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권속(2)
“그래. 여기 한 놈이 더 있지.”
반쯤 폐허가 된 건물 창 안쪽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내 땅딸막한 난쟁이 하나가 창문을 넘어 바닥에 툭 떨어졌다.
타닥.
착지음은 그리 크지 않았다. 난쟁이가 뛰어내린 높이가 삼 층이라는 걸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었다.
“난 저 쓸데없이 자기소개가 긴 귀쟁이 년처럼 그림자에 숨는 짓은 못해.”
수염이 너저분한 난쟁이가 말했다.
“장인이자 전사인 내 자존심이 그런 짓을 용납하지도 않고.”
그는 슬며시 웃으며 덧붙였다.
난쟁이의 키는 작았다. 댈런의 허리쯤도 못 되는 신장이었다.
소년 용병 파른과 비교해도 조금 작은 정도였지만, 동시에 놈의 굵직한 팔다리는 파른의 허리와 굵기가 맞먹었다.
촤르륵.
움직일 때마다 부드럽게 마찰하는 촘촘한 미늘 갑옷 위로, 뚜렷하게 드러나는 굵직굵직한 근골의 굴곡.
아마 오크 전사와 힘을 겨루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테였다.
“끄응. 이놈이 성능은 참 기깔나는데, 들고 다니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니까.”
난쟁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들고 있던 복잡한 모양의 쇠뇌를 슬그머니 아래로 내렸다.
쇠뇌는 거의 난쟁이의 몸만 한 크기였다. 심지어 놈의 무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등에는 얇은 사슬로 커다란 전투 망치를 매어두었고, 허리춤에는 권총 크기만 한 연발 쇠뇌가 달려있었다.
그밖에도 자잘한 무기들이 갑옷 위 여기저기 걸쳐져 있는 모습은, 전사라기보단 무기를 팔기 위해 몸소 나선 장인에 좀 더 가까워 보이는 모양새.
아마 저 장비들을 합치면 본인의 체중보다 배는 더 무겁지 않을까.
댈런이 난쟁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놈은 제 어깨 너머를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방금 그건 무슨 주문인가? 생긴 건 손도끼처럼 보였는데, 위력은 무슨 제국군 대포에서 쏘아진 포탄 같군.”
난쟁이의 시선은 피 흘리는 목을 감싸쥐고 주저앉은 엘프 너머, 연병장 한쪽 구석의 단층짜리 건물을 향하고 있었다.
그건 정확히는 건물이었던 잔해였다. 폭삭 내려앉은 잔해 위로, 뿌연 흙먼지가 푸스스 내려앉는다.
궤도가 비틀린 손도끼가 원래의 목표를 스쳐 지나가, 애꿎은 건물의 벽과 기둥을 부수며 완전히 무너뜨려버린 것.
난쟁이는 그 먼지투성이 잔해를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화약 병기라기에는 소리가 너무 없었고. 기관장치라기에는···글쎄, 정교함이 결여되었어. 그러고 보면 마력도 딱히 느껴지지 않았단 말이지. 주문이 아니라 혈통이나, 뭐 신성력 같은 건가?”
습관처럼 수염을 배배 꼬는 난쟁이.
댈런은 별 대답 없이 그걸 바라보고만 있었다.
수염 터럭을 두 번쯤 꼬아대던 난쟁이는, 뒤늦게 고개를 돌리고 댈런과 눈을 마주쳤다.
“······.”
무덤덤한 시선. 동요 없는 침묵.
난쟁이는 수염 꼬던 손짓을 멈추고, 약간 초조하게 수염투성이 턱을 벅벅 긁었다.
“큼. 영업 비밀이라 이건가. 하긴, 나라도 누가 내 흑철복합궁(黑鐵複合弓)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하지 않을 거야. 설명해줘봤자 이해할 놈도 거의 없을 테지만.”
난쟁이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쇠뇌를 도로 들어올렸다.
자기 몸만 한 크기의 쇠뇌임에도, 양손으로 들고 조준하기까지는 반 호흡조차 걸리지 않는다.
