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12화 (111/288)

깃털의 마녀(1)

꽈과과광!

모래가 파도처럼 치솟는다. 훅 밀려오는 폭풍.

시야를 가리는 불꽃과 모래알 사이, 수십 개의 작은 납탄들이 비산하는 게 보였다.

시에나는 가까스로 손을 뻗었다. 그녀가 주문을 외었다.

“녹스, 펠리렘···!”

까가가가강―!

찰나 사이에 만들어진 보호막에, 납탄들이 불꽃을 튀기며 튕겨나간다.

허나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곁에 있던 특무대 요원 몇이, 보호막을 빗겨간 총알에 맞고 쓰러졌다.

“커헉···!”

“아악! 끄아아악!”

피가 꿀렁이는 목을 부여잡고 꺽꺽대는 남자. 그 곁에서 반쯤 터져나온 창자를 쓸어 담는 여자.

피륙이 파편에 찢기고, 폭압에 눌려 터지며, 화염에 익어간다.

작정하고 매설한 화약 무기들 사이에서 인간은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마법사님! 후퇴···후퇴하셔야 합니···커어억!”

꽈과과광!

헐떡거리며 기어오던 선발대의 부대장이 폭발에 휘말려 날아간다.

옆구리를 강타한 폭발은 부대장의 몸을 정확히 두 조각으로 나눠버렸다.

좀 더 적나라하게는 두 조각과 수백 파편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내장과 핏덩이의 비 아래, 시에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빌어먹을. 매복을 예상하지 못하다니.’

선발대의 작전은 순조로웠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반란군의 병력은 열 개 파티로 나뉘어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느라 힘의 낭비가 막심하고, 전문적인 길잡이를 고용한 게 아니라 이동 역시 더디던 반란군.

반면 선발대에는 뛰어난 길잡이이자 추적자인 시에나가 있었고, 마흔 명의 특무대 역시 적응력이 어지간한 탐험가 수준으로 좋았다.

전투력의 격차 역시 상당했다.

혈통의 힘을 제하더라도 뛰어난 술사인 그녀. 최신 화기와 탁월한 사격술로 무장한 요원들.

머릿수부터 몇 배 차이가 나는 상황에, 기껏해야 열 남짓 되는 반란군 파티가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선발대는 놈들의 뒤를 쫓으며 미궁 1층에서 파티 하나, 2층에서 둘을 처치했다.

어쩌면 본대가 합류하기 전에 임무가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 한 곳에 모여서 역습을 가할 줄이야. 대비는커녕, 생각도 하지 못했어.’

처음부터 내분이 깊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깊은 내분조차 의미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서일까.

반란군은 남은 일곱 개 파티 중 다섯을 규합해, 이동 중이던 선발대를 드넓은 모래구덩이에서 급습했다.

구덩이 전체에 걸쳐 매설한 폭약과, 구덩이를 둘러싼 언덕에서 시간차로 가하는 교묘한 저격.

여기서 끝장을 보자고 마음을 먹었는지, 지독할 정도로 촘촘하게 묻힌 폭약은 끝도 없이 터지고 있었다.

꽈과광! 꽈르르······.

구덩이 주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모래와 불꽃, 파편의 향연.

이번에도 가까스로 보호막을 덧씌워내며, 시에나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실력 있는 마법사인 그녀의 존재를 인지해서일까. 반란군은 의도적으로 폭발을 분산시켰다.

꽈광! 꽈릉―

불규칙적이면서, 동시에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폭발.

차라리 한 번에 다 같이 터지면 막아보기라도 하겠는데, 이런 식이면 사람인 이상 체력과 집중력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주문이랑은 다르게, 화약 폭발은 전조랄 것도 딱히 없으니······.’

격발장치 위에서 손가락 까딱이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히 강력한 마법 수준의 폭발이 일어난다.

강렬한 의지의 발산도, 또렷한 살기도 없는 기계적인 움직임이 전부.

외눈의 명공, 비요른 칼라드라쿰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본 시에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기폭장치를 든 놈만 죽이면 될 텐데···.’

문제는 언덕 위에 매복한 적들이 수십이라는 것.

어지간히 초인적인 감각의 보유자가 아니라면, 그 중 누가 기폭장치를 들고 있는지 파악할 방법은 없었다.

당연히 그녀가 할 수 있는 대응도 제한적이었다.

그저 보호막으로 요원들을 지키고, 쇠뇌나 충격 주문으로 이따금씩 반격을 날리는 것뿐.

