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의 명공(2)
댈런은 손을 뻗었다. 육즙이 뚝뚝 흐르는 양갈비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김을 피워올렸다.
향 좋은 장작불로 훈연한 양고기를, 약초에 감싸서 네 시간 동안 쪄낸 고급 요리.
입 안에서 부드럽게 찢어지는 육질과 풍부한 향미가 녹아든 육즙, 재미있는 식감을 더해주는 약간의 지방층까지.
무려 세 달만에 먹어보는 이 여관의 특제 양고기 약초 찜에, 댈런은 입안 가득 퍼져나가는 행복감을 느꼈다.
“댈런. 내 시셀라의 이름을 걸고 자네에게 말하는데, 절대로 그 의원은 가지 말게.”
그 앞에서 갈리오스 상단의 주인, 볼크마 갈리오스는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댈런은 말없이 고기를 우물거렸다. 반쯤 눈을 감은 채, 온 감각을 입안에 집중하는 모습.
상인의 말에 대답한 건 곁에서 물에 탄 약주를 홀짝이던 펠버였다.
“왜 그렇게 만류하는 겐가? 자네들도 방금 저 의원을 들른 거 아니었나?”
“저희는 치료가 아닌 거래차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마법사님.”
곧장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대답하는 볼크마.
삼십 분쯤 전, 펠버가 엘가이아 마탑의 원로 마법사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그야말로 놀라서 뒤집어졌다.
‘어, 어떻게 그리 젊어지셨습니까?’
‘흠? 자네 나를 본 적 있나?’
‘어릴 적, 아버지께서 저를 교육차 팔시온으로 보내셨을 때 뵈었습니다. 그저 먼발치에서 뵙긴 했지만요. 그날로부터 이십 년이 흘렀는데, 마치 나이를 거꾸로 먹으신 것만 같군요.’
‘그런가? 허허허허! 이 사람, 천성 장사꾼이구만!’
여관이 떠나가라 웃어젖히던 펠버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했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저 노련한 마법사도 결국 사람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젊어진 게 사실이긴 하지.’
댈런이 내어준 두 가지 스킬 중 하나, 용혈의 재생 인자는 펠버의 육신에 전에 없던 활력을 불어넣었다.
겉으로만 봐도 주름이 반 아래로 줄어들었고, 몸 안쪽의 장기와 뼈는 이십 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
더불어 권속으로서 얻게 되는 기나긴 수명이 재생 인자와 시너지를 이뤘기에, 점차 변해가는 펠버의 모습은 무슨 젊음의 비약을 마셨다 해도 납득할 수준이었다.
“몇 달 전부터, 저는 르비바흐와 미궁도시 사이를 오가며 약초 장사의 기반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즈음부터 르비바흐 숲에 약초 풍년이 들어, 덕을 톡톡히 봤지요.”
볼크마는 목이 타는지 도수 낮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댈런은 갈빗대 하나를 더 훑다 말고 그걸 빤히 쳐다봤다. 저 인간 술 약하지 않았나?
그렇게 여지없이 맥주 반 잔에 붉어진 얼굴을 한 상인은, 근래 진행중인 장사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마물들의 습격이 잦다는 둥, 르비바흐에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기꾼도 많아졌다는 둥 하는 잡설들을 요약하면 간단했다.
이 말 많지만 수완 하나는 좋은 상인은, 고작 세 달 만에 르비바흐와 팔시온 사이에 꽤 탄탄한 상행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르비바흐 내의 약초상이나 의원들과 친분을 다진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보름쯤 전에 르비바흐를 다시 찾은 그는, 최근 새로 개점한 의원이 있다는 소식에 직접 찾아갔다고 했다.
그렇게 안면도 익힐 겸 몇 번 만나면서, 자잘한 납품 거래를 하기도 했고.
“헌데 말이지, 그놈들 이상하네.”
볼크마는 혀가 살짝 꼬인 목소리로 말했다.
“의원이라기에는 이 근방 물가를 너무 몰라. 우리에게 산 약초들도 원래 시세보다 반 배쯤 더 쳐줬다네. 사실상 밑지는 거나 다름없는 장사를 하는 건데, 아무리 의원이라도 일단 가게를 낸 장사치인 이상 그런 식으로 일하지는 않지.”