차르르르···철컥!
십수 개의 도르래와 복잡한 기관장치가 돌아가며, 저 혼자 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장전했다.
틱. 투웅―!
가볍게 당긴 방아쇠에, 가볍지 않은 파괴력을 싣고 쏘아지는 화살.
쐐애애―!
예고 없는 사격이 날아온다.
나름 방심을 유도했다면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
모닥불이 흔들거리는 공터의 어둠 속에서, 화살촉부터 깃까지 검은색인 화살은 하나의 검은 선처럼 보였으니까.
기습적으로 날아오는 그 검은 선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 것이다.
물론 댈런은 드문 쪽에 속했다.
스으―
댈런은 손을 뻗었다. 길게 늘어진 시간감각.
그 속에서도 검은 선 수준으로 보이는 걸 보니, 놈이 가진 쇠뇌의 위력이 대단하긴 했다.
그는 검은 선의 중간쯤을 잡았다. 순간적으로 거센 저항이 느껴졌다.
무시하고 조금 더 힘을 주니, 손바닥 살갗이 조금 까지면서 광택 없는 검은 화살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음. 조금 따가운데. 댈런은 손아귀 안의 화살을 만지작거렸다.
화살촉부터 깃까지 통째로 무광 금속이었다. 심지어 화살대 중간중간에 날카로운 가시까지 돋아나 있었다.
“잡···아? 흑철 화살을?”
난쟁이가 멍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이거 어디서 본 광경이군.’
몇 달 전, 루시아와 미궁에 내려갔을 때였다. 미궁도적 중 한 놈도 이렇게 검게 칠한 화살을 날렸더랬지.
댈런은 그때 했던 것처럼 했다.
멍청한 얼굴의 난쟁이에게 화살을 되돌려준 것이다.
쐐애애―!
화살이 거꾸로 날아간다. 쇠뇌에서 쏘아진 것과 엇비슷한 속도였다.
다만 눈앞의 난쟁이는 미궁의 어벙한 탐험가들을 털어먹던 도적보다 좀 더 나았다.
화살을 잡아챈 댈런의 손이 흐릿해진 순간, 놈은 반사적으로 거대 쇠뇌를 방패 삼아 던져버린 것이다.
콰직!
커다란 석궁이 제 화살에 박살난다. 도르래와 줄들을 죄다 끊어지며, 금속과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난쟁이는 곧장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땅딸막한 몸뚱이가 이 층 높이까지 떠오른다.
제 몸의 몇 배 높이로 도약한 난쟁이는, 곧바로 등에서 전투망치를 끌러냈다.
“흐으으읍!”
기합과 함께 힘을 끌어모은다. 망치를 든 두 손에서 힘줄이 불끈 솟았다.
동시에 난쟁이의 이마에서 푸른 인장이 빛났다.
방어선을 침공한 놀 군세, 그 선두에서 발리스타 화살을 쳐내던 놀 전사와 같은 인장이었다.
댈런은 성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내면의 우렛소리가 검신을 타고 퍼져나간다.
집중된 감각 아래, 시간이 다시 한 번 느려졌다.
슬로우모션처럼 흘러가는 눈앞의 광경에, 망치머리의 뒤쪽에서 불꽃이 터져나오는 게 보였다.
댈런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시발, 제트엔진 망치냐? 그는 조금 당황한 채 성검을 가로로 그었다.
불을 뿜는 망치와 뇌성을 품은 성검이 충돌했다.
꽈릉···!
공터 한가운데서 우렛소리가 터져나왔다. 난쟁이는 댈런의 등 뒤로 수 미터쯤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그의 손에는 머리가 반으로 쪼개진 망치가 들려있었다.
부서진 망치머리 안쪽에서 얇은 사슬과 크고작은 톱니들, 그리고 기름이 후드득 떨어졌다.
난쟁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수를 잃었다면, 언제나 세 번째 수가 있는 법이었다.
“흐아아―”
기합과 함께 돌아서며 허리춤에서 소형 쇠뇌를 꺼내들자, 5연발 쇠뇌가 스스로 장전을 마치고 발사될 준비를 끝냈다.
