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42화 (42/288)

악마의 성검(3)

후웅―

음울한 기운을 머금은 채, 내리그어지는 타락기사의 강철검.

깡―!

새하얀 불꽃을 덧씌운 검이 이를 걷어내고, 그 기세를 몰아 방패로 밀어붙인다.

터엉!

하지만 타락기사의 손에서 뿜어내는 어두운 기운이 방패의 기세를 상쇄해냈다.

직후 방패를 옆으로 밀어내고, 역으로 검을 재차 찔러오는 타락기사.

카가각!

검과 검이 부딪히고, 검신과 가드가 서로 얽히며 잠시간 힘겨루기가 오간다.

그리고 잠시 후.

까가가강―!

힘의 균형이 깨어지는 순간, 얽혔던 검이 풀어지며 십수 번의 검격이 맞부딪힌다.

불길한 기운이 덧씌워진 강철검과, 신성력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백색 검의 춤사위.

그 춤이 그려내는 하나하나의 선과 면이, 서로의 목줄기와 심장 언저리를 노리고 달려드는 치명적인 쾌검이었다.

까가강! 깡!

기이하게도 두 검이 그려내는 움직임은 묘하게 엇비슷했다.

사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성기사단 특유의 빠르고 유연한 검술에, 신성문신의 힘으로 현란한 움직임을 덧씌운 루시아의 검은.

원래 성기사 바렛이 수습기사 시절 창안해낸 독자 검술을, 그녀에게 맞게 본따 만든 작품이었으니까.

‘배신자 새끼.’

루시아는 핏발 선 눈으로 타락기사를 노려봤다.

배신감과 분노가 그녀의 머릿속에 휘몰아친다.

목숨을 건 첨예한 줄다리기 속에서, 평소처럼 신념과 이성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건 불가능한 일.

한때나마 동경했던 이의 처참한 몰락은, 그녀의 심중에서 복잡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너는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목에 핏발이 설 정도로 소리치면서, 그녀는 성기사단 시절의 옛 기억을 떠올렸다.

성기사 바렛은 훈련생 시절부터 남다른 인물이었다.

혹독함으로 악명 높은 체력평가 때마다, 그는 언제나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동기들이 아직 검술의 기초도 떼지 못했을 무렵, 저 혼자 검 한 자루로 수습기사 조교를 이겨먹었다.

신앙심도 뛰어나 매일 일과가 끝나면 예배당에서 몇 시간이고 머무는 것은 물론이요.

동기와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그를 찾는 이가 있으면 언제든 달려가 성심성의껏 도와줬다.

수습기사가 됐을 즈음, 성기사단 내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가 차기 기사단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며, 혼자 설레발 치는 사람들까지 심심찮게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그였는데.

“그런데 왜!”

까가가강!

찰나의 시간을 관통하는, 정확히 열네 번의 검격.

검과 검, 방패가 맞부딪히며 불똥이 튀어오른다.

“왜 이런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난 건가!”

사실 그녀도 알았다.

토벌대에게 배신당해 악마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일에 대해, 바렛의 잘못이라곤 필사의 각오로 싸웠던 것뿐이며.

그 끝에 그의 목을 휘감은 할만의 사슬은, 설령 기사단장이라도 저항하기 힘든 강력한 성물이라는 사실을.

“차라리 도망치지 그랬나! 지원을 요청할 수는 없었나!”

그럼에도 루시아는 외칠 수밖에 없었다.

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그저 울분을 토해내는 것에 가까운 의문을.

“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게 한 것인가! 대체 왜···!”

왜 나로 하여금, 네 목에 검을 겨누게 만드는가.

화르르륵!

백색 화염이 검 전체를 집어삼킨다.

심문관의 지위를 나타내는 단마의 백염.

그 백염을 전수받은 이상, 그녀의 신분은 수습기사이기 이전에 심문관이었다.

그리고 심문관의 첫 번째 임무는 기사단 내부의 악을 척결하는 것.

설령 그 악이 자신이 존경하던 동료라 할지라도.

성기사단의 흰 불꽃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옛 동료의 수급을 거두는 것뿐이었다.

까아아앙!

처음으로 타락기사의 검이 튕겨나간다.

