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70화 (70/288)

성소 전투(1)

뿌드드득―

폭증한 신체 능력에 육신이 요동한다. 기분 좋은 떨림 속, 고양감을 한껏 느껴내며 댈런은 상태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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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댈런

레벨 : 14

[근력 : 33] [기량 : 23] [체력 : 28]

[감각 : 21] [지능 : 22] [마력 : 20]

스킬 : 데하만의 갑주격투(D), 야간 시야(E), 용혈의 재생 인자(C), 도약(E), 불꽃 화살(D), 급속 빙결(D), 라판텔라의 분쇄검(C), 헤갈레우스의 화염의 비(C), 쏘아지는 번개(D), 저주막이의 인장(D), 레레도나라의 비검(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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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보상이 짭짤했다. 아니, 짭짤한 수준이 아니었다.

시체 하나에서 능력치 네 개와 아이템, 거기다 B등급 스킬까지 나오다니.

보통 높은 등급 스킬이 나오면 능력치를 조금 주곤 했기에, 이건 여지껏 본 적 없는 수준의 보상이었다.

특히나 B등급 스킬은 게임 설정상으로도 ‘신비’라고 분류되는 등급의 경계선.

불의 비를 내리고 악마의 육신마저 헤집는 검술보다도 상위에 있는,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덧씌워버리는 영역과도 비슷한 개념이었다.

‘이건 수련이 꽤 많이 필요하겠군.’

댈런은 턱을 쓰다듬었다. 큰 힘일수록 다루는 게 어려운 건 당연한 일.

자격도 자격이지만, 노력 역시 몇 배는 들어가야 할 테였다.

레벨업으로 얻은 능력치는 체력에 투자했다. 이로써 그의 체력 수치는 29.

근력이 영역에 본격적으로 접목되기 시작한 건, 그 수치가 30에 도달해서 영역을 이뤄낸 직후였다.

체력도 머지않아 도달할 것 같으니, 영역에 접목시켜 사용할 방도를 슬슬 생각해볼 시기였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영역의 주인인 내 심상이니까.’

댈런은 알고 있었다.

상태창의 숫자와 알파벳 등급으로 표기되지 않는, 살아 숨 쉬는 이 세계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영역의 힘.

그 힘을 사용하고 개척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지난 수백 회차에서 극복하지 못한 종말.

모니터 너머에서 수천 시간이 넘어가는 그 끝없는 실패를 극복할 진짜 열쇠는.

어쩌면 단순한 숫자와 등급 놀이를 할 뿐인 추가 능력치나 계승자 옵션에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의 심상 너머, 가능성을 실체화하는 환상세계 속 영역의 힘.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바꿔낸 과거와 현재를 토양 삼아, 싹을 틔우고 꽃 피워내는 중인 미래의 가능성들.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을 일으켜내고, 죽어 스러졌어야 할 이들의 미래를 부활시키는 그 가능성의 힘이야말로.

악신들의 멱을 딸 칼날로 벼려질 원석이라고, 댈런의 직감은 어렴풋하게나마 말하고 있었으니까.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지.’

댈런은 고개를 털었다. 그는 악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불사의 악마 아르보르는 제단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댈런은 성검 끝으로 놈을 쿡쿡 찔렀다.

“으악! 캭! 아픕니다, 주인님!”

“다 처먹었으면 일어날 생각을 해야지. 안 그러냐?”

“죄송, 죄송합니다. 죄송······.”

악마가 잽싸게 무릎을 꿇고 빌어댔다. 그러고보니 놈은 영혼을 흡수하며 덩치가 꽤 크져 있었다.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사람 두 배 크기까지 커진 놈의 몸뚱이. 무릎을 꿇었음에도 댈런보다 살짝 높은 체고였다.

고개를 조금 들어올려 놈을 응시하던 댈런은,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야. 다시 줄여.”

“예, 예?”

“크기 줄이라고. 못하냐?”

