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38화 (38/288)

악마의 성검(11)

가장 먼저 도착한 건 화살이었다.

쐐애애―!

석궁에서 쏘아진 화살의 끝, 화살촉에 누렇게 묻어있는 맹독이 별빛 아래에서 번들거리며 빛난다.

댈런은 항상 하던 대로 대처했다.

어렵지 않게 손을 뻗어 화살을 잡아내고, 석궁을 겨눈 사수에게 화살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커헉!”

화살통에 손을 넣던 사수가 목을 부여잡고 주저앉는다.

놈의 목에는 화살의 깃 부분만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목 주변부터 푸르딩딩하게 부풀어가는 혈관을 보니, 어지간한 극독을 발라둔 모양이었다.

“하압!”

“죽어라!”

화살 다음에는 검끝이었다. 한 박자 늦게 검을 휘두르는 탐험가가 두 명이었다.

쌍둥이인지 얼굴에 점 하나를 빼면 똑같이 생긴 두 검사.

한 명은 댈런의 왼쪽, 다른 한 명은 그의 오른쪽을 점한다.

쉬익―

왼쪽 검사의 찌르기가 목을 노려오고, 오른쪽 검사는 허벅지를 길게 베어내며 합공했다.

척 봐도 한두 번 맞춰본 호흡이 아니었다. 댈런은 사납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휘릭―

그의 발끝이 순간 흐릿해졌다.

터엉!

“허억!”

허벅지를 노리던 검이 바깥으로 거칠게 튕겨났다. 그 강력한 반동에 검사가 어어 하며 끌려갔다.

그 사이 댈런은 다른 한 명의 검을 걷어내고 목을 날려버렸다.

툭, 하고 눈앞에 떨어지는 쌍둥이 형제의 머리.

“타렌···?”

검사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 앞에서 댈런의 발끝이 다시 한 번 흐릿해졌다.

다만 이번에 걷어찬 건 검이 아니었다.

와직!

관자놀이가 순간 움푹 들어가며, 망치에 얻어맞은 듯 함몰되는 검사의 머리뼈.

붉고 하얀 것들이 커다랗게 뚫린 구멍으로 후두둑 쏟아진다.

우르르 덤벼들던 탐험가들이 순간 주춤했다. 그때 뒤쪽에 있던 탐험가가 큰 소리로 주문을 외었다.

“이그넬―발라둠!”

화르르르!

허공에 불의 창이 만들어진다. 붉게 타오르며 주변의 어둠을 몰아내는 세 개의 창.

주문을 본 누군가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이거야! 저 새끼도 검으로 불덩이를 막을 순 없겠지!”

맞는 말이었다. 검으로 불덩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막을 일이 없게 만들면 그만인 법.

패래래랙―!

빛의 원반이 공터를 가로질렀다. 화염창의 빛을 반사해 붉게 타오르는 원반이었다.

“이그넬―억!”

다음 주문을 외던 마법사의 이마에 도끼가 박히고, 화염창 역시 허공에서 펑 하고 터지며 불티를 흩뿌렸다.

“······.”

환호하던 탐험가가 입을 다물었다.

흩날리는 불티가 스르르 내려앉는 아래, 공터의 분위기 역시 착 가라앉았다.

믿었던 마법사마저 한 방에 죽어버렸다.

스물 남짓하던 동료들 중 벌써 다섯이 시체가 된 상황.

전투의 흥분이 차갑게 식어버리자, 이성을 되찾은 탐험가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하, 항복?”

개중 한 명이 두 손을 들어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댈런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항복은 지랄.”

콰아앙!

흙더미가 치솟고, 댈런의 신형이 사라진다.

콰직―

항복이라 중얼대던 탐험가의 몸이 사선으로 쪼개졌다.

죽는 순간까지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였다.

“우아아악!”

옆에 있던 동료 탐험가가, 흩뿌려진 피분수에 기겁하며 방패를 쳐들었다.

콰드득!

댈런은 그냥 검을 내리그었다. 탐험가는 방패와 함께 몸이 반으로 갈렸다.

“으, 으아아! 괴물!”

“다들 도망쳐라! 집결지에서 모인다!”

탐험가들은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나름 잡히지 않기 위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모양새.

물론 그 정도로 그의 손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댈런은 다리와 발끝에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콰아앙!

발 아래 흙더미가 폭발하는 순간, 그의 검이 다음 사냥감을 쫓아갔다.

***

이어진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아니, 애당초 전투라기보단 사냥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등을 돌려 달아나면, 도약 스킬로 따라잡은 댈런의 검에 허리가 끊어지든 목이 날아가든 한다.

반격하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목만 날아갈 걸 무기도 함께 두 동강이 날 뿐이었다.

도약 스킬의 여파로 흙더미가 열 번쯤 치솟았을 무렵.

살아남은 탐험가는 단 둘뿐이었다.

민머리 탐험가와, 노련한 인상의 산적수염 탐험가.

찰박.

댈런은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발밑에서 피웅덩이가 파문을 만들었다.