루시아의 검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향연은, 이제 매끈한 검신의 원래 모습을 완전히 가릴 정도였다.

까가강!

이어지는 강력한 공격에 활짝 열린 타락기사의 가슴팍.

루시아의 검이 번쩍이고, 단단한 판금갑이 쪼개지며 가슴팍에 긴 상흔이 새겨졌다.

화르륵!

상흔을 따라 번지는 백색의 불꽃.

백염은 순식간에 살과 피를 집어삼키며, 한 줌의 재로 만들어 허공에 흩뿌렸다.

가까스로 타락한 신성문신이 강렬하게 빛을 내뿜으며, 그 불길이 전신으로 번지는 걸 막아섰다.

크르르르.

타락기사가 낮게 신음했다. 그는 상처를 슬쩍 내려다보더니, 아랑곳 않고 자세를 잡아갔다.

“···개 같은 새끼.”

루시아는 만감이 뒤섞인 눈으로 그걸 바라봤다.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백색 불꽃처럼 일렁이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넌 그냥 여기서 뒈져라.”

꾸드득.

그녀의 말이 끝난 순간, 발 아래 짓눌린 판석에 쩌적 금이 가고.

쩌어엉!

두 기사가 다시 한 번 격돌했다.

***

격렬한 공방이 오가는 두 기사의 싸움과는 달리, 악마와 전사의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꽈아앙!

바닥을 부수며 도약한 댈런의 검에, 악마가 빚어낸 어둠의 칼은 속수무책으로 박살났다.

“끄아아악!”

분쇄검의 검풍과 부서진 어둠의 파편이 휘말리고, 그 폭풍에 악마가 직격당하기를 대여섯 번.

시체로 수복한 몸의 절반은, 분쇄검의 위력 앞에서 순식간에 다시 고깃조각이 되어 사라졌다.

“자, 잠시만. 잠시만 협상을 하자···그어억!”

다시금 내장을 줄줄 흘리게 된 악마가 대화를 요청했지만, 댈런은 말없이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영역을 사용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으나, 분쇄검 자체의 파괴력도 결코 약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숙련도가 낮아도, 스킬 등급 자체의 위력은 결코 무시 못 하지.’

라판텔라의 분쇄검은 C등급 스킬.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게 해준 용혈의 재생 인자와 동급의 능력이었다.

분쇄검을 두어 번 더 얻어맞은 악마는 공동의 중앙에 새겨진 마법진 위에 엎어졌다.

첫 일격을 맞았을 때처럼, 뜯겨나간 옆구리에서 거무튀튀한 내장이 꿀렁이며 쏟아진다.

다만 그때와의 차이점은, 이제 공동 안에 그걸 틀어막을 시체가 한 구도 남지 않았다는 점.

악마는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끄으으, 어찌 제국의 무예와 기사왕국의 검을 동시에 가질 수 있지? 애당초 어떻게 별들의 시선을 피해 그런 기술을 숨겨둘 수 있었냐는 말이다!”

댈런은 픽 웃었다. 영악한 놈이었다.

악마는 끝없이 입을 나불대면서도, 자연스럽게 마법진 한가운데로 기어가고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보면 그저 고통에 겨워 도망치는 몸짓.

허나 놈이 기어가는 방향에는, 신성력을 전부 상실한 성검이 자리하고 있었다.

댈런은 느긋하게 걸어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가 말했다.

“스킬빨이다 새꺄.”

“스, 스키? 그게 무슨―.”

악마의 말은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댈런이 휘두른 검이, 악마의 목을 툭 잘라버린 것.

목이 떨어지고도 이를 다시 재생시키려는 악마의 육신 앞에서, 댈런은 너덜너덜해진 검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단단히 말아쥔 주먹. 내면의 시야로 내다보는 설산의 정경.

그 설산에서 내리치는 천둥소리와 함께, 그는 주먹을 뻗었다.

우르르릉―!

그리고 다음 순간, 눈앞에 남은 건 대량의 끈덕한 핏물과 고깃조각들 뿐이었다.

“후우.”

전신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진다. 이로써 이번 싸움에서 영역을 사용한 건 두 번째.

체력은 아슬아슬하게 한계 안쪽이었다.