악마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말 한 마디를 어쩜 저렇게 기분 더러워지게 할 수 있는지.

힘을 좀 회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미친 척하고 덤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할만의 사슬은 타락했음에도 강력한 성물.

그 힘에 저항하려면 못해도 상급 악마, 그중에도 악신의 직속쯤은 되어야 간이라도 볼 수 있었으니까.

거기다 애당초 주인놈은 지금보다 몇 배나 컸을 적에도 자신을 일방적으로 두들겨패지 않았던가?

몸 주위에 흐르는 기세를 봤을 때, 주인놈의 무력은 심지어 그때보다도 더 강해져 있었다. 이거 진짜 인간 맞나? 내가 아는 인간은 이런 생물이 아닌데?

“눈 굴리는 거 봐라. 명령이다. 몸뚱이 접어.”

“아, 아니 저는···꾸에엡! 꾸겍!”

할만의 사슬이 반짝 빛났다. 악마는 즉시 차곡차곡 접혀, 다시금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대충 무릎쯤 오는 체고와 몽실몽실한 떡덩이 같은 몸체.

댈런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 크기가 팰 때도 손맛이 좋지.

“······.”

그 눈빛을 읽었는지, 곧바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눈을 내리까는 악마였다.

“교육은 천천히 하자고. 지금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댈런은 씩 웃으며 그렇게 말한 뒤 왼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 위에서 투명한 유리공처럼 생긴 물건이 둥실 떠올랐다. 푸른 금속 재질의 화살표 모양 바늘이 들어간 유리 구체였다.

바늘이 이리저리 휙휙 가리키는 방향을 바꾸는 게, 마치 자석 위에 올라간 나침판 같은 외견.

‘탐색자의 좌안 파편.’

두 번째로 나온 아이템 보상을 보며, 댈런은 미소를 머금었다.

확실히 강력한 시체일수록 아이템을 줄 확률이 높은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보상을 볼 때, 허접한 강철검 같은 아이템은 애초부터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고.

이번에 나온 탐색자의 좌안 파편 역시, 강력한 아이템이자 유물의 한 종류였다.

마음속으로 원하는 대상을 그리면, 그 대상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그 능력.

유리공 안에서 팽팽 도는 화살표는, 유물이 작동하는 순간부터 대상의 위치를 정확하게 가리켜 주었다.

대상이 어디 있든지 상관없었다. 지금처럼 땅 아래에 있던, 아니면 바닷속이나 하늘 위를 떠다니건 간에.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지만 않다면, 유물의 추적을 피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제한 조건도 하나뿐이지. 그 대상을 이미 한 번 만나봤어야 한다는 거.’

거기다 한 번 발동한 능력은 대상에게 물리적으로 접촉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로 빽빽한 광장이라도, 심지어 그 수천 명이 모두 가면 무도회에 참석한 상황이라 해도 목표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는 의미.

추적 능력을 지닌 마법 물건 중에서, 탐색자의 좌안 파편은 못해도 한 손 안에 꼽는 강력한 아이템이었다.

애당초 상대의 동의도, 어떤 사전 준비도 필요 없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능력이었으니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기도 하지.’

댈런이 아는 건 묘실까지 오는 길뿐이었다.

고고학자의 유언대로 군데군데 새겨져 있는 표식만 따라가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가는 길은 다른 이야기였다. 그가 배운 건 묘실을 의미하는 표식뿐이었으니까.

모래바람 왕조의 문자는 다 지렁이 베베 꼬아놓은 듯한 상형문자였다. 당연하게도 댈런은 이에 까막눈이었고,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설령 출구를 가리키는 표식이 있다 하더라도, 읽고 따라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잘못하면 미아가 될 뻔했군.’

지하 유적은 성기사단의 땅 전역에 걸쳐 건설되어 있었다.

복잡하고 광대함으로 치자면 미궁도시의 하수도에도 전혀 꿀리지 않을 지경.

