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특무대(3)
“바실리코프를 심문한 결과, 반란군 놈들은 빠른 시일 내에 전격적인 내전을 계획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르베론의 수제 맥주 한 잔을 곁들인 테이블 위.
차르국 특무대 요원과 대장장이, 그리고 용병 사이에서는 좀 더 길어진 이야기가 오갔다.
“그 산적수염 말이군.”
“예. 놈은 반란군의 왕위 계승 후보자들 중 하나, 보리스 칼라시니코프의 최측근이었습니다. 보리스는 스스로 왕위를 포기하고 방랑하다 당신의 손에 죽었으니, 바실리코프는 사실상 파벌의 실질적인 지도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댈런은 육포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맥주를 들이켰다. 대충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일곱 왕관의 수호단.’
차르국 반란자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칭했다.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반란자들이 왕자나 왕녀라며 내세운 이들의 머릿수가 일곱이기 때문.
당연하게도 반란군의 파벌 역시, 각 왕위 계승자를 중심으로 모두 일곱이나 되었다.
좋게 말하면 하나의 목적을 위한 연합이라 할 수 있었으나, 그건 반대로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동맹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혼자 들고 일어났다간 단칼에 목이 달아날 게 뻔하니, 일단 똘똘 뭉쳐서 왕실을 견제하려는 게 반란자들의 의중.
당연하게도 왕관이 일곱이고 자시고 차르국의 왕홀은 하나뿐이었기에, 일단 현 차리나만 제거하고 나면 사분오열해 저들끼리 치고받고 싸울 테였다.
반란 성공 후 내분으로 인한 멸망.
거대한 제국들이 황혼기 즈음에 으레 밟게 되는 전철이었다.
‘물론 그 지경까지 가기도 전에 차르국 전역이 악마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리겠지만.’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악마를 섬긴 반란군의 결말은 뻔하디 뻔한 법이다.
그때 맥주를 벌컥이며 이야기를 듣던 르베론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그 작전이라는 게 뭐요? 댈런의 말대로 정말 미궁에서 악마를 깨우는 짓거리요?”
“맞습니다. 놈들은 악신 에낙사구스 휘하의 악마, 사슬 옥좌의 칼카스를 지옥에서 불러낼 생각입니다.”
“···맙소사.”
대장장이가 이마를 짚었다. 사슬 옥좌의 칼카스는 르베론도 들어본 적 있을 정도로 유명한 악마였다.
악신 에낙사구스의 휘하에 있는 수백의 악마.
그중 가장 강력한 아홉 악마가, 바로 아홉 옥좌의 주인이라 칭해지는 악신의 직속 악마들이며.
사슬 옥좌의 칼카스는 그중 가장 마지막, 아홉 번째 서열의 악마였으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의 사슬이 옥좌에서 시작되어 대지를 뒤덮고, 그 사슬의 첨단마다 냉기에 잠식된 사냥개가 산 생명을 탐하며 침을 흘려댄다는 놈의 영역.
사슬과 냉기로 가득한 그 지옥의 주인이 화신체로나마 현실에 현현한다면, 차르국의 멸망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을 테였다.
안 그래도 악마에게 홀린 야만족의 침공을 견뎌내느라, 대부분의 병력이 서리고원 전선에 몰려있는 상황.
반란군을 색출할 병력도 마뜩찮은 판에, 난데없이 튀어나온 악마의 화신체를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반란군 놈들이 미궁으로 내려간 건 한 달쯤 전, 그리고 저희가 그걸 알게 된 건 보름 전의 일입니다.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곧장 선발대를 파견했죠. 선발대가 놈들의 발목을 붙잡고 시간을 끄는 사이, 준비를 철저하게 마친 저희 본대가 합류해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상황 돌아가는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르비바흐에서 그를 살해하려 했던 산적수염은, 대륙이 혼란한 틈을 타 반란군이 내전을 일으킬 계획이라 이야기했었다.
허나 아무리 차르국이 서리고원 전선에 많은 병력을 투입했다 해도, 반란군의 전력만으로 철혈군대에 맞서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다.
차르국은 제국과 함께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의 보유국으로 손꼽히는 바.
후방에서 훈련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 부대만으로도, 반란군의 몇 안 되는 병력을 쳐부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까.
따라서 악마를 불러내기로 한 반란군 수뇌부의 선택은 비단 이상할 일이 아니다.