어그러진 팔이 어느 정도 재생되자, 댈런은 그제야 두 기사를 돌아볼 수 있었다.

“흠.”

그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쩌저정! 쩌정!

격렬하게 맞부딪히는 두 자루의 검. 승세는 여전히 타락기사가 쥐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과 같지는 않았다.

타락기사의 몸놀림은 댈런과 처음 격돌했을 때에 비해 꽤 볼품없어진 상태였다.

반면 루시아의 검격은 처음보다 더 날카롭고 강해져 있었고.

때문에 두 기사의 공방은 미세하게 기울어있을 뿐, 거의 비등한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설마 그 짧은 사이에 성장해서 타락기사의 역량을 따라잡은 건가?’

그런 생각이 순간 들었다.

하지만 댈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놀랍게도 루시아의 역량이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허나 댈런과 격돌했던 타락기사를 따라잡으려면, 여전히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기사의 싸움이 비등한 건, 타락기사가 본연의 힘을 다 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

‘아니, 정확히는 스스로 힘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쩌어엉!

검이 맞부딪힌다. 루시아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 순간 타락기사의 신성문신 중 하나가 흐릿해졌다.

쩌정!

그리고 다음 격돌은, 루시아의 미세한 우위였다.

‘스스로의 힘을 억제해서, 루시아를 강제로 성장시키고 있군.’

댈런의 시선이 타락기사의 목을 향했다.

놈의 목을 휘감은 사슬은 그도 익히 알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할만의 사슬.’

원래는 구속한 상대를 복종시키는 강력한 성물이었으나, 타락하면서 원래의 기능에 강력한 마기가 더해진 아이템.

지금의 댈런이라도 저 타락한 성물에 저항할 역량은 안 될 터였다.

그만큼 강력한 물건이기에, 바렛이 아무리 뛰어난 성기사였다 해도 악에서 벗어날 도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남은 의지를 총동원해, 스스로의 힘을 억제하고 있는 건가.’

성물의 힘은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성물에 타락한 본신의 힘은 별개의 문제.

바렛은 타락해버린 이 순간에도, 자신의 의지로 그 힘을 억눌러 루시아의 성장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차라리 동료를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불사르겠다는 건가.’

실로 고결한 의지.

성기사의 정석이라 할 법한 마음가짐이었다.

댈런이 그런 생각을 품는 와중에도, 두 기사의 싸움은 점점 더 격해져갔다.

쩡―!

두 검이 부딪히는 소리는, 더이상 평범한 금속끼리의 마찰음이 아니었다.

콰드득!

현란하게 내딛는 그들의 발걸음마다, 밟힌 판석이 산산이 깨져나간다.

크르르르!

몸 곳곳에 불타는 상흔을 입은 타락기사가, 입가를 죽 찢으며 울부짖었다.

댈런은 마치 그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동료를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뻐서.

그리고 그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은 곳으로 내딛는 동료가 자랑스러워서 웃는 웃음.

타닥.

매섭게 몰아붙이던 루시아가 검을 내렸다.

한 발 늦게나마, 그녀도 타락기사의 저의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이 씨발 새끼가······.”

깨문 입술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린다.

사방으로 빛을 뿜어대던 신성문신은, 어느 순간부터 그 빛의 강도를 천천히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근처에만 가도 눈부실 정도였던 광채는 사그라들었다.

그 대신 자리 잡은 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순백의 빛.

밝기 자체는 약해졌으나, 그 희미한 빛에서 느껴지는 압은 이전보다 배는 더 강렬했다.

크르르.

이죽거리며 입꼬리를 올리는 타락기사 앞에서, 루시아는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각진 방패가 앞에, 검은 그 옆에 비스듬히 뉘여서.

자세를 잡은 그녀의 얼굴 위, 두 눈을 둘러싼 신성문신이 처음으로 빛을 발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녀의 몸이 쏘아졌다.

촤학!

마치 빛의 화살처럼 날아간 그녀의 신형이, 타락기사의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타락기사는 저항하지 않았다.

검을 들지도, 몸을 움직여 피하지도 않았다.

철컹.

그의 목에 감겼던 사슬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천천히 깜빡이다가 사라지는 사슬의 보랏빛 기운.