하수도는 물 흐르는 곳이니까 설계를 대충 예측할 수라도 있지, 여긴 그런 편법을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오랜만에 운이 따라줬다고 느끼며, 댈런은 유리구에 마력을 조금 불어넣었다.

우웅―

유리구가 작게 울었다. 곧이어 그 안의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댈런은 침착하게 루시아를 떠올렸다.

금발에 푸른 눈의 수습기사.

먼 미래에 악마 살해자라 불릴 기사단의 심문관.

요리를 잘 하고, 최근에 멀미가 좀 줄었으며, 인간을 향한 복잡한 생각과 감정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영웅.

파르르르···.

생각을 이어갈수록, 이미지를 구체화할수록 팽팽 돌던 바늘이 부르르 떨며 속도를 줄인다.

바늘은 이내 움직임을 뚝 멈추더니, 천천히 돌아 한 방향을 가리켰다.

대충 대각선 위쪽을 향하는 방향.

댈런은 제단 위 악마의 등짝을 퍽 쳤다.

“가자.”

수호자를 죽였으니 함정의 작동은 멈췄을 터. 너무 서두르지는 않아도 되었다.

전생에서도 자신이 길치는 아니라고 자부하던 그였다. 이런 미로 같은 유적이라도 하루이틀이면 일행과 합류할 수 있었다.

악마와 함께 묘실을 나가던 그는, 문득 고개를 돌려 손을 뻗었다.

우웅―

그러자 구석에 내팽겨쳐져있던 손도끼가 작게 울음을 토하고.

패래래랙―!

마치 줄에 묶은 듯 날아와, 그의 손에 안착했다.

댈런은 등을 돌려 묘실을 완전히 빠져나갔다.

***

“씨발 왜 작동을 안 하는 겁니까!”

루시아가 열불을 냈다. 그녀는 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카가각!

검과 검이 얽히며 간결하면서도 복잡하게 그려내는 곡선.

그 춤사위 끝에서 힘을 주어 밀어내며, 그녀는 방패를 올려쳐 상대방의 턱을 가격했다.

떠엉!

“컥···!”

공중에 붕 떴다가 털썩 쓰러지는 특임대 성기사. 놈의 뒤쪽 흙벽에 뚫렸던 구멍이 순식간에 스르르 수복됐다.

그러나 곧 다른 방향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리고, 무너진 흙벽의 틈 사이로 특임대 성기사가 비집고 들어왔다.

루시아는 곧장 내달렸다. 그녀의 등 뒤로 성기사 울스턴이 외쳤다.

“이, 이거 작동 자체는 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왜 이 새끼들이 아직도 훼까닥 돌아있는 거냐고!”

“저주의 핵이 예상보다 더 강력합니다. 이런 휴대용 장비로는 해제가 쉽지 않아요!”

쐐애액―!

무슨 발리스타 소리가 같은 게 울렸다. 아니, 진짜 그 소리가 맞았다.

이 미터가 넘어가는 거구의 성기사가, 손에 자기 몸만 한 거대한 작살총을 들고 마법사들을 향해 쏘아낸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든 해야지! 당신들 기술자라며!”

신성 문신을 한계까지 쥐어짜 작살을 흘려낸 루시아가 소리쳤다. 기술자라는 성기사 형제는 별 대처를 하지 못했다.

그저 짧은 단검 모양의 장치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어둑한 수정 형태의 핵에다가 계속해서 꽂았다 뺐다를 반복할 뿐.

‘씨발.’

루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럴 줄은 몰랐었다.

댈런이 무너지는 천장을 향해 몸을 내던진 뒤, 두어 시간만에 모든 함정의 작동이 멈췄으니까.

댈런이 뭔가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말인즉 그가 살아있을 확률 역시 높다는 소리였고.

다만 그의 합류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이번 작전은 시간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단장이 병력을 이끌고 성벽을 가볍게 공격하며 이목을 끄는 사이, 성소의 무기고 심부에 있다는 저주의 핵을 해제하는 게 이 작전의 골자.