놈들이 불러내기로 한 악마가, 에낙사구스 휘하의 여러 악마들 중에도 하필 사슬 옥좌의 칼카스라는 사실은 참 공교로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미궁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어제 마쳤고, 필요한 물자 역시 전부 보급했습니다. 남은 건 질 좋은 무기와 갑옷, 그리고 길잡이뿐이죠.”
집행관 사샤 타란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댈런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차르국의 왕실 특무대를 대표해 부탁드립니다. 본대의 길잡이가 되어주십시오.”
딱딱하고 사무적인 태도가 한 꺼풀 벗겨진, 진심이 옅게나마 내비치는 목소리.
예상했던 바였다.
외부인인 그에게 이토록 자세한 사정을 늘어놓으면서, 바라는 것 하나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니까.
괜히 방문 앞에서 서성이던 발걸음 역시 같은 맥락일 테고.
“차르국의 명운을 건 작전입니다. 저희에게는 그 누구보다 실력 있는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사샤가 말했다.
미궁의 놀 부족을 무너뜨리고 악마를 죽인 것만으로, 댈런의 실력은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근래에는 저 남쪽에서 용살자라는 이명까지 얻은 바 있으니, 특무대는 이 기회를 어떻게든 잡고자 하겠지.
댈런 역시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시에나와 악연이 깊은 악마가 바로 그 칼카스 아니던가.
까마귀 둥지의 마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특무대에 합류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녀를 구해주기로 버번과 약속한 자신 역시, 비슷한 방식을 취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여기서 어떤 이득을 취하냐겠지.
“알다시피 내 몸값이 좀 많이 올랐소.”
댈런이 말했다. 사샤는 허리를 펴고 대답했다.
“차르국의 황금은 끝이 없습니다. 금화를 수레로 실어가셔도 됩니다.”
“그것도 좋겠다만, 금화는 이미 많소.”
“그렇다면 어떤 걸······.”
“내가 요구하는 보수를 줄 생각이 있다면, 의뢰를 수락하는 걸로 하지.”
“특무대 집행관의 이름을 걸고, 그 어떤 보수라도 책임지고 지급할 것을 약속합니다.”
사샤가 단언했다. 댈런은 피식 웃으며 빈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얼마 뒤, 댈런이 원하는 보수를 들은 집행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다음날.
댈런과 특무대는 순은 구역으로 출발했다.
사샤가 르베론에게 특무대의 갑옷과 무기를 의뢰한 건 약 보름 전.
특무대는 무기와 갑옷을 받자마자 미궁으로 내려갈 예정이었기에, 댈런이 의뢰를 수락한 타이밍은 굉장히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척. 척. 척. 척.
명공의 손에서 탄생한 장비를 걸친 특무대가, 질서정연하게 대로를 따라 순은 성문으로 향한다.
번쩍이는 판금과 사슬 갑옷 위, 곳곳에 드러나는 차르국 특유의 양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는 드물었다.
청동 구역의 남부 지구는 상인과 용병 같은 외부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지역.
그만큼 행인들 역시 잡다한 소문과 도시 밖의 지식에 밝다는 이야기였다.
“저기 보게. 저거 차르국 철혈군대의 문양이야.”
“심지어 순은 구역으로 가는 방향이군. 미궁에 볼일이 있는 건가? 아니면 금강궁에?”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하려나 본데. 어라, 저 덩치 큰 용병은 소문의 악마 살해자 아닌가?”
대로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웅성거림.
댈런의 감각은 작은 속삭임 한 줄은 물론, 흘깃거리는 시선마저도 놓치지 않았다.
물론 그의 표정은 누가 쳐다보건 말건 뚱한 무감정함 그대로였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사람들의 이목 때문이 아니라, 르베론이 지난 몇 달간 만들어온 고심의 역작이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 참 볼수록 굉장한 명품이란 말이야. 미스릴 제련소의 주인이 만든 것 맞나?”
“그렇소.”
“허허, 어떻게 인간의 손에서 이런 명품이 탄생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자네 종족을 비하하는 건 결코 아니네. 다만 단명종 특성상 우리만큼 오랜 세월 기술을 갈고닦는 건 불가능하니까. 범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마어마한 재능이군.”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댈런의 손에 들린 창을 뜯어보는 난쟁이.
외눈의 명공, 비요른 칼라드라쿰은 전날 밤 여관에서 이번 의뢰에 따라오기로 결정했다.