“후우······.”

눈에 이지를 되찾은 성기사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그의 신성문신이 본래의 순수한 빛을 되찾았다.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작게 우물거리는 성기사.

그리고.

화르르르―

어깨부터 골반까지를 가른 상흔에서, 거센 불꽃이 타오르며 그의 온몸을 집어삼켜갔다.

검은 재가 되어 휘날릴 때까지, 성기사는 한 마디 신음도 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 남은 건 누더기가 된 성기사의 갑옷과 검, 그리고 거무튀튀한 사슬뿐.

타락한 기사를 단죄함으로 임무를 다한 수습기사는, 그 유품을 차마 돌아보지 못한 채 고개를 푹 떨궜다.

“바보 같은 년···왜 마지막까지 그런 말밖에 못하고······.”

축 늘어진 금발 사이, 신음처럼 새어나오는 중얼거림.

“반가웠을 거요.”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댈런은, 그 중얼거림에 덤덤한 어조로 말을 붙였다.

“때론 사람들의 수많은 미사여구보다, 친구의 욕 한 마디가 더 큰 작별 선물이 되기도 하지.”

“······.”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성기사의 어깨가 작게 떨린 것이, 곧 대답이나 다름없었다.

“······.”

그 어느 때보다 처연한 정적이 내려앉은 공동.

길게 늘어뜨려진 금발 아래로.

맑은 물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떨어졌다.

***

“바렛이 명을 다했군.”

화려한 장식이 수놓아진 발코니 위. 하늘을 올려다보던 기사가 말했다.

“골라캅도 죽었어.”

그의 곁, 두건을 뒤집어쓴 노파도 말했다.

“나는 그런 머저리 따위에겐 관심이 없다. 놈은 그저 장기말일 뿐이야.”

“끌끌끌. 악마를 두고 머저리라 하다니, 과연 성기사단의 부단장다운 패기야.”

“입조심 하는 게 좋을 거다.”

기사는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노려봤다. 하지만 노파는 낄낄거리길 멈추지 않았다.

“조심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닌가? 성기사단의 부단장이 별을 보며 점을 치고, 마녀와 내통하며, 악마를 앞세워 유망한 기사와 성검을 동시에 타락시킨 사람이라는 게 알려지면―.”

“그러니까 그 입을 조심히 놀리라는 게다.”

사아아―.

기사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손끝에서 뻗어나간 청백색의 기운이, 노파의 목을 천천히 옥죄어갔다.

그 순간 두건 아래, 노파의 노란 눈이 빛나며 음습한 바람이 발코니 안에 휘몰아쳤다.

순식간에 청백색의 기운과 몸을 얽는 음습한 바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잠시간 죽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먼저 백기를 든 건 노파 쪽이었다.

“끌끌, 하여간 이 노친네는 입이 방정이란 말이야. 좀 봐줘. 그쪽 일을 내가 얼마나 열심히 도왔는데.”

음습한 바람이 언제 그랬냐는 듯 흩어진다. 기사 역시 기운을 거두고 손을 내렸다. 그가 말했다.

“내 앞에서 그 더러운 세 치 혀를 놀릴 생각은 말아라. 다 네년의 저열한 계획을 위한 것 아닌가.”

“쳇.”

노파는 툴툴거리며 발코니 끝으로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발코니의 난간 위에 올라선 그녀가 말했다.

“동굴 속의 어미에게는 잘 말해뒀어. 언제 찾아가든 그녀는 널 환영할 거야. 그에 대한 대가는 언제나와 같이 오두막으로 보내줘.”

“대가는 내가 직접 찾아가서 확인한 후에 보내겠다.”

“그러든가.”

휘릭.

노파의 몸이 발코니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기사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천기가 이토록 어지러움에도, 고작 성검 한 자루 타락시키는 일이 실패로 돌아갔는가.”

그는 허리춤의 검손잡이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공들여 준비한 타락기사마저 쓰러졌으니, 이제 이 몸이 향할 곳은 하나뿐이겠군.”

조금 더 하늘을 바라보던 기사는,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사라진 발코니 위.

난데없이 불어온 미풍이, 바닥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잿가루를 싣고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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