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35화 (35/288)

악마의 성검(7)

서걱!

강철검이 번쩍였다. 잘려나간 하이에나 머리 하나가 허공을 빙글 돌았다.

쿠당탕!

머리 잃은 몸뚱이가 미끄러져 땅바닥을 구르는 동안, 댈런의 검은 두 번 더 번쩍였다.

스각!

놀 기수가 찔러오는 긴 창대를 잘라내는 첫 번째 검격과.

콰직!

먼젓번 기수를 잃고 덮쳐드는 갑각늑대의 머리를 내려치는 두 번째 검격.

콰직!

깨갱!

머리의 갑각과 두개골이 반쯤 부서진 갑각늑대가, 그대로 방향을 틀어 달아나기 시작한다.

뇌가 일부 파괴되고도 즉사하지 않는, 마물의 질기디 질긴 생명력.

“이그넬 로트.”

댈런은 자연스레 왼손에서 타오르는 화염 화살을 만들어내,  달아나는 갑각늑대를 향해 쏘아냈다.

뻐어엉!

두개골 사이를 파고든 불꽃이, 늑대머리를 안에서부터 풍선처럼 터뜨려버린다.

머리가 사라져버린 갑각늑대가 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놀 두 마리와 갑각늑대 하나를 쓰러뜨린 댈런.

그의 무력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자, 놀 정찰대 역시 움직임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으르릉!

한 놈이 짧게 울부짖는다. 일종의 신호였다.

그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곧장 정찰대의 진형이 변형되었다.

조금 전까지가 최대한 붙어서 한 지점으로 돌격하는 밀집형이었다면.

새롭게 변한 진형은 댈런을 중심으로, 최대한 거리를 두고 넓게 퍼진 모양새.

창이나 칼 같은 주무기를 집어넣은 놈들이, 안장 곁의 주머니에서 단궁이며 투창 따위를 꺼내들었다.

‘개과 마물들이 머리가 좋긴 해.’

근접전에서 승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즉각적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모습.

예상 밖의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최하급 마물 중에서도 가장 이지가 뚜렷한 놀 종족다웠다.

끼이익―

투박한 단궁 시위에 화살이 걸린다. 투창을 꺼내든 놈들은 어깨 너머로 들어올린 창끝을 댈런에게 조준했다.

열 쌍의 노란 눈동자가 살기를 품은 채 사냥감을 향해 고정되었으나, 정작 그 시선을 받아내는 댈런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리고 잠시 후.

으릉!

조금 전 울부짖었던 놀이, 다시 한 번 그르렁거림을 토해냈다.

피피핑!

쐐애액―

여섯 발의 화살과 네 자루의 투창이 허공을 날아든다.

사방에서 동시에 날아드는 투사류 무기는, 평범한 전사라면 그대로 고슴도치가 될 수밖에 없는 공격.

물론 평범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댈런은, 맞받아치려면 그 모든 걸 충분히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댈런은 그걸 선택하지 않았다.

쐐애애애―

파공성이 화살보다 한 발 앞서 귓가를 간질일 무렵.

그는 갑각늑대의 안장 위를 딛고 일어서, 발끝에 힘을 모아냈다.

그리고.

‘도약.’

으지지직!

갑피가 으깨지며 피보라가 왈칵 치솟고, 댈런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콰아앙!

날아든 투척물들이 애꿎은 갑각늑대에 후두둑 꽂히는 동안, 포탄처럼 쏘아진 댈런의 몸은 가장 멀리 있던 놀 기수에게 도달했다.

으르···?

노란 맹수의 눈이 당혹감에 휘둥그레 커진다.

댈런은 날아간 속도 그대로 놈의 가슴팍과 얼굴을 짓밟았다.

와드득!

무슨 대포에 적중한 것마냥 으스러지는 머리와 가슴.

놀 기수가 그대로 저 멀리 튕겨나가고, 댈런은 자연스레 놈의 갑각늑대 안장에 올라탔다.

다만 이번에는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의 다리가 다시 한 번 힘을 받고, 용수철처럼 몸을 밀어냈다.

으지직!

깨갱―

초월적인 근력과 도약 스킬의 힘으로 인해, 갑각늑대의 갑피와 내장이 곤죽이 된다.

댈런은 그 도약으로 다른 놀 기수에게 포탄처럼 날아가고, 진짜 인간 포탄이라도 된 듯 놀 기수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공격의 반동으로 속도를 줄여 올라탄 갑각늑대의 등 위에서, 숨 한 번 고른 뒤 다시금 도약.

마치 범퍼에 끊임없이 부딪혀 튕겨나가는 핀볼처럼, 댈런의 신형은 놀 정찰대의 진형을 종횡무진하며 날아다녔다.

콰직! 퍼벅! 으지직!

다만 진짜 핀볼과의 차이점이라면, 한 번 도약할 때마다 갑각늑대 한 마리와 놀 하나가 목숨을 잃는 잔혹한 게임이라는 점이겠지.

