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99화 (99/288)

외눈의 명공(3)

“용병들은 다 물렸나?”

“예. 다소 잡음이 있긴 했지만, 재생 포션과 약초를 좀 쥐어주니 순순히 물러갔습니다.”

“그래. 지들이 안 가면 어쩔 거야. 여기가 진짜 의원인 줄 아나? 총 맞아 뒈지기 싫으면 꺼져야지.”

산적수염 바실리코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굳게 닫힌 관짝을 두드려봤다.

퉁퉁.

투박한 나무 소리.

방 안에 모인 서른 명의 정예병들이 관짝과 그들의 대장에게 시선을 모았다.

이 관 안에는 그들이 모시던 주군의 용병패가 들어 있었다.

바실리코프에게는 더 각별한, 그와 유년기 시절부터 함께해온 주군.

‘보리스 칼라시니코프.’

정당한 왕홀의 주인이자, 차르라는 이름의 마땅한 후계자.

허나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쳐, 무명의 용병으로 살아가던 비운의 왕자.

현 차리나를 끌어내리고 정당한 왕위를 옹립하려는 세력, ‘일곱 왕관의 수호단’에서는 보리스 왕자를 겁쟁이라 칭하는 놈들도 있었다.

산적수염 역시 그 세력에 속한 사람이었으나, 그 말만큼은 동의하지 않았다.

아니, 설령 동의한다 한들 그것을 입밖으로 내는 건 다른 문제였다.

당장의 신분이 왕자건 용병이건 간에, 보리스가 왕가의 정당한 혈통이며 그의 주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주군, 제가 당신의 복수를 끝마치고자 합니다.’

관짝을 내려다보며, 바실리코프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몇 달 전, 그의 주군 보리스는 미궁에서 실종되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돌연 제국 국경을 넘어간 용병패에 의아함을 느끼고, 어느 순간 아예 끊겨버린 추적 주술에 뭔가 잘못됐음을 눈치챘다.

다급하게 미궁도시 팔시온에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정황상 어떤 용병이 미궁에서 보리스를 살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악마 골라캅의 살해자, 금패 용병 댈런.’

좀 더 조사해본 결과, 그 용병 놈은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였다.

도시에 도착한 지 몇 주 지나지도 않아, 팔시온의 경비대와 함께 청동 구역의 사교도를 소탕한 게 소문의 시작이었다.

그 길로 미궁에 내려가 1층에서 가장 큰 세력을 이룬 놀 부족을 쓸어버리고, 성검을 손에 넣었다는 악마를 잡아 금강궁에서 포상금까지 타냈다지.

최근에는 불어난 마물의 등쌀에 밀려난 오크 무리를 박살내고, 르비바흐의 흑마법사들을 족쳤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야말로 세기에 몇 명 나올까 한 전설적인 전사.

보통의 경우라면 바실리코프도 여기서 물러났을 것이다.

수호단은 이미 차르국 왕실이라는 거대한 대적을 둔 상황.

이 머나먼 이방 땅에서까지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어떤 초인이라 해도, 왕손을 죽인 죄를 가벼이 여길 수는 없는 법.’

바실리코프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그래. 이대로 놓아보내줄 순 없었다.

애당초 수호단은 일곱 명의 왕자를 왕위에 옹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

왕손이 없다면 수호단도 없다.

그래서 바실리코프는 개인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과 자금을 가지고 머나먼 남방 땅까지 내려왔다.

비록 주군이 왕좌를 포기하면서, 수호단의 일곱 군벌 중 가장 세력이 미약해진 군벌이었으나.

폭약과 화약 병기로 무장한 정예병들은, 금패 용병 하나 잡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병력이었다.

‘어차피 혼자서 그 업적들을 이뤄낸 것도 아니잖아. 사교도를 처리할 때는 경비대와 함께였고, 악마를 잡을 때 역시 성기사가 동행했다니까.’

그리고 못내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며 작전을 실행한 끝에, 드디어 결과물이 눈앞에 있었다.

삯꾼에 의해 도시 외곽의 묘지로 옮겨지던 이 관짝 안에는, 그 용병의 시신이 들어있음이 명백했다.

악마를 잡은 초인이라도 열 명에 가까운 저격수들의 화망을 피해내는 건 쉽지 않았겠지.

나타샤가 돌아오지 않은 걸로 보니, 어쩌면 그녀가 최후의 수단으로 함께 자폭한 것일 수도 있었다.

