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60화 (60/288)

불사의 악마(3)

스아아아―!

검은 안개가 몰아친다.

피부를 녹이고 근육을 짓무르게 하며, 내장을 부패시키고 신경을 교란하는 저주의 총체.

수십 가지 저주가 뒤섞인 끝에 눈에 보이는 실체로 빚어진 것이, 동굴의 바닥과 벽을 부식시키며 한 명의 인간을 향해 내달렸다.

우우웅―!

그리고 문신이 빛을 발한다.

어깨에 새겨진 저주막이의 인장.

가히 백에 달하는 저주의 융단폭격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절반 가까이는 그리 치명적일 것 없는 저주들이다.

설사를 유발하고, 가려움을 일으키며, 독한 구취나 피로감 따위를 빚어내는 저주들.

인장의 힘은 그것들을 가볍게 끊어내고, 그보다 상위의 저주들 역시 위력을 반감시켰다.

쩌저저정!

저주의 안개와 인장의 힘이 충돌하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터져나온다.

거무튀튀한 안개를 쏟아내던 불사의 악마는, 힘의 충돌로 깨져나가는 저주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건 엘프의 인장! 그 뾰족귀 놈들은 인간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을 것을 맹세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손에 넣은 거냐!”

댈런은 답해주지 않았다.

그는 도끼를 뽑아들고 내달렸다.

꽈광―!

발밑의 동굴 바닥이 퍽 하고 부서지며, 댈런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진다.

악마가 쏟아내는 저주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과감한 선택.

쩌정! 쩌저정!

저주막이의 인장이 수십에 달하는 저주를 해소함에도, 거무튀튀한 안개 자체는 끝내 댈런의 몸에 닿고야 말았다.

피부 위에 보랏빛 피멍이 피어오른다. 주름마다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자라났다.

강철 같은 근육이 올올이 짓무르기 시작하고, 신경에 스며든 저주가 초인적인 감각을 그 자체로 교란하려 한다.

저주막이의 인장으로 위력이 반감되었다고는 하나, 저 검은 안개의 주축을 이루는 저주들은 그럼에도 가히 사람을 죽일 위력.

모든 것을 재로 바꿔 흩어버리는 마녀의 저주에는 못 미칠 터이나, 이 역시 어지간히 튼튼한 몸뚱이 정도로는 버틸 수 없는 위력이었다.

물론 댈런의 육신은, 그냥 어지간히 튼튼한 몸뚱이가 아니었다.

두근.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는 순간, 뜨거운 혈액이 그의 사지말단까지 뻗어나간다.

두근.

펄펄 끓는 용혈의 재생 인자는 임계에 가까워지는 체력 수치와 맞물려, 몸이 손상을 입음과 동시에 수복해나갔다.

치이이이···!

짓무르던 근육이 더욱 탄탄하게 재생되고, 피어오르는 곰팡이는 고열을 버티지 못해 바스라진다.

용혈이 격하게 활성화되며 온몸에서 증기가 뿜어진다.

쏘아진 댈런의 신형은, 마치 포연 속을 꿰뚫는 포탄과도 같았다.

“요, 용의 피라니···!”

그 광경을 본 악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으나, 댈런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어느새 도달한 악마의 면전.

그가 도끼를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감탄은 다 했나?”

우르르릉―!

섬광과 뇌성이 벼락처럼 내리꽂힌다.

아니, 그건 말 그대로 한 줄기의 벼락이었다.

오래 전, 텔리아 상회주를 두 동강내며 깨달음의 단초를 열어젖혔고.

대사도와의 결전에서 맨손으로 악마의 육신을 찢어발긴다는 불가능을 이룩해냈으며.

펠버와의 대화를 통해 영역의 개념을 자각한 끝에, 악마 골라캅을 소멸시키면서 그 심상을 마침내 구체화한 일격.

우뢰를 동반한 벼락같은 섬광.

「뇌격(雷擊)」.

“끄아아아악!”

부정형의 육신마저 으깨버리는 일격을 날리며, 댈런은 다시금 영역의 개념을 재정립한다.

주먹과 날붙이로 벼락을 불러온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심상과 가능성만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영역의 힘.

수십 번이나 반복한 옛적의 깨달음을 반추해내며, 거기서부터 확장되는 새로운 깨달음의 입지를 더듬어간다.

