, 그 희미한 음성마저도 명확하게 선별해서 잡아낼 수 있었다.
“저번이랑은 달리 공식적인 토벌대가 아니잖아. 괜한 소문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끌려온 거 아냐?”
“어허.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소. 그 애송이 성기사놈의 성검에, 악마가 배때지를 찔려서 내장을 줄줄 흘리는 걸 말이오.”
토벌대라. 그것도 비공식적인 토벌대.
‘그래서 이렇게 많은 탐험가들이 몰린 거였군.’
댈런은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미궁에 내려가는 탐험가의 숫자는 이백 명이 좀 안 된다.
하지마 지금 홀에 모인 인원은 거의 사백에 가까웠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방금의 대화로 추측할 수 있었다.
‘부상당한 최하급 악마 정도면, 탐험가 입장에서 탐스러운 먹잇감이긴 하지.’
미궁의 악마는 위험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무엇보다 탐스러운 사냥감이기도 했다.
미궁에서 악마를 죽인 이에게, 금강궁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보수금을 지급하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미궁도시의 결계는 악마나 마물의 힘이 강력할수록, 더 강한 반발력으로 그들이 올라오는 걸 억누르고 있는 바.
그 결계의 영향을 뚫고 미궁의 1층까지 올라온 악마라면, 최하급 중에서도 약한 악마일 수밖에 없었다.
‘부상까지 당했다고 하니, 자기들 힘으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원래부터도 탐스러운 먹잇감. 거기에 잡기 쉽게 다친 상태이기까지 하다.
심지어 그 와중에 놈은 성검이라는 어마어마한 보물까지 덤으로 들고 있었다.
이 정도면 탐험가들의 눈이 안 돌아가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신경쓸 필요는 없겠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댈런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름 모를 탐험가의 말대로, 이 정도 소문에 휩쓸리는 놈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 대부분이다.
은퇴하기 전에 미궁에서 한 탕 해보려는 생각으로, 전재산을 쏟아 순은 구역에 들어온 은패 용병 출신이나.
처음부터 순은 구역에서 태어나, 돈을 많이 번다는 소문만 듣고 탐험가의 꿈에 젖어있는 애송이들.
이 정도면 경쟁자라 하기에도 뭣할 지경이다.
‘그리고 그 악마놈이 여기서 죽었으면, 중반부에 보스몹으로 나타났을 리가 없지.’
게임에서 성검을 든 악마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건, 지금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이후.
즉 이 시점의 악마는 무사히 어딘가로 숨어들어, 성검을 가지고 몇 년동안 힘을 키워낸다는 이야기다.
달리 말하면, 여기 모인 탐험가들 가지고는 그 악마를 어찌하지 못한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쿠르르르.
그때 홀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댈런은 갑옷 끈을 다시 조이고, 무장을 재차 점검하며 말했다.
“문이 열리는군. 준비하시오.”
“주, 준비요?”
루시아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포탈이 열리면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무슨 준비를···.”
“그 포탈이라는 게 말이오. 그게 그냥 저 앞에서 열리는 게 아니거든.”
쿠르르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결계탑의 진동이 더 심해진다. 댈런은 휘청거리는 루시아의 어깨를 붙잡아주었다.
익숙하게 균형을 잡으며, 그는 홀의 바닥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웅웅웅―
희미한 공명음과 함께, 서서히 빛이 새어나오는 바닥.
처음에는 희뿌연 수준으로 새어나오던 빛이, 점차 홀을 가득 메울 정도로 밝아지기 시작한다.
빛나는 바닥을 본 루시아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든다.
그런 그녀를 향해, 댈런은 웃으며 말했다.
“미궁은 아래에 있지 않소. 문도 당연히 아래에서 열리지.”
그 말이 끝나마자자.
구우우웅―
결계탑 전체가 떨리는 듯한 진동과 함께, 바닥에서 새어나오던 빛이 팟 하고 꺼지고.
후욱―
“꺄아아아아!”
댈런과 루시아의 몸이, 어두컴컴한 지하로 추락했다.
***
추락은 길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진짜 떨어지는 게 아니라, 포탈을 통한 일종의 공간전이 마법이기 때문.