큰 희생이지만 열매는 달았다. 바실리코프는 먼저 간 동료들을 위해 잠시 묵념했다.

잠시 뒤 눈을 뜬 그가 명령했다.

“열어라.”

“예.”

콰직!

쇠지렛대가 관틈에 거칠게 틀어박혔다. 단단하게 못질한 관뚜껑은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야 뜯어내기 힘들었다.

관짝의 크기와 무게로 보아 그 덩치 큰 야만인이 이 안에 들었음이 거의 확실하긴 했다.

허나 주군의 복수는 그 무엇보다 온전하게 끝맺어야 하는 사명.

몇 번 체중을 실어 누르자 관뚜껑의 틈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고.

우드득!

마침내 못이 후두둑 빠지면서, 관 안의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씨발.”

그리고 바실리코프는 욕을 뱉었다.

관 안에 들어있던 건 천으로 가리워진 사람의 형상.

그러나 관뚜껑이 열리며 확 올라온 냄새에, 시체 썩는 악취나 혈향은 존재하지 않았다.

‘밀랍 인형.’

그렇게 생각한 순간.

팅―!

뭔가 용수철이 튕기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치지지직···!

신관이 타들어가는 미세한 소음이 고막을 자극했다.

코를 찌르는 화약의 향기에 미간을 굳힌 그는, 문득 의원 지하실에 잠들어있는 산더미 같은 폭약을 떠올렸다.

“어, 대장님···.”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챈 건 그의 부관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도망쳐!”

당혹감으로 물든 그녀가, 쇠지레를 내던지며 부하들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이미 늦었음을 직감한 바실리코프는, 마법 아티팩트인 망토를 끌어올려 몸을 덮었다.

동시에.

꽈과과과과광―!

관짝 안에서 일어난 연쇄적인 폭발이, 불길과 철편의 폭풍으로 방 전체에 휘몰아쳤다.

***

쿠궁. 쿠르르르······.

화염과 매캐한 연기가 치솟는다.

삼 층짜리 건물을 뒤덮은 불기둥과 폭발의 향연을, 댈런은 길 건너 건물의 지붕 위에서 내려다봤다.

그의 곁에는 외눈의 명공, 비요른 칼라드라쿰이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흐흐. 멋지지 않나?”

비요른이 말했다. 댈런은 턱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굉장한 솜씨군.”

“흐흐흐, 연쇄 폭발의 힘일세. 볼크마 그 친구와 저 건물에 들락거릴 때부터 난 화약 냄새를 맡았었다네. 지하에 한가득 쟁여놓은 것 같더군.”

난쟁이는 코를 킁킁거렸다.

비가 오려는지 습해진 공기 사이로, 젖은 화약의 냄새가 기분 좋게 그의 콧속을 간질거렸다.

“꿉꿉한 게 폭탄 터뜨리기 아주 좋은 날씨야.”

기분 좋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며, 댈런은 마음속으로 순수하게 감탄했다.

외눈의 명공이 화약과 기관장치 분야에 있어 영웅급의 장인이라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니터 너머에서 본 것과, 직접 눈앞에서 그 결과물을 목격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다.

삼 층짜리 건물의 지하부터 꼭대기 다락방까지, 천장을 죄다 부수며 휩쓸어버린 폭발의 준비물은 단촐하기 그지없었다.

수류탄 두 개, 총탄 백여 발 분의 화약.

그리고 관짝과 수레, 은화 하나로 고용한 삯꾼이 전부.

아무리 눈앞의 폭발이 지하실에서 연쇄적으로 터진 화약 더미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 폭발의 시작점인 관짝 부비트랩은 엄연히 이 난쟁이의 작품이었다.

더불어 차르국 반란자들이 모여있는 저 건물만 범위에 들어가도록, 난쟁이는 연쇄 폭발의 위력과 방향성마저 정교하게 계산해냈다.

깊고 넓은 배경지식. 장인의 손재주.

소수점 단위까지 예측하는 정교한 계산능력에, 난쟁이의 룬 마법과 폭약을 조합하는 특유의 비법까지.

“지구에서 태어났으면 둘 중 하나였겠군. 특수부대에서 가장 뛰어난 폭발물 전문가던지, 아니면 사상 최악의 테러범이던지.”

“응? 뭐라 했나? 못 들었네.”

