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성검(13)
뻐어엉!
북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거인의 아래턱이 터져나갔다.
후두둑 떨어지는 살점과 뼛조각.
시체거인은 휘청이면서도 길쭉한 팔 중 하나를 내뻗었다.
거대한 주먹이 공기를 매섭게 가르고, 아직까지 공중에 붕 떠 있는 댈런을 후려친다.
콰앙―!
주먹에 얻어맞은 댈런이 저 멀리 날아갔다. 거의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리.
골이 흔들리는 충격 속에서도, 댈런은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중심을 되찾은 뒤 땅에 발을 디뎠다.
지지지직―
그의 발 아래 땅에 두 줄기 깊은 고랑을 새겨진다.
본의 아니게 만들어진 밭고랑의 끝, 댈런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치이이······.
이마와 어깨, 팔뚝에서는 오랜만에 증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그의 입가가 뒤틀리며 사나운 미소가 지어졌다.
이 새끼 좀 치네?
꽈아앙―!
흙더미가 폭발했다. 댈런의 신형이 재차 사라진다. 거의 동시에 그의 손끝이 허리춤을 스쳤다.
패래래랙!
미궁의 어둠을 가르고 날아가는, 덩치 큰 전사와 빛의 원반.
먼저 도착한 건 빛의 원반이었다.
콰지직!
도약의 가속이 더해진 손도끼가, 시체거인의 어깨쯤을 가볍게 가르고 지나간다.
투척에 담긴 비인간적인 힘은 시체거인의 어깨를 연결하던 혈관과 내장을 죄다 끊어버렸다.
뚜두둑―
쿵 하고 떨어지는 시체거인의 팔.
열 구 가까운 시체가 뒤얽힌 거대한 팔은, 몸뚱이에서 분리되고서도 살아서 꿈틀거렸다.
우어어.
엄지 끝에 달린 머리가 눈을 뒤룩거리며 댈런을 발견한다.
댈런은 어느새 시체거인의 본체를 들이받고, 세 개 남은 팔을 넘나들며 놈의 온몸을 두들기고 있었다.
홀로 떨어진 팔은 손가락을 오므렸다. 이대로 뛰어올라 본체를 공격하는 전사의 뒤를 칠 생각이었다.
놈이 온몸을 부르르 떨며 도약하려는 순간.
“역겨운 마물 새끼!”
빛의 검이 놈의 엄지를 잘라버렸다.
그어어억!
거인의 팔이 비명을 질렀다. 잘려나간 엄지는 펄떡거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루시아의 검에 서린 신성력이, 시체거인의 핵에서부터 공급되던 사이한 마력을 끊어놓은 것.
성기사의 신성력은 악마의 마력과는 완전히 상극의 속성을 지닌 힘.
이 신성력은 신성 문신과 더불어, 성기사단이 홀로 미궁의 입구 하나를 틀어막을 수 있는 또 다른 힘이었다.
“댈런!”
몇 번의 칼질로 팔 한 짝을 마무리한 루시아가 외쳤다.
댈런은 시체거인의 어깨와 팔, 허리와 정수리를 넘나들며 놈의 몸을 착실히 두들기고 있었다.
퍽! 퍽!
가벼운 주먹질에 피와 살이 터져나가고.
콰직!
발길질 한 번에 얽혀있던 팔과 내장이 우수수 비산한다.
우어어어―
제 몸을 구성하던 걸 잃어가며, 그 저항 역시 서서히 줄어드는 시체거인.
댈런은 가슴팍을 걷어차 커다란 구멍을 뚫어낸 뒤, 그 안의 핵을 불꽃 화살로 터뜨려 마무리했다.
그어어억!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거인의 몸이 풍선처럼 폭발한다.
후두두둑.
살점과 피가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댈런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가 말했다.
“불렀소?”
“···아닙니다.”
육편의 비를 방패로 막아내며 루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고층 건물 크기의 적에게 단신으로 달려들기에,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되어서 불렀건만.
놀 거주지를 단신으로 휩쓸어버린 남자를 걱정한 자신이, 왠지 모르게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고깃조각의 비가 그치고, 루시아는 사방에 흩뿌려진 참상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염려가 됩니다. 아직 놈의 마굴에 진입하지도 않았는데, 입구에서부터 이렇게 거센 저항이라니요.”
“글쎄. 난 오히려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오.”
