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2)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고 했소?”
댈런은 손에 묻은 양념을 대충 닦아내며 물었다.
“맞네. 뼈만 남은 시체가 무덤을 헤집고 일어나고, 전날 침상에서 임종을 맞은 노인이 밤중에 집밖으로 걸어나간다더군.”
“흠.”
톡톡.
손끝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댈런은 생각했다.
‘언데드가 나타났다라.’
언데드의 등장은 이 게임에서 굉장히 중요한 전조였다.
칠십 년 전에 성기사단의 대대적인 토벌이 이루어진 이후, 사령술사는 대륙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
살아남은 소수의 사령술사들은 성기사단의 손길이 닿기 힘든 오지에 숨어들었다.
대표적인 곳이 저 북방 서리고원이나 제국 서부의 뱀파이어 백작령, 혹은 대륙 서쪽의 작열사막 정도.
그런 오지가 아니면 사령술사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언데드가 발견되었다는 건, 어떤 이변이 생긴다는 분명한 전조였다.
‘그 이변 중 최악은 뱀파이어 백작이 제국을 침공하는 거지.’
제국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사백 년 만에 인간의 땅을 넘보는 뱀파이어 백작.
그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제 2차 혈귀전쟁은, 게임 후반부의 대미를 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하지만 뱀파이어가 활동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너무 이르다. 제국의 힘도 충분히 약화되지 않았고.’
역행의 사도들이나 재의 마녀와는 다르게, 혈귀전쟁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 하나의 의지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제국의 무리한 확장정책과 그에 따른 국가 간의 알력다툼이 복잡하게 얽히는 게임 중반.
그 여파가 끝끝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버린 것이 바로 혈귀전쟁이었으니까.
아무리 악신이 개입한다 하더라도, 복잡하게 얽힌 대륙의 정세를 이 정도로 급박하게 움직이기는 힘들 테였다.
댈런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망자들이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난다는 이야기는 없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네만······. 군대가 움직였다는 소문은 없는 걸 보니, 변방의 마을에서 난 소문 정도인 것 같네.”
“그렇군. 고맙소.”
댈런은 다시 음식에 손을 가져갔다. 큼직한 빵 덩이를 찢는 그를 보며 볼크마가 물었다.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는 건가? 난 그냥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네만.”
“아니오. 그저 헛소문이겠지.”
고개를 갸웃하는 볼크마를 앞에 두고, 댈런은 빵조각을 씹으며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제국 북쪽에 국한된 소문이라면 긴장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뱀파이어 백작의 침공 전에는 제국의 모든 땅과 그 주변의 소왕국들, 심지어 도시연합에까지 죽은 자들이 돌아다닐 정도니까.
‘그러면 언데드가 출현하는 소규모 이벤트들이 중 하나라는 건데. 지옥의 뱃사공? 아니면 유령마의 전설? 또 뭐가 있더라.’
남은 스튜를 빵조각으로 싹싹 닦아먹으며, 댈런은 가만히 기억 속을 헤집었다.
그리고 볼크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제국의 정세가 어쩌고, 그에 따른 물가가 어쩌고 하는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
그날 소년은 다시 한 번 의식을 차렸다. 볼크마가 떠난 지 몇 시간 안 되어서였다.
“······.”
소년은 이번에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멀뚱히 천장을 향하던 시선을 돌려 댈런을 바라보더니, 작은 눈망울에서 눈물 몇 방울을 또륵 흘렸을 뿐이었다.
“배 안 고프냐.”
댈런은 무심한 얼굴로 빵과 스튜를 내밀었다. 소년은 그걸 싹싹 긁어먹은 다음 다시 잠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던 소년은, 나흘째가 되면서부터 일어나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루는 루시아의 손에 이끌려 신전의 사제를 한 번 더 방문했다.
다음날에는 새 갑옷과 검을 주문하는 댈런을 따라 대장간에도 갔다.
어느 날 시장에서 두 사람이 건량을 사들이는 걸 보고, 소년은 이들이 도시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날 저녁 먹는 자리에서, 소년이 말했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되겠습니까?”
루시아는 스튜를 퍼올리던 숟가락을 멈칫했다.
마녀에게서 구출해낸 이레로, 소년이 처음 입을 연 것이었다.
