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14화 (114/288)

역풍(1)

모래흙이 발목 언저리까지 푹푹 꺼진다. 습기 머금은 땅은 반쯤 늪지대나 다름없었다.

모래언덕 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은, 작은 개천부터 사람 하나가 머리끝까지 잠길 정도의 깊은 시내까지 다양했다.

미궁 3층으로 내려가는 구멍.

물기 가득한 상승기류가 뿜어지는 이 거대한 싱크홀 근방은, 사실상 바싹 마른 작열사막의 유일한 수원지였다.

“조심하게. 온갖 침천물과 불안정한 마력 입자가 녹아든 물이야. 자연스럽게 코나 입으로 들어가는 것 정도야 상관없겠지만, 마셔서 좋을 건 전혀 없어.”

비요른이 특무대 요원들에게 경고했다.

그 말에 개울물에 눈독을 들이던 요원 몇이 움찔하며 시선을 갈무리했다.

집행관 사샤는 돌아다니며 그런 요원들의 등짝을 한 번씩 후려쳐줬다. 그녀가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여긴 미궁이다. 너희의 적은 찢어죽일 반란군만 있는 게 아냐! 이곳의 모든 환경이 너희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죄송합니다!”

바짝 기합이 들어가 외치는 요원들. 사샤는 등짝 얻어맞은 이들에게 갈고리며 쐐기, 밧줄을 넘겨주었다.

“지금부터 미궁 3층으로 강하한다.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어라.”

그녀의 명령에 요원들이 하나씩 밧줄로 몸을 동이기 시작했다.

미궁 2층으로 내려가는 방법은, 1층의 동서남북에 있는 기나긴 동굴을 통과하는 것.

3층으로 내려가는 방법은 그보다 조금 더 단순했다. 그저 작열사막 한가운데 있는 구멍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 구멍에서는 강력한 상승기류가 멈추지 않는다는 점.

습기를 한가득 머금은 돌풍은, 사람 하나쯤이야 어렵지 않게 날려버릴 풍속.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감에도 마치 암벽을 등반하듯, 밧줄로 몸을 묶고 벽에 박을 쐐기까지 준비하는 건 그런 이유였다.

꿀꺽.

요원들 중 하나가 긴장한 듯 침을 삼킨다. 그런 요원들을 비요른이 위로하듯 말했다.

“걱정 말게. 동굴이랑 다르게 저긴 마물이 거의 살지 않거든. 그냥 편하게 암벽 하나 오른다 생각하면 될 걸세.”

끌끌 웃으며 등을 토닥여주는 난쟁이. 평소의 폭발광스러운 면모는 떠올릴 수조차 없는, 뒷집의 인자한 삼촌 같은 모습이었다.

막 몸에 밧줄을 묶은 댈런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곁에서 쐐기를 허리띠에 꽂던 시에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린 채 이야기했다.

“요즘 화약에 들어가는 몇몇 재료 입수가 어려워졌다고 하더라. 저 양반이 구워삶은 특무대 요원만 한 다스는 될 거야.”

아직까지 살아있는 사람만 쳐서 그 정도일걸. 정보상은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하긴, 개인이 화약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밀수가 가장 손쉬운 답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외눈의 명공이 제국이나 차르국의 요원들과 사적인 친분을 다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물이 거의 살지 않는 건 맞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긴 한데.’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재빠르게 지워내버리고 정비를 마친다.

원래 미신은 믿지 않는 그다.

하지만 마법이며 악마까지 실존하는 이 세계에서, 굳이 부정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지.

뚱한 표정으로 혼자 고개를 털어대는 그를 보며, 시에나만이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내려갈 준비를 끝마쳤다. 선두는 사샤를 포함한 특무대 요원들이 맡았다.

휘이이이이···!

강풍이 몰아치는 구멍 근처 일대.

오른손으로 바닥의 돌부리를 단단히 잡고, 왼손에는 튼튼한 밧줄에 감긴 쐐기를 쥔다.

자세를 최대한 낮춘 채, 벽을 기어오르는 것처럼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하는 선두.

“쐐기는 돌틈 사이마다 끼워넣도록! 최악의 상황에서 손이 미끄러지거나 한다면, 돌에 박힌 쐐기와 줄로 연결된 동료만이 너희들의 목숨을 지켜줄 수 있을 거다!”

사샤가 외쳤다. 요원들 몇이 손에 쥔 쐐기를 바닥의 돌틈 사이에 신중하게 꽂아넣었다.

한편 댈런은 대충 돌바닥에 쐐기를 밀어넣었다.

처음에는 좀 저항감 있던 바위는, 조금 힘을 주자 쩍 하고 갈라지며 쐐기를 받아들였다.

휘이이이···! 후르릉!

조금씩 조금씩, 통로 안쪽으로 진입하기 시작하는 일행.

깊이 들어갈수록 바람은 점점 거세졌다. 폭풍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머리칼이며 옷자락이 사정없이 펄럭이고, 조금만 고개를 들었다 하면 풍압에 짓눌린 두 뺨과 입이 납작하게 변한다.