“낮은 가격으로 상권을 휘어잡으려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오?”
볼크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네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는가?”
“고향에서 배웠소.”
낮은 가격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상권을 독점한 뒤, 다시 가격을 정상화하는 경쟁 방식은 그에게 익숙한 양상이었다.
물론 그건 뉴스와 인터넷이 발달한 21세기에 살았기에 가능한 일.
오랜 시간 상단을 운영해온 현지인의 입장에서는, 평범한 용병이 그런 마케팅 전략을 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볼크마는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댈런은 평범한 용병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그냥 납득하기로 한 것이었다.
“흠, 아무튼 그러려면 든든한 자금줄이 있어야겠지. 하지만 놈들의 자금줄은 내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네. 구린 냄새가 풀풀 나지. 안 그런가?”
볼크마가 빈 맥주잔을 탈탈 털며 말했다.
“보통 왕실쯤 되는 단체를 뒷배로 둔 공작 세력이 이런 위장을 하곤 한다네. 돈이 많으니 흥정도 그저 겉치레로 할 뿐이고, 웃돈을 주고서라도 자기들한테 필요한 물건이라면 죄다 구입하곤 하지.”
나 같은 일개 상인에게는 한 철 등처먹기 괜찮은 상대라네. 볼크마는 종업원에게 새 맥주잔을 건네받으며 껄껄 웃었다.
맥주를 몇 모금 더 들이킨 그는, 다시금 진중한 표정을 지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혹여 자네가 부상을 입거나 한 거라면, 저런 수상한 집단에게 진료를 받지는 말게나. 내가 잘 아는 약초상과 의원을 소개해주겠네.”
“쓸데없는 걱정인 것 같군.”
낮고 굵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댈런은 슬쩍 눈길만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곁에서 잠잠히 맥주를 마시던 난쟁이였다.
볼크마의 것과 다르게 도수 높은 에일을 들이키던 난쟁이는, 어느새 비워버린 나무잔을 치우고 새 잔을 자기 앞으로 곧장 끌어왔다.
“어차피 이 전사는 치료를 받으러 온 게 아닌 것 같으니 말이야.”
“아, 그런가···?”
“그래. 옷에서 화약 냄새가 나. 뭔가 귀찮은 일에 얽혔나 보지. 안 그런가, 전사 양반?”
난쟁이가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댈런은 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난쟁이를 응시했다.
난쟁이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댈런의 검고 깊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난쟁이는 이유도 모르게 순간 흠칫 떨었다.
덜덜 떨리는 손. 주르륵 흘러내리는 맥주. 댈런은 고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그쪽 소개를 아직 못 들었군.”
“······.”
“난 댈런이오.”
“···알고 있네.”
후우. 가까스로 한숨을 쉬며 난쟁이가 말했다.
그는 떨리는 손을 천천히 들어올리더니, 자신의 이마 귀퉁이에 대고 얼굴을 슥 쓸었다.
그러자 마치 마법처럼 난쟁이의 얼굴이 뒤바뀌었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무뚝뚝한 인상의 난쟁이가 아닌, 조금 야윈 얼굴에 한쪽 눈이 의안인 난쟁이로.
“나는···비요른. 팔시온의 청동 구역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난쟁이일세. 세간에서는 나를 유리눈깔 고물상이라 부르지.”
살짝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난쟁이.
그 소개를 듣고 얼굴을 본 댈런은, 순간적으로 우물거리던 고기를 뱉을 뻔했다.
눈앞에서 맥주를 벌컥이던 난쟁이는, 바로 시에나의 5연발 석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자.
미스릴의 제련자 르베론 아하킴과 더불어, 게임 내에서 손에 꼽는 영웅급 장인들 중 하나.
기관장치와 화약 병기에 있어 따라올 자가 없는 기술자, 외눈의 명공 ‘비요른 칼라드라쿰’이었기 때문.
“만나서 영광일세, 악마 살해자 댈런.”
