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57화 (57/288)

소문(4)

이런 상행로의 외딴 여관에서 피 냄새 자체가 그리 이상한 건 아니었다.

원가를 절감하며 신선한 고기를 식탁에 올리기 위해, 여관 자체적으로 돼지나 닭 정도는 키우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그러나 이건 동물이나 마물의 피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댈런의 초인적인 후각은 사람의 혈향과 짐승의 것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다.

지금의 혈향은 분명히 사람의 것.

그것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냄새였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나요?”

두 사람의 분위기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파른이 살짝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의외의 질문에 댈런은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그는 낮게 웃으며 소년의 머리를 헝클었다.

“신경 쓸 것 없다. 너는 오늘 여기서 푹 쉴 예정이라는 것만 알아둬라.”

일행은 수레와 말이 반쯤 들어찬 마구간 한쪽에 말을 묶어놓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관으로 들어갔다.

1층 주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안쪽 카운터에서 주인이 그들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세 분이십니까?”

“그렇소.”

“허허, 먼 길 오가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희 여관의 음식은 따뜻하고, 방은 언제나 아늑하답니다. 아무래도 숙녀분께서는 방을 따로 쓰실 테니, 방 두 개에 저녁식사는 삼인분이면 되겠습니까?”

넉살 좋게 웃으며 환영인사를 쏟아내는 여관 주인. 루시아는 자연스럽게 싱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오늘이 금식일이라서요. 바로 방으로 올라가보겠습니다.”

그녀의 거절에 여관 주인은 한 번 더 푸근한 상인의 웃음을 지으며 열쇠를 건네주었다.

“그러시오. 2층의 201호를 쓰시면 될 거요. 그나저나 금식일이라 하셨소?”

“예. 한 달에 하루 금식하는 것은 성기사의 규율 중 하나입니다. 육신의 배고픔은 영혼의 배부름이 되며, 심신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요.”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는 게, 마치 성기사가 아닌 신앙심 깊은 사제를 보는 듯한 모습.

댈런은 그걸 보며 속으로 픽 웃었다.

모니터 너머에서는 이런 모습만 봤는데, 어떻게 욕쟁이 성기사라고 생각했겠어?

“그···러시군. 성기사라니. 이거 보기 드문 손님이구려.”

물론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댈런의 눈은 성기사라는 말에 살짝 떨리는 여관 주인의 어깨를 놓치지 않았다.

여관 주인은 조금 뻣뻣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그러면 방 두 개에 저녁 식사 이인분으로 알겠소. 바로 올라가실 거라면, 목욕물을 준비해 드려도 되겠소? 저녁쯤 손님이 오니까 항상 이맘때쯤에 데워놓거든.”

“부탁하겠습니다.”

루시아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바로 계단으로 향했다.

그녀는 올라가기 전 댈런을 돌아보더니, 한쪽 눈을 슬쩍 찡긋거리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녀는 위에서 자신이 할 일을 할 것이다.

이제 1층은 댈런의 무대였다.

***

댈런은 파른과 함께 아무 자리나 잡고 앉았다. 식사는 금방 나왔다.

스튜가 담긴 큼직한 그릇 두 개에, 댈런 몫으로 나온 맥주가 한 잔.

댈런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그릇에 수저를 푹 담궜다.

그는 내용물을 살짝 뜨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주점 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사람이 하나도 없군. 요즘 장사가 잘 안 되시나?”

“근 한 달 사이에 손님이 드물어졌소. 마물들이며 도적들이 활개를 친다는 소문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 손님은 오시면서 별 일 없으셨소?”

“딱히.”

댈런은 손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요 근처 마을에서 죽은 시체들이 걸어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소만.”

“···글쎄. 헛소문일 거요. 여기서 장사한 지 십 년이 됐지만 그런 건 처음 듣는군.”

“그렇소?”

댈런은 낮게 웃었다.

이거 이 정도로 시치미를 뗄 줄은 몰랐는데.

그때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파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혹시 제국 출신이신가요?”

“음?”

여관 주인이 고개를 돌렸다. 소년은 순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저도 제국 출신이거든요. 도시연합에 와서 알게 된 건데, 제국 사람들과 도시연합 사람들은 공용어 억양이 미묘하게 다른 거 있죠? 제국에서는 어릴 때 제국어를 같이 배워서 그런 거래요.”

“···아, 맞아. 그렇지. 나도 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단다.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 여기로 와서 정착했지. 말한 대로, 벌써 십 년 전 일이네.”

