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의 악마(2)
별들조차 구름에 가리워진 밤이었다.
렝클턴 마을로부터 걸어서 몇 시간 거리쯤 떨어진 외딴 동굴.
동굴의 입구를 뒤에 두고 선 두 명의 사령술사는, 무료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존나 심심하네.”
그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해골 병사 한 마리만 데려왔으면 가지고 놀 수라도 있었을 텐데.”
“그분이 안 된다고 하시지 않았나. 이곳은 들켜서는 안 돼. 혹 약초꾼이나 사냥꾼이 지나가다 우리를 발견해도, 우린 그저 평범한 도적 정도로 보여야 한다.”
“아 악마씩이나 되는 양반이 뭐 그리 소심하대?”
사령술사가 툴툴거렸다. 그는 두건을 휙 걷어버리고 머리를 긁어댔다.
두건을 벗고 드러난 건 퀭한 눈에 비쩍 마른 얼굴. 신경질적인 인상의 젊은 남자였다.
“아니 금은보화에 희생물을 가져오라는 것도 그래. 본인이 직접 가면 마을 하나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금방이잖아? 그러면 재물도 약탈하고, 희생물도 얻고. 일거양득인데.”
“충분한 희생물로 힘을 회복하신 뒤에는 직접 행차하시겠지.”
“충분? 대체 언제 충분해지는데? 영감 다 늙어 뒤지고 난 뒤에? 씨발, 난 악마만 부활시키면 우리의 시대가 올 줄 알았다고!”
“어허! 입조심하게. 그분이 내리시는 저주가 얼마나 강력한지 못 봤나?”
중년의 사령술사가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는 잠시 수염을 쓸어내리며 화를 가라앉혔다. 그리고선 여전히 등 뒤에서 궁시렁거리고 있는 젊은 동료를 점잖게 타일렀다.
“다 그분의 깊은 뜻이 있을 걸세. 우리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살아오셨으니, 그만큼 현명하고 신중하신 게 당연하지 않겠나.”
젊은 동료가 잠잠해졌다.
그래도 사령술사로서 선배라고, 그가 타이르니 알아듣기는 하는 듯했다.
“조금만 인내하게나. 우리가 그분을 잘 보필해드리면, 머지않아···응?”
중년 사령술사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젊은 동료는 궁시렁거림만 멈춘 게 아니었다.
어느새 등 뒤에서 느껴지던 그의 기척 자체가 사라져 있었다.
사내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놈, 또 듣기 싫다고 동굴 안으로 내뺐구나.
철부지 소년이었을 때 스승님을 대하던 그 막되먹은 버릇 그대로였다.
“이 망령된 애새끼 같으니라고···!”
사령술사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며 돌아섰다.
한참이나 연배가 높은 선배로서, 까마득한 후배를 따끔하게 훈계해줄 참이었다.
“이······.”
그리고 그는 마주했다.
우악스런 손길에 소리 없이 목이 졸려 죽은 그의 후배와.
그런 후배의 목줄기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거대한 체구의 갑옷 차림 용병을.
횃불의 일렁임에 따라 번쩍이는 용병의 검은 눈.
마치 맹수의 것과 같은 그 시선을 마주친 순간, 악마를 앞에 두고도 느껴본 적 없는 공포가 중년 사내를 덮쳤다.
“···치, 침입···!”
“쉿.”
거대한 손아귀가 얼굴을 움켜쥔다.
침입자라 외치려던 구강 관절과 안면 근육이, 그 손아귀의 억센 힘에 어긋나고 구겨졌다.
“으, 으읍!”
안면을 넘어 두개골까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꽉 막힌 비명이 새어 나온다.
본능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수인을 맺어내는 사내의 손가락.
일생 동안 수백 번을 거듭해왔던 사령 마법이 그 수인 끝에서 순식간에 발현되고.
끄어어···.
목이 으스러져 죽은 후배 사령술사가, 한 마리의 망자가 되어 지면을 딛고 일어선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꽈드득!
안면을 움켜쥔 우악스런 손길이, 두개골의 전면부를 으깨버리며 사령술사의 뇌를 찢어발긴다.
머리 반이 으스러진 처참한 몰골로 사내가 쓰러지자, 되살아났던 젊은 사령술사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댈런은 손도끼를 뽑아 망자의 머리를 가볍게 쪼개주었다.
언데드의 약점은 머리 아니면 심장 부근.