어느새 피와 내장으로 뒤덮인 숲 앞의 공터.

스물 남짓하던 탐험가들은 죄다 시체로 변해, 이 순간에도 꿀럭이며 붉은 선혈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산적수염 탐험가는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은 대체 뭐냐.”

매서운 눈매가 파르르 떨린다. 노련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겁에 질린 것이다.

산적수염의 얼굴은 기억에 있었다.

놈은 미궁에 들어오기 전, 민머리가 속닥거리며 설득하던 바로 그 탐험가였다.

찰박. 찰박.

댈런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가 말했다.

“다시 물어보지. 언제부터 우리를 쫓았나.”

“···이틀 전부터다. 놀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아서 거슬러 올라갔는데, 너와 성기사가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더군. 바로 뒤를 쫓았지.”

산적수염은 순순이 대답했다. 댈런의 초인적인 무력을 보고, 빠르게 판단을 내린 것이다.

“왜?”

댈런의 물음에, 산적수염은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봐도 보물이 가득 들었을 법한 금고를 등에 지고 가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나?”

댈런은 쓰게 웃었다. 역시 금고 때문이었나.

놀 전사장의 천막 안에 있던 금고는, 의외로 굉장히 복잡한 잠금장치를 달고 있었다.

힘으로 부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안에 있던 물건들이 손상될 가능성이 존재했다.

이런 경우에는 돈이 좀 들더라도, 시에나의 인맥을 빌려 전문가를 찾아가는 게 나은 법.

결국 댈런은 미궁에서 나갈 때까지, 금고를 사슬에 묶어서 등에 지고 다니게 된 것이다.

이 탐험가들은 그걸 어떻게 빼앗아보려고 그를 지금껏 쫓아온 것이었고.

“쯧.”

댈런은 짧게 혀를 찼다. 그때 산적수염이 입을 열었다.

“거래를 제시하지.”

그는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품속에 손을 넣었다.

품속에서 꺼낸 건 작은 나무 조각상이었다.

“이 토템은 오백 걸음 밖으로 소리나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 주는 물건이다. 널 미행할 때도 이걸 사용했지. 내 목숨값으로 내겠다.”

댈런은 눈썹을 슬쩍 들었다. 동료를 죄다 죽여버린 적에게 거래라.

그는 빈 왼손을 내밀었다. 일단 내놓으라는 소리였다.

산적수염은 조심스레 손을 내렸다가, 휙 하고 댈런에게 던졌다.

휘이―

나무 토템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리고 그 순간.

철컥― 콰앙!

뻗어낸 산적수염의 팔 안쪽.

옷 속에 숨겨진 기관장치에서 화약이 폭발하며, 작은 납탄이 화살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쏘아냈다.

콰지직!

날아가던 토템이 엄지손가락 반 마디만 한 납탄에 산산이 부서졌다. 납탄은 토템을 박살내고 그대로 직진해 댈런의 심장을 노렸다.

그 앞에서 댈런은 생각했다. 거래는 개뿔.

그는 언제나와 같이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조금 신중했다.

화살 같은 날붙이를 잡아본 적은 많아도, 총알은 처음이었으니까.

갑주격투의 묘리가 은연중에 녹아나고, 유연하게 말린 손가락과 손바닥이 납탄을 잡아낸다.

찌직―

손아귀 안쪽이 좀 찢어졌다. 문제없었다. 강철보다도 단단한 근육은 상하지 않았으니까.

댈런은 보란듯이 손바닥을 펴고, 그 위에서 둥그런 납탄을 슬슬 굴리며 말했다.

“제국군이나 차르국 왕실에 연줄이 있나보군. 화약무기는 아직 암시장에도 거의 풀리지 않았을 텐데.”

“······괴, 괴물.”

댈런은 픽 웃었다. 그는 납탄을 두 손가락으로 잡고서, 산적수염 탐험가에게 도로 던졌다.

쐐애애―퍽!

쏘아졌던 것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날아간 납탄. 산적수염은 반응도 못 하고 스르르 허물어졌다.

쓰러진 그의 가슴팍에는 엄지손톱 크기의 구멍이 왈칵거리며 피를 뿜고 있었다.

댈런은 다가가 놈의 품속을 뒤졌다. 작은 화약병과 납탄 여러 개, 그리고 용병패가 나왔다.

‘금패 용병 출신이었군.’

용병의 옷자락으로 피를 닦아내니, 금박 위에 새겨진 이름이 드러났다.

보리스.

이름으로 추측해보건대, 대륙 북부의 차르국에서 온 모양이었다.

“······.”

가만히 그걸 지켜보던 민머리가, 기회다 싶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댈런은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휙 털었다. 그의 손끝에서 납탄 여럿이 날아갔다.

피피핑―

“끄아아악!”

납탄 세례에 종아리와 허벅지가 꿰뚫린 민머리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끄아악! 으아아아!”

“어딜 내빼냐 새꺄.”

댈런은 민머리에게 다가섰다. 놈은 땅을 짚고 헤엄치듯 이리저리 뒹굴며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다.