여관 주인은 살짝 더듬거리며 이야기했다.

소년은 고개를 다시 한 번 갸웃거렸다.

“우와, 그런데도 아직도 제국식 억양이 남아 계시는구나. 신기하네요. 저는 일 년도 안 지나서 주변 사람들한테 그 억양이 다 사라졌다고 들었거든요.”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입가에 해맑은 미소를 맺어냈다. 여관 주인은 당황한 듯 입을 닫았다.

무심코 댈런의 눈치를 보는 그의 모습에, 댈런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이거 하나를 가르치면 그 이상을 배우는군.’

사실 평소처럼 다짜고짜 도끼를 던지는 대신, 잡담으로 여관 주인의 구린 부분을 긁어댄 건 파른을 위해서였다.

소년이 지금껏 보여준 영특한 모습이라면, 수상한 여관 주인과 나누는 한담 속에서 뭔가를 배워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댈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뛰어넘어 그를 놀라게 했지.

제대로 대화가 오가기 전임에도, 이 어린 용병은 여관 주인의 수상함을 대번에 파악한 모양이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번에는 본인 스스로 여관 주인의 억양을 꼬집으며 그를 간접적으로 추궁하고 있었고.

‘이거 더 이상 가르칠 게 없겠군.’

댈런은 슬그머니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때였다.

쿠당탕탕!

위층에서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계단참으로 무언가 우당탕 굴러떨어졌다.

“끄으···괴물······.”

굴러떨어진 건 장정 네 명이었다. 얼굴과 몸 곳곳을 두들겨 맞고, 반쯤 혼절한 채 신음을 흘리는 남자들.

그 뒤를 따라 루시아가 계단을 내려왔다.

그녀는 갑옷 없이 천옷만 걸친 채, 반쯤 젖은 머리를 쓸어올려 물기를 짜내고 있었다.

댈런은 굴러떨어진 장정들을 보며 물었다.

“위층에는 이게 끝이오?”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쓰레기 새끼들, 제가 무장을 해제하고 욕조 안에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습격하더군요.”

***

주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여관 주인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댈런은 팔짱을 낀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고는, 놈을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어디 해명해보실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관 주인의 얼굴이 달라졌다.

표정이 아니었다. 여관 주인은 말 그대로 얼굴 자체를 악귀처럼 바꾸더니, 빠르고 거친 음색으로 주문을 읊었다.

“테모므―시르!”

쾅!

주문을 맺자마자 지하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열린 문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크에에에!

크엑! 케에엑!

하나같이 괴상하게 울부짖는 사람들.

그들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상인들, 상인의 고용인들, 그들을 호위했을 용병들.

원래 여관 주인이었을 배불뚝이 사내와 이곳에서 일하던 직원들까지.

대충 서른 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은, 전부 시체가 되었음에도 걸어다니는 망자들이었다.

마굿간에 주인 없는 마차들이 꽤 있던 걸로 봐서,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여관 주인으로 위장한 사령술사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이겠지.

크에엑!

켁! 케켁!

망자들은 어설픈 뜀박질로 순식간에 출입구를 막아섰다.

그리고 포위망을 형성해 세 사람을 서서히 조여오기 시작했다.

댈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팔짱을 풀고 허리띠에 손가락을 걸쳤다.

그리고 잠시 동안 망자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더니 말했다.

“움직임이 굼뜨군. 아무래도 주방 안에 숨어있는 놈이 진짜인 것 같소. 여기는 대충 정리하고, 지하실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해주시오. 나는 그동안 주방에 숨어든 주문쟁이를 잡아오지.”

“알겠습니다.”

루시아가 전신에서 빛을 뿜었다.

그 순간 허리띠에 걸쳤던 댈런의 손이 흐릿해졌다. 사령술사가 다급히 주문을 읊었다.

“테모므―컥!”

주문은 맺어지지 못했다. 놈의 악귀 같은 얼굴에 도끼자루가 돋아난 탓이었다.

댈런은 지체 없이 놈을 지나쳤다. 그리고 카운터 뒤편에서 이어지는 주방 문을 그대로 어깨로 들이받았다.

와지끈!

오래된 나무 문짝이 산산조각 나 부서진다.

곧바로 감각이 경종을 울렸다. 댈런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화르르르―!