사령술의 마력이 뭉쳐 만들어진 핵이, 도끼질에 단숨에 파괴되며 시체가 풀썩 무너진다.
순식간에 사령술사 두 명을 처리한 댈런은, 잠시 감각을 넓혀 그의 습격을 눈치챈 이가 있는지 살폈다.
동굴 안은 조용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사령술사와 흑마법사를 시켜 희생물을 모아오고 있다라. 여관에서 목격했던 것과 일치하는군.’
휙―
붉은 피를 털어낸 손도끼를 허리춤에 도로 꽂으며, 댈런은 방금 들은 말을 되새겼다.
‘다행히 놈은 힘을 모으는 중이다. 아직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어.’
처음 불사의 악마가 봉인에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댈런은 이 싸움이 상당히 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불사의 악마가 그저 ‘짜증나는 존재’에서 그친다고 하지만, 그건 게임 중후반부에 접어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충분한 희생물로 힘을 얻은 불사의 악마는, 성검을 타락시키려 했던 악마 골라캅도 손쉽게 제압할 정도로 강력했다.
다만 그건 충분한 희생물이 공급되었을 때의 이야기.
불사의 악마는 독특하게도, 그런 희생물 없이는 본신의 전투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악마였으니까.
‘직접 희생물을 찾아다니지 않는다는 건, 아직까지 자신의 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는 소리지.’
젊은 사령술사의 말이 옳았다.
불사의 악마는 악마답지 않게 극도로 소심한 놈이었다.
삼백 년 전 성기사단에게 패배해 봉인되었던 과거가, 놈의 행동 양식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
어쨌든 놈이 아직까지 이 동굴에 처박혀 있기 원한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현재 댈런이 소유한 무력 정도면, 놈을 꽤나 손쉽게 상대할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였으니까.
댈런은 오랜 시간 달려와 느슨해진 갑옷끈을 한 번 더 조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고 최소화된 동작으로, 허리띠와 등에 달린 무장들을 확인했다.
등 뒤의 성검. 왼 허리춤의 검과 단검, 오른 허리춤의 도끼.
그리고 허리띠 뒤에 매인 주머니 안, 오래 전 타락한 사슬 형태의 성물까지.
점검을 마친 댈런은 이내 발소리 하나 없이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악마에게 목줄을 채울 시간이었다.
***
“침입자! 침입자다!”
“경비로 세운 놈들은 대체 뭘 한 거야!”
동굴 안이 쩌렁쩌렁 울린다.
사령술사들의 고함과 비명, 언데드들의 괴성이 한데 뒤섞여 동굴 벽에 메아리쳤다.
“망자들로 방어선을 구축해! 좁은 길목에서 막아 세워야 한다!”
“테모므― 타레온!”
곳곳에 널브러진 육신이 주문의 힘 아래 일어서고, 어질러져있던 뼛조각들이 스르르 짜맞춰진다.
칼이며 방패, 창 따위를 집어든 망자와 해골 병사들은 우르르 몰려가며 동굴의 통로를 막아섰다.
“벽을 세워! 더 큰 놈을 일으켜내!”
“망자 병사들이 1초를 못 버텨! 일단 물러서면서 시간을 벌―어억!”
동굴 안으로 달려가며 외치던 사령술사가, 짧은 비명을 내지르고는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그의 뒤통수에는 길쭉한 나무 손잡이가 돋아나 있었다.
손도끼였다.
“히, 히익!”
곁에서 함께 달리던 흑마법사는 다리가 풀려 쓰러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도끼가 날아왔을 동굴의 출구 방향을 쳐다봤다.
동굴의 가장 좁은 길목을 가로막은, 수십 구나 되는 망자들과 해골 병사들.
그 살덩이와 유골의 파도를 정면으로 뚫어내는, 거구의 전사가 흑마법사의 눈에 들어왔다.
“괴물···!”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에서 한 단어가 흘러나온다.
정작 그 말을 뱉은 당사자가, 괴물과 악마를 이 땅에 불러내는 흑마법사라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
동시에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전사의 눈길이 스르르 돌아가 흑마법사의 시선과 마주쳤다.
전사가 씩 웃었다.
그리고 섬광이 번쩍였다.
우르르릉―!
동굴을 뒤흔드는 우렛소리.
그 굉음과 함께 뻗어나간 섬광이, 망자의 파도를 죄다 부수고 흑마법사의 몸뚱이마저 으깬다.