아무리 사냥에 있어서 영민한 놀 종족이라도,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으르르르! 깨갱!

결국 마지막 남은 놀 한 마리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놈은 곧장 갑각늑대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기수의 다급함을 감지한 늑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내달린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순식간에 댈런이 올라탄 갑각늑대와 수십 미터가 넘게 거리가 벌어질 정도.

달리는 늑대 위에서 도약 스킬로 날아가기에는 쉽지 않은 거리였다.

댈런은 무심코 허리춤을 더듬고는, 짧게 혀를 찼다.

“쯧.”

손도끼는 이미 초장에 던지고 없었다.

이미 잔뜩 경계하고 있는만큼, 불꽃 화살을 날려봤자 피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놈이 달아나 본거지까지 가버린다면, 댈런이 짜놓은 판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 일.

‘검이라도 던져야 하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댈런은 퍼뜩 고개를 돌렸다.

타닷―

빛살같이 내달리는 신형이, 땅을 박차고 갑각늑대를 향해 쏘아진다.

스가가각!

쏘아진 신형이 놀 기수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하얀 빛을 내뿜는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열 번 가까이 휘둘러지고.

후두둑―

조각나 비산하는 놈의 머리와 팔다리 사이로, 피분수가 왈칵 치솟는다.

콰직!

몸뚱이만 남은 놀 기수가 늑대 위에서 떨어지고, 빈 안장에 깊숙히 박히는 새하얀 검신.

늑대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은 루시아는, 곧바로 검을 휘둘러 늑대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우당탕!

머리 잃은 늑대가 땅바닥을 뒹굴고, 성기사단의 수습기사는 그 위에서 멋들어지게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한다.

그리고.

“씨바! 존나게 어지럽네.”

그 모습에 무심코 탄성을 토해낼 뻔하던 댈런은, 뒤따라오는 그녀의 쌍욕에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

순간이지만 먼 미래의 그 악마 살해자가 돌아왔나 싶었는데.

아직은 아닌 모양이었다.

***

댈런은 타고 있던 갑각늑대의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켰다.

생각 같아서는 곱게 멈춰세운 뒤 내리고 싶었지만, 애당초 이놈은 사람이 아닌 놀의 손에 길들여진 마물.

안장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 정도야 뛰어난 기량과 근력 수치로 가능해도, 특별한 기술 없이는 기마 자체를 의도대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 손에 훈련된 말이 아닌 이상, E등급 승마 스킬 정도는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갑각늑대 같은 마물이 대상이라면 마물 교감 스킬도 있어야 하고.’

승마 스킬 정도야 시간을 좀 많이 투자하면 얻을 수 있긴 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시체를 줍다 보면 하나쯤 나올 법도 했고.

댈런은 이런저런 상념을 흘려보내면서 도끼를 주워 돌아왔다.

전투는 처음 격돌한 장소에서 꽤 멀리까지 이어졌기에, 돌아올 즈음에는 루시아도 어지럼증을 완전히 가라앉히고 있었다.

“좀 괜찮으시오?”

“예. 감각을 강화하는 문신은 되도록 아껴두는 편인데, 그러지 말 걸 그랬습니다.”

루시아는 관자놀이를 슬슬 문지르며 대답했다.

“소문으로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갑각늑대를 탄 놀 정찰대를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처리하시다니······.”

“그쪽도 대단하오. 젊은 나이에 신성문신을 수준급으로 잘 다루더군.”

댈런은 그렇게 말하며 기절한 갑각늑대 곁에 쪼그려 앉았다.

그는 도끼를 들어 늑대의 가죽껍질을 톡톡 건드려보았다.

갑각늑대의 가죽은 손바닥만 한 단단한 갑각이 빼곡하게 들어선, 일종의 허술하게 만든 비늘갑옷 같은 구조였다.

갑각 사이의 이음매도 질긴 편이긴 하지만, 갑각 부분은 그야말로 판금갑옷 수준의 강도.

평범한 탐험가라면 꽤나 고전할 만한 상대다. 하물며 댈런이 상대했던 것처럼 훈련받은 놀 기수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그러했고.

“동기들에 비해 신성문신을 잘 다루는 건 맞지만···오히려 문신에 너무 의존하게 되어 고민입니다. 제 일신의 능력이 아닌, 다른 것에 기대는 모양새니까요.”

···뭐야. 아직도 그 이야기 중이었어?

댈런은 뚱한 눈길을 그대로 돌려 루시아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은 꽤나 진지해보였다.

그 진심 어린 얼굴을 무시할 수도 없어서, 댈런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당신은 성기사 아니오?”

“그렇습니다.”

“성기사의 힘은 신성문신에서 나온다고 알고 있소만.”

루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기사단이 아무리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그 훈련만으로 균열에서 기어나오는 마물들을 다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들이 수백 년동안 균열을 틀어막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성기사단의 고위기사만이 새길 수 있다는 신성문신.