댈런은 어깨에 붙은 창자를 툭툭 떼어내며 말했다.
“탐험가들의 입장에서 미궁 1층까지 쫓겨난 악마는 버거우면서도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지. 거기다 지금 세간에는 악마가 큰 부상을 입었다는 소문까지 퍼져 있소.”
물론 그 소문은 가짜였다.
정확히는 소문을 퍼뜨린 장본인인, 대규모 토벌대의 생존자들도 반쯤 속은 것이었지만.
악마는 생각보다 그리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저 토벌대의 배신을 유도하기 위해, 그렇게 연기한 것일 뿐.
그랬기에 그 계획이 성공하자마자 단박에 성검을 빼앗고, 토벌대의 삼분의 일을 그 자리에서 몰살한 것이다.
하지만 성검에 찔려 비틀거리던 악마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내기에는 너무 유혹적인 장면이었던 걸까.
토벌대의 생존자들 중 누구도, 그게 악마의 속임수라는 건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대규모 토벌이 한 번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당한 악마를 사냥하려는 애송이 탐험가들이 미궁의 입구로 벌떼같이 몰려들었던 것이겠지.
“시체를 이렇게 많이 쌓아놓은 걸로 봐서, 놈은 지금까지 수백 명에 달하는 탐험가를 유인해서 처리한 것 같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악마는 사람의 영혼을 뽑아 더럽히고, 그 타락한 영혼을 제 힘으로 삼는 족속이죠. 그 찢어죽일 악마 새끼는 더 큰 힘이 필요했던 겁니다.”
루시아가 말을 받았다.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성기사 바렛과 전투하며 분명 부상을 입기는 했을 테니, 멋모르고 달려드는 애송이 탐험가들의 영혼은 그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공급원이었겠지.”
“···동시에 성검을 타락시키는 데 필요한 힘의 공급처이기도 했겠죠.”
“그렇소.”
성검에 입은 부상을 치유하고, 성검 자체를 타락시키기 위한 힘.
그 힘을 위해 못해도 수백 명분의 제물이 필요했을 테다.
영리한 악마는 자신을 노리는 탐험가들을 유인해, 역으로 사냥하면서 필요한 제물의 수를 보충해왔겠지.
그렇다면 시체거인이라는 거대한 마물로, 입구를 완전히 틀어막아버린 지금의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놈은 이제 제물이 충분히 확보되었다 여기는 거요. 지금쯤 성검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의식을 한창 진행하고 있겠지.”
“그리고 아직 그 의식은 끝나지 않았으니, 지금이 놈을 공격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는 거군요.”
“맞소. 이해가 빠르군.”
댈런은 낮게 웃으며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시체거인을 잡으며 레벨업해 얻은 추가 능력치를 체력에 투자했다.
이로써 그의 레벨은 11. 체력 능력치는 22.
이 정도면 성검을 든 악마와도 충분히 한 판 붙어볼 만했다. 그가 말했다.
“어서 들어갑시다. 동료의 복수는 마무리해야지.”
***
동굴의 초입은 흔한 자연동굴의 외관이었다.
울퉁불퉁한 바닥과, 위아래로 자라난 석순과 종유석.
종유석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니, 주변의 풍경이 하나씩 바뀌기 시작한다.
길을 가로막던 석주와 천장에서 무너진 돌더미들이 사라지고.
울퉁불퉁하던 발밑은 어느새 잘 다듬어진 석재 판석이 깔려 있었다.
동굴의 넓이 역시 크게 확장되어, 성인 장정 다섯 명이 나란히 팔을 뻗어도 될 정도가 되었다.
마치 고대의 유적 통로처럼 느껴지는 공간.
댈런의 곁에서 걷던 루시아가, 문득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미궁 안에 어떻게 이런 환경이 구축된 건지 아십니까?”
“악마의 마굴이 다 그렇지 않소. 겉멋이 잔뜩 든 함정투성이 통로와 방들.”
댈런은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루시아는 잠시 우물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마굴을 만드는 건 악마가 아니라 그 휘하의 고블린들이랍니다.”
댈런은 루시아를 슬쩍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야간 시야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
그 위로 옅게 내비치는 의기양양함에, 댈런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쪽 지식을 자랑하고 싶다 이거지?
“고블린이 악마들의 작품인 건 세간에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죠. 하지만 사람들은 온 천지에 득시글한 이 땅딸막한 악귀에 짜증을 낼 뿐,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를 겁니다.”