살짝 뻐근해진 어깨를 몇 번 휘휘 돌리는 것만으로 금세 풀어버리며, 댈런은 널브러진 살점과 뼛조각의 잔해를 지나 걸어갔다.
“테모므― 스케리드!”
“캄프― 쎄 글램!”
저주막이의 인장이 빛나며 발을 묶어 세우는 저주를 끊어내고.
주먹질 한 번에 지옥문의 파편에서 몰려나온 임프들이 서너 마리씩 으깨져 나가떨어진다.
그르르.
구으으으.
살점과 내장을 덕지덕지 붙여낸 거대한 늑대와, 뼛조각들을 긁어모아 만들어낸 3미터 크기의 해골 거인이 앞길을 막았으나.
우르르릉―
천둥과 함께 댈런의 주먹 끝에서 뻗어나간 섬광은, 그 모든 걸 부수고 그 뒤의 사령술사들까지 쓸어버렸다.
“으, 으으으.”
“끄흑! 끄허······.”
운 없게 즉사하지 않고, 몸의 일부가 곤죽이 된 채 살아남은 사령술사들이 신음을 흘려댄다.
댈런은 그 사이를 걸어가며, 손도끼를 휘둘러 그 숨통을 끊어주었다.
동굴 입구에 발을 들인 지 한 시간도 채 안 된 시점.
거의 오십에 달하는 사령술사와 흑마법사의 은신처는, 그 짧은 시간 만에 단 한 명의 전사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흠.”
흑마법사 잔당을 정리한 댈런은 오랜만에 상태창을 열었다.
경험치 막대는 마녀를 잡은 이후로 간신히 반의 반 수준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러나 그가 보고자 한 건 경험치가 아니라, 그보다 한참 아래의 스킬 목록.
댈런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으며 스킬 중 하나의 세부 정보를 열어보았다.
[데하만의 갑주격투(D)]
- 제국 기사단장이었던 데하만이 창시한 갑주 격투술. 휘하 기사들이 무기를 잃어버리면 빈 깡통마냥 당하는 걸 보다 못해 만들었다. 갑옷을 방패이자 무기로 사용한다.
- 숙련도 99%
이 땅에 떨어진 이후 처음 얻은 스킬이자, 분쇄검을 얻기 전까지는 유일무이했던 무투 스킬.
그 스킬의 숙련도는 어느새 백 퍼센트에 근접한 상태였다.
이대로 백 퍼센트를 찍는다면, 야간 시야에 이어 두 번째로 최대치의 숙련도에 다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최대치의 숙련도라는 개념은, 요 몇 주 사이 댈런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야간 시야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을 때, 스킬 자체를 영역에 접목시킬 수 있었지.’
그 결과는 단순히 미명의 어둠 속을 꿰뚫어 보는 걸 넘어서서, 주문과 신비로 감춰진 비밀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
그 시야로 마녀의 본체를 찾아낸 순간, 댈런은 확신할 수 있었다.
‘영역을 사용한다’는 개념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것을 말이다.
‘엘가이아 마탑의 원로 마법사 펠버 발린테노는, 영역이 존재하는 환상세계를 불가능이 없는 또 다른 우주라고 정의했지.’
지난 몇 주간 틈 날 때마다 영역을 들여다보며, 댈런은 영역이라는 미지의 공간이 품은 속성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그 결과 알게 된 것은, 그가 이뤄낸 영역이 일차적으로는 필멸을 넘어선 힘을 담아내는 그릇의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그 힘이 품은 끝없는 가능성이, 알을 깨고 세상에 태어나는 부화장이기도 하다는 사실.
‘우렛소리와 섬광을 동반한 일격은, 임계치를 돌파한 근력 수치가 나의 심상과 맞물려 그 가능성을 실체화한 것이다.’
주문과 신비 너머를 꿰뚫어 보는 시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건 임계치에 다다른 야간 시야가 내포한, ‘꿰뚫어 본다’는 본질의 가능성이 극대화된 결과.
물론 가능성만 있다고 모든 스킬과 능력치에 영역이 접목되는 건 아니었다.
가능성이 발아하는 조건은, 그 능력이 어떤 임계치에 근접해갈 시점부터였으니까.
인간의 육신으로 음속을 돌파하는 어마어마한 근력.
혹은 최대치의 숙련도를 달성한 야간 시야라는 스킬.
그리고 데하만의 갑주격투 역시 숙련도 백 퍼센트를 코앞에 두고 있는 만큼, 영역을 접목시킬 수 있는 일차 조건이 달성된 셈이었다.