“대체 어떻게 날붙이 따위로 내 육신을···! 나는 형태 없는 존재, 어떠한 주먹이나 날붙이로도 나를 위협할 수 없을진대!”

악마가 고통스레 발악하며 붉은 기운을 몸에 덧씌운다.

놈의 몸뚱이는 처음에 비해 1할 정도가 줄어든 상태였다.

희생물의 숫자에 따라 몸을 불려내고, 반대로 힘을 쓸수록 덩치와 능력이 약소해지는 놈의 특성 때문이었다.

“안 되겠구나! 내 모든 힘을 쏟아내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자리에서 네놈을 집어삼켜야 하겠다!”

악마가 소리쳤다.

놈의 주변으로 공간이 이지러지기 시작하고, 핏빛 화염이 넘실대며 두 손에서 쏟아졌다.

“나는 불사의 악마 아르보르. 역천에 드리운 어두운 별나무 그 자체이며, 비틀린 공간과 지옥화염을 발 밑에 둔 자. 종말까지 영속하는 삶을―커억!”

우르릉―!

재차 내던진 강철검이, 뇌격의 섬광을 품은 채 악마의 안개 덩어리 같은 육신을 강타한다.

“크윽! 으으윽.”

악마가 땅을 뒹굴며 신음을 토해낸다.

댈런은 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두 주먹을 천천히 그러쥐었다.

임계치를 넘어선 근력 수치는, 우렛소리와 벼락을 부르는 뇌격으로 표출되었다.

마찬가지로 임계점에 닿은 야간 시야는, 주문과 신비를 꿰뚫어 보는 기이한 시선으로 발돋움했고.

그렇다면 최초로 습득했던 무투 스킬이 임계에 다다른 이 순간.

제국의 옛 기사단장 데하만의 손에서 창시된 갑주격투술은, 어떤 형태로 그 가능성을 완성해낼 것인가.

“후우.”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심상 속을 뻗어나가는 가능성의 편린을 움켜쥔다.

갑주격투라 함은 결국 갑옷을 입어야만 효율을 내는 무투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댈런에게 있어, 그의 피부보다 단단한 갑옷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갑주격투가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갑옷을 빚어낼 재료가 필요했다.

우르르릉!

심상 너머의 영역을 들여다본다.

그 설산의 기초를 이루는 건 뇌성을 품은 하늘과 용혈의 힘으로 맥동하는 대지.

하늘과 땅을 두드려 갑옷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 돌려보면 다른 가능성들이 보였다.

화륵! 화르륵!

파지지직!

오두막 근처에서 맴돌며 얽혀대는 불꽃과 냉기, 그리고 전격의 향연.

그가 얻어낸 D등급 주문 스킬들은, 처음에 비해 그 크기를 꽤나 불린 상태였다.

후우.

댈런은 반개했던 눈을 떴다.

그리고 꽉 말아쥔 주먹을 눈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강철만큼이나 단단한 굳은살과, 마수의 가죽 이상으로 질긴 피부.

드높은 체력 수치로 빚어진 그 갑옷 위에.

화르르르!

심상 속 불꽃으로 새로운 갑주를 덧씌운다.

“그, 그건 또 뭐냐.”

뇌격의 여파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악마가, 두 팔과 다리를 덮은 화염의 갑주를 보고 질겁했다.

악마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니, 굳이 싸울 필요조차 없었다.

아공간 속으로 도망쳤다가, 전사가 방심할 때 다시 기습하면 그만이었다.

불사의 악마, 아르보르는 은밀하게 등 뒤의 공간을 열어젖혔다. 공동의 어둠이 일렁이며 비틀린 틈을 내보였다.

그리고.

화륵!

전사가 사라졌다.

콰과과광―!

화염을 휘감은 주먹이, 악마의 측면을 파고들며 그 육신을 강타한다.

“커어억!”

주문을 갑주이자 무기 삼은 박투술은, 저주로 빚어진 부정형의 뭄뚱이마저도 찢어발길 수 있었다.

화륵―!

아래에서 위로 발끝을 올려차, 악마의 거대한 몸뚱이를 공중에 붕 띄우고.

꽈과광!

어느새 천장을 거꾸로 디딘 전사의 신형이, 벼락처럼 내리꽂히며 화염 두른 주먹으로 악마를 다시 지면에 처박는다.

콰광! 쿠르르르!

끊임없이 몰아치는 공세 속에서, 악마의 육신이 점차 작아지기 시작한다.