어디까지나 기사단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게 작전의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려면 공성전이 심화되기 전에 하루빨리 저주의 핵을 해제해야만 했다.

‘빠르게 정리하고 구조대를 꾸려서 유적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왜 이 따위로 상황이 흘러가는 거냐고!’

쾅―!

거한이 휘두르는 통짜 금속 작살총을 방패로 흘려낸 뒤, 발끝을 내뻗어 놈의 고간을 찍어차버린다.

“끄헉!”

중요한 부위를 보호하던 갑옷이 우그러지며, 가죽 부츠 너머로 느껴지는 뭔가 으직 하고 깨지는 감촉.

거구의 특임대 성기사는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고꾸라졌다.

앞으로 남자 구실은 제대로 못하겠지만, 죽는 것보다야 낫겠지. 루시아는 혀를 짧게 차고 다시 땅을 박찼다.

작전이 위기를 맞은 건 고작 몇 시간 전 일이었다.

나흘에 걸쳐 유적을 통과하고, 성소의 무기고에 잠입하기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로웠다.

두 마법사와 힘을 합쳐 경비를 서던 특임대 몇을 무력화시키고, 심부의 검은 수정에 저주의 핵을 해제하는 유물을 꽂아넣은 순간.

유물이 과부하를 일으키며 퍽 하고 작동을 멈추지만 않았어도, 작전은 마지막까지 순조로웠을 것이다.

성기사인 동시에 기술자인 울스턴과 헤스턴이 곧바로 유물의 수리에 들어갔지만, 그들의 말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이 부단장 휘하의 병력들은 이변을 눈치채고 무기고로 들이닥쳤다.

그 결과가 지금의 이 상황.

“더러운 단장의 개 따위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들어오느냐!”

까강!

검끝이 몇 갈래로 갈라진 검으로 흙벽을 부수고 들어와, 루시아와 검을 얽는 특임대 기사.

그나마 엘가이아 마탑의 두 마법사가 전력을 다해내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토벽을 구축해냈기에, 지금까지는 그걸 뚫고 들어오는 놈들만 상대하면 됐다.

“아직입니까!”

또 한 명의 특임대를 무력화시킨 루시아가 소리쳤다.

식은땀을 흘리는 청년 마법사를 보아하니, 가까스로 유지되던 균형의 붕괴는 머지않은 기정사실이었다.

“···물러나게!”

그때 원로 마법사가 눈을 부릅떴다.

황급히 맺는 수인, 우르르 무너지는 토벽.

“엘르 로트!”

그 너머에서 번쩍 하고 날아드는 푸른 검광이, 돌바닥을 부수며 올라온 거대한 종유석들에 가로막혀 폭발했다.

“크으···!”

침음을 흘리며 다시금 수인을 준비하는 펠버 발렌티노.

번쩍―!

그러나 수인을 채 맺기도 전에, 흙먼지를 뚫고 재차 날아온 검광이 노인을 강타한다.

콰장창!

방패와 창이 줄지어 세워져 있던 무기고 구석으로 날아가버리는 노인의 몸.

“스승님!”

제자의 외침과 부스스 가라앉는 흙먼지 사이로, 검에 푸른 검기를 둘러낸 성기사 하나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에버로크!”

루시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부단장, 에버로크 글라스덴은 푸른 기운으로 번뜩이는 눈을 둥글게 말았다.

“루시아 경. 내가 경에게 상급자의 이름을 그렇게 막 불러도 된다고 가르쳤나?”

“헛소리 하지 말아라. 기사단의 배신자 새끼가!”

“심문관이 되어서도 어릴 적 버릇은 고치지 못한 모양이군. 단장의 안배는 거기까지라는 소리겠지.”

부단장이 웃었다. 입꼬리는 한쪽만 올라간 채, 큰 소리 없이 웃는 웃음이었다.