남은 건 가능성에 대한 깨달음과 실전뿐.
사실 그 이미 실마리는 잡혀가고 있었다.
숙련도가 90퍼센트 후반대에 들어설 때부터, 어떤 깨달음의 조각들이 댈런의 머릿속에 간질간질하게 스며들고 있었으니까.
대사도에게 뇌성의 일격을 날렸을 때와 같이.
그리고 잿구름에 가려진 마녀의 진체를 꿰뚫어 봤을 때와 같이.
댈런은 심상 속에 자리 잡아가는 깨달음의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갔다.
그리고 높은 지능 수치는 그 깊은 고찰 속에서도, 주인의발 걸음을 어긋남 없이 동굴 안쪽으로 이끌었다.
***
악마의 처소는 멀리 있지 않았다.
동굴 안으로 오 분쯤 더 걸어들어갔을까.
쩌렁쩌렁 메아리치는 어떤 목소리에, 댈런은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나아갔다.
“당장 희생물을 더 가져와라! 제물을 바치라 하지 않았느냐!”
“하, 하오나 악마시여. 조금 전 동굴에 침입자가 난입했다고 합니다. 희생물을 공양해드리기에 이곳은 더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무례하구나! 내가 여기 있는데 어찌 안전하지 않다는 망발을 내뱉느냐! 그 주둥이가 썩어들어가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아, 악마시여. 제발···!”
작은 공동.
검은 로브를 입은 흑마법사 하나가, 두 손을 모아쥔 채 허리를 굽신거리고 있었다.
그 앞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
댈런은 바위 뒤에서 인기척을 죽이며, 살아 꿈틀거리는 그 거대한 음영의 덩어리를 바라봤다.
‘놈이군.’
그건 거대한 나무의 음영이 땅에서 솟아나와, 그 스스로 자의식을 가지게 된 것 같은 모습.
한편으로는 거무튀튀한 부정형의 먹구름이, 수 미터짜리 거인의 크기로 일렁이는 것처럼도 보였다.
“네놈이 공포를 아느냐! 두려움을 아느냐! 침입자라 하였거늘, 누가 더 네 녀석에게 저주스러운 존재가 될지 알려줘야 하겠는가!”
놈이 분노를 토해내자, 부정형의 구름 몸뚱이에 우르릉거리며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동시에 불길한 안개 같은 것이 그 몸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놈이 소리쳤다.
“침입자가 있다면 마땅히 전투를 준비하고 희생물을 바쳐 나의 은총을 빌어야 할 것이거늘! 네놈같이 불순한 신도는 잡아먹혀 마땅하도다!”
“제, 제발 그것만은···!”
흑마법사는 뒤늦게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안개를 발견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넘어졌다.
그러자 거무튀튀한 안개는 기다렸다는 듯,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놈을 덮쳤다.
“흐아아아악!”
안개가 닿는 곳마다 검버섯과 곰팡이가 동시에 피어오른다.
부식되어 떨어지는 옷가지 사이로, 피부 아래 드러난 연조직이 피고름을 철철 흘려댄다.
녹색 거품이 부글거리는 입으로 비명을 지르던 흑마법사는, 얼마 가지 않아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이내 죽은 육체에서 피부와 근육, 장기가 녹아 검은 안개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음. 으음. 역시 타락한 마력이야말로 지고의 별미로구나.”
그렇게 영혼과 육신을 모두 섭취한 악마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중얼거렸다.
더 이상 지켜볼 필요는 없을 듯했다. 댈런은 바위 뒤에서 천천히 걸어나갔다.
“음?”
저주로 검게 변한 흑마법사의 유골을 휙 던져버린 악마가, 인기척을 느끼고 댈런을 돌아봤다.
악마가 말했다.
“호오, 네가 그 침입자인가?”
댈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허리 뒷춤에 손을 뻗었을 뿐이었다.
차르르르······.
부드러운 금속의 마찰음이 흘러나오고.
보랏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사슬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손과 팔목을 자연스레 감싸안는다.
“그, 그건···!”
사슬을 본 악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당혹감을 본 댈런은 입꼬리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미궁도시의 성기사단 지부에서 루시아에게 넘겨받은 뒤, 한참을 주머니 속에 처박아뒀던 이번 의뢰의 선수금.
오래 전 성기사단이 잃어버린 타락한 성물, ‘할만의 사슬’을 마침내 사용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