우우우웅―
공기가 떨렸다. 공간전이의 여파가 서서히 잦아든다.
댈런은 추스렸던 감각을 빠르게 확장시키며, 주변에 위험요소가 없는지 살폈다.
까맣게 암전되었던 시야가 서서히 복구되고, 발밑으로 단단한 지면이 느껴질 무렵.
‘일단 별다른 위협은 없는 것 같군.’
댈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서있는 곳은 숲으로 둘러싸인 낮은 언덕.
대낮임에도 온 지면에 내려앉은 어둠과, 이질적인 풀과 나무의 모습은 이곳이 땅 위가 아님을 말해주었다.
‘미궁.’
온갖 마물과 악마가 도사리는 땅 밑의 마경.
동시에 미궁은 저만의 생태계를 이룬 하나의 세계이기도 했다.
발밑의 흙의 바스락거림이 땅 위의 세계와는 다르고, 숲속의 풀벌레 소리마저 대륙에서 들어볼 수 없는······.
“꺄아아아아아!”
···그렇다고 풀벌레가 귀청 떨어지게 비명을 지르는 곳까지는 아닌데.
“···좀 조용히 해주겠소?”
댈런은 여태까지 비명을 지르고 있는 루시아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녀는 눈을 번쩍 뜨더니, 놀란 표정으로 비명을 멈췄다.
딸꾹.
우악스런 손길에 헛숨을 들이킨 후, 발 아래를 내려다보는 루시아.
“어, 어라?”
당연하게도 그녀의 두 발은 단단한 흙바닥을 딛고 있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 루시아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니. 이게 왜···.”
“결계탑의 포탈은 사실 공간전이 마법이오. 문자 그대로의 포탈은 매일같이 여닫기에는 가성비가 좋지 않으니까.”
미궁이 땅 밑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땅을 파고 내려가서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게임 설정상으로도, 미궁은 다른 차원에 한 발짝 걸친 공간이라 묘사됐으니까.
포탈 주문 자체가 어마어마한 대가를 요구하는 걸 생각하면, 아무리 팔시온이라 해도 미궁으로 향하는 포탈을 매일같이 여닫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고안해 낸 방법이 공간전이 마법이라지.’
심지어 그마저도 일반적인 공간전이 마법과는 달랐다.
보통의 공간전이가 어디에 떨어질 지 정확한 좌표를 지정해서 발동된다면.
결계탑의 공간전이는, 대상자를 미궁의 1층 어딘가에 무작위로 떨어뜨려버렸으니까.
“미궁 안 마력풍의 흐름이 지상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그렇다더군. 좌표 특정이 난해해진다던가.”
게임 설정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해주며, 댈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부끄러워할 것 없소. 처음에는 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곤 한다니까.”
“댈런도 미궁에 오신 건 처음 아닙니까?”
“나는 경력직 신입이라 그렇소.”
“경력···?”
못 알아들을 한국어에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한다. 댈런은 낮게 웃으며 하늘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층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미궁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세계였다.
드넓은 대지. 자생하는 동식물들.
하늘에는 별들이 수놓아져 있고, 지평선 저 끝에는 높게 솟은 산맥들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어둑한 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은, 지상의 별자리처럼 탐험가들의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댈런은 별자리를 관찰하며 지금의 위치를 대략 추정해보았다. 다행히도 별자리는 모니터 너머에서 보던 것과 거의 동일했다.
‘귀환비를 기준으로 북서쪽이군.’
미궁의 1층에서 방위의 기준이 되는 건, 하루에 한 번 공간전이 마법이 발동되는 거대한 비석이었다.
강력한 결계로 보호받는 귀환비 주변은,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출구인 동시에 유일한 안전지대라 할 수 있는 곳.
댈런과 루시아가 서 있는 곳은 그 귀환비를 기준으로 북서쪽의 작은 숲 한가운데였다.
한편 성기사 바렛과 토벌대가 악마에게 패배한 곳은 정 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바로 귀환비를 중심으로 기준으로 남동쪽에 있는 커다란 동굴.
‘걸어서 가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리겠는데.’
