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96화 (96/288)

저격(2)

댈런은 손바닥을 펴보았다. 희미하게 잔재하는 아릿함.

상처는 벌써 다 아물었고, 다만 약간의 이물감이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살 밑에 파묻혔던 작은 금속 조각들이 밀려나왔다. 댈런은 그것들을 손바닥 안에서 슬슬 굴려보다 털어냈다.

그걸 보던 펠버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화약 병기군. 맞나?”

“그렇소.”

“탄알을 보니 장총 같구만. 아, 장총이라 하면 대포를 사람이 들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든 물건일세. 제국과 차르국이 총신 안정화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직접 본 건 처음이군.”

펠버는 수염을 슬슬 쓰다듬으며 말했다. 댈런은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올렸다. 뭐야, 이 양반이 화약은 또 어떻게 알아?

대영역까지 이룬 마법사라 마탑에 틀어박혀서 하루종일 연구만 했겠거니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이런저런 지식들을 많이 아는 노인이었다.

“제국군은 아닐 걸세. 번거롭게 이런 매복을 할 바에야, 우리가 제국 영토를 거쳐왔을 때 수작을 부리려 했겠지.”

“그럼 차르국이라는 소리군.”

“아마도.”

펠버가 끄덕였다. 댈런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시선을 돌렸다.

숲 저 안쪽. 뻗어나간 감각에 여러 소음들이 걸려든다.

처음의 살기는 온데간데없고, 혼비백산한 기척만이 느껴지는 습격자들.

원래 느껴지던 기척의 숫자는 아홉이었는데, 방금 전 손도끼에 하나가 죽어서 이제 여덟이었다.

“여기 잠시만 기다리시오.”

“천천히 다녀오게나.”

이제 익숙하다는 듯 손을 휘휘 젓는 펠버를 뒤로 하고, 댈런은 배낭을 툭 내려놓았다.

그는 다리에 힘을 조금 줬다. 많이가 아닌 조금만이었다.

투웅―

땅을 밀어찬 순간 몸이 떠오른다.

지면과 풀, 나무들이 밑으로 훅 꺼지며 순식간에 시야가 탁 트였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숲과, 숲길 저 너머에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르비바흐의 성벽.

잠깐 동안 그 정경을 눈에 담아낸 댈런은, 웅웅 떨리는 성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대충 이 정도가 한계인가.’

평소보다 몇 배는 거세진 성검의 진동.

갑옷 안쪽에서 후끈거리며 피어오르다 꺼지는 작은 불꽃들.

성기사단 본단을 떠난 이후, 댈런은 스스로의 힘을 조절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그 노력은 반 정도 성공했다 할 수 있었다.

힘을 일정 한계선 이상 내지 않음으로, 용혈의 권능이 제어를 잃고 터져나오는 건 막을 수 있었으니까.

적어도 사람 바글거리는 도시 한복판에서, 진룡의 화염을 막 쏟아내고 다닐 일은 사라진 셈이었다.

“······!”

“···!”

바람 소리 사이로 웅성거림이 스친다. 댈런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숲속에 매복한 저격수들은, 그들의 머리 위로 떠오른 댈런을 발견하곤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댈런은 씩 웃었다. 투석기에서 쏘아진 돌이나 다름없는 궤적을 그리며, 그는 허공에서 조금씩 방향을 수정했다.

후우우웅―

완만하게 그려지는 포물선. 점점 가속되는 낙하.

중력에 자연스레 몸을 맡긴 여정의 종착지는, 눈이 휘둥그레진 저격수들 한가운데였다.

파스슥―쿠웅!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이 우수수 흩날리고, 지면의 흙이 파도처럼 확 일어난다.

콰직!

흙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저격수 두 명의 목이 수수깡처럼 꺾였다.

털썩 쓰러지는 저격수들. 토해진 피가 복면 밖으로 꿀렁이며 새어나온다.

타앙!

그때 지근거리에서 총성이 울려퍼졌다. 댈런은 반사적으로 몸을 살짝 틀었다.

핑―!

어깨 바깥쪽을 얕게 훑고 굴절되는 탄환.

온전하게 체화된 데하만의 갑주 격투의 묘리가, 성기사단의 백은강 갑옷과 더불어 완벽한 시너지를 냈다.

“무슨···!”

장총을 든 복면인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댈런은 성큼 다가서며 따귀를 갈겼다.

복면인의 얼굴 안쪽이 움푹 함몰되며, 복면의 구멍들로 진득한 내용물이 쫙 튀었다.

“으아아아!”

따귀를 올려붙이는 사이, 흙먼지 사이로 찔러오는 총검.

댈런은 손을 뻗어 그냥 잡아버렸다.

“어?”

덜컥 멈춰버린 무기에 복면인이 얼빠진 소리를 낸 직후, 큼직한 부츠가 놈의 가슴팍을 짓밟았다.

우드득!

