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08화 (107/288)

미궁 2층(1)

우루···?

우르륵?

수풀 사이. 당혹감 어린 울음소리들이 퍼져나간다.

위장색을 한껏 덧칠한 개구리 머리통들이, 눈을 뒤룩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놈들은 인간족이 저렇게 높게 나는 걸 본 적 없었다.

인간들은 기껏해야 두 발로 땅을 걸어다니며, 불안하게 휘청대다가 수면침 한 방에 고꾸라지는 사냥감 아니었던가.

우르르르?

꽤 고등한 사고체계를 가진 마물이기에, 오히려 공포 이전에 의문을 품어버린다.

달아날 마지막 기회는 그렇게 지나갔다.

투웅―

수십 미터 상공. 전사의 몸이 반전했다.

허공을 거꾸로 디딘 발끝에서 동심원의 파문이 일어나고.

우르르릉···.

심상 너머에서 퍼져나온 우렛소리가, 팔과 손아귀를 따라 진동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댈런은 마력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지면을 내려다보며, 입가 한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스으으―

어깨에서 시작되어 팔을 내달리는 아지랑이가, 점차 거세지며 회오리 같이 변모하고.

쿠르르릉···!

검끝에서 충만하게 피어오른 우렛소리와 섬광이, 그 분쇄의 기운에 뒤섞여 한 줄기 빛살로 변한다.

그리고.

번쩍―!

메마른 밤하늘에 벼락이 내리꽂혔다.

쩌저저저저정―!

수풀 한가운데서 폭풍이 일어난다.

물컹한 살과 날카로운 이빨, 단단한 뼛조각, 그밖에 내장과 피와 잘려나간 풀잎 조각들의 폭풍이었다.

번뜩이는 섬광에 음영이 반전된 프로그맨들이, 뒤따른 폭풍에 휘말려 사지가 찢겨나갔다.

우르르르!

구르륵!

당혹감 가득한 울음소리가 수풀 사이로 울려퍼진다.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프로그맨들의 모습은, 마치 수풀이 물러나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그 한가운데.

사방에 검은 피와 내장이 널브러진 늪지 구덩이 속.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난 댈런은 두 손으로 검을 고쳐 쥐었다.

사냥의 시작이었다.

스각!

성검이 번쩍인다. 머리통이 둥실 떠올랐다.

공격을 인지하기는커녕, 스스로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었음도 깨닫지 못한 개구리 머리.

그 머리가 땅에 닿기도 전에, 댈런은 머리 잃은 몸을 지나치며 검을 두 번 더 휘둘렀다.

스가가각!

좌에서 우로 휘둘러진 검로. 갈퀴 달린 팔다리 수십 개가 공중에 비산한다.

콰지직―!

한 걸음 더 내디디며 반대로 그어진 궤적. 이번에는 내장과 쪼개진 머리가 우르르 쏟아진다.

성검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올려 베고, 가슴팍을 찔러 꿰뚫는다.

그건 마치 한 폭의 춤사위 같았다. 검은 피와 내장을 흩뿌리며, 마물의 죽음을 불러오는 춤사위.

첫 번째 벼락에 수십의 프로그맨이 찢겨나가고, 이어진 짧은 춤사위로 동수에 달하는 개구리 머리가 늪지에 굴렀다.

프로그맨들이 정신을 차린 건 그제서였다.

우루루루루루!

반격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사냥이 아니라, 영역을 침략한 포식자를 몰아내기 위한 외침이었다.

여기서 물러난다는 건 곧 알과 둥지를 포기한다는 뜻.

고작 백여 마리 남짓 죽어나간 것 가지고, 보금자리를 포기하고 달아날 수는 없었다.

파삭!

불쑥 풀숲 사이로 개구리 아가리가 튀어나온다.

눈에 띄는 기척도, 평소의 울음소리도 없었다.

사방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치는 프로그맨 특유의 울부짖음 속에서, 오히려 진짜 이빨을 드러내는 건 소리없이 다가온 놈.

주먹만 한 이빨이 전사의 목덜미를 노린다. 날카로운 첨단에는 독액이 번들거렸다.

댈런은 뒤돌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입술을 달싹이며, 검을 놓은 왼손 끝을 까딱 움직였을 뿐.

패래래랙!

그리고 다음 순간.

쩍 벌어진 아가리 한가운데, 푸른 전격으로 둘러싸인 손도끼가 틀어박혔다.

우르르륵!

파지지지직!

전격 머금은 도끼가 두개골을 쪼개고 튀어나온다.

쩍 벌어진 두개골 안쪽에서, 검게 타버린 두뇌와 뇌수가 후두둑 떨어졌다.

손도끼는 마치 제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수풀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댈런의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번쩍이는 궤적 뒤로 프로그맨의 찢어지는 비명이 따라다닌다. 댈런도 다시 움직였다.

도끼에 부상을 입은 프로그맨을 동강내고, 감전되어 쇼크에 빠진 놈의 머리를 쪼갠다.