더불어 놈의 정신은 혼미함 그 자체가 되어갔다.

저주나 다른 수단으로 반격할 의지는 이미 상실했고,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은 도망치는 것뿐.

허나 그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우렛소리를 내던 예의 그 공격이라면, 일격의 전후에 생기는 잠깐의 틈이라도 활용해 도망칠 텐데.

불꽃 갑주를 두른 전사의 공격은, 물 흐르듯 끝없이 이어지며 그 잠깐의 틈마저도 내어주지 않았으니까.

“자, 잠깐! 잠깐만 기다···커어억!”

틈이 생겼다 싶으면 주먹이 짓쳐들어오고.

“조금만 시간을―그아아악!”

마력을 운용하려 하면 바로 어깨로 들이받는다.

마치 악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수단으로 도망치려 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

‘새끼. 바로 꼬리 마는 거 봐라. 내가 너 때문에 한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도주 패턴들을 기억 안 해놨을까?’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뇌격이라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댈런이 굳이 갑주격투를 통한 깨달음을 얻으려 한 이유.

그건 바로 수틀리면 일단 도망치고 보는 불사의 악마의 행동 양식을, 말 그대로 지겹도록 봐온 까닭이었으니까.

“자, 잠ㄲ―!”

“닥쳐라.”

“커허억!”

전투라고 하기에도 뭣한 일방적인 구타는, 그렇게 한참을 더 이어졌다.

***

동틀녘이 가까워졌다.

거의 30에 근접한 수치가 되어, 인간을 한참이나 벗어난 댈런의 체력마저도 슬슬 지쳐갈 정도였다.

몇 시간에 달하는 주먹과 발길질의 향연.

그 끝에.

“하, 항복!”

마침내 악마는 항복을 외쳤다.

“하, 으하하, 항복. 항복······.”

실성한 듯 웃는 악마의 정신은, 이미 닳을 대로 닳아 으스러진 상태.

기본적인 마력의 운용마저 중단해버려, 부정형의 몸이 난잡하게 일그러진다.

희생물로 얻은 힘은 이미 다 소모한 상태라, 놈의 몸뚱이는 이제 댈런의 무릎에도 닿지 않을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놈은 두 손 두 발을 펴고 댈런의 발치에 넙죽 엎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댈런은, 마침내 천천히 주먹을 내렸다.

‘이 정도면 됐겠군.’

댈런은 생각했다.

죽일 것처럼 패긴 했지만, 정말로 놈을 죽일 생각이었던 건 아니었다.

애당초 불사의 악마는 그 어떤 수단으로도 죽일 수 없는 존재.

그럼에도 댈런이 놈을 이토록 두들긴 건, 다름 아닌 타락한 성물을 사용하는 조건 때문이었다.

‘할만의 사슬은 의외로 그 사용 조건이 까다롭지.’

일단 구속하는 순간부터는, 설령 용이라도 복종시킬 만큼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할만의 사슬.

하지만 그 구속을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 중 하나를 만족해야만 했다.

구속되는 대상이 어떤 간섭에도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거나.

그게 여의치 않다면, 대신 그 의지가 저항 불가할 정도로 꺾인 상태여야 하는 것.

불사의 악마라는 특성상, 첫 번째 조건은 달성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두 번째.

희생물로부터 얻어낸 놈의 힘을 죄다 소진하고,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마저 잃은 상태가 되는 것.

댈런의 무차별적인 구타는, 바로 그 상태가 될 때까지 두들겨 패려는 의도를 담은 폭력이었다.

“흐, 흐흐흐흐···살려만, 살려만 다오. 아니, 죽여줘도 좋다. 신이여, 나를 이 무자비한 폭력에서 구원해주시오······.”

악마가 애처롭게 신을 부르짖는 모순적인 광경.

댈런은 피식 웃으며 손목을 감은 사슬을 풀어냈다.

보랏빛으로 은은하게 감도는 사슬은, 마치 자의식을 가진 것마냥 스르르 움직여 악마에게로 향했다.

이미 정신이 곤죽이 된 악마는 저항하지 않았다.

차르르르―!

곧이어 사슬이 작은 상자만 해진 악마의 몸을 휘휘 감아버리더니, 보랏빛을 강렬하게 뿜으며 그 부정형의 피부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댈런은 악마와 자신이 어떤 굴레로 연결되었음을 느꼈다.

