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투 작전(2)
댈런은 달렸다. 앞에는 길잡이 역할의 형제 성기사가, 뒤에는 두 마법사가 함께 달리고 있었다.
후미의 루시아를 돌아보던 그는, 손을 뻗어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챘다. 황동 화살촉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이런 씨발!”
루시아가 소리쳤다. 그녀가 휘두른 방패에 화살과 칼날들이 튕겨나간다.
황급히 일행 모두에게 보호막 주문을 입히는 펠버와 토미 발렌티노. 댈런은 또 한 번 날아온 화살을 손등으로 걷어내며 생각했다.
‘좋지 않은데.’
감각이 사방에서 경종을 울려댄다. 벽이 다가온다. 사방에서 통로가 숨통을 조여왔다.
벽 사이의 틈이 녹슨 날붙이를 들이대고 갈라진 천장은 오물 섞인 기름을 쏟아냈다.
위를 올려다본 댈런은 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칼로 기름을 쳐내는 게 가능할까?
“엘르 니멘툼!”
그때 다가오던 벽의 일부가 부서지며 흙더미가 치솟았다.
순식간에 구축된 토사의 벽은 쏟아지는 기름을 잠시 받아내다가, 일행이 지나자마자 무너졌다.
“괜찮으십니까, 스승님?”
“허허허! 내 비록 나이를 먹었어도 다리에 녹이 슬지는 않았다네! 젊을 적에는 미궁에도 곧잘 내려갔었어!”
제자의 염려에 껄껄 웃으며 대답하는 펠버. 참 유쾌해진 노인장이었다.
댈런은 강철검을 뽑아 날아오는 투창을 잘라버렸다. 창대까지 황동으로 만들어진 투창이었다.
“헤스턴 경! 언제까지 뛰어야 합니까!”
쿠르르르―!
고작 이십 미터 떨어진 등 뒤에서, 바닥과 천장이 하나가 되는 걸 본 루시아가 소리쳤다.
“그, 그게! 함정이나 숨겨진 길까지 따로 표시된 지도는 아니다 보니···!”
“이 멍청한 새끼야! 식당이나 창고 쪽으로 가면 되잖아! 밥 처먹는 곳에 함정을 설치했겠냐!”
“그렇군! 그렇다면 이쪽이오!”
투닥거리면서도 끝내 길을 찾아 달리는 성기사 형제들. 댈런은 어째서인지 간질거리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두 성기사가 못미더워서가 아니다. 하루 동안 지켜본 결과, 옥신각신 다투기는 해도 길 하나는 제대로 찾는 이들이었다.
다만 과연 식당 쪽으로 갔을 때 함정이 없겠는가.
일행들 중에서 가장 월등하다 할 법한 그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는 함정을 피하고 있는 게 아니야.’
댈런의 직감은 그렇게 말했다.
‘함정에 쫓기고 있는 거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가만히 설치된 함정이 뭐라고 그들을 쫓아오겠는가.
댈런은 감각에 집중했다. 촉각이나 시각 따위의 오감이 버무려져,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된 감각이 벽 너머를 내다봤다.
기이이― 철컹.
구그극!
통로 사이 땅 속을 이동하는 벽돌들. 흙 사이를 헤엄치고 재조립되는 기관장치들.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일행의 자취를 뒤쫓으며, 화살과 날붙이를 날리고 통로를 짓눌러 으스러뜨렸다.
시발. 박물관이 살아있다 업그레이드 버전인가. 댈런은 속으로 아공간에서 흐느끼고 있는 악마를 불렀다.
‘야.’
[흐윽, 말 한 번 잘못했다가···예, 옙!]
‘질질 짜지 말고 똑바로 말해라. 벽이며 함정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어떻게 된 거냐?’
사실 그도 이런 유적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바가 없었다.
종말을 막아내는 게 핵심 컨텐츠인 게임이다. 대부분의 회차는 인간의 편에 서서, 어떻게든 대륙을 구해내고 멸망을 막으려고 아등바등 몸부림쳤다.
몇몇 회차들에서 훼까닥 돌아 종말의 편에 서거나, 아니면 모든 걸 던져버린 채 약초꾼이나 고기잡이 따위의 소일거리를 한 적도 있긴 했지만.
‘약초꾼이나 귀농은 힐링이라도 되지, 고고학자 같은 건 상형문자니 대륙의 역사 같은 걸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만들잖아?’
애당초 먹고 살기 팍팍하고 머리 아파서 도피한 게 게임인데.
그 게임에서까지 유적지 고고학 놀이를 하면서 머리 빠지게 공부하고 싶을 리 없었다.
“···쯧.”
댈런은 혀를 찼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였다.
그리고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오래 산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보통 옳았다.
이 경우에는 사람은 아니고, 목줄 묶인 악마이긴 했지만.
[···아마 영혼 제단술로 만들어진 수호자일 겁니다.]
‘영혼 제단술? 맞아. 모래바람 왕조는 석상이나 구조물에 영혼을 주입시켜서 작동시키곤 하지.’