“그렇소?”
“예. 사실 고블린은 악신 에낙사구스가 인생의 역작으로 작정하고 만들어낸 족속입니다. 지옥의 가장 흔한 악귀인 임프를 기반으로, 좀 더 생산성이 좋고 강력한 악귀를 만들어내려 한 거죠.”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놈의 계획은 반쪽짜리 성공으로 끝맺었답니다. 루시아는 푸른 눈을 빛내며 덧붙였다.
“에낙사구스의 원래 계획은 오크를 모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성공적이었다 합니다. 그래서 고블린은 오크 특유의 어마어마한 증식능력을 가지게 되었죠. 하지만 그 대가로 오크의 근력은 포기해야만 했고, 무슨 부작용이 생긴 건지 크기마저도 난쟁이만도 못한 땅딸막한 체구가 되었답니다.”
“그렇군.”
“재밌는 사실은, 지상에 나온 고블린들을 수백 년 전부터 그 원본이 되는 오크가 잡아다가 노예로 길들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오크 입장에서는 자기들처럼 피부가 초록색이고, 증식력도 어마어마한 데다 손재주가 좋고 덩치까지 작으니 부려먹기 딱 좋은 노예였던 셈이죠.”
루시아는 혼자 깔깔거리며 웃었다. 댈런도 그녀를 따라 낮게 웃어주었다.
며칠 전까지 웃음에마저 슬픔이 깃들던 그녀가, 갑자기 수다쟁이가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큰 싸움을 눈앞에 두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려는 태도.
침울함과 슬픔에 잠겨서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으니, 답지않은 지식 자랑을 해서라도 스스로의 기분을 전환하려는 노력이었다.
“다만 이 마굴은 지금의 이름 없는 악마가 지은 건 아닙니다. 팔시온으로 떠나오기 전에 성기사단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30년 전에 여기 마굴을 지었다가 토벌된 다른 악마가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 여기 머무는 놈은 고작 빈집털이범밖에 안 된다는 거군.”
“아하하, 맞습니다.”
파란 눈이 좀 더 눈에 띄는 호선을 그렸다.
얼굴에 웃음기를 한가득 머금으면서도, 루시아의 자세와 호흡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느 순간에 마물이 습격한다 해도 곧바로 반격할 수 있는 상태. 확실히 영웅이 될 인재는 떡잎부터 남달랐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습격은 없었다.
일자로 죽 뻗은 통로를 한참을 걸어간 두 사람은, 마침내 통로를 가득 채운 두터운 석벽에 가로막혔다.
“문이 없군.”
댈런이 말했다.
“열린 흔적이 있는 걸 보니, 주문으로만 열 수 있는 벽인 것 같습니다.”
석벽을 찬찬히 뜯어보던 루시아가 대답했다.
댈런은 석벽을 똑똑 두드려봤다.
예민한 그의 감각과 지능 수치가, 벽을 타고 울리는 진동과 소리에서 벽의 두께와 단단함을 역산해냈다.
‘두껍군. 대충 이 미터 남짓인가.’
거기다 기감에 은은하게 느껴지는 마력으로 봤을 때, 특별한 마법적 조치까지 되어있는 듯했다.
이 정도면 일전에 성벽 수준의 강도를 자랑하던 텔리아 상회의 밀실보다 몇 수는 위.
아무리 그라도 용혈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부수기 쉽지 않았다.
“물러나시오.”
하지만 악마의 심처가 코앞이니, 이제 와서 벽 하나에 막혔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댈런은 어깨를 슬슬 풀며 루시아를 뒤로 물렸다. 그는 등에 맨 가방과 금고를 통로 한쪽에 내려놓았다.
후욱.
숨을 들이쉰다.
깊은 호흡이 사지의 말단까지 뻗어나가며. 온몸의 근육과 신경을 일깨운다.
두근.
거세게 맥동하는 심장이, 혈관을 따라 뜨거운 피를 온몸으로 실어나르고.
강철보다 단단한 근섬유가, 주인의 의지에 반응해 스스로를 뒤틀어 한계까지 힘을 낼 준비를 한다.
‘오랜만이군.’
대사도와의 결전을 벌인 이후, 전력을 다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힘을 쓸 생각에, 호승심 넘치는 전사의 육신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는 게 느껴진다.
