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2)
끼익―
나무문이 오래된 소음을 내며 열렸다. 댈런은 갑옷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청동 구역 뒷골목에 위치한 가게, ‘필로폰네 과수원’.
그 첫인상은 어느 중견 상단의 지부 같은 정경이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번호판 받아가시고 잠시 대기 부탁드리겠습니다.”
문 정면을 향해 깔끔하게 정리된 로비와 카운터.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 손님들과 밝은 목소리로 안내 중인 직원들까지.
댈런은 빗물도 말릴 겸 번호패를 받고 잠시 기다렸다. 순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과수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치료가 필요하시면 위층 약제실로, 약초 구매를 원하신다면 오른쪽 문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카운터 앞에 앉자 직원이 구김살 없는 미소와 함께 댈런을 맞이했다.
댈런은 곧장 대답하는 대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흠.”
오래된 나뭇결의 향취 사이, 진하게 풍겨오는 약초의 쓴내가 폐부를 파고든다.
필로폰네 과수원은 청동 구역에서 손꼽는 의원이자 약초상들 중 하나였다.
이곳의 주인인 샤니아 필로폰부터가 실력 있는 약제사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니 당연한 일.
젊을 적 뒷산에 널린 약초들만 가지고 재생 포션의 열화판을 만들어냈다던가.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 용병들이 애용하는 약초 붕대도 없었을 거라고 하니, 뒷골목에 드문 삼 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약이군. 잘 정제된 마약은 이런 향을 가졌나.’
지독한 약초향 이면에서 스며들어오는 희미하고도 독특한 향내를, 댈런의 예민한 감각이 놓칠 리 없었다.
청동 구역 뒷골목 약제상, 필로폰네 과수원은 통상적인 약만 지어주는 장소가 아니다.
애당초 양지의 사업만 했다면 이렇게 뒷골목 깊은 곳에 자리할 필요도 없었겠지.
신분을 증명하고 꽤 많은 돈을 쥐여주면 2층에서는 마약성 환각제나 진통제를, 1층에서는 그 원료가 되는 약초를 구할 수 있을 터.
물론 댈런은 마약이나 하자고 비오는 날 이 먼 길을 온 게 아니었다.
그는 카운터에 팔꿈치를 기대고, 주위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직하게 말했다.
“처방은 따로 필요 없고, 스테리아 이끼에 피룡초 가루를 섞어서 뿌려주시오. 오른쪽 오금에 깊은 상처가 나서.”
미리 정해진 비밀스런 문장들을 나열하자, 직원의 표정이 순간 희미하게 굳었다.
신분과 목적에 따라 암호는 다양하다. 그리고 댈런이 읊은 문장은 어지간한 마약상들도 쉽게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건 청동 구역에 깊게 뿌리내린 약제상의 주인, 샤니아 필로폰과의 대면을 요청하는 의미였으니까.
“···죄송하지만 마님께서는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다른 날로 약속을 잡아드릴까요?”
“그 손님이라는 사람이 불러서 왔소만.”
예상 밖의 답변이었을까. 긴 적발을 곱게 늘어뜨린 직원은 눈썹을 살짝 기울였다. 그녀가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마님께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댈런이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카운터 뒷문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오래지 않아 다소 놀란 기색을 띈 채 돌아왔다.
“확인되었습니다. 댈런 님 맞으신가요?”
“맞소.”
“마님께서 환영의 말씀을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과수원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
댈런은 직원의 정중한 안내를 따라 건물 안을 누볐다.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반 층짜리 계단을 내려가고, 수상쩍어 보이는 밀실 문이 가득한 복도를 지나 지하실로 이어지는 사다리까지.
그렇게 도착한 지하실에는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문 한 짝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게, 수 미터 깊이의 지하실이라기에는 좀 이질적인 모습.
직원의 안내는 여기까지였다.
“마님께서는 과수원 중앙에 계십니다. 그럼 저는 이만···.”
창백해진 낯빛으로 서둘러 올라가는 직원. 댈런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끼이이···.
문 안은 드넓은 초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문 밖이라고 해야 맞을까.
문지방을 넘자마자 상쾌한 바람이 그를 반겼고, 햇살은 비에 젖은 머리칼을 따사롭게 내리쬐었다.