검은 화염이 전면을 덮쳐든다. 투명한 마력 칼날이 다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구우웅―

몇 배는 무거워진 공기가 머리 위에서 전신을 찍어누르고, 얽혀드는 저주가 손발을 느리게 만든다.

이건 함정이었다.

침입자의 걸음을 막아 세우고, 단숨에 고깃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하는 흑마법 함정.

그 함정의 한가운데. 댈런은 오히려 사납게 웃었다.

‘역시. 이 놈이 진짜군.’

사령술사와 손을 잡은 흑마법사.

그리고 놈들을 따르는 절박한 피난민 장정들.

그 기척을 잡아내는 건 처음부터 어렵지 않았다.

댈런의 놀라운 감각 수치는, 여관 밖에서부터 지하실에 갇힌 피난민 생존자의 숫자까지 셀 정도였으니까.

다만 놈들이 숨은 위치를 모조리 알아내고서도, 곧바로 도끼를 뽑아들고 쳐들어가지 않은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런 앞뒤 없는 살육으로는 어린 소년이 무언가를 배울 수 없음이 첫째였고.

두 번째 이유는, 흑마법사와 사령술사 중 누가 진짜 배후인 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놈들은 분명히 불사의 악마와 연관되어있다. 피난민 부부에게서 듣지 못한 정보를 알고 있겠지.’

사령술사가 불러낸 어설픈 사령술의 결과물을 보아하니, 놈은 결코 이 무리의 실세가 아니었다.

국경 근처의 주요 길목에 자리잡은 여관을 점거하는 대담함은, 어느 수준은 넘어서는 실력자여야 품을 수 있는 생각일 터.

그리고 주방에 설치된 함정들을 보아하니, 그 실력자는 흑마법사임이 분명했다.

맞으면 댈런이라도 위험할 위력의 함정들.

그건 르비바흐에서 숲 속의 길을 안내했던, 반쪽짜리 흑마법사 정도로는 흉내낼 수 없는 주문이었으니까.

쉬이이익―!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 건 정말이지 찰나의 순간.

그러나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마력의 칼날은 이미 댈런의 발목 언저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댈런은 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특별한 스킬로 맞받아친 것도 아니었다.

그가 한 행동은, 그저 허리춤에 꽂혀 있던 단검을 뽑아든 것.

그리고 그 단검을 위에서 아래로 크게 내리그으며, 쇄도해오는 마법들을 베어낸 것뿐이었다.

와장창!

얽혀있는 두 파형의 칼날이, 머리 위를 짓누르던 압력을 깨뜨려 버린다.

피시싯!

검은 불꽃이 그 궤적에 걸려 사그라들고, 발목을 노리던 마력의 칼날 역시 스르르 흩어져버렸다.

손발을 잡아 세우려던 저주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저주막이의 인장이 미약하게 빛을 뿜으며, 그가 암월의 주문살해자를 뽑기도 전에 저주를 무효화한 것.

“뭐, 뭐······!”

막 은폐 마법을 깨고 침입자를 마무리하려던 흑마법사는, 도리어 자신의 안배가 죄다 파훼된 걸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그녀를 보고, 댈런은 사납게 웃었다.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사람의 고기를 갈아넣은 스튜를 보며 추측하긴 했었다.

그가 아는 네임드 흑마법사 중 하나도, 심심하면 그런 짓거리를 벌이곤 했었으니까.

당황한 눈으로 지팡이를 치켜든 흑발의 여자.

그녀는 원래라면 미래에 재의 마녀의 최측근이 되었어야 할, 식인 마법사 루카챌라였다.

[스튜가 된 현자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잡아먹혔던 예전 회차를 알림창으로 확인한 댈런은, 지체 없이 손 안의 단검을 떠나보냈다.

쐐애액―!

파공성을 내며 날아간 주문살해자가, 숙련된 흑마법사가 삼중으로 겹쳐 만든 방어막을 단숨에 박살낸다.

“에낙사―꺄아아악!”

그 끝은 흑마법사의 쇄골 언저리.

주문쟁이의 살과 근육을 헤집은 단검은, 그녀가 내뱉던 주문마저도 헤집어놓았다.

“주문, 어째서 주문이···!”

흑마법사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친다.

마력을 다루던 모든 감각이 단번에 꼬여버린 이상, 그녀 같은 주문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댈런은 우악스런 손아귀를 뻗어, 못해도 수십 명의 사람을 잡아먹어왔을 턱과 입을 틀어쥐었다.

주문쟁이를 심문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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