비요른이 말했다. 댈런은 잔을 내려놓고 상단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멀뚱멀뚱 두 사람의 대화를 바라보던 상단주는, 뭉근하게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에 흠칫 상체를 뒤로 뺐다.
“왜, 왜 그런 눈을 하고 보는 건가? 무섭다네.”
“···맙소사.”
댈런은 손을 들어 얼굴을 문댔다.
외눈의 명공은 원래라면 게임 중반부가 끝나갈 때까지 도시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존재다.
거기다 혈통의 힘으로 얼굴을 바꾸는 데 능숙해, 초반부에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아낼 수 없는 NPC이기도 했다.
“숨기는 거 없이 말해보시오, 상단주.”
그렇기에, 댈런은 한숨을 푹 쉬며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외눈의 명공을 어떻게 찾아낸 거요?”
***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리 수완 좋은 상인인 볼크마라도 외눈의 명공을 직접 찾아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번 여정은 반대로 비요른이 상단주를 찾아오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이 친구가 자네를 꼭 만나야겠다더군.”
약초 달인 물을 마시고 술이 조금 깬 볼크마가 말했다.
“지인의 신변에 문제가 생겨서, 자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라고 했네. 나에게는 자세한 것까지 이야기해주지 않았지만.”
“지인?”
댈런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가 알기로 외눈의 명공은 타인과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시점에 그가 지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정말로 한 손에 꼽을 터. 그리고 그중 두엇은 댈런 역시도···.
“자자,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지. 우선은 이 전사가 처한 상황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난쟁이 비요른은 손을 휘휘 저으며 주제를 돌렸다.
댈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마따나 눈앞의 문제가 더 급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비요른이 자신의 정체를 밝힌 뒤, 댈런은 두 사람에게 지금의 상황을 적당히 이야기해주었다.
차르국의 반역자들이 도시에 들어오기 전 자신을 습격한 것과, 확실한 암살을 위해 의원을 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아공간에 보관중인 ‘주인 없는’ 용병패 때문이라는 것 정도를 말이다.
그 과정에서 호기심 많은 상단주가 의미심장한 눈길로 ‘설마 자네가 그 패의 주인을 처치했···?’까지 말했다가, 옆자리의 드워프에게 등짝을 두들겨맞고 엎어진 작은 헤프닝도 있었다.
“흠, 그러고보니 그대는 원래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었나?”
비요른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댈런은 어깨를 으쓱했다.
“평소처럼.”
“···평소?”
“일단 쳐들어가서 다 때려잡는다는 소리일세. 끌끌.”
펠버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기분 좋게 웃었다.
비요른은 재밌는 농담이라 생각하고 같이 웃다가, 댈런의 표정을 보고는 그게 허언이 아님을 깨달았다.
“···반역자라 해도 차르국의 사람들이네. 그 강력한 차르국의 철혈군대에 맞서 저항하고 있는 이들이란 말이야.”
“그래서?”
“적어도 철혈군대의 일 할 정도는 되는 역량이라는 소리일세. 아무리 악마 살해자라 해도 위험한 도전이네.”
댈런은 낮게 웃었다. 위험이라.
차르국의 철혈군대는 분명 제국군에 버금가는 강력한 군대였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타락한 야만인들을 상대로 지금까지 버텨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언제는 안 위험했나?
사교도의 대사도에게 칼을 들이밀 때나, 악마와 드잡이질을 할 때 역시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마녀의 저주는 그를 한 줌의 잿더미로 만들 뻔했으며, 진룡의 면전에서는 일격에 목숨을 잃을 각오로 나섰다.
단 한 번뿐인 기회.
종말에게 잡아먹히느니 차라리 먼저 묵사발을 내놓겠다는 신념 하나로 걸어온 길.
그 길 끝에 지금의 자신이 있지 않았나.
설령 차르국의 반란군이 아니라, 혹 차르국이 타락해 철혈 군대와 직접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온다 해도.
댈런은 단 한 걸음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군.”
말 없는 웃음과 눈빛에서, 지나온 길들을 일부 읽어낸 것일까.
장생종인 난쟁이로서 원로 마법사인 펠버보다도 더 오래 살아온 장인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맥주를 단숨에 끝까지 비워낸 후, 잔을 탕 내려놓았다.