“아무 것도 아니오.”

댈런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질문했다.

“화약 다루는 법은 어디서 배운 거요?”

“글쎄. 뭐 여기저기서 배웠지 않겠나? 아, 그러고 보니 저번부터 궁금했는데, 저 청년은 무슨 묵언 수행이라도 하는 건가? 계속 따라다니면서 한 마디도 없던데.”

“전지의 편린의 편린이라 해도, 필멸의 존재로서 그걸 처음 받아들이는 과정은 험난한 법일세. 힘을 다스리고 필요한 말을 골라낼 수 있게 된 다음에야, 보통 사람들처럼 말을 할 수 있게 될 테지.”

펠버는 제자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어주며 이야기했다.

자연스럽게 말을 돌린 난쟁이의 모습에, 댈런은 그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직 그 정도 신뢰가 쌓이지는 않았겠지.

비요른이 어떻게 기술을 갈고닦았는지는, 설정상으로도 제대로 나와있지 않은 이야기다.

그만큼 인물이 깊게 숨겨놓은 배경이며, 동시에 대륙의 정세에 직접적으로 관여된 이야기라는 뜻.

‘신뢰야 앞으로 쌓아가면 되는 거고.’

댈런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깨를 휘휘 풀고선 지붕 끝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폭발의 현장을 즐거운 눈으로 바라보던 난쟁이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가 물었다.

“음? 어디 가나?”

“마무리해야지.”

댈런은 도끼를 뽑아들었다.

밤하늘을 붉히는 폭약의 빛이, 흐릿한 파형 무니 도끼에 번들거리며 맺혔다.

“마무리?”

“세 놈 살았군.”

“세 명이 생존해 도주 중입니다.”

두 목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댈런과 또 한 명이 동시에 답한 것이었다.

댈런은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오래 전, 댈런의 손에 의해 팔시온의 하수도에서 구해졌던 금발 청년이었다.

제 머리색과 동일한 색으로 눈동자를 물들인 채, 약간 힘겨운 시선으로 눈을 마주치는 토미 발렌티노.

펠버가 자신의 영역을 전개할 때처럼, 청년의 주변으로 은은한 황금빛 파동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그가 말했다.

“배움이 빠르군.”

“···감사합니다.”

“재능과 성실함을 겸비한 제자는 흔치 않지. 자랑스럽겠소, 노인장.”

펠버는 허허 웃으며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이미 영역을 이뤄냈던 펠버 발렌티노마저도, 스스로 창시한 대영역의 마법체계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토미가 펠버에게서 주문을 전수받은 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채 안 됐다는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그 주문의 일부를 쓸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빠르게 습득한 것.

물론 밑바닥부터 영역을 쌓아올린 것보다야, 스승이 만들어놓은 주문의 영역에 발을 담그는 게 더 쉬운 건 당연했다.

허나 시간선에 직접 간섭하는 주문체계의 특성상,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으리라.

“기이하군. 저 화력 안에서도 죽지 않는다니. 화약의 폭발로 초인을 상대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어.”

뭔가 골똘히 고민에 잠긴 난쟁이를 뒤로 하고, 댈런은 가볍게 처마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신형이 지붕을 넘어 도시의 어둠 사이로 사라질 즈음.

쿠르릉. 콰르르르···.

화마에 휩싸인 건물이, 마침내 폭삭 주저앉았다.

***

‘이런 좆 같은 경우가 있나.’

산적수염, 바실리코프는 비틀거리며 뒷골목을 달렸다.

그의 뒤로는 두 인영이 따라오고 있었다.

하나는 그의 직속 부관이고, 다른 하나는 로브를 뒤집어쓴 주술사.

그리고 세 사람은 모두 전신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였다.

“대, 대장······.”

“조용히.”

바실리코프는 부관의 말을 잘랐다. 아직까지 그들은 안전하지 않았다.

관짝으로 위장한 폭탄에 기습을 받은 이후, 살아남은 건 이 셋 뿐이었다.

그 폭발에서 살아나온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지하실에 보관 중이던 유탄이며 화약까지 죄다 터지면서, 건물은 말 그대로 불바다가 되었으니까.

‘대체 누구냐.’

뒷골목을 달리면서도 바실리코프는 머리를 굴렸다. 당장 떠오르는 후보는 둘이었다.

첫째는 추적술 걸린 용병패의 소유자이던, 그의 주군 보리스를 죽인 금패 용병.