“―칵?”
그리고 난쟁이 역시 끝이었다.
돌아선 건 상반신뿐이었다.
여전히 정면을 보는 허리 아래는, 홀로 비틀거리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 위에 얹어져 있던 상반신도 저절로 굴러떨어졌다.
주르륵. 잘린 단면에서 흘러나오는 내장들.
무릎 꿇었던 허리 아래쪽 역시, 뒤늦게 힘을 잃고 철푸덕 넘어지며 창자를 쏟아낸다.
“끄으. 끄흐으으······.”
피가 빠져나간다.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다.
난쟁이는 숨을 몰아쉬면서 쇠뇌를 들어올렸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전사이자 장인.
그것도 청린의 권속들 중 가장 뛰어난 장인이었다.
이 5연발 쇠뇌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자신의 명작이었고, 밀수한 화약으로 만든 폭시라면 저 괴물 같은 북방인 전사에게도 한 방 먹일 수 있을 테였다.
“끄흐으······.”
하지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혼신의 힘을 다해 당겨봐도 방아쇠는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그때 그의 상반신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벅.
북방인 전사였다.
“뭐하냐.”
그가 말했다. 난쟁이는 힘겹게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순간 눈을 의심했다.
“흐윽···!”
야만인 전사의 모습에 용의 형상이 겹쳐 보였다.
검붉은 탁색(濁色)의 비늘을 두른 용.
주둥이에서 검붉은 화염이 넘실거리고, 세로로 찢어진 눈은 존재를 꿰뚫어 보는 듯 번뜩인다.
“크윽, 허억···!”
예로부터 난쟁이들에게 용은 공포의 대상.
자신의 주군을 마주할 때와 비슷한 위압감에, 난쟁이는 눈을 뒤집고 얼굴을 파르르 떨었다.
그건 난쟁이가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뇌에서 피가 전부 빠져나갔다.
뇌가 기능을 멈추자 심장도 정지했다.
난쟁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을 희번뜩 뜬 채 굳어버렸다.
댈런은 멀뚱하게 그걸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뭐야?”
죽기 전에 헛것이라도 봤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그는 난쟁이의 손에서 쇠뇌를 가져왔다.
“흠.”
복잡한 장치가 내장된 5연발 쇠뇌.
크기는 비교적 작지만, 어딘가 익숙한 형태였다.
쇠뇌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댈런은 문득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건물 벽에서부터 솟아 나온 그림자가, 그 억센 손아귀에 잡혀들었다.
“컥···!”
그림자가 씻기듯이 사라진다. 댈런의 손 안에 남은 건 얇은 목이었다.
긴 머리칼이 한쪽만 단발이 되어버린 그림자 엘프 여자.
그녀의 이마에는 푸른 인장이 빛나고 있었고, 목에는 도끼가 빗맞은 흉터가 길게 남아있었다.
“커헉! 베, 베요른의 원수를···!”
엘프가 낭창거리는 검을 찔러왔다. 목이 잡힌 상태로, 죽음을 불사한 일격이었다.
댈런은 그냥 손가락만 까딱였다. 방아쇠가 당겨진 쇠뇌가 손가락만 한 화살을 두 발 뱉어냈다.
보통보다 조금 두꺼운 화살이 피부를 파고들고, 근육과 뼈 사이를 헤집어 들어갈 즈음 화살촉이 폭발했다.
뻐벅! 뻑!
둔탁한 폭음. 비산하는 뼛조각과 살덩이.
검을 쥔 손이 갑옷에 툭 부딪히고 떨어졌다. 팔꿈치 아래가 사라진 엘프는 눈이 반쯤 뒤집혔다.
“흐아아악! 꺄아악! 주, 죽어! 죽어버려라 야만이···!”
“레니아― 바사크.”
빠지직!
목을 잡은 손아귀에서 푸른 전격이 튀었다.
버둥거리던 엘프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
습격을 당한 건 댈런만이 아니었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습격은, 수색을 위해 흩어져 있던 성기사들을 하나씩 노렸다.