버번은 그의 기억을 왜곡해, 용에 관련된 내용은 싹 지우고 댈런이 시에나를 구하러 미궁으로 향한다는 사실만을 남겨두었다.
술집에서 기절했던 건 대충 너무 퍼마시다 졸도한 걸로 처리한 듯했다. 드워프가 의식을 잃을 때까지 마시려면, 대체 얼마나 독한 술이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 친구랑 한 번 교류해보고 싶었네. 장인으로서 잘 맞을 것 같다는 감이 오더군.”
비요른이 말했다. 댈런은 어깨를 으쓱했다.
둘이 친해져서 나쁠 것도 없지. 사실 후반부까지 버텨낸 꽤 많은 회차에서, 두 장인은 살아남아 절친이 된 이력이 있었다.
“원하면 소개해주겠소. 다음에 한 번 같이 가보지.”
“으하하하! 좋네! 역시 자네는 내 평생 가장 믿음직한 용병이야!”
난쟁이의 호탕한 웃음을 뒤로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순은 구역으로 접어들었다.
고작 성벽 하나 차이로 거리에 북적이던 인파가 확 줄어든다.
넓고 길게 뻗은 대로와, 저 멀리 중앙광장이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잘 정돈된 판석 위를 쉼 없이 걸어, 60명이 넘는 인원이 도착한 곳은 중앙광장의 결계탑이었다.
정오까지 기다린 일행은 성문에 이어 입장료를 금화 단위로 한 번 더 뜯긴 뒤에야, 넓은 홀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미궁에 왕실 특무대라니. 비밀리에 활동하는 사람들 아닌가? 여긴 어쩐 일이지?”
“소문 못 들었어? 보름 전에도 특무대 수십 명이 미궁으로 내려갔다던데.”
“악마 살해자와 특무대가 함께라니. 미궁에 무슨 일이 있나보군. 이번 여정은 특별히 조심하는 게 좋겠어.”
순은 구역에 들어서서 잠시 줄어들었던 웅성임이, 탐험가들이 모인 홀에 들어오며 다시금 자연스레 불어난다.
청동 구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흥미와 호기심이 다분한 시선들.
그러나 동시에 경계심과 의문, 심지어 수습되지 않은 미약한 살의를 품은 눈길마저 느껴진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청동 구역의 행인들과는 달리, 이들에게 있어 댈런과 특무대의 존재는 어쩌면 생존에 직결된 문제일 수 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살기를 쏘아내는 걸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댈런은 자연스럽게 가장 살기 짙은 시선의 끝자락을 따라갔다. 곧바로 마주치는 한 탐험가의 눈.
흉터 가득한 얼굴과 여기저기 수선한 흔적이 다분한 갑옷. 척 봐도 꽤 험난한 시간들을 겪어온 베테랑이었다.
‘흠.’
눈이 마주치고도 남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댈런의 시선을 정면에서 받아내며, 더 강한 경계심을 품는 모습이었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조금, 아주 조금 용의 힘을 끌어올렸다.
화륵.
검은 동공 깊은 곳.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불길.
“히, 히익!”
털썩.
그 불길을 마주한 탐험가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눈이 반쯤 풀린 채로, 식은땀을 흘리며 딸꾹질을 해대는 남자.
“빅터? 왜 그래?”
“뭐야, 무슨 일이야?”
당황한 동료들의 물음에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댈런을 가리켜보지만, 이미 그는 스리슬쩍 다른 특무대원들 사이로 자리를 옮긴 뒤였다.
그렇게 몇 번쯤 살기 어린 시선을 받아쳐주고 나니, 더이상 특무대를 대놓고 경계하는 이들은 없었다.
“뭔가 싸늘하군. 턱이 오들오들 떨려. 그렇지 않나?”
“······.”
곁에 가만히 있던 난쟁이가 파랗게 질린 채, 수염을 벅벅 긁어대는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쿠르르르.
홀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다 된 모양이었다.
댈런은 갑옷 끈을 조이고 무장을 점검했다. 허리춤의 성검과 도끼, 주문살해자, 등 뒤에 맨 르베론의 창까지.
웅웅웅웅―
점검을 마치고 특무대원들과 손을 맞잡자, 결계탑 전체가 진동하며 희미한 공명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바닥의 마법진에서 새어나오는 빛.