댈런은 코를 흥 풀고는, 놈의 목 바로 옆에 검을 푹 꽂았다.

딸꾹.

비명이 뚝 멈췄다.

댈런은 검손잡이에 손을 척 걸치고 물었다.

“성기사는 누가 찔렀지?”

민머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멀쩡한 성기사가 악마 배에 칼빵을 놓고서도 성검을 뺏겼다는데,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냐? 거기다 성검의 인정까지 받은 정식 기사고, 악마는 최하급에 미궁 1층으로 쫓겨날 수준인데?”

“나, 난 모르는 일이오. 대체 그걸 왜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시오?”

“니가 공격대에 있었다며.”

민머리는 입술을 꾹 닫았다.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그는 검을 집어넣고 마법사의 시체에서 도끼를 뽑아왔다. 그리고 민머리 앞에 쭈그려 앉았다.

“두 가지 선택지를 주지.”

그가 말했다.

“하나는 그렇게 입을 꾹 닫은 채, 팔다리가 다 잘리고서 저기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는 거다. 참고로 이 근방 놀들은 아주 배가 고플 거야. 불을 피우고 할 것도 없이 산채로 뜯어먹겠지.”

민머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눈앞의 야만전사는 그보다 더한 일도 망설임 없이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댈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 입을 열어서 네가 아는 걸 나한테 다 말한 뒤, 최대한 고통이 덜한 방식으로 죽는 거야. 참수형 정도면 인간적이겠지. 안 그런가?”

“···내가, 내가 찔렀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댈런은 말없이 팔짱을 꼈다. 계속해보라는 의미였다.

민머리는 턱을 덜덜 떨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 젊은 성기사가 성검을 들고다닌다니, 누가 봐도 이상했소. 둘 중 하나라 생각했지. 성기사단이 미쳐서 젊은 애송이한테 성검을 맡겼거나, 아니면 그 애송이가 미쳐서 성검을 들고 튀었거나.”

성기사단이 미쳤다면 성검을 암시장에다 팔아버려도 무방했다.

애송이가 미쳤다면 성검을 되돌려주고 넉넉한 포상금을 받을 생각이었고.

댈런은 민머리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래서 죽이고 뺏자 결심했다?”

“원래는 그냥 농담처럼 나온 이야기였소. 악마 토벌대에 성기사가 빠지면 손해니까. 하지만 성검이 악마의 배를 찌르고, 성기사도 큰 부상을 입고 나니 기회가 보였지. 둘 다 꿀꺽할 수 있는 기회가.”

댈런은 낮게 웃었다. 평소와는 달리 듣는 이가 소름이 돋게 할 웃음이었다.

민머리는 어깨를 흠칫 떨며 몸을 추스렸다.

“농담이라.”

사람 죽이고 물건 뺏자는 걸 농담처럼 이야기한다니.

영락없는 강도에 살인자의 인생이 아닌가.

미궁에 내려가는 탐험가들 중에, 이런 인간 말종들이 종종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흔히들 미궁도적이라 불리는 족속들.

그의 캐릭터 역시 이런 미궁도적에게 털린 적 있었으니, 놈들이 이 사건에 개입됐다는 게 딱히 놀랍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이고.’

그와 함께하는 의뢰주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겠지.

“그래서 부상당한 성기사 등을 찔렀다?”

“나, 나만 찌른 건 아니었소. 아까 당신이 죽인 라쿠스가 먼저 화살을 쐈고, 나와 같이 다니던 몇몇이 더 함께했소.”

민머리가 더듬거리며 변명했다. 댈런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찰박.

밤의 어둠 사이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두운 로브를 걸친 인영이었다.

두건 아래로 금발이 슬쩍 내비치고, 푸른 눈은 무슨 도깨비불처럼 타오르는 듯하다.

댈런이 굳이 놈들을 죽이지 않고 심문하기 시작한 건, 누군가 어둠 속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 누군가는 의뢰를 받았을 뿐 희생자와 별 인연이 없는 그와 달리, 친우의 흔적을 찾아 미궁까지 내려온 성기사 본인.

한편 민머리는 아직까지도 알아채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댈런을 붙잡고 늘어지는 중이었다.

“탐험가시면 잘 알 거 아니오. 이거 한 탕이면 더 이상 이 끔찍한 곳에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그 말에 누가 안 넘어갈 수 있겠소? 제발 좀 살려주시오. 악마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목숨을, 이렇게 허망하게 잃고 싶지는···.”

“···씨발 새끼들.”

어둠 속 인영, 루시아가 말했다.

그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였다.

“어, 그, 그쪽은 설마···!”

어둠 속을 돌아본 민머리가, 그녀의 푸른 눈을 발견하고 입을 떡 벌린다.

루시아는 천천히 두건을 젖히며, 한 마디 한 마디를 씹어뱉었다.

“그래, 이 창자를 끄집어내 목을 매달아버릴 새끼야. 니가 죽인 그 애송이 성기사의 동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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