“으브브븝!”

납작해진 얼굴로 드워프가 외쳤다. 댈런은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마치 오래 전, 어디 유튜브에서 봤던 것 같은 모습.

상공을 날아가는 헬기 바깥으로, 얼굴을 내민 한 군인이 저런 얼굴이 되었더랬다.

끼이이익···!

그때 바위틈에 꽂아넣은 쐐기가 비명을 지르고.

팅! 패래래랙!

개중 하나가 아예 뽑혀나가, 밧줄에 매달린 채 구멍 위쪽을 향해 퍼덕였다.

“크윽···!”

“뽑힌 쐐기는 바로 회수해라! 뒤따라오는 사람이 다치치 않도록!”

사샤가 다시 한 번 소리친다. 마력을 강하게 실은 울림이, 강풍을 뚫고 가까스로 요원들에게 닿았다.

“으아아아!”

“밧줄 당겨! 밧줄!”

물론 상관의 명령이고 자시고, 눈앞으로 날아드는 쐐기에 식겁한 요원들은 비명을 지를 따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비명은 바람 소리에 금방 먹혀버렸고, 요원 역시 빠르게 밧줄을 당겨 쐐기를 회수했다.

일행은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구멍 아래쪽을 향해 내려갔다.

용케도 큰 사고는 없었지만, 점차 한계로 내몰리는 체력을 안고서.

휘이이···!

바람에 맞서 과도하게 힘을 준 손끝이 하얗게 질리고, 몸 곳곳에 자잘한 찰과상이 늘어난다.

거꾸로 매달린 자세이기에 점점 머리로 쏠리기 시작하는 피. 반면 언제라도 구덩이 밖을 향해 날아가버릴 것 같은 몸뚱이.

이런 상황 속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차르국의 왕실 특무대가 극한의 훈련을 거친 인재들이라는 의미였다.

가장 선두에서 통로를 내려가던 사샤는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멈추자마자 후들후들 떨리는 팔다리. 옷 위로 불어닥치는 바람.

강풍에 맞서 통로를 기어내려간 지 벌써 세 시간째였다. 그러나 그녀가 멈칫한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뇌리를 스친, 육감의 둔탁한 경고가 그 이유.

천천히 뒤로 물러나 가늘게 뜬 눈으로 살펴보니,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희미한 실선이 보였다.

습기 머금은 바람 속에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얇고 가는 줄 한 가닥.

‘함정.’

본능적으로 떠오른 단어에, 몸을 움츠리는 것과 부하들에게 소리치는 건 동시였다.

“조심해라! 반란군이 함정을···!”

팅···!

그러나 늦은 외침이었다.

그녀와 비슷하게 선두에서 나아가던 요원 한 명이, 눈앞의 얇은 줄에 깊숙하게 걸려들고.

티디디딕···!

벽 곳곳에 박혀있던 얇은 쐐기와 줄들이 연달아 뽑혀나가는 건 한순간.

그제서야 본인이 인계철선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요원이, 뒤늦게 몸을 움츠리며 벽에 바싹 붙었다.

그리고.

“모두 단단히 잡···!”

꽈과과과광―!

사샤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대쪽 벽에서 터져나온 폭발이 통로를 아득하게 메아리쳤다.

***

다행히 폭발은 금방 가라앉았다.

정확히는 끊임없이 불어오는 상승기류와, 그 기류가 머금은 축축한 습기에 폭발의 여파가 위쪽으로 날아가버린 것.

물론 통로 반대쪽에서 터진 폭발이었기에 망정이지, 폭약의 매설 지점이 근처이기라도 했으면 일행 모두가 꼼짝없이 바람에 휘말렸을 테였다.

중간중간 회오리 같은 기류에 걸려들어, 벽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몸이 으깨져나가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는 상황.

“크, 큰일 날 뻔했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챈 비요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 곁에서 댈런은 여유롭게 한 손만으로 돌부리를 붙잡은 채 턱을 쓰다듬었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오.”

“그런가? 하지만 폭발은 방금···.”

“폭발이 문제가 아니오. 그 폭발로 통로 전체를 울린 진동이 문제지.”

댈런은 순식간에 통로 전체를 향해 감각을 확장했다.

기감이 뒤틀린 마력풍을 살피고, 나머지 감각들은 벽과 바위틈을 샅샅이 훑는다.

바위틈 사이. 먹잇감을 향해 번뜩이는 살기를 느끼는 건 금방이었다.

방금 전 폭발의 여파로, 이 통로에 서식하는 유일하다시피 한 마물이 잠에서 깨어난 것.

문제라면 그 살기의 숫자가 한둘이 아닌, 수십 수백이라는 점이었다.

“오는군.”

“댈런? 대체 뭐가···우웃!”

까아앙!

본능적으로 뽑아 휘두른 양날도끼에, 반투명한 촉수가 부딪혀 튕겨나간다.

흐느적대는 촉수는 도끼날에도 잘리지 않았다. 오히려 금속음을 내며 불꽃을 튀기는 촉수.