“어···얘야, 우선 우리가 가는 곳은 그냥 옆 도시가 아니란다.”
“어딘데요?”
“그게 말이지······.”
루시아는 입가를 일자로 길게 늘이며 얼버무렸다.
배신자가 성검을 노리고 있고, 그 위협을 뚫고 성기사단의 본단으로 가는 길이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소년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린 나이에 마녀에게 고문당하며 받은 충격은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
그 끔찍한 기억을 눈앞의 두 사람을 의지해 극복해낸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소년의 입장에서는 안정감의 근원이 되는 두 사람과 떨어지는 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겠지.
그렇다고 막상 데려가자니, 말 그대로 어떤 위험이 존재할 지 모르는 여정이었다.
“음······.”
“···역시 안 되겠죠?”
소년의 얼굴에 절제된, 그러나 못다 감춘 실망감이 피어올랐다.
그때 소시지를 질겅이던 댈런이 입을 열었다.
“본인 몫의 배낭을 챙길 줄 아나?”
“···예.”
“야영지는 꾸릴 줄 알고?”
“다른 동패 용병들에 비해 조금 느리지만, 할 줄 압니다.”
“말은 타봤나?”
소년은 잠시 망설였다.
“조랑말 정도라면 몇 번 경험은 있습니다. 가르쳐주시면 빠르게 배우겠습니다.”
“그럼 됐군. 내가 짐꾼 겸 용병으로 너를 고용하겠다. 용병 길드에 정식으로 지명 의뢰를 넣도록 하지.”
댈런은 그렇게 말하고는 소시지를 큼직하게 잘라 입에 넣었다. 소년도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대화에, 루시아가 약간 당황한 눈치로 뒤늦게 덧붙였다.
“어···검술은 내가 가르쳐줄게! 댈런도 좋은 스승이긴 할 텐데, 사용하는 검술이 너랑은 잘 안 맞을 거야.”
“감사합니다.”
소년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렇게 동패 용병 파른의 동행이 결정되고, 일행은 며칠 뒤 도시를 떠났다.
갈리오스 상단을 따라 르비바흐에 도착한 지 정확히 열흘만이었다.
***
타다닥. 타닥.
모닥불이 불티를 휘날렸다. 댈런은 굵은 나뭇가지를 들어 불을 몇 번 쑤셔줬다.
그리고 거세진 불길 위에 장작을 추가로 얹은 뒤, 나직한 목소리로 주문을 읊었다.
“이그넬 로트.”
마력으로 피워낸 불꽃이 장작에 옮겨붙었다. 장작을 조금씩 갉아먹던 불꽃은 이내 모닥불과 하나가 되어 거세게 타올랐다.
댈런은 불 곁에서 덥히던 그릇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갔다.
루시아와 파른은 모포 속에서 자고 있었다. 그는 불침번 초번이었다.
“음. 맛있군.”
저녁 먹고 남은 걸 다시 덥혀놓으니, 야식 삼아 먹기 괜찮았다.
저녁식사는 언제나 그렇듯 루시아의 작품이었다.
도시에서 사온 채소와 계란을 고기와 함께 구운 것과, 약간 물렁해지거나 상태가 안 좋아보이는 재료들을 볶은 곡식과 함께 때려넣고 푹 끓인 스튜.
댈런은 조금 질긴 고기를 질겅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구보다 조금 작은 달. 밤하늘에 빼곡한 별들.
별들의 위치는 고향의 밤하늘과 판이하게 달랐지만, 사람들이 이름 붙인 별자리의 형태와 모양은 꽤나 비슷비슷했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그런 것이었다.
“으으으.”
그때 곤히 자던 파른이 신음을 흘리며 뒤척거렸다.
댈런은 소년의 머리에 조심스레 손등을 대어보았다. 조금 뜨거웠다. 심하진 않았다.
“잘해주고 있다, 동패 용병 파른.”
댈런은 잠꼬대에 내려간 소년의 모포를 끌어올려주며 작게 말했다.
일행이 르비바흐를 떠난 지 오늘로 나흘째였다.
상인들이 이용하는 길을 따라, 제국 국경을 향해 말을 타고 남하하는 여정이었다.