루시아는 넝마가 다 된 방패를 치켜들었다. 왼손의 방패는 정면으로. 오른손의 검은 그 위에 비스듬히 뉘여서.

검에 맺힌 백색 불꽃과, 은은하게 가라앉은 신성 문신의 빛을 보며 부단장은 입가를 살짝 굳혔다.

“호오. 제 손으로 아끼던 전우의 목을 벤 결의가 보이는군. 할만의 사슬에 휘감겨 있던가?”

“···그걸 네가 어떻게?”

“악마 골라캅은 꽤 기대할 만한 장기말이었지. 놈에게 힘을 좀 더해주기 위해, 애송이 기사 하나를 골라 성검을 쥐어보냈건만.”

이런 반푼이 수습기사에게 죽어버릴 줄이야.

비릿한 어조로 덧붙이는 부단장의 중얼거림 앞에서, 루시아는 더 이상 이성의 끈을 붙잡을 수 없었다.

콰득!

발밑의 돌바닥이 깨져나간다. 검에 맺힌 백염이 검신을 완전히 집어삼키며 타올랐다.

불꽃처럼 넘실거리는 안광을 내뿜으며, 루시아의 신형이 쏘아지려는 순간이었다.

꽈릉······.

난데없는 천둥 소리.

그녀의 발이 멈칫했다.

꽈르릉···.

이내 그 소리가 좀 더 커지고, 부단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심문관 루시아가 고작 천둥 따위에 겁 먹은 건가?”

“···아니.”

루시아가 검을 서서히 내렸다.

당장에 쏘아질 것 같던 공세를, 굳건한 방어로 전환하는 자세.

방금까지의 도발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녀는 부단장을 향해 여유롭게 웃어주었다.

“이건 그냥 천둥이 아니거든.”

우르르릉―

발밑이 요동쳤다. 루시아는 뒤로 물러나며 방패를 추켜올렸다.

피를 흘리는 스승을 수습해온 토미 발렌티노와, 두 형제 성기사까지 고개를 돌린 가운데.

꽈릉―!

마치 부푼 반죽이 터지듯 그들과 부단장 사이의 땅이 폭발하며, 섬광과 우렛소리가 그 안에서 용솟음쳤다.

꽈광!

그 폭발 안에서부터 솟구쳐 무기고의 천장을 뚫어버린 누군가의 신형.

천장에 난 구멍 사이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얼굴을 보고 토미가 소리쳤다.

“댈런 님!”

“이런. 한 층 더 올라와버렸군.”

별 일 아니라는 듯이 툭 하고 바닥에 착지하는 전사.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그는, 루시아를 발견하고 손을 슬슬 흔들었다.

“좀 늦었소.”

“···아뇨. 딱 좋은 시점에 오셨습니다.”

루시아가 웃었다. 그때 푸른 검광이 댈런을 덮쳤다.

꽈광!

그는 펠버와 달랐다. 검기라 해서 당해줄 이유가 없었다.

덮쳐오는 순간 뒤돌아 검을 휘두르자, 푸른 검신과 검광이 만나 부채꼴 형태로 폭발했다.

강력한 두 힘이 충돌하며, 그 여파로 흙먼지가 부스스 일어난다.

댈런은 왼손으로 휘휘 먼지를 몰아냈다. 그가 말했다.

“대사 중에 선빵 치는 거 비매너인 거 모르냐?”

“···무슨 헛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썩을 것 같은 저열한 언어로구나. 야만인 따위가 성검을 탐내다니. 말세로구나.”

세종대왕님 살아계셨으면 넌 거열형이다 새꺄. 쓸데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댈런은 보라는 듯이 성검을 두 손으로 쥐고,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스으으···.

어깨에서부터 소용돌이쳐 검신을 덮어가는 기운.

꿈틀거리는 부단장의 푸른 눈동자 앞에서, 그는 조소를 머금었다.

“꼬우면 가져가 보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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