‘촉수아귀.’

오랜만에 떠올리는 마물의 이름을 되뇌인다. 댈런은 허리춤에서 도끼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걸 기점으로,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커헉···!”

“끄아아악! 초, 촉수가!”

“등 뒤를 조심해!”

습기를 가득 먹다못해 안개나 다름없는 통로의 공기.

뿌옇게 물든 시야 너머에서, 십수 가닥의 촉수가 날아들어 요원들을 공격해왔다.

“마물의 습격이다! 무기를 들어라!”

“하, 하지만 손을 놓았다간 그대로 날아갑니다! 어떻게···!”

“밧줄에 몸을 맡기고 싸워라! 그러려고 박아둔 쐐기 아니냐!”

“저희 모두의 체중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겁니다!”

비명 사이로 고성이 오간다. 진퇴양난이었다.

이대로 나아가자니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대응하자니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이미 한계까지 내몰린 팔다리는, 벽을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슬아슬한 상황.

곳곳에 박아둔 쐐기가 잠시간 몸을 붙잡아줄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오래 버틸 수는 없을 테였다.

그리고 일행의 가장 후미.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댈런은 도끼자루를 슬슬 매만졌다. 그가 말했다.

“시에나.”

“응?”

“요원들에게 보호막을 씌워주시오. 무리하지는 말고, 손이 닿는 대로. 그리고 비요른.”

“폭발로 쫓아내라 이거지? 시도는 해보겠네. 습도가 높아서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모르겠어.”

“시간 끄는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오.”

비요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시에나가 끼어들었다.

“당신은 어쩌려고? 설마 여기서 혼자 싸우겠다는···.”

시에나는 말을 멈췄다. 댈런의 웃음 때문이었다.

그가 씩 끌어올린 입꼬리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웃음이었다.

꿈틀거리는 입술은 가볍지도, 부드럽지도 않았으며.

그 사이로 드러나는 송곳니는, 포식자의 탐욕스런 빛깔로 번들거린다.

지옥의 시체거인과 미궁의 놀, 사람 잡아먹는 흑마법사를 앞에 두고 지었던 미소.

지옥을 강림시킨 부단장 앞에서도, 푸른 비늘 아룡과 거대한 샌드웜을 눈앞에 두고도 변하지 않았던 웃음이었다.

강철도 가볍게 구부리는 이 몸뚱이를 입게 된 이후, 숱한 싸움을 통과하며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채 자리잡게 된 표정.

싸움 뒤의 보상을 향한 탐욕인지, 혹은 싸움 그 자체를 즐기게 되어버린 것인지는 이제 그 자신마저도 알 수 없었다.

허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저것들을 잡아 죽여 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렇게 강해진 끝에, 이 마지막 회차의 끝에서는 종말을 이겨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으니까.

언제부터인가는 종말과의 싸움마저도, 더이상 어깨를 짓누르는 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어렴풋이 느껴온 승리에 대한 희망이, 그 무게를 가볍게 해준 걸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그 희망 쪽으로 좀 더 기울 수 있도록, 가능성의 저울 위에 무게추를 올릴 뿐이다.

휘릭―

댈런은 가볍게 도끼를 휘둘렀다. 툭 하고 끊어지는 밧줄.

박아두었던 쐐기에 연결된 밧줄들 역시 가벼운 손짓에 끊어진다.

“경험치 챙겨야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절벽을 가볍게 밀어찼다. 거구의 육신이 둥실 떠올라 순식간에 기류에 휩쓸린다.

스으으···.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에, 신성력이 아지랑이처럼 맺히며 도끼날이 공명하기 시작한다.

댈런의 눈이 마력광으로 번뜩였다.

환상과 주문마저 꿰뚫어볼 수 있는 시야에, 안개 너머 이를 악물고 촉수를 쳐내는 집행관의 모습이 잡혔다.

집중은 잠깐이면 충분했다.

파지짓!

깨어진 불협화음과 함께, 도끼날 위에 맺히는 또렷한 형상.

흐릿해진 오른손 너머. 이미 손도끼는 사라지고 없었다.

쉬이― 파바바박!

공간을 뛰어넘는다.

한 번이 아닌, 다섯 번에 걸쳐서.

쩌저저적―!

그 경유지마다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늑대 크기의 반투명한 아귀 같은 물고기가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거센 기류를 무시하고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반투명한 피. 형광색을 머금고 펄떡이는 심장과 꿈틀거리는 내장들.

도끼가 사샤를 덮치던 촉수아귀를 쪼개고 벽에 박히는 걸 확인한 댈런은, 등 뒤의 창을 뽑아들었다.

투웅―

가볍게 허공에 파문을 일으키며, 기류를 역행해 내려간다.

세찬 바람에도 찡그림 없이 부릅뜬 눈에는, 붉은 마력광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시선이 바라보는 건, 심상 너머 영역에서 이글거리는 불뱀의 꼬리.

반 년도 더 전에 영역의 오두막 근처에서 피어났던 작은 불꽃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