두 명이 부상당했고,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애당초 여정에 나선 이들은 모두 고위 기사와 심문관들.
둘 모두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직책은 결코 아닌 만큼, 일행은 예상치 못한 습격에도 충분히 대비되어 있었다.
“쯧. 십 년만 젊었어도 이런 놈따위는 일검에 베어버렸을 것을.”
허리에 붕대를 둘둘 감은 채, 차석 심문관 도메르가 끌끌 혀를 찼다.
그의 발밑에는 보통보다 반 배쯤 덩치가 큰 놀이, 가슴팍에 구멍이 뻥 뚫린 채 쓰러져 있었다.
놀의 머리에는 희미하게 푸른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습격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새겨진 표식이었다.
“권속의 표식입니다. 습격자들은 전부 진룡 청린의 권속들이군요.”
마우그가 말했다.
댈런은 그 말을 듣고선 턱을 쓰다듬던 손을 멈칫했다. 권속이라 이거지. 아는 게 좀 있겠군.
그는 멈칫한 손을 들어 그대로 가볍게 휘둘렀다.
손끝이 그림자 엘프의 뺨을 훑었다. 감전되어 기절했던 엘프가, 얕은 손찌검에 땅바닥을 뒹굴며 퍼뜩 깨어났다.
“큽! 으으읍!”
“몇 개만 묻지.”
댈런은 엘프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
엘프는 깨어나자마자 눈을 빙빙 돌렸다.
꿈지럭. 등 뒤로 손을 묶은 밧줄을 확인하는 손짓. 주문을 막아둔 재갈을 어떻게 해보려는 혀놀림.
이거 안 되겠군. 댈런은 엘프의 옷깃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쪽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큽! 크흡! 우욱···.”
“습격은 실패했다. 아무도 죽지 않았어. 여기서 혼자 주문으로 발악해봐야 달라질 게 있어 보이나?”
턱이 빠지고 재갈까지 벗겨져, 입에서 핏덩이와 부러진 이빨을 줄줄 흘리는 엘프에게 댈런이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엘프가 고개를 미친 듯이 저어댄다. 저어대더니 또 끄덕이기 시작했다. 눈이 살짝 풀린 걸 보니 이제 말이 좀 통할 듯했다.
댈런은 가볍게 턱을 도로 끼워 맞춰주곤 다시 물었다.
“몇 개만 묻겠다. 일단 첫 번째. 옥시키루스가 죽었는데 어떻게 그놈처럼 공간 전이를 한 거지?”
그림자 엘프와 난쟁이는 숨어있다 나타난 게 아니었다.
감각이 예민한 댈런조차, 그 기척을 느낀 건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
그림자 안에 숨었다 해도 댈런의 감각을 피할 순 없었다.
그의 시선은 그런 주문이나 힘 정도는 꿰뚫어 보고도 남았으니까.
거기다 존재감이 표백되는 듯한 전조와, 갑자기 또렷해지는 기척은 이미 겪어서 익숙해진 바.
놈들이 사용한 건 푸른 비늘 아룡 옥시키루스의 공간 전이 권능과 유사한 주문이었다.
“옥시키루스는···우욱, 비늘 주문서를 만들어 청린께 헌납했어. 우린 그걸 사용했다.”
“그렇군. 그럼 왜 우리를 습격했지?”
“네놈들이 찾는 건 성검과 균열 방벽의 열쇠니까. 미끼를 문 고기는 달아나기 전에 잡아야 하는 것 아니겠어?”
고기라. 기분 좀 나쁜데. 뺨을 한 번 더 만져줄까 하던 댈런은 꿇어앉은 무릎을 툭 차는 걸로 대신했다.
얼굴을 잘못 건드렸다가 이번에는 턱이 아예 떨어지는 수가 있었다. 말은 하게 해야지.
박살난 무릎 관절에 엘프가 지르던 비명이 멎은 뒤. 댈런은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방금 네가 말한 성검과 열쇠는 어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