[그건 또 대체 어디서···멸망한 지 삼천 년도 더 된 왕조인데?]
모래바람 왕조.
이제는 저 먼 서쪽 대사막에서야 그 잔재를 찾아볼 수 있는 고대 문명.
사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들 왕조는 강력한 골렘들을 다루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딱 한 번, 악신들의 침공에서 동맹으로 함께 싸운 적이 있지.’
이미 멸망해버린 국가.
그러나 그 찬란한 기술 때문에, 일부 왕들과 그들의 군세는 아직까지도 사막 깊은 지하에서 영면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비록 그 기술력으로도 끝내 종말을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지만.
[모래바람 왕조는 영혼 제단술에 도가 튼 문명입니다. 무덤이나 군사 시설같이 중요한 장소에는 건물 자체에 영혼을 박아넣기도 했죠.]
석상도 아니고 건물에 영혼을 불어넣는다라. 댈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면 다 뒈질 때까지 쫓아온다는 소리냐?’
[아마 그럴 겁니다.]
도망쳐서는 답이 없다는 거군.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싸우는 것.
댈런은 속도를 줄였다. 그는 뒤에서 달려오던 두 마법사와 루시아의 곁에 붙어서 외쳤다.
“멈추지 말고 달리시오! 곧 따라갈 테니.”
“뭐? 자네 무슨 소린가!”
펠버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댈런은 대답 대신 강철검을 꽂아넣고 성검을 뽑아들었다.
두 손으로 쥐고 심상 너머의 힘을 끌어오자, 나지막한 우렛소리가 검면을 타고 울렸다.
펠버가 침음을 흘렸다.
“어떻게 그 짧은 기간에 영역을 그 정도까지···알겠네. 먼저 가지.”
두 마법사가 그를 앞지르고, 루시아도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면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뭔가 생각이 있겠지. 악마에 마녀까지 때려잡으면서도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던 사람이다.
그 이상한 신뢰가 담긴 눈빛에 댈런은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는 것으로 답해주었다.
그는 멈춰섰다.
기이이익!
구구구구―
바닥이 울렁거린다. 벽과 천장이 그를 단숨에 찌그러뜨릴 듯 다가온다.
그 앞에서 댈런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어깨에서부터 어떤 기운이 회오리치며 손끝으로 내달렸다.
살아 숨 쉬는 것들과는 수도 없이 싸워왔다. 죽었다 되살아난 존재들과도.
하지만 처음부터 살아있지 않은 존재라면? 댈런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그런 건 없었다. 적의를 가진 존재인 이상, 어떤 의미로는 살아있다는 소리였다.
그 겉모습이 돌이나 기계, 혹은 아예 자연 그 자체이건 간에.
영혼 제단술은 거의 사장된 거나 다름없는 잊혀진 기술.
그 수천 년 전 기술은, 사실상 주문이라기보다 신비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야간 시야가 영역에 접목되며 만들어진, 신비에 감춰진 걸 내다보는 시야.
마녀의 영역마저도 간파해낸 그의 시야가, 다가오는 벽과 함정들 너머의 존재를 꿰뚫어본다.
마녀와 싸울 때랑 다르게, 어떤 본체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쏘아지는 적의. 눈앞의 침입자를 죽이고자 하는 살기만큼은 명확하게 느껴졌다.
검을 휘두르는 데는 그거면 충분했다.
쩌어엉―!
번뜩이며 공간을 가르고 지나간 성검이, 폭풍 같은 궤적을 그 뒤에 흩뿌린다.
좁혀지던 벽이 쩍 하고 갈라지고, 그 상흔에서부터 터져나온 폭발이 벽돌들을 죄다 부스러뜨렸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찔하며 물러나는 벽과 천장.
댈런은 사납게 웃으며 검을 내질렀다.
파란 검신이 우뢰를 토해냈다.
***
벽이 부서진다. 천장이 내려앉는다. 마치 검으로 땅 그 자체를 상대하는 것 같은 모양새.
허나 댈런은 몰려오는 땅이 아니라, 그 너머의 어떤 의지를 바라봤다.
지진이라면 어쩔 수 없다. 갈라지는 대지와 쏟아지는 토사에 의지 따윈 없으니.
그러나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달려드는 상대인 이상, 그 의지를 꺾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꽈르르릉―!
덮쳐들던 천장이 섬광 속에서 가루가 되고, 후려치던 벽이 갈려나가 빚어지기 이전의 돌과 흙으로 돌아간다.
그럴 때마다 유적은 움찔거리며 벽이나 천장을 뒤로 물렸다.
마치 부서지는 게 제 몸의 일부라도 되는 것 마냥.
꽈릉! 우르르르―
검끝에서 터져나오는 우렛소리가 유적의 통로 안에 몇 번이나 메아리쳤을까.
어느새 좁디좁았던 통로는 거대한 공동으로 변해, 처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침입자를 압박해가고 있었다.
까앙―!
휘둘러진 검면에 황금빛 탄알이 튕겨나간다.