“좋네. 자네를 찾아오길 잘했어. 허면 내 이번에만 자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허락해주게.”
“도움?”
“그래야 내가 자네에게 부탁하고자 했던 일을 말할 때, 마음에 빚을 조금이라도 덜 지지 않겠나.”
댈런은 등받이에 몸을 깊이 묻었다. 그는 독한 약주가 담긴 잔을 홀짝이며 비요른을 가만히 쳐다봤다.
“좋소. 이야기해 보시오.”
“자네 생각대로, 놈들을 가만히 피해가는 건 현명하지 못하네. 여기서 타격을 입혀놓지 않으면, 분명히 머지않아 또 따라올 테니 말이야.”
난쟁이가 말했다.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되도록이면 그 과정에서 이 도시의 용병들에게 원한을 사지 않는 게 좋겠지. 자네의 손으로 직접 그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네.”
“내 손이 아니면?”
“자네가 가진 화약을 빌려주게나.”
비요른이 눈을 반짝였다.
하나뿐인 갈색 눈동자가 장인의 강렬한 열정과 집념을 언뜻 내비쳤다.
입가에 미소로 깊은 주름을 만들어내며, 외눈의 명공은 맥주잔을 기분 좋게 매만졌다.
“내가 놈들을 건물째로 날려주겠네.”
***
약초 냄새가 코를 찌르는 방 안.
수염을 삐죽삐죽 기른 중년의 사내는 불편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로브 입은 주술사는 그 앞에서 수정구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초조한 시선. 습관처럼 물어뜯는 입술.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중년 남자가 말했다.
“위치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어제는 보였다면서?”
“예. 분명 보였습니다. 그것도 습격조가 매복한 위치 근처였습니다.”
“그럼 왜 지금은 안 보이는 거지? 술법에 무슨 오류라도 생긴 건가?”
“그, 그게······.”
주술사는 어깨를 움츠렸다. 마음 같아서는 할 말이 천 마디도 넘게 있었다.
이 추적 주술을 만든 게 자신도 아닌데, 오류고 자시고 어떻게 알겠는가?
그걸 알아내서 뜯어고칠 정도면 자기가 대마법사쯤 되는 사람이었겠지, 이렇게 남의 밑에서 나침반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따지고 보면 이 일에 뛰어든 게 자신의 의사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추적 술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에, 객사한 스승에게서 어깨 너머로 배운 재주로나마 벌어먹고자 지원한 게 전부.
‘내가 이런 개좆 같은 반역자들과 함께 일하게 될 줄 알았겠냐고.’
주술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후회해봐야 소용없었다.
언제 목에 칼이 들어올 지 모르는 신세가 된 이상, 여기서 떠난다 해도 그를 맞이할 건 누군가의 밀고와 철혈 군대의 처형장 뿐이었으니까.
이미 한 번 반역을 저지른 놈들이라 그런지, 이놈들은 배신자에 대한 처단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가차없었다.
차라리 형장의 이슬 정도로 끝나면 다행일 지도 몰랐다. 최악의 경우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끔찍한 고문의 밤낮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씨바. 내가 왜 돈에 눈이 멀어서.’
이미 그런 경우들을 몇 번이고 본 주술사는, 그저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빌 뿐이었다.
“···어?”
그때 주술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당황한 손짓으로 수정구를 더듬거렸다.
“대, 대장님.”
“뭐?”
“용병패에 새겨진 추적 주술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정말이냐?”
산적수염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성큼성큼 주술사에게 다가갔다.
“어디냐. 당장 말해.”
“그, 그게.”
주술사는 입을 뻐끔거렸다. 수정구를 들여다보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이 수정구 술법은, 추적 대상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특징이 있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나타난 추적 대상의 위치는, 건물에서 고작 십수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 한복판.
더없이 가까워진 거리 때문에 수정구 안쪽 깊은 곳에는, 마치 망원경으로 쳐다보듯 추적 대상의 모습이 어렴풋한 상으로 맺혀 있었다.
“바로 건물 근처 거리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뭐?”
주술사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수레에 실린 커다란 관이 보입니다. 용병패는 그 안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산적 수염은 함박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