마침내 악마의 정수를 감아버린 사슬이, 악마를 그의 종복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몸뚱아리를 실체 있는 형태로 바꿔라.”

“으윽.”

댈런이 명령했다. 악마의 몸은 그 즉시 부정형을 벗어나 물리적인 실체를 갖춰냈다.

발끝으로 툭툭 차보니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감촉이었다.

마치 솜사탕과 고무공을 반쯤 섞은 듯한 질감이랄까.

“···으흐, 으흐흑. 내가 어찌 이런 꼴로 전락했는가······. 내가 어찌······.”

그제야 본인의 처지를 깨달은 걸까.

불사의 악마는 땅을 치며 눈물 없는 울음을 흘려댔다.

댈런은 한쪽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그가 말했다.

“야.”

“······어흐흐흑.”

악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 없는 울음만을 계속 흘려댈 뿐이었다.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음, 이거 대답하는 교육은 따로 시켜야 하나 보군.

댈런은 다 삭아버린 갑옷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동굴 저편에서 흑마법사의 로브 하나를 가져와 걸쳤다.

편한 복장까지 갖췄으니 준비는 끝났다. 댈런은 뻐근해진 어깨를 슬슬 풀었다. 그가 말했다.

“야, 악마 새꺄.”

“어흐흑. 필멸자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도, 반항 하나 할 수 없는 내 신ㅅ···.”

“지금부터 ‘예.’나 ‘주인님’. 이외의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열 대씩 더 맞는다. 알겠나?”

악마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놈이 중얼거렸다.

“아, 어···예?”

“일단 스무 대.”

댈런은 주먹을 들어올렸다.

예로부터 주인 말 안 듣는 악마는 제때 패서 버릇을 고쳐줘야 하는 법.

체감상 동틀녘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교육을 위해서 충분한 시간이었다.

***

루시아는 저 멀리 산자락을 내다봤다. 해가 산능성을 완전히 넘어오고 있었다.

댈런과 삼거리에서 만나기로 한 건 분명 동틀녘.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오지 않고 있었다.

‘잘못된 건 아니겠지?’

루시아는 손끝으로 말 고삐를 문질거렸다. 그 손길에서 초조함을 느꼈는지, 말이 고개를 치켜들며 짧게 울었다.

그때였다.

“어? 저기 댈런 님 아닌가요?”

소년 용병 파른이 소리쳤다.

한쪽 눈을 잃었음에도 보통 사람에 비해 유난히 시력이 좋은 소년.

루시아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신성 문신의 힘을 끌어올려 시력을 강화했다.

저 멀리 걸어오는 거구의 전사가 보였다. 갑옷은 어디에 팔아먹고, 어두운 색의 로브 하나만 걸친 전사.

등 뒤의 천에 싸인 성검과, 허리춤의 마법 단검이 멀리서도 그의 정체를 말해주고 있었다.

“댈런!”

루시아가 소리쳤다. 댈런은 이미 그들을 발견했는지,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휘휘 흔들어주었다.

“어···근데 저건 뭐죠?”

파른이 말했다.

루시아는 그 말을 듣고 시력을 좀 더 끌어올렸다. 그러자 저 멀리 댈런이 무언가를 질질 끌고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밧줄에 묶인 거무튀튀한 어떤 덩어리.

무슨 산짐승을 잡아왔나 싶었던 그녀의 짐작은, 댈런이 화살 한 바탕 거리까지 다가온 순간 와장창 깨졌다.

죽은 줄 알았으나, 살아서 꿈틀거리는 거무튀튀한 덩어리.

그 어떤 짐승의 형태와도 같지 않은, 마치 찰흙덩이를 뭉쳐 놓은 듯한 덩어리의 외견.

거기다 결정적으로 성기사의 내면을 언제나 충만하게 채우는, 신성력의 불길한 떨림과 경고까지.

짐덩이처럼 질질 끌려온 그 검은 존재에게서 한 발짝 물러나며, 루시아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댈런, 그거 설마······.”

“맞소.”

댈런은 씩 웃었다.

그는 밧줄을 눈앞에 들어올렸다.

대롱대롱 매달린 채, 다 죽어가는 신음을 흘리는 검은 존재.

“즈인···님···예, 알겠습···주잉······.”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만을 중얼거리는 그 존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댈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불사의 악마, 아르보르요.”

“······.”

“오늘부로 내 노예가 됐지.”

루시아는 할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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