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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10화 (109/288)

미궁 2층(3)

콰르르르―!

모래의 파도가 치솟는다. 그 높이는 십여 미터 이상.

강렬한 빛을 내뿜는 모래폭풍이 지면을 휩쓸고, 언덕과 계곡이 실시간으로 무너지는 동시에 새로 만들어졌다.

콰르륵! 우지직―!

땅속 깊은 곳의 기반암이 조각나 튀어오른다. 비쩍 마른 사막나무들은 꺾이다 못해 바스라졌다.

지면 아래에서 연약한 사냥감을 노리며 도사리던 마물들이, 느닷없는 재앙에 휩쓸릴까 싶어 부리나케 줄행랑을 쳤다.

그리고 그 천재지변의 한가운데.

[캬아아아아!]

재앙의 원인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샌드웜의 몸통 위에서, 댈런은 창대 하나를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흠.”

한 손으로 창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는다.

그 여상한 손짓 아래에서는, 미궁 2층의 최상위 포식자가 고통 어린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콰직!

그렇게 말하며 더 깊이 밀어넣는 창끝.

파지지직!

창 전체를 뒤덮은 푸른 전격의 그물이, 비늘을 뚫고 박힌 창끝을 따라 샌드웜의 내부를 파고든다.

샌드웜이 아무리 거대한 마물이라 해도, 근육과 내장을 직접 지지는 감전의 고통에서 자유롭기란 불가능한 법.

거기다 작열사막이라는 환경 특성상, 열기와 냉기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 놈의 몇 안 되는 약점 중 하나가 바로 전격이었다.

‘물론 그것도 온몸을 덮은 비늘을 뚫을 수 있을 때 이야기지만.’

사실 샌드웜의 비늘은 어지간한 금속의 강도를 뛰어넘는 물질이었다.

쇠뇌 화살은 물론, 특무대의 장총에서 발사된 총탄조차 흠집만 남기고 튕겨내는 걸 보면 말 다한 셈.

초인적이라는 말조차 부족한 완력의 보유자인 댈런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무구가 그 어마어마한 힘마저 온전히 받아낼 수 있는, 르베롱 아하킴의 최신 걸작이 아니었더라면.

단단한 비늘을 부수고 살점을 헤집은 끝에, 놈의 몸을 안에서부터 전격으로 지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캬악! 캬악!]

꽈과과과―

그때 샌드웜이 제 몸통을 바닥에 내던지기 시작했다. 댈런을 깔아뭉개려는 의도였다.

댈런은 간단하게 대처했다. 창을 뽑아들고 뛰어, 허공을 도약하며 다른 부위에 착지하는 것.

원체 거대한 몸뚱이였기에 찌를 곳은 많았다. 전격을 품은 창이 다시 한번 비늘을 꿰뚫었다.

파지지지직!

다시 한번 더 외어낸 주문에, 한층 강력하게 주입되는 푸른 전격.

깨진 비늘 사이로 자욱한 연기와 함께, 고기 타는 역한 냄새가 훅 올라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까.

[캬아악! 캬아아아!]

샌드웜이 비명을 토했다. 그건 드워프제 굴삭기처럼 생긴 주둥이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주둥이 근처의 머리통. 그 위에서 끔뻑이는 수천 개의 검은 눈동자들.

환공포증을 불러일으킬 듯, 바글바글 모여있는 크고 작은 눈알들이 빠르게 진동하며.

[캬아아아아!]

서로가 서로의 소리에 공명하고 간섭해, 이 기괴한 비명소리를 만들어내는 것.

“시발.”

신경을 곤두세우는 비명에 눈을 찡그렸다. 다음 순간 그 비명에 실린 저주가 온몸을 덮친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젖어드는 탈력감.

우웅―

그러나 찰나가 지나기도 전에, 왼쪽 어깨에 새겨진 작은 룬 문자가 빛을 내뿜으며 탈력감이 일부 해소되었고.

[으헙헙! 그, 그마···음냠냠냐!]

이어진 악마의 게걸스런 폭식으로, 저주 자체가 소멸되며 탈력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투웅―!

댈런은 다시 도약했다. 이번에는 좀 더 주둥이에서 먼 동체를 노릴 생각이었다.

샌드웜을 작열사막의 이동 수단으로 쓰기 위해서는, 놈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하는 바.

이를 위해 오랜 시간 적은 피해를 누적해가며, 놈의 육체와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가 의식을 날려버리는 게 가장 정석적인 공략법이었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댈런은 자신 있었다.

모니터 너머에서 고작 한두 번 해본 일도 아니거니와, 당시의 캐릭터들보다 댈런의 무력은 월등하게 강했으니까.

이미 놈의 몸 곳곳에 열 개가 넘는 구멍이 뚫려있었다. 아마 비슷한 구멍이 백 개쯤 뚫리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겠지.

“레니아― 바사크.”

파지지직!

창대 위에서 꺼져가는 전격을 재차 불태우며, 댈런은 두꺼운 비늘 위로 창을 내리찍었다.