점점 강해지다 이윽고 홀을 가득 메운 공명음.
그 빛과 진동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모든 것이 암전되고.
후우우우―
까마득한 구덩이로 추락하듯, 탐험가들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옅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질적인 흙바닥의 감촉. 기분 나쁘게 축축한 공기.
수많은 자극들이 뇌리에 쏟아지며 주변 환경을 빠르게 분석해내는 동안, 댈런은 습관처럼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늘에는 별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모니터 너머에서 셀 수 없이 보아온, 탐험가들의 이정표가 되는 별자리들이었다.
‘귀환비 기준 정남쪽. 꽤 먼 외곽지역인데.’
빠르게 위치를 파악한 댈런은 슬쩍 미소지었다.
나쁘지 않은 시작점이었다.
미궁 1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는, 귀환비를 기준으로 동서남북의 끝자락에 있었기 때문.
먼저 출발한 시에나와 선발대를 따라잡아야 하는 입장에서, 귀환비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이되었다는 건 운 좋은 일이었다.
“후우. 마음의 준비를 해두길 잘했습니다. 바닥 없는 낭떠러지로 낙하하는 감각이라니, 평범한 공간전이 마법과는 확실히 다르군요.”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사샤가 말했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확실히 특무대가 대단하긴 했다. 미궁 경험이 전무한 요원도 많다던데, 용케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은 걸 보면.
‘이거 말해주면 루시아가 자존심 상해하겠군.’
저 남쪽에 있을 금발 성기사를 떠올리며, 댈런은 자연스레 손도끼를 뽑아들었다.
“갑자기 도끼는 왜······.”
사샤가 의문을 표했다. 댈런은 가볍게 그녀의 뒤쪽을 턱짓했다.
일행이 발 디딘 곳은 습기 녹진한 지면이었다. 모래밭과 늪지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땅.
그리고 그 공터의 사방에는 사람 키만큼이나 높게 자란 수풀이 가득했다.
댈런의 턱짓을 따라 수풀 지대로 고개를 돌린 사샤가, 잠시 눈살을 찌푸리다 뒤늦게 표정을 경악으로 물들였다.
“전원! 전투 준···.”
패래래랙―!
집행관의 명령을 비집고, 도끼의 파공성이 특무대 전열을 가른다.
요원들의 어깨와 머리 사이를 절묘하게 빗겨 지나간 도끼는, 수풀 지대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우르르르륵!
그 순간 그저 높게 풀들이 자라올랐을 뿐,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수풀 지대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고.
콰지지직―!
어둠 속에서 평소보다 희미한 빛의 원반이, 위장색으로 몸을 물들인 프로그맨의 머리통을 연달아 가르고 지나갔다.
퍽―!
쿠르륵···.
세 번째 머리통을 쪼개고서야 부르르 떨며 멈춘 손도끼.
개구리 머리를 한 마물이 쓰러짐과 동시에, 사방을 둘러싼 수풀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우루룩!
우루루루루!
수풀이 들썩인다.
기습에 실패했음을 눈치챈 프로그맨 무리가, 기묘한 울음소리와 몸짓으로 서로에게 사냥의 시작을 전달하는 것.
일행이 디딘 작은 공터에서, 그건 마치 미묘한 공간의 일그러짐처럼 보였다.
“이, 이건 대체···!”
“프로그맨이다! 몇 마리야?”
창백하게 질린 특무대 요원들. 비명에 가까운 침음들이 터져나온다.
보호색 띤 프로그맨들은 셀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미궁 1층. 남부 지역의 드넓은 늪지대에 자리 잡은 수천 마리 규모의 프로그맨 대부족.
일행이 전이당한 미궁 1층의 정남쪽 끝자락 지역은, 그 대부족의 서식지 한가운데였으니까.
스릉―
댈런은 성검을 뽑아들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싸움이었다.
왼팔을 휘감아 용의 힘을 억누르는 새끼 청린용 덕에, 그동안 스스로 제약하던 힘의 족쇄마저 풀린 상황.
저절로 꿈틀거리는 입꼬리를 주체하기 쉽지 않다. 댈런은 웃음을 감추지 않은 채 발을 내디뎠다.
투웅―
가볍게 땅을 밀어찬 발걸음이, 허공에 띄엄띄엄 연이은 파문을 남겨내고.
별 가득한 밤하늘 아래로, 전사의 그림자가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