검은 피와 내장이 풀숲을 뒤덮었다.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핏방울은 보호색마저 반쯤 의미 없게 만들었다.

그즈음 특무대 역시 혼란을 수습하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집행관, 사샤 타란이 외쳤다.

“특무대! 원형진!”

그녀의 명령에 특무대 요원들이 신속하게 대형을 바꿔낸다.

공간 전이 직후의 산개된 진형에서, 원형으로 세 겹의 사격진이 구축되기까지는 단 십여 초.

움직이는 사이에 장전된 장총이, 전방위를 향해 총구를 기울였다.

사선의 끝은 위장색에 물든 프로그맨의 머리 한가운데.

“1열 발사!”

타다다다다당!

총구가 불을 뿜었다. 납탄 세례에 프로그맨들이 고꾸라졌다.

타다다당! 타다당!

사격을 가한 1열이 재장전하는 동안, 2열과 3열이 연달아 납탄을 쏟아내고.

쏟아지는 탄환의 비를 꾸역꾸역 받아내며 전진한 프로그맨들의 틈 사이로, 기다렸다는 듯이 비요른의 유탄이 날아들었다.

“흐흐! 이거나 받아라!”

꽈과광! 꽈광!

폭압이 피부를 짓뭉갠다. 파편이 뼈와 근육을 으깬다.

프로그맨 무리는 유탄의 폭발에 휩쓸려 마치 도미노처럼 우르르 넘어졌다.

이미 세 차례에 달하는 일제사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전열.

마물의 질긴 피부와 단단한 골격이라도, 그 위에 더해진 유탄 세례를 견뎌낼 도리는 없는 법이다.

“사격!”

타다다다당!

신속한 재장전 이후 다시금 쏟아지는 탄환의 비.

장총과 권총을 번갈아 사격하며, 특무대는 능란하게 탄막의 공백을 줄여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공백을 비요른의 화력 지원으로 메꾸며, 일행의 주변에는 프로그맨의 시체가 마치 바리케이드처럼 차곡차곡 쌓여갔다.

동시에 한참 떨어진 프로그맨의 무리 한가운데에서도, 그 두 배는 되는 시체의 산이 쌓아지고 있는 상황.

미궁 1층 남부의 늪지대를 주름잡는 대부족이라도 머릿수의 한계는 존재하는 법이다.

우르르르!

와륵! 우르르륵!

결국 하나둘씩 주춤거리며 물러서던 놈들은, 죄다 발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중에 보호색마저 벗어던지고, 기습이라는 전략을 포기한 채 무식하게 육탄돌격까지 해댔지만 통하지 않았다.

비요른이 진형 주위로 재빠르게 깔아놓은 원시적인 클레이모어가, 놈들의 면전에 수백 발의 납탄을 쏟아부으며 마지막 공세마저 저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습격한 프로그맨의 절반 가까이가 죽고, 나머지 절반 남짓은 도망간 뒤.

“휴우.”

천으로 성검에 묻은 피와 내장을 닦아내는 댈런에게, 사샤 타란이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그녀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판단이 경솔했습니다. 미궁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곳이 맞군요.”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상 댈런과 비요른이 없었더라면 전멸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숙련된 사수들에게 최신 병기를 쥐여주고, 검증된 전략과 사전 지식으로 충분한 공부를 마쳤다고 생각했음에도.

마물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 미궁이라는 마경은, 그 최정예 병력을 단 한순간에 시체 무더기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장소였던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높은 값을 보수로 부르셨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대로, 요구하신 사항들을 최대한 빠르게 이행하도록 하죠.”

“좋소.”

댈런은 검을 꽂아 넣고 일어섰다.

오랜만에 몸을 풀어서 그런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프로그맨이 생각보다 짭짤하게 경험치를 주어서이기도 했다.

미궁이라는 독특한 환경 속에서 자란 마물들은, 확실히 대륙의 마물보다 강하고 질겼다.

그만큼 경험치도 많다는 뜻이었다. 근래 레벨업이 시원찮던 댈런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정비는 끝났소?”

“장비 점검은 끝났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동하면···.”

“휴식은 나중에 취하시오.”

댈런이 말했다. 그는 프로그맨 머리통에서 도끼를 뽑아내 허리춤에 갈무리했다.

“선발대와 벌어진 격차를 메꾸려면 한시가 급하오. 길잡이로 보수를 받아먹었으니, 할 일은 해야지.”

“그, 그렇지만 전투의 피로가.”

“이따 밤에 자면 되잖소. 바로 출발합시다.”

댈런은 그 말을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길잡이로 고용한 사샤의 얼굴이 핼쑥해지는 순간이었다.

***

미궁 1층의 남쪽 끝자락.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는, 늪지 한복판의 동산에서부터 시작되는 완만한 동굴이었다.

육십 명의 인원이 한 번에 들어가고도 전혀 비좁게 느껴지지 않는 거대한 동굴.