***

사냥은 순조롭게 진행되어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댈런은 예상 밖의 문제에 봉착했다.

“쯧.”

당연한 이야기겠으나, 이 거대한 마물이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전투가 시작된 이레, 놈이 댈런을 향해 이빨을 들이댄 횟수만 수십 번.

하지만 댈런은 그럴 때마다 허공을 도약해가며, 몸통 어딘가에 다시 창을 꽂고 전기를 쏟아 넣었다.

강력한 수면의 저주는 어째서인지 통하지도 않고, 깔아뭉개려는 시도 역시 번번이 무산된다.

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물은 즉시 눈길을 돌렸다.

그 대상은 바로 지상에서 총탄을 쏘아내던 인간족들.

눈앞의 전사보다 큰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방치했으나, 그 전사의 동료로 추정되는 이들이 놈의 다음 타겟이었다.

[캬아아아아!]

수천 개의 눈알이 내지르는 비명.

오롯이 댈런에게만 집중되던 저주 품은 비명이, 이제는 특무대와 드워프를 그대로 덮쳐든다.

“흐읍···!”

특무대 요원이 고꾸라진다. 눈을 까뒤집고, 입술을 부르르 떠는 요원.

모래바닥에 철푸덕 널브러진 요원은, 잠시 꿈틀대다가 이내 안정적으로 호흡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샌드웜의 비명은 시선 닿는 곳에 한해 작용하는, 강력한 마물마저도 잠재우는 수면의 저주였다.

샌드웜은 그 저주를 이용해 마치 거미가 사냥감을 마취시켜서 천천히 빨아먹듯이, 기절한 사냥감을 뱃속에서 조금씩 녹여먹는 걸 즐기는 마물이었다.

[캬아아아아아!]

효과가 있다 판단한 걸까. 놈의 몸부림과 저주가 더욱 거세진다.

그 이빨이 직접 요원들을 향하는 건 어떻게든 저지할 수 있었으나, 눈알만 돌리면 쏟아지는 저주까지 막아내는 건 댈런이라도 불가능했다.

“흐읍···!”

“커허어······.”

순식간에 픽픽 쓰러지기 시작하는 요원들.

이대로 자칫 내버려두면 모래폭풍에 생매장당하거나, 눈먼 돌덩이에 맞아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저주에 저항을 가진 건 댈런 혼자가 아니었다.

“댈런! 오래 걸리는가!”

까마득한 수십 미터 아래. 난쟁이 비요른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모래폭풍과 우르르 튀는 돌더미를 피하며, 기절한 특무대 요원을 어깨에 둘러매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종족 특성상 어지간한 저주에는 아예 면역을 가지는 난쟁이족.

비요른의 활약 덕에, 쓰러진 요원들 중에 사망자는 하나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거 생각보다 까다롭게 흘러가는데.’

콰드득!

댈런의 손길 역시 바빠진다.

비늘 하나를 거칠게 잡아뜯고, 전격을 최대한으로 흘려넣으며 그는 생각했다.

사실 마물 하나 죽이는 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미궁 2층의 포식자인 샌드웜이라 한들, 부상당한 진룡을 사냥한 그에게 적수가 될 수는 없었으니까.

진룡의 검붉은 화염을 사용한다면, 열기 저항이고 뭐고 무시하고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고.

성검의 힘을 끌어올려, 토막쳐 버리는 동시에 번개로 구워버리는 것 역시 가능했다.

‘문제는 죽여서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부상을 입혀서도 안 된다는 거지. 적당히 두들겨서 기절시키는 게 목표니까.’

게임은 현실에 비해 여러 요소들이 축소된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대표적인 게 시간이었다.

모니터 너머에서는 10분쯤이면 샌드웜을 기절시킬 수 있었는데, 직접 맞닥뜨려본 결과 놈을 기절시키는 데는 그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당장은 비요른이 분주하게 움직여준 덕에 사망자가 없었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흘러갈 수 있을까.

샌드웜은 위기감을 느낄수록 더 발악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더 넓은 일대가 쑥대밭이 되는 걸 피할 수는 없을 테였다.

‘쯧. 저주 내성 아이템이라도 몇 개씩 걸치고 왔어야 할 것을.’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차는 순간.

‘···저주.’

번뜩이며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에, 댈런은 곧장 아공간의 악마를 호출했다.

‘야.’

[흐업읍! 쩝쩝쩝. 왜, 으읍, 왜 그러십니까요?]

‘맛있냐?’

[······.]

아공간 속. 악마가 행동을 멈췄다.

입이 터질 듯 부분 채, 놈은 쉽게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오랜만의 포식으로 방금까지 행복감이 묻어나던 눈동자에, 어째서인지 두려움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는 모습.

눈치 빠른 불사의 악마는 벌써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한 것이었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그가 말했다.

“몸뚱이 접어.”

[···예?]