과연 그동안 성장한 그의 육체는, 인간을 한참이나 넘어선 힘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더불어 새로이 깨달은 ‘영역’이라는 능력은, 그 힘을 다뤄내는 방식을 어디까지 확장시킬 수 있을까.
원로 마법사 펠버에게 영역에 대해 들은 이후, 댈런은 속으로 수없이 그 깨달음에 대해 반추했다.
‘영역을 사용한다는 건, 그 가능성을 불러와 이 땅에서 불가능한 이적을 행하는 일.’
눈을 감는다.
그리고 떠올린다.
그 날 마주했던 설산의 풍경.
이 땅에서 처음 들이쉬었던 차가운 숨과, 그 냉기에도 굴복하지 않던 단단하고 뜨거운 육신을.
후우.
더 이상 오두막의 컴퓨터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그 과거를 직시하고 극복함으로, 댈런은 힘의 그릇에 대한 증명은 해내었기 때문.
대신 버려진 오두막의 모닥불은 난로를 삼킬 듯 타오르고 있었고, 방 한쪽에는 허공에 맴도는 냉기에 테이블과 의자가 차갑게 얼어붙은 채였다.
그리고 그 냉기와 열기가 공존하는 오두막의 바깥.
우르르릉―
번개의 번쩍임이 없었음에도, 오두막과 설산을 뒤흔드는 천둥의 소리.
현실의 육체를 진동시키는 그 우렛소리를 느끼며, 댈런은 눈을 떴다.
슥―
그는 도끼를 뽑아들었다.
영역을 사용하는 게 가능성의 현실화를 의미한다면, 꼭 주먹을 사용해야만 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르베론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도끼는, 댈런의 거친 손속에 의해 이미 걸레짝이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한 번은 버틸 수 있겠지.’
심상 저 너머 설산을 뒤흔드는 우렛소리에, 낡은 손도끼는 공명하듯 함께 진동한다.
그건 마치 얼른 자신을 날려, 이 벽을 부수라 말하는 것만 같았다.
댈런은 씩 웃었다. 그는 손을 들어올렸다.
주문으로 여닫힐 벽의 이음매를 정확하게 겨누고, 어깨 너머로 들어올린 손도끼에 의지를 집중한다.
필요한 건, 악마가 쌓아올린 방벽을 돌파할 단 한 번의 일격.
그 굳건한 의지에 주변의 마력이 기이하게 일그러지는 순간.
구구구궁―
예상 밖으로, 거대한 석벽이 저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크흐흐. 어서 오거라. 서리고원을 넘어온 대전사와 아직 못다 피어난 어린 성기사야.”
반쯤 열린 석벽의 틈으로, 악마가 검은 눈을 번들거리며 말했다.
3층 건물 높이의 덩치에, 팔이 네 개 달린 악마의 육신.
거무튀튀한 피부와 머리에 솟은 두 뿔만 제외하면, 앞서 동굴 입구에서 마주쳤던 시체 거인과 거의 비슷한 외양이었다.
‘흠.’
댈런은 잠시 갈등했다.
부수려던 벽이 사라지고 그 뒤에 있어야 할 악마가 나타난 상황.
영역은 이미 현실로 힘을 쏟아내고 있었다.
도끼가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 파르르 떨린다.
핏속의 재생 인자가 이미 증기를 피워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벌어지는 이적을 회수하기에는, 아직까지 이 힘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목표를 약간 수정하는 것뿐.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별들의 시선을 읽어보니, 너희들의 손에 미궁의 많은 것들이 정리되었더구나. 에낙사구스의 장기말, 라필렘이 만든 살아있는 숲, 벨제붑이 수족으로 쓰려던 늪지의 프로그맨 부족과, 더불어···응?”
히죽 웃는 얼굴로 일행의 업적을 열거하던 악마의 시선이, 문득 댈런에게 향한다.
뒤틀린 마력의 흐름과, 큼직한 손에서 공명하는 도끼.
그 의미를 깨달은 악마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 순간.
“말 존나 많네.”
똑같이 히죽 웃어주며, 댈런이 짧은 말로 악마를 비웃고.
번쩍―!
파공성조차 없이 세로로 길쭉하게 뻗은 빛줄기가, 벼락처럼 어둠을 가르고 악마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우르르르릉―!
그 벼락의 뒤를 이어.
거대한 천둥소리가 마굴의 통로와 공동을 뒤흔들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