흉곽이 내려앉은 놈이 나가떨어졌다. 댈런은 자연스럽게 빼앗아 든 총을 슬쩍 살펴봤다.

그 사이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다섯 개의 총구가 동시에 그를 겨눴다.

“사격!”

타다다다당!

다섯 발의 총성이 연이어 찔러온다. 댈런은 숨을 훅 들이쉬었다.

총알쯤이야 이제 그리 빠르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용의 힘을 억제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그의 감각은 다가오는 총알의 궤적을 선명하게 쫓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파슥···!

발끝을 가볍게 놀린다. 몸을 살짝 틀어서 가장 앞선 둘을 피해냈다.

그 뒤에 따라오는 둘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걸로 흘려보내고, 가장 매섭게 날아드는 마지막은 개머리판으로 쳐냈다.

콰지직!

목재의 결을 따라 박살나며 총알을 굴절시키는 개머리판.

댈런은 마지막 총알을 발사한 놈을 눈에 담았다.

이 중에서 가장 강한 기세가 느껴지는, 아마 놈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괴, 괴물!”

그녀를 제외한 복면인들이 겁에 질려 소리쳤다.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악다구니였다.

댈런은 반쯤 박살난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두 번 휘두르니 개머리판이 완전히 부스러지고, 복면인 둘의 머리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다.

남은 건 셋. 빠르게 처리하고 펠버에게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타탕!

짧은 총성이 연이어 들리더니, 셋이던 머릿수가 하나로 줄어버렸다.

순식간에 쌍권총을 뽑아내 제 부하를 사살한 여자는, 총을 툭 떨어뜨리며 자연스레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가 말했다.

“···항복.”

***

“한 마디로 자살특공대라는 거군.”

“···나를 제외한다면, 그런 거지.”

저격수 여자, 나타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전투가 끝나고, 댈런은 장총과 포로를 데리고 펠버에게 돌아왔다.

습격의 전말을 알기 위해서였다.

제국 국경을 벗어난 뒤 얼마 가지 않아, 도시 근처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습격을 받은 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그 습격자들이 장총으로 무장한 저격수 분대라면 더더욱.

다행히 포로가 된 저격수 여자는 댈런이 뭘 어떻게 하기도 전에 술술 비밀을 털어놓았다.

요약하자면 그들은 저 북쪽 차르국에서 왔으며, 이번 기습은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댈런을 부상 입히기만 하면 되는 작전이라는 이야기였다.

총상을 입은 이상, 몸에 박힌 탄환을 빼내기 위해서는 외과적인 시술이 필수.

도시 근방에서 기습한 건, 부상당한 그를 자연스럽게 도시 안에 미리 심어둔 의원에게로 유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게 유인한 뒤, 그 의원이 독이든 뭐든 동원해서 나를 죽이려 했다는 거군.”

“맞아. 보름 전부터 내 동료들이 여기서 의원을 차렸지. 용병들을 전문적으로 봐주면서, 그들의 외상을 저렴한 가격에 치료해주고 있어.”

여자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아무래도 상부는 당신에게 총알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봐.”

“음, 그녀의 말이 맞네. 기억과 모순되는 부분이 없군.”

두 눈을 금빛으로 물들인 펠버가 그녀의 말을 보증해주었다.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일단 거짓말은 아니라는 건 확인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상황인지 완전히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다.

사교도들이나 흑마법사들, 아니면 오크나 도적 나부랭이들의 습격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르국에서 보낸 암살자들이라니. 그것도 저격수 분대를?

‘대체 언제 저쪽 사람들이랑 얽힌 거지?’

높은 지능 수치가 기억을 헤집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차르국의 영토에 발을 들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군대나 왕족을 만난 적도 없었고.

애당초 그의 여정이라 해봐야 용병일 몇 년 해먹다가, 미궁 좀 들쑤시고 균열에서 용 잡은 게 다 아니던가?

“···그래. 미궁인가.”

순간 어떤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댈런은 품속에 손을 넣어 아공간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왔다.

오래 전 배낭 저 구석에 처박아둔 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물건.

금박 입힌 용병패 위에 새겨진 이름, ‘보리스’.

산적수염이 인상적이던 놈은, 루시아와 그를 미행하던 미궁도적들 중에 가장 베테랑이었다.

소매에 기관장치를 숨겨 납탄을 쏘아내기에, 차르국 왕실과 연줄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거물이었던 모양이군.’

“그, 그건···.”

용병패를 본 여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댈런은 그녀의 앞에 금패를 툭 던졌다.

“누군지 아나?”

“···정당한 왕홀의 주인, 차르의 이름으로 불려 마땅한 이, 에클라힘 궁전의 왕좌에 합당한 일곱 왕자들 중 한 분, 보리스 칼라시니코프시다.”

“현 차리나는 수염 북슬한 용병이 아닌 걸로 아는데.”