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서는 안 됐다.
최하급이라도 악마는 악마.
놈이 숨어든 동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한 마법으로 보호받는 마굴로 변할 것이다.
악마라는 족속은 자신의 거처에서 갑절 이상의 힘을 내기 마련이니, 가능하다면 마굴을 온전히 구축하기 전에 처치하는 게 옳았다.
‘놈의 거처까지 일주일 내로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이···그거면 되겠군.’
댈런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그 방법이라면, 걸어가는 것보다 몇 배는 빠르게 놈의 본거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중간에 시체를 회수하고 돈까지 챙기는 건 덤이었고.
그가 대충 머릿속 경로를 설정했을 무렵, 루시아가 부시럭거리며 가방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제가 지도를 가져왔습니다. 여기 보면···.”
“저쪽으로 가면 될 것 같군.”
댈런은 손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루시아는 그 손끝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하늘의 별자리와 손 안의 지도를 번갈아 쳐다봤다.
“저희가 있는 곳이, 이쯤 아닙니까?”
그녀는 지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지도 중앙의 귀환비를 기점으로, 북서쪽의 숲 한가운데였다.
‘별과 지도를 볼 줄 안다니, 성기사단이 사전교육 하나는 확실하게 해두는 모양이군.’
왜 포탈이 아래에서 열리는 걸 빼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댈런은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는 루시아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맞소. 잘 짚었군.”
“그러면 저쪽은 정서향 아닙니까? 지도에 따르면, 여기서 서쪽으로 가면 위험을 뜻하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는데······.”
아, 지도가 생각보다 상세한 고급품이었군. 이건 예상 못했는데.
댈런은 잠시 침묵하다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 지도가 잘못된 거요.”
“예? 하지만 여기 분명 해골 표시도···.”
“잉크가 번진 거겠지.”
수습기사는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댈런은 씩 웃으며 지도를 낚아채 둘둘 말아버렸다.
“믿고 고용한 것 아니오? 이번 한 번만 믿어보시오.”
그는 말아서 잘 묶은 지도를 루시아의 손에 올려놓으며 말했자.
“저기는 위험한 곳이 아니라, 미궁 1층에서 두 번째로 빠른 이동수단이 있는 곳이니까.”
***
숲을 빠져나가기까지는 두세 시간쯤 걸렸다.
미궁의 숲은 방향을 혼란케 하는 지형으로 가득했지만, 댈런의 경이로운 방향감각은 그 정도쯤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물론 루시아의 입장은 달랐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바위와 나무들은 방향감각을 혼란시켜 어지럽게 만들었고.
일부 괴이하게 뒤틀린 나무는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멀미를 유발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두어 시간 뒤.
“푸하.”
탁 트인 평원으로 나오자, 루시아는 막혔던 숨을 토해내듯 내쉬었다.
“후우. 후. 만만치 않은 숲이군요. 어지러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멀미에 약하시오?”
“마차까지는 괜찮은데, 승마는 버겁습니다. 신성문신의 힘을 끌어내면 버틸 수 있습니다만···.”
“그건 힘을 낭비하는 꼴이지.”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댈런은 그녀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생각했다.
악마 살해자가 말 한 필 없이 걸어다니던 이유가, 다른 게 아닌 멀미 때문이었다니.
무심코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그는 찬찬히 주변의 땅을 훑어보았다.
숲에서 벗어나자 지면의 흙은 비쩍 마른 모래와 같았다. 약한 바람에도 잘 휘날려, 흔적이 쉽게 남지 않는 모래바닥.
하지만 그런 모래바닥이라도, 미궁에 익숙한 길잡이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스윽.
댈런은 지면에 가깝게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감각을 한층 끌어올렸다.
지면의 미세한 발자국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흐릿하게 남은 온갖 마물과 짐승의 향취가 코를 간질였다.
극한까지 확장된 그의 감각이 온갖 자극들을 머릿속에 때려넣고.
초인적인 지능 수치가 이를 낱낱이 해체해 필요한 정보들을 선별해내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있었을까.
“흠.”
댈런은 고개를 들었다. 그즈음 좀 진정이 됐는지, 루시아가 그에게 다가왔다.