결국 기사단의 철저한 훈련 역시, 신성문신을 온전히 다루기 위해서는 본인의 역량도 충분히 갖춰져야 하기 때문 아닌가.

지금도 기사단에서 손꼽는 강자들은, 모두 그 문신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더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악마 살해자, 루시아 카스타챌드도 마찬가지지.’

온몸에 새겨진 신성문신이 어찌나 강력한 빛을 뿜어대던지.

세간에서 빛의 기사라는 이명으로까지 불리던 이가 미래의 루시아 본인이다.

의외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대규모 전장에서 가까이해서는 안 될 1순위 아군이기도 했고.

그녀가 뿜어대는 빛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모니터가 무슨 섬광탄 맞은 듯 하얗게 물들어버렸으니까.

옛 기억을 떠올리니 웃음이 슬슬 나온다. 댈런은 그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그럼 의존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소? 성기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이 그쪽에게 내린 힘 아니오?”

그는 도끼를 들어 갑각늑대의 가죽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옆구리에서 갑각 하나, 배 밑에서 갑각 하나, 이런 식으로.

자르다보니 날이 좀 상한 게 보였다. 미궁에 오기 전에 한 번 갈았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이 꼴이었다.

댈런이 원체 강력한 힘으로 던져대니, 평범한 날붙이로는 견디질 못하는 것.

문득 생각해보니 그의 초인적인 전투력 역시 능력치며 스킬 따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본신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게 아닌, 거의 거저에 가깝게 얻어낸 힘.

어찌 보면 그 역시 루시아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힘을 대하는 태도가, 루시아와는 판이하게 달랐을 뿐.

“내 고향에는 그런 말이 있소.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쓴다고.”

“무슨 뜻입니까?”

“돈을 어떻게 버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단 소리요.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지.”

콰직.

거친 도끼질에 엉덩이골 부근의 갑각이 떨어져 나간다. 질긴 가죽이 무딘 도끼로도 슬근슬근 잘만 벗겨졌다.

“힘도 마찬가지요. 어떻게 얻느냐도 분명 중요하긴 하겠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얻게 된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요.”

“······.”

“물론 어디까지나 이건 그냥 내 생각이고.”

댈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각늑대는 어느새 가죽에 듬성듬성 구멍이 뚫려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무슨 스펀지 같은 모양새였다.

댈런은 루시아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부드럽게 안장 위에 앉혔다. 그가 말했다.

“이번에도 그대들 식으로 말하자면, 신이 내린 축복이니 그냥 잔말 말고 누리라는 거요.”

“···잘 알아들었습니다.”

루시아는 생각이 많아진 표정이었다. 그래도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는 좀 가신 듯했다.

댈런은 도끼를 허리띠에 걸치고는, 가방을 둘러메고 손바닥을 폈다. 그가 주문을 외었다.

“이그넬 로트.”

화륵.

손 위에서 주먹만 한 불꽃이 타오른다. 루시아는 화들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불은 왜 피우십니까?”

“이놈들이 어디서 온 줄 아시오?”

댈런은 나자빠진 놀 정찰대를 고갯짓했다. 루시아가 대답했다.

“1층의 동편에 거대한 놀 거주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못해도 이천 마리 가까운 놀이 살고 있다고···.”

“맞소. 그리고 지도에 표시되었던 해골 그려진 붉은 선은, 바로 놈들의 순찰대가 지나가는 경로를 의미하는 위험 표시지.”

루시아는 황당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 그게 무슨. 분명 댈런은 지도가 잘못되었다고 했잖습니까!”

“사람 말을 그렇게 쉽게 믿으면 안 되는 법이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믿으라고···!”

“그 말도 믿었소?”

루시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댈런은 낮게 웃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놀은 갑각늑대를 새끼 때무터 저들의 거주지 안에서 키우지. 그리고 갑각늑대들에게는 귀소 본능이 있소. 기수를 잃어버리고 갈 곳이 없어지거나, 부상이 심각해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자신이 자라났던 곳으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달려가지.”

붉게 달아올랐던 루시아의 얼굴이, 설명을 들을수록 하얗게 질려간다. 댈런은 배낭끈을 꽉 조인 후 그녀의 뒤에 올라탔다.

루시아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댈런에게 물었다.

“지, 지금 그러면 설마······.”

“맞소.”

어깨 너머로 돌아보는 그녀의 시선에, 댈런은 씩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 갑각늑대가, 우리를 놈들의 본거지까지 데려가는 고속 마차가 되어줄 거요.”

사색이 된 루시아가 손이 부서져라 고삐를 쥐었다.

댈런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채 덧붙였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 신께 받은 축복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게 좋을 거요.”

화르르륵!

말을 마친 그가 불덩이를 그러쥔 손을 들어, 갑각늑대의 가죽 벗겨진 부위에 지져버린다.

깨갱! 깨개갱!

그 즉시, 갑각늑대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하고.

“꺄아아아아악!”

피가 후두부로 쏠리는 아찔한 감각과 함께, 수습기사의 비명이 숲 어귀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