그녀도 이럴진대 요원들이야 무기력하게 당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폭발과 파편에 쓰러진 요원이 벌써 두 자릿수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절반 정도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마녀의 힘이 멀쩡했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주문 몇 줄로 손쉽게 일대를 갈아엎고, 손 한 번 까딱이는 걸로 순식간에 반란군 놈들을 전멸시켰겠지.

그나마 어릴 적 뒷골목 마법사들의 어깨너머로 배웠던 가락이 있어, 이렇게 보호막이라도 펼칠 수 있는···.

꽈아아앙―!

생각을 끊고 폭음이 뇌리를 울린다. 반사적인 보호막 주문은 온전하지 못했다.

코앞에서 터져나온 불길과 폭압은 밀어냈으나, 파편까지 모두 막아내기에는 역부족.

보호막을 뚫고 들어온 철편이 어깨와 정강이, 허리춤을 스쳤다.

“흐윽···!”

시큰하게 올라오는 통증. 순간 울컥 치미는 구역질.

두근대는 어깨를 감싸쥔 채, 시에나는 제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삐이이이―

이명이 귀를 넘어 두개골까지 채운 듯하다. 번쩍임은 눈앞에 잔상처럼 남아 시야를 가렸다.

손끝에서 버석거리는 모래를 한껏 움켜쥐며, 시에나는 피거품 묻은 입으로 중얼거렸다.

“이, 이대로 끝날···수는······.”

궁지에 몰린 검은 눈동자 위. 불길한 마력이 일렁거린다.

흐릿하게 휘날리는 깃털의 형상. 그 주변을 둘러싼 차가운 사슬의 그림자.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악착같이 살아남아 일궈낸 인생이었다. 아직 이루지도 못한 높디높은 꿈이 있었다.

설령 악마의 노리개가 되어 밑바닥부터 시작할지언정, 이런 식의 끝맺음만은···.

피잉―

그때 무언가 그녀의 감각권을 갈랐다.

흐릿한 선이었다.

공간의 틈을 비집은 듯, 난데없이 나타난 직선.

강력한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어렴풋한 신비는 분명 그녀의 심중을 자극했다.

마법사이기 이전, 마녀이기에 느낄 수 있는 신비.

쉬이이익―!

그 신비의 선은 언덕 위, 적들의 매복지에서 끝을 맺었고.

“컥···!”

단말마의 짧은 신음을 끝으로, 무언가가 언덕 위쪽에서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공교롭게도 그 장소는 시에나의 면전이었다.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구름 아래, 미간에 도끼 꽂은 주문쟁이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어?”

놈의 손에서 툭 떨어진 쇠막대기를 본 시에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외눈의 명공이 만지작대던 물건, 폭약을 터뜨리는 기폭장치와 묘하게 닮았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돌아간 시선은, 놈의 머리통에 꽂힌 손도끼로 향했고.

“댈···?”

성기사단의 문양이 두드러진 도끼 손잡이에서, 불현듯 어떤 전사의 이름을 떠올린 순간.

뻐어어어엉―!

구덩이를 둘러싼 사면의 일부가 사라지며, 거대한 황톳빛 기둥이 그 자리에서 치솟았다.

[캬아아아아아!]

포식자의 울음소리가 일대를 진동시킨다.

모두가 넋을 놓고 그 포효의 주인을 올려다봤다.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 만신전의 기둥만큼이나 두꺼운 동체.

열 겹의 주둥이는 엇갈려 회전하며, 수천 개의 이빨로 돌과 모래를 갈아삼킨다.

구덩이에 남은 폭약을 죄다 터뜨리더라도, 놈을 쓰러뜨릴 수나 있을 것인가.

주둥이 위에 빼곡한 크고작은 눈동자 앞, 특무대건 반란군이건 가릴 것 없이 입을 떡 벌린 채 몸을 바르르 떨었다.

신분이나 진영은 무의미했다. 이 거대한 포식자 앞에, 인간은 한낱 먹잇감이며 미물일 뿐이었으니까.

차르르륵···.

그 순간, 괴물의 비늘 일부가 열렸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건 수십 개의 총부리였다. 비늘 하나당 두셋씩, 총 예순이나 되는 번뜩이는 총부리.

반란군의 지휘관 중 하나가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놈의 입이 스르르 열렸다.

“···아?”

타다다다다당!

의문에 답은 없었다. 그 대신 납탄 세례가 얼굴을 짓뭉갰을 뿐.

사면 위를 둘러싸고 포진한 반란군 중 절반 가까이가, 샌드웜의 비늘 틈에서 튀어나온 특무대 요원들의 일제사격에 쓰러지고.

[캬아아아아!]

총알을 피해 살아남은 절반은, 번들거리는 수천 개의 눈동자가 지르는 비명 앞에 의식을 잃고 고꾸라졌다.