“그년은 사기꾼이다. 제국의 앞잡이이자, 차르국의 위명을 땅바닥에 처박은 거짓 왕···으윽!”

여자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정확히는 그러려고 시도했다.

팔다리가 밧줄에 단단히 결박당한 탓에,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신세가 됐지만.

꿈틀거리며 고개를 치켜드는 그녀의 앞에, 댈런은 천천히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반란군이라 그거군.”

“반란이라니! 정당한 왕권의 주장이다! 여우 같은 년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자네의 말이 맞네. 현 차리나는 차르 비즐로프 이래 가장 현명한 통치자로 이름이 높아. 정당하게 보위에 오른 건 물론이지.”

“이 늙은이가! 네 요강에 그 수염 난 머리통을 쳐넣고 권총으로···우웁!”

나이 지긋하신 분께 말이 좀 심하네. 댈런은 여자의 뺨을 곱게 어루만져주었다.

이빨의 반절이 날아간 여자는 저주를 이어가지 못하고, 신음만 줄줄 흘리며 피거품을 물었다.

댈런은 손을 털고 일어섰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여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차르국과 원한을 진 건 아니라는 소리군.’

다행이었다.

차르국은 북부 서리고원 너머로부터 내려오는 악신의 손길을 최전선에서 저지하고 있는 이들.

결국 언젠가는 협력해야 할 사이인 그들과, 벌써부터 척을 져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죽인 보리스라는 용병은, 사실 반란군이 추앙하던 왕위 계승자 중 하나였다는 거고.’

대체 그런 놈이 왜 미궁에서 도적질이나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터.

중요한 건 반란군이 게임 중반까지 차르국을 위협하는 큰 마수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차르국의 상황은 개판이라 봐도 무방했다.

북쪽에서 타락한 야만족이 밀고 내려오는 와중에, 내부에서는 반란군이 도시를 휘젓고 다니기 일쑤였으니.

심지어 그 반란군의 수뇌부는 악마의 끄나풀이나 마찬가지.

때문에 반란군 자체도 가면 갈수록 사교도나 다름없는 집단으로 변모한다.

대부분의 회차에서 차르국이 게임 중반을 반도 넘기기 전에 멸망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찾은 거지?”

“흐, 흐흐···보리스 님의 용병패···그건 추적이 가능한 토템이다. 보리스 님은 결코 제국 국경선을 넘어가지 않으시지.”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몸을 꿈틀거리며 뒤집어 얼굴이 하늘을 향하게 했다. 뒤로 묶인 손이 좀 아플 자세였다.

“그 토템이 제국 국경으로 넘어갔다는 건, 그분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의미하지. 조사한 끝에 미궁에서 행적이 끊기셨다는 걸 알게 됐다. 그분과 어울려 다니던 사람들이 전부 실종되었다는 것도. 정황상 너와 그 성기사가 범인이었지.”

여자는 자세가 불편한지, 아니면 얻어터진 입안이 아픈 건지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도 끊임없이 꿈지럭거렸다.

댈런은 펠버를 돌아봤다. 원로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진실이라는 뜻이었다.

펠버는 황금빛 안광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과거를 적당히 들여다보는 정도는, 댈런에게 받은 권속의 육신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살려다오.”

여자가 꿈지럭거리며 말했다. 댈런은 픽 웃었다.

그는 가만히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순간 흐릿해지는 손. 휘릭 하는 소리도 없이 이마에 돋아난 도끼자루.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여자는 눈을 부릅뜬 채 피를 주르륵 흘렸다.

댈런은 발로 그녀의 몸을 뒤집었다. 등 뒤에 감춰졌던 두 손은 주먹 반만 한 금속 덩어리를 쥐고 있었다.

금속 물체를 집어 든 댈런이 물었다.

“뭔지 아시오?”

“이 여자의 기억에 따르면, 일종의 화염구 주문을 발생시키는 장치 같은 것일세. 화약과 주문을 사용해 만들었고, 안전장치를 제거하고 던지면 폭발하면서 일대를 금속 파편과 불바다로 만드는 물건이야.”

“수류탄인가.”

댈런은 아공간에 수류탄을 집어넣었다.

‘건드리면 뒈진다.’

[옙, 주인님.]

악마에게 취급 주의의 당부를 준 뒤, 그는 땅에 놓아뒀던 배낭을 조심스레 둘러맸다. 잘 자다 깼는지 낑낑거리는 소리가 조금 들렸다.

“갑시다.”

“어떻게 할 건가? 도시 안에는 반란군들이 더 잠입해있을 걸세”

펠버가 물었다. 댈런은 토미에게서 말 고삐를 받으며 노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진중하고 엄숙한 표정 위, 은은하게 내려앉은 눈웃음.

그건 마치 댈런이 무슨 대답을 할지 알고 있으며, 그게 즐겁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댈런은 피식 웃고는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말했다.

“어떻게 하긴. 그 의원이라는 놈 면상은 봐야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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