“댈런? 뭐하십니까?”
“흔적을 찾고 있었소.”
그렇게 말하며, 댈런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성기사랑 함께하니 행운이 따르는 모양이오.”
행운? 루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댈런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 시선의 끝은, 그리 멀지 않은 언덕.
루시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뭘 보시는 겁니까? 저긴 아무 것도 없는 언덕입니다만?”
“잠시 기다려보시오.”
댈런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초인적인 지각력은, 아무 것도 없는 언덕 너머의 광경을 생생히 내다보고 있었다.
발밑을 울리는 연속적인 진동.
어렴풋이 들리는 네 발 짐승의 울음소리.
그가 미궁 1층에서 자주 써먹던 이동수단이, 지척까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잠깐. 설마···!”
그리고 머지않아, 루시아 역시 같은 걸 느낄 즈음.
아우우우―
언덕 위.
하이에나 머리의 기수를 태운 늑대 무리가, 긴 울음을 토해내며 나타났다.
“놀의 갑각늑대 정찰대!”
루시아가 소리쳤다.
스릉―
그녀는 검을 뽑아들고 방패를 끌러내렸다. 그 즉시 두 팔의 문신이 빛을 뿜기 시작한다.
댈런은 허리띠에서 도끼를 뽑아들고는, 느긋한 걸음으로 언덕을 향해 걸어갔다.
아우우우―!
이내 두 사람을 발견한 놀 정찰대가 전속력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루시아가 자세를 낮추며 소리쳤다.
“댈런! 위험합니다!”
댈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걸어가던 그대로 속도를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놀 정찰대.
도끼 하나를 움켜쥐고 내달리는 거구의 전사.
둘 사이의 거리는 애당초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오래 지나지 않아 그 거리는 서로의 눈동자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좁혀졌다.
으르릉! 으르르르!
갑각류 비슷한 질감의 가죽에 덮인 늑대와, 그 위에 올라타 투박한 무기를 든 놀 기수가 대략 열 남짓.
선두의 놀 기수가 툭 튀어나온 입으로 히죽거리며, 2미터쯤 되어보이는 장창을 들어올렸다.
누가 봐도 단박에 사냥감을 꿰어버리려는 동작.
댈런은 그 동작을 보며 사납게 웃었다.
오랜만에 벌어질 싸움에, 전신의 근육이 기대감으로 달아올랐다.
발끝이 걸음마다 지면의 모래흙을 파고든다.
도끼 든 손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놀 기수와 댈런의 거리가 지척까지 좁혀진 순간.
“댈런!”
루시아가 팔과 다리에서 빛을 뿜어대며 외치고, 동시에 댈런의 손이 흐릿해졌다.
패래래랙―
손도끼가 희끗한 음영이 되어 날아간다.
어둑한 미궁의 공기 속.
흐릿한 별빛만으로는 빛의 원반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으르르―깨액!
그렇기에 놀 기수는 도끼가 미간에 꽂힐 때까지도, 무언가 날아온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르르······.
머리에 도끼 꽂은 놀 기수가, 그대로 눈을 뒤집으며 안장에서 미끄러진다.
꽈앙!
동시에 댈런이 서 있던 자리에서 흙더미가 폭발하더니, 그의 신형이 선두의 갑각늑대 위에서 나타나고.
콰직!
미끄러지는 놀 기수의 가슴팍을 짓밟은 반동으로, 안장 위에 안착하는 곡예에 가까운 동작이 이어졌다.
으르르? 으르르르!
뒤따르던 놀 기수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댈런을 쳐다본다.
그들 입장에서는 뭔가 희끗하더니 선두의 정찰대장이 넘어가고, 그 자리에 사냥감이 떡하니 앉아있는 꼴.
두두두두두―!
고개를 돌려 당혹감에 물든 놈들의 얼굴을 보며, 댈런은 사나운 미소를 머금었다.
제 주인이 바뀌었는지도 모르는 갑각늑대의 안장 위.
댈런의 손에는 어느새 허리춤에서 뽑아든 검이, 번뜩이며 자신의 첫 싸움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