순식간에 역전된 상황. 시에나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흘린 피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눈앞의 광경은 그녀의 상식선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박.

거대한 마물의 머리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모래밭의 사면을 밟은 전사의 모습을 보자마자.

“···하.”

그녀가 품었던 모든 의문은, 마치 사막에서 눈 녹듯 스르르 사라졌다.

“좀 늦었소.”

사내가 말했다. 시에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불현듯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용병. 출신도 가문도 없는 가짜 북부인.

낮은 거리의 사람들조차 보살피는 기이한 전사. 발을 들인 지 몇 달 만에 미궁도시를 떠들썩하게 한 그녀의 고객.

그리고 그녀의 마음에 적잖은 빚을 떠안긴, 이상하게 웃음 많은 무뚝뚝한 남자.

“오랜만이오.”

댈런이 말했다.

그는 주문쟁이의 머리에서 도끼를 뽑아내, 대충 닦고 허리띠에 꽂아넣었다.

격발장치에 연결된 선을 간단하게 투두둑 끊어버린 후, 옷자락에 탁탁 털어낸 그가 손을 내밀었다.

무덤덤한 눈 아래, 가벼운 웃음을 머금고서.

“오랜만이야, 정말로.”

이번에는 대답할 수 있었다. 시에나는 전사의 곰발바닥 같은 손을 맞잡았다.

부축을 받고 일어난 그녀의 입에는, 전사의 것처럼 가벼운 미소가 싱긋 맺혀있었다.

***

댈런과 본대의 지원은 절묘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선발대는 전멸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반란군의 병력은 훈련된 사수들로 오십 명이 넘어갔고, 한 번의 습격에 가지고 온 대부분의 화약을 쏟아넣은 바.

아무리 차르국 왕실 직속의 특무대 요원들이라 해도, 이런 공격적인 기습을 이겨내는 건 쉽지 않았다.

물론 댈런은 알고 있었다.

설령 습격으로 인해 선발대가 극한까지 몰렸다 해도, 그 결과는 선발대가 아닌 반란군의 전멸로 이어졌을 거라는 사실을.

깃털의 마녀이자 까마귀 둥지의 정보상, 시에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본인의 목숨.

그 목숨이 경각에 당한 상황이라면, 그녀는 스스로의 미래를 팔아치워서라도 봉인된 힘을 풀어냈을 테였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지금 유리잔을 닦고 있을 어느 바텐더의 본체가 공간을 뛰어넘어 그녀를 구하러 왔겠지.

당연하게도 댈런이 여기 있는 건 그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에게도 아슬아슬한 타이밍이긴 했다.

“오늘 하루는 휴식하고, 내일 특무대는 3층으로 내려갑니다.”

집행관, 사샤 타란이 나직하게 선언했다.

회의실로 쓰는 큰 천막 안. 선발대의 손실 보고와 그에 따른 작전 변경안들이 막 오간 참이었다.

“사상자가 많긴 하지만, 상황이 그만큼 급박합니다. 하루라도 더 지체하면 악마가 소환될지도 모릅니다.”

천막 안이 적막으로 물들었다. 선발대의 반수가 죽은 걸 감안했을 때, 그녀의 선언은 분명히 무리한 결정이었기 때문.

허나 그럼에도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그만큼 이 자리의 모두가 상황의 위급함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난 몇 시간.

일행은 선발대의 사상자를 수습하는 한편, 샌드웜의 수면 저주로 사로잡은 포로들에게서 적들의 전략을 캐냈다.

포로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았다.

반란군 열 파티 중 선발대가 처리한 건 셋.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일곱은 병력을 한데 뭉친 뒤, 둘로 쪼개져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다.

오십쯤 되는 병력은 뒤따라오는 특무대를 급습하고, 나머지 스물은 악마 소환 의식을 위해 미궁 3층으로 내려가는 게 전략의 골자.

그렇게 스무 명이 미궁 3층으로 내려간 게 벌써 이틀 전이었다.

지체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견이 없으시면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산하죠.”

사샤가 말했다. 지휘관들은 각자 천막으로 돌아갔다.

댈런도 자기 천막으로 돌아갔다. 그는 물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 모포 위에 누웠다.

눈을 감으려는데 밖에서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댈런은 드러누운 그대로 입을 열었다.

“쉬시오. 포션으로 치료했다고 막 싸돌아다녀도 된다는 건 아니니까.”

“알아. 쉬어야지.”

천막 입구가 슬쩍 걷힌다. 검은 머리칼이 살랑거렸다.

입구 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시에나는, 반쯤 벗은 채 모포에 누운 댈런을 보고 말했다.

“잠깐 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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