미궁은 지상의 대륙과 분리되어 저만의 생태계를 이룬 세상인 만큼, 이런 동굴 속에도 다양한 토착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토착 생물들이, 인간을 한 입 거리 간식으로 씹어먹을 만한 마물들이라는 것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었고.

캬아아아아!

거대 지네가 독니를 들이민다. 독니 사이에는 살점 대신 손도끼가 꽂혔다.

끼이―! 끼이―!

촉수 돋은 박쥐 떼가 날아들고, 인육을 탐하던 그들의 몸짓은 총알과 도끼로 화답을 받았다.

독침을 쏘는 대형견 크기의 딱정벌레.

털이 북슬북슬한 다리 스무 개로 사냥감을 휘어잡는 땅거미.

동굴의 웅덩이에 숨어 사냥감을 기다리는 물구렁이나, 종유석을 떨어뜨려 희생자의 머리를 부수는 탁색의 슬라임까지.

온갖 마물이 저들만의 세력다툼을 하는 1층도 마경이었으나, 2층으로 내려가는 동굴은 그조차도 비견될 수 없는 지옥 그 자체였다.

댈런이 위기 상황마다 적재적소에서 건넨 조언과 도움이 없었다면, 특무대가 하루 만에 전멸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꼬박 이틀이 흘렀다.

“어쩌면 선발대의 피해가···생각 이상으로 심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궁에 들어와 두 번째로 맞는 밤.

집채만 한 갑각 벌레의 굴을 빼앗아 꾸린 야영지의 모닥불 앞에서, 사샤 타란이 넋 잃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댈런은 저녁 먹고 남은 스튜를 퍼먹다 말고 그녀를 쳐다봤다.

초조하게 입술을 뜯는 손가락. 허공을 방황하는 눈동자.

동굴을 주파하는 낮 동안에는 보이지 않았던 얼굴이다. 아마 부하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내비칠 수 없었던 것이겠지.

그나마 불침번인 댈런과 비요른을 제외한 모두가 잠든 지금이, 그녀에게는 마음을 온전히 풀어놓을 수 있는 시간일 테였다.

“그리 심각하지는 않을 거요. 못해도 삼분의 이는 생존했겠지.”

댈런은 입안의 스튜를 꿀떡 삼키고 말했다. 이쯤에서 조금 달래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특무대의 집행관이라 해도 결국 인간이고, 부정적인 감정은 쌓아두기만 하면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니까.

예상 밖의 대답이었는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는 사샤를 향해 댈런은 무덤덤하게 덧붙였다.

“그쪽도 좋은 길잡이가 붙었으니까.”

“까마귀 둥지의 정보상 말입니까? 댈런 당신과도 몇 번 거래가 오간 사이라고 듣긴 했었습니다만, 미궁에 내려온 경험은 전무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궁도시의 정보상만큼 미궁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겠지.”

그리고 일신의 무력 역시, 어지간한 탐험가들 못지않게 뛰어난 편이고. 뒷말은 꺼내지 않았다.

까마귀 둥지의 정보상, 시에나에 대해 세간에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다.

그녀가 깃털의 마녀라는 건 물론이요, 그녀의 출신지나 성장 배경에 대해서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건 그녀 자신의 무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5연발 쇠뇌를 수준급으로 다루고, 술집에서 행패 부리는 용병들을 손봐줄 수 있을 정도라고 어렴풋이 알려져 있을 뿐.

때문에 사샤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은 듯했지만, 그래도 댈런의 확답이 효과가 없지는 않았는지 약간 마음이 놓인 얼굴이었다.

그때 가만히 술병을 기울이던 드워프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2층에 내려간 뒤에는 어떻게 할 건가? 운이 좋아 2층 입구에 빠르게 접어들었다 하지만, 시에나와 선발대는 여전히 열흘 거리쯤 앞서 있을 걸세.”

“저도 같은 걱정이 들긴 했습니다. 미궁 2층은 드넓은 사막 지대라고 들었는데, 지름길이 없는 이상 선발대를 어떻게 따라잡을지······.”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그는 말없이 비요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쟁이는 순간 멈칫하더니, 약간 떨떠름하게 술병을 건넸다.

독한 술을 한 모금 들이킨 댈런은, 낮게 웃으며 답을 내주었다.

“택시를 잡아야지.”

“택시?”

“아니, 이번에는 버스라고 부르는 게 맞겠군.”

비요른이 무슨 소리냐는 듯 눈썹을 추켜올렸다. 댈런은 대답 대신 웃기만 하며 술병을 기울였다.

이 모든 대륙과 미궁이 그저 모니터 너머의 픽셀 덩어리이던 시절.

미궁 1층에서 그랬듯, 미궁 2층에서도 댈런은 종종 현지의 이동수단을 이용하곤 했다.

잠깐 진정됐던 사샤의 눈동자가, 그의 계획을 들으며 다시 떨리기 시작하는 걸 보고 댈런은 생각했다.

멀미에 약한 금발의 성기사 루시아가, 이번 여정에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