수백 개씩 쏟아지는 황동 탄막 앞에서 댈런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분쇄검의 폭풍에 갈려나가는 탄환들. 개중 몇은 머리며 얼굴, 팔다리의 살갗을 벗기고 근육을 얕게 찢어놓았다.
탄알 하나하나에 담긴 힘이 장난 아니었다. 얼마 전 특임대원이 쏘아댔던 탄환의 몇 배는 되는 위력이었다.
까가가가각!
댈런은 단순하게 대처했다. 검에 좀 더 힘을 준 것이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휘둘러지는 성검. 앞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탄막이, 어떤 벽에 막힌 듯 더 이상 나아기지 못했다.
후우.
거칠어지는 호흡.
후우.
그 호흡만큼이나 거세게 맥동하는 심장.
오랜만에 체력이 한계에 몰려간다. 대사도에게 깃들었던 악마, 아라크네의 파편에 맞선 이후로 이런 적이 있었던가.
어지간한 최하급 악마라 해도 썰어버릴 수 있을 정도가 되니, 이제는 살아 움직이는 유적이 그를 덮쳐서 죽이려 한다.
“푸흐흐.”
입에서 증기를 내뿜으며 그는 피식 웃었다. 그래. 이게 내가 하던 게임이지.
아무리 캐릭터를 강하게 키워도, 그 이상의 시련이 덮쳐오는 게임.
수백 회차의 끝자락 즈음에 키운 캐릭터들은, 그 어떤 영웅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초인들이었다.
상급 악마와 칼 한 자루로 드잡이질을 하고, 용의 아가리를 주문 한 줄로 닥치게 만드는 캐릭터들.
그런 그들마저도 끝내 차가운 시체로 만들어버린 게, 이 대륙을 덮쳐오는 종말 아니던가.
쩌저저정!
거대한 도끼날이 사방에서 날아든다. 검의 번뜩임 한 번으로 죄다 잘라버렸다.
집채만 한 바윗덩이가 머리를 덮쳐왔다. 성검을 올려 찌르자 우렛소리와 함께 돌조각이 토네이도처럼 휘말려 올라갔다.
어깨가 뻐근해지고 내장이 뒤틀리는 감각. 영역을 수백 번이 넘도록 연달아 사용해내며, 근력을 거의 따라잡은 체력 수치가 오랜만에 온 힘을 쥐어짜냈다.
그렇게 한계에 몰려갈수록 입꼬리는 점점 올라간다. 하수도에서 개구리들을 잡아 족칠 때도 그랬다. 숲을 박살내며 재의 마녀를 쫓아갈 때도 그러했고.
정신은 몸을 따라간다던가. 철학에 쥐뿔도 관심 없는 댈런이지만, 그 말만큼은 옳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중세풍의 이 세계를 뒤떨어졌다 욕하며, 거친 옷감과 비릿한 오줌맛 맥주에 눈을 찡그리던 회사원은 사라져가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는 싸움을 위해 천상에서 내려온 신의 전사나 다름없었다.
[미친···미친 놈이었어. 내 주인놈은.]
내면에서 중얼거리는 악마의 목소리. 그 무례함에도 댈런은 피식 웃으며 검을 고쳐잡았다.
어느덧 소강 상태가 된 공동.
사방에서 찔러오는 살기는 여전했지만, 유적은 더이상 그에게 함부로 칼날을 들이밀지 못했다.
댈런은 고쳐잡은 검을 내려다봤다.
성검은 이 하나 나가지 않고 반짝이고 있었다.
황동 탄막과 거대한 돌덩이를 막아내고, 천장과 벽을 박살내면서도 부러지지 않은 성검이다.
전설적인 대장장이, 르베론 아하킴마저도 이런 무구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을 정도였다.
구르릉.
그때 공동 저편의 문이 열렸다. 언제 만들어진 문이지? 댈런은 먼지 때문에 불편해진 코를 킁 풀었다.
유적이 제멋대로 벽돌 단위부터 이리저리 끼워 맞춰대니, 사실 문이고 나발이고 구분이 없어진 지 오래긴 했다.
티디딕. 티딕.
문 안쪽에서 풍뎅이들이 기어나온다.
하나하나가 대형 오토바이만 한 크기의 벌레들. 금빛으로 번쩍이는 등딱지와 보석 박힌 눈알은 꽤 멋들어졌다.
댈런의 기억 속에 있는 기물들이었다. 모래바람 왕조에서 전쟁 병기로 사용하는 석상들 중 한 종류.
티디디딕.
티딕. 티디딕.
풍뎅이들은 얇고 날카로운 다리를 열심히 놀려 댈런을 넓게 포위했다. 그 숫자는 어림잡아 수백쯤 되어 보였다.
그중 가장 큼직한 놈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이내 놈의 등딱지가 열리고, 파라오 가면 같은 머리통이 스르르 올라왔다.
파라오 가면은 멍한 표정으로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댈런을 발견하고는 오-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시―억?!”
“아. 인사하려던 거였나.”
도끼로 가면의 입을 틀어막은 댈런이 뒤늦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