상단을 호위할 떄와는 달리, 셋만 움직이게 되면서 할 일은 더 늘어났다.
항상 주변을 경게하는 건 물론이고, 해가 저물 즈음에는 괜찮은 장소를 찾아 야영지를 만들어야 했다.
당연히 밤이 되면 불침번도 서야 했고.
그리고 성기사와 베테랑 용병 사이에서, 이 어린 소년은 꿋꿋이 제몫을 해냈다.
댈런이 짐승을 사냥하고 루시아가 야영지를 준비하는 동안, 파른은 숲에 들어가 땔감을 만들어왔다.
루시아의 만류에도 굳이 불침번을 섰고, 그러면서도 낮에 힘든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덕분에 댈런의 예상보다 일행의 속도는 크게 뒤쳐지지 않았다.
‘도시연합과 제국 사이의 국경선을 넘는 데 사흘. 다시 에스트라 강을 건너 제국 영토를 벗어나는 데 이틀. 그리고 나서 열흘 안팎이면 성기사단에 도착하겠군.’
물론 말을 타고 정상적으로 갈 때의 이야기고, 뜻밖의 사고가 터지거나 하면 시간은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고기를 우물거리던 댈런은, 반쯤 비운 그릇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는 조금 떨어진 모포를 쳐다봤다.
“잠이 안 오시오?”
모포 속. 루시아가 눈을 떴다. 그녀는 스르르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그렇군요.”
그녀가 일어나 앉자 긴 금발이 찰랑거리며 얇은 어깨를 덮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작은 금빛 폭포같았다.
루시아는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직까지도 간간이 신음을 흘리고 있는 파른에게 고개를 돌렸다.
“언제까지 힘들어할까요?”
도시를 떠난 이후, 소년은 매일 밤 저렇게 앓았다.
마녀에게 입은 상처는 완치되었으나, 정신에 입은 상처마저 다 씻어내지는 못한 것이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요. 우리의 역할은 그저 기다려주는 거지.”
“···그렇죠. 시간이 필요한 법이죠.”
루시아는 왠지 약간 젖은 눈으로 고개를 내리깔았다.
촉촉한 푸른 눈동자 위에, 모닥불의 붉은 불꽃이 일렁거렸다.
댈런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들은 죽였소?”
“네?”
“미궁도적 놈의 동료들. 바렛을 죽이는 데 동참했을 거라 짐작되는 용의자들 말이오.”
“······아.”
잠시 고개를 들었던 성기사는 다시 시선을 떨궜다.
그녀는 한동안 타닥거리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너무 깨물어 살짝 창백해진 입술이 열렸다.
“···죽이지 않았습니다.”
루시아는 잠시 침묵했다. 마치 왜 그랬는지 물어달라는 듯한 공백이었다.
댈런은 구태여 묻지 않았다. 그러나 성기사에게서 시선을 돌린 것도 아니었다.
길지 않은 여백을 건너, 질문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루시아는 짧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시에나에게 얻은 정보로 어떻게 미궁도적 ‘스킨헤드’의 동료들을 쫓았는지.
그리고 처음 붙잡은 놈의 동료가, 그녀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도.
‘너희 같은 성기사단 놈들이 뭘 알아! 배가 불러서 인류의 방패며 균열의 수호자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주제에! 우린 너희 같은 배부른 년놈들과는 달라. 하루 벌어먹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마물들과 싸운다고. 인류를 위한 악마 토벌? 하! 내 눈에는 신념에 취한 새파란 애송이가, 수백 플로린짜리 밥그릇을 빼앗으러 온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
그는 그렇게 소리치며 당당하게 시인했다고 한다.
자신이 성기사 바렛의 등을 찔렀음을.
악마에게 걸린 포상금과 성검을 모두 챙기려 했다는 것을.
“듣고 나니 황당하더군요. 저희는 대륙의 균열을 수호하는 성기사단입니다. 균열을 수호한다는 건, 곧 이 대륙의 주민들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죠. 대가도 없고, 요구도 없이.”
루시아는 입술을 다시 잘근거렸다.
“그놈과 대화하며, 저희의 헌신에 돌아올 대접은 어쩌면 등에 꽂히는 칼뿐일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환멸을 느꼈죠. 선배들 중 의무를 저버리고 산골에 틀어박히는 이들을···마침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왔다. 모닥불이 흔들렸다.