“대충 망치나 철퇴 같은 형태로. 명령이다.”

[아, 아니 먹을 땐 개···끄에엑! 꾸븝!]

아공간에서 악마가 접혀갔다.

단순히 크기를 줄일 때와는 달리, 원하는 형상을 취하게 하는 건 시간이 좀 걸렸다.

그 사이 댈런은 샌드웜에게서 창을 뽑아냈다. 창을 등 뒤에 수납하고, 그대로 비늘 위를 박찬다.

투웅―!

허공에 파문이 일어나며 멀어지는 전사의 신형. 그 기척을 느낀 샌드웜은 즉시 고개를 돌렸다.

놈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검은 눈동자들이 댈런을 노려봤다.

[캬아아아아!]

파도처럼 덮쳐오는 저주. 통하지 않는 걸 알고 있었으나, 조금이라도 틈을 만들기 위한 발악이었다.

그 사이 땅 위로 절반 이상 드러난 몸뚱이가, 지면을 헤집으며 모래폭풍을 만들어내고.

모래바람을 연막 삼아, 쩍 벌어진 열 겹의 주둥이가 댈런을 노리고 쏘아진다.

한 번만 걸리면 되었다.

샌드웜의 판단은 그랬다.

바위마저 갈아버리는 그의 주둥이와 이빨에 닿는 순간, 아무리 강철 같은 전사의 육신이라도 한줌의 고깃덩이가 될 테니까.

[캬아아아아!]

그리고 다가오는 주둥이 앞에서.

[꾸읍···.]

댈런은 거대한 망치를 꺼내들었다.

스으으으······.

거무튀튀한 망치. 손잡이의 길이만 해도 이 미터에, 둥근 곡선의 망치머리는 비정상적으로 비대하다.

망치머리에서는 저주의 기운이 뭉클거리며 솟아나고, 그 중간에 휘감긴 사슬은 마치 타락한 성물마냥 어두운 마력을 줄기줄기 흘려낸다.

전설 속의 대전사나 사용할 법한 거대한 양손망치를 손에 쥐고, 댈런은 다시금 허공을 박찼다.

투웅―!

그의 신형이 모래폭풍 속을 거칠게 헤쳐나간다. 샌드웜 역시 주둥이를 쩍 벌리고 이빨을 드러냈다.

샌드웜은 영민한 마물이었다. 놈은 본능적으로 이게 마지막 격돌이 될 것임을 느꼈다.

카가가가가각!

회전하는 주둥이 속, 지하 깊은 곳의 통로를 개척하는 이빨이 마찰하며 불꽃을 튀기고.

[캬아아악―!]

끔뻑거리는 수천 개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저주의 기세를 쏘아낸다.

그리고.

“으브브븝!”

망치머리 한가운데가 쩍 열리며, 그 저주를 죄다 삼키는 걸 보고 샌드웜은 직감했다.

저 인간족의 손에 들린 무기가, 지금껏 자신의 저주를 무효로 만들던 근원이며.

절대 평범한 망치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

그러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뿌드득!

망치 손잡이를 쥔 두 팔에 힘줄이 돋아난다. 허공을 연달아 격한 전사의 신형은 소리의 속도와 맞먹었다.

이미 음속에 닿은 전사가, 전력을 다해 휘두르는 망치에서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고.

꽈광―!

“그아으아아압! 토, 토할 것 같···!”

몽실몽실한 떡덩이처럼 출렁거리며, 비명을 흘려내는 망치머리.

떠어어어엉―!

눈을 까뒤집은 악마의 몸뚱이가, 당황해서 주춤거리는 샌드웜의 주둥이를 후려친 순간.

“구웨에에에엑!”

샌드웜이 지금껏 쏟아내던 수면의 저주를 응축한 정수가, 악마의 입에서 토해져 원래 주인의 주둥이 위를 한가득 덮쳐버렸다.

[캬학, 칵···!]

샌드웜이 비틀거렸다. 놈의 두뇌가 서서히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치면 거대한 비살상 고무 망치에 머리통을 얻어맞고, 거기에 더해 수면 가스 캡슐을 입에 물린 채 터뜨린 수준.

[캬···륵······.]

머지않아 수천 개의 눈동자가 스르르 초점을 잃었고.

쿠르르르릉···.

거대한 샌드웜의 몸뚱이가 지면으로 추락했다.

“···맙소사.”

막 기절한 집행관의 몸뚱이를 안전한 지대에 옮기고 온 드워프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저 눈만 끔뻑거렸다.

그 곁으로 댈런이 다가왔다. 손에는 음울하게 빛나는 사슬에 악마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비요른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악마를 가리켰다. 그가 말했다.

“서, 설마 그거···.”

“악마요. 내 노예지. 배낭 겸 무기이기도 하고.”

“······그럼 이것도?”

악마를 가리키던 손가락이, 살짝 떨리며 거대한 황톳빛 기둥을 향한다.

댈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잘 봤군. 노예 2호요. 전용 버스 역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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