하지만 그는 금방 고개를 저었다. 칼밥 먹는 용병 놈팽이가 화약을 어떻게 다룰 줄 안단 말인가?

관짝 안에 용병패를 넣어, 그들의 추적 술법을 역이용한 것까지야 어찌 그렇다 칠 수 있었다.

물론 놈의 일행에 어디 마탑의 대마법사쯤 되는 존재가 있다면, 아예 불가능한 짓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화약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

제국과 차르국이 자기들의 국운을 걸고 싸고도는 비밀 기술이 화약 관련 공법들인데?

사실 이 의문은 이번 사건의 주동자가 용병 놈팽이만 아니라면 설명되는 부분이었다.

그가 추측하기로는, 바로 차르국의 왕실 특무대가 범인이었다.

특무대는 철혈군대의 정예 중 정예인 단체.

놈들에게는 이런 정교한 함정을 만들어낼 능력과 이유 모두 충분했다.

더불어 놈들이 대륙 전역에 걸쳐 비밀리에 점조직을 만들어뒀다는 소문 역시 거짓이 아니었다.

지금껏 그 눈을 잘 피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운 없게 어딘가에서 꼬리가 잡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 관짝에 들어있던 용병패는 뭐란 말이냐. 설마 댈런이라는 용병 놈이 차리나 그 년에게 매수라도 된 것인가? 아니, 어쩌면 설마 처음부터 왕실에서 키워낸 초인? 그렇다면 보리스 전하의 암살은 처음부터 계획된···.’

스릉―!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바실리코프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곧장 뒤돌아서며 검을 뽑아 휘둘렀다.

쩌어엉!

그건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오감으로 무언가를 인지한 게 아닌, 오래 단련되어 살기를 느낀 육감이 반사적으로 강제한 움직임.

때문에 몸이 뒤로 확 밀려나며 사방으로 튀는 불티를 보고서야, 바실리코프는 무언가 날아와 자신의 검에 부딪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크으···!”

휘청이는 균형을 간신히 되찾아낸다. 그가 다음 공격을 대비해 검을 들어올린 순간이었다.

패래래랙―!

총탄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왔던 투사체는, 스스로 방향을 틀더니 다시금 번뜩이며 날아가 희생자의 미간을 쪼개고 빠져나갔다.

“커허···!”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주술사. 그리고 다시 번뜩임.

“꺄아아악!”

부관은 본능적으로 작은 철제 방패를 휘저었지만, 빛의 원반은 방패를 손째로 자르고 그녀의 가슴팍에 틀어박혔다.

“흐끄윽, 끄으으···!”

갈비뼈의 절반이 날아가버린 채, 쪼개진 폐부로 숨을 헐떡이는 부관.

바실리코프는 그제야 그게 무슨 주문이나 총탄이 아닌, 한 자루의 손도끼임을 볼 수 있었다.

“무슨···?”

그가 의문을 다 내뱉기도 전이었다.

저벅.

또렷한 발소리가 골목의 어둠 안쪽에 울려퍼진다.

패래래랙!

손도끼는 저 스스로 상처를 비집고 나와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바실리코프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그 궤적을 따라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빨려들어가듯이 손도끼가 안착한 두꺼운 손과,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검고 깊은 두 눈동자를.

그 주인은 두꺼운 복합 갑옷 위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근육의 굴곡과, 뒷골목을 홀로 틀어막을 정도로 장대한 신장과 덩치의 보유자였다.

“하, 하하.”

바실리코프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눈앞의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삼십 분 전까지만 해도 관짝 속에 들어있기를 기대했던 금패 용병이자, 그가 이 먼 타지까지 달려오게 만든 척살 대상이.

척살자 그 자체가 되어, 역으로 자신을 죽이러 이 뒷골목에 발을 들였다니.

“감이 좋군.”

용병이 말했다. 바실리코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니, 지난 십 년간 흠집 하나 생기지 않던 애검에 쩍쩍 금이 간 게 보였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깨진 건 검이 아니라, 자신의 두개골이 됐을 것이 자명했다.

한 번 더 막을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그쪽이 이번 일의 주도자인가?”

용병이 물었다. 저도 모르게 끄덕여지는 고개.

순순한 대답에 용병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가 다시 말했다.

“말이 좀 통하겠군. 우리 할 이야기가 많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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