성기사의 푸른 눈 위에 비친 붉은 일렁임도, 그에 맞춰 함께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댈런은 묵묵히 그걸 지켜봤다. 한동안은 그 바람 소리와 소년의 끙끙거림만이 들렸다.
“그런데 놈을 죽이려는 순간, 바렛의 말이 귀에 맴돌더군요.”
“어떤 말이었소?”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말라고. 사람은 애초에 믿을 존재가 아니라고.”
그녀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고 옅은 한숨과 함께 다음 문장을 뱉었다.
“···사람은 그저 사랑받아야 할 존재라고.”
“음.”
댈런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는 숟가락을 들어 다시 고기와 스튜를 우물거렸다.
“그 말이 맞는지 아직까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믿을 존재가 아니라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성기사단은 그런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죠.”
루시아는 살짝 웃었다. 힘겨운 웃음이었다.
“그렇다면, 그저 의무를 다할 뿐입니다.”
어느새 바람이 잦아들었다. 모닥불은 다시금 꼿꼿하게 타올랐다.
성기사의 눈동자 속에서 흔들거리던 불꽃도, 어느새 중심을 되찾고 곧게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외풍에 꺾여가던 신념의 불꽃이, 어떤 계기로 한층 더 단단해진 것처럼.
“그랬군.”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었다.
반박할 말은 당장에도 그의 머릿속을 굴러다녔으니까.
당장 루시아가 살려보낸 놈만 해도,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의 뒤통수를 치며 희생자를 만들 테였다.
자신이었다면 단칼에 놈을 썰어버렸을 것이다.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하지만 동시에, 댈런은 알았다.
그토록 손쉽게 죽인 누군가가, 먼 미래에 선인이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 역시 없다는 것을.
지금껏 그의 손에 죽어간 사람만 세 자릿수는 되었다.
그 중에는 어느 집안의 가장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자녀는, 멸망으로 달려가는 세상에서 작은 영웅이 될 예정이었을지도 몰랐다.
굵직굵직한 미래를 알고 있는 그라도,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이 세계은 더 이상 0과 1로 작동하는 게임이 아니라.
살아 숨쉬며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가는, 말 그대로 실재하는 세상이었으니까.
“세상은 복잡하지.”
댈런은 빈 그릇을 내려놓고 말했다.
“허나 그런 복잡함 속이기에 정의는 때로 단순한 형태일지도 모르는 법이오. 물론 반대일 수도 있고.”
사람에게는 각자의 정의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누군가에게는 복잡한 자신만의 정의.
그리고 루시아의 정의는 위태롭게나마 완성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녀의 기질과 신앙, 경험을 통해서.
아마도 이건 악마 살해자가 빚어져가는 과정일 테였다. 그리고 댈런은 굳이 그걸 무너뜨릴 생각이 없었다.
미래를 알고 있기에, 미래의 영웅을 대하는 태도가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짧은 격려뿐이었다.
“어쨌든 사람에게 완전한 정의는 없소. 만약 있다면, 그건 신의 영역이며 권한이겠지.”
부디 그쪽이 세워가는 정의가 정말로 신의 뜻이기를 바라오. 그는 나지막히 덧붙였다.
루시아는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댈런은 식사를 마친 그릇을 대충 닦아내 챙겼다. 그러면서 주제를 돌렸다.
“지도를 보니 상행로 길목에 여관이 하나 있더군. 내일이면 도착할 것 같소. 거기서 물자를 조금 보충하고, 하루쯤 여독을 푼 다음 다시 출발하도록 하지.”
“신선한 채소가 다 떨어졌습니다. 여관의 사정이 넉넉하다면 좀 사도 괜찮겠군요. 비싼 값이겠지만.”
“내 짐의 반 이상이 금화요.”
씩 미소 지으며 하는 말에, 루시아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댈런도 마주 낮게 웃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손님이 오는군.”
그가 말했다. 루시아도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신성 문신으로 한껏 안력을 끌어올린 그녀는, 이내 자연스레 검에 손을 가져갔다.
화살 닿을 거리보다 조금 먼 곳.
두 그림자가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