발목 언저리까지 닿는 풀밭은 싱그러운 빛깔이었다. 과수원은 그 초원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
그럴 일은 없지만 이곳에 누군가 발을 잘못 들인다면, 자신이 약에 취해 헛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사박.
댈런은 낮게 자란 풀을 헤치며 과수원 안쪽으로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두 사람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있는 백발의 노인. 그리고 그 곁에 선 시에나였다.
“왔어? 카운터에서는 문제 없었지?”
“글쎄. 암호가 필요했다는 것 빼고는 별 문제 없었소.”
“어라, 분명 전언으로 암호를 알려줬는데. 깃털 두 개를 받지 않았어?”
댈런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바텐더가 장난을 쳤군.
은근히 이상한 데서 꼬인 용이라니까, 그 양반.
“이상하다. 분명 보냈는데······.”
“어쨌든 잘 들어왔으니 된 거 아니겠소. 이쪽은?”
댈런은 의자에 앉은 노인을 바라봤다.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이번 회차에서는 초면이니 소개를 받는 게 자연스럽겠지.
“아, 소개할게. 이쪽은···.”
“홀홀홀, 시에나가 누구한테 푹 빠졌나 했더니, 아주 훤칠하게 잘생긴 청년이었구만.”
끼이익.
노인이 낡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지팡이를 짚은 채로 천천히 댈런에게 다가와, 반대쪽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샤니아 필로폰일세. 작은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지.”
“댈런이오.”
“그래, 댈런. 반가우이. 의뢰 내용은 들었는가?”
“아직 이야기 안했어. 직접 와서 듣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시에나가 말했다. 댈런은 필로폰의 손을 놓고 품속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왔소.”
걸쭉한 녹색의 액체가 찰랑거리는 유리병.
그걸 본 필로폰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이걸 어디서 얻었나?”
따스한 노인의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필로폰의 눈은 진녹색의 마력광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휘이이···.
순식간에 몰려와 햇살은 가리는 먹구름. 난데없이 불어온 거친 찬바람이 과수원의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휘젓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공간의 자연환경.
그건 이 이질적인 공간 자체가 그녀의 심상에서부터 출발해, 한 사람의 의지로 다스려진다는 걸 증명하는 현상.
게임에서는 몇 번 마주칠 일 없는 눈앞의 노인이, 단순한 약제사가 아닌 그 이상의 고위 마법사라는 설정을 목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샤니아.”
“알았다. 진정하마.”
시에나가 노인의 좁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는 그제야 손님들을 의식했는지, 천천히 호흡을 가라앉혔다.
머지않아 찬바람 역시 서서히 가라앉았다. 노인은 분노가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 일은 미안허이. 그나저나···이걸 어디서 얻었는지 말해주겠나?”
“오는 길에. 이름 모를 부랑자의 최후였소.”
“이런 젠장할.”
뿌드득.
손에 쥔 지팡이에서 나무 부스러기가 푸스스 떨어진다.
조금 전까지의 인자한 할머니 상은 완전히 벗어버린 노인은, 짜증 어린 표정으로 입술을 메만지더니 말했다.
“상황이 좀 곤란하게 흘러가고 있는 듯하네. 내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지.”
***
필로폰의 사무실은 멀지 않은 동산 위의 오두막이었다. 나무 줄기와 덩굴로 가득한 방 안.
한쪽에 마련된 선반에는 다양한 종류의 찻잎과 정체 모를 가루들이 잘 소분되어 투명한 통에 담겨있었다. 필로폰은 손수 차를 우려 두 사람에게 내어주었다.
후릅.
조심스레 찻물을 들이키는 시에나.
필로폰의 오두막에는 그녀의 사무실보다 찻잎이며 다기가 두 배는 더 많았다.
그녀의 다도 취향이 어디서 왔는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댈런은 평소 까마귀 둥지의 사무실에서 하던 대로 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단숨에 들이킨 것.
“······.”
“······.”
시에나와 필로폰. 두 사람 모두가 그 행동을 무슨 괴기한 걸 보는 듯 바라봤지만, 댈런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다 똑같은 거 아닌가.
“맛 좋군.”
“······다행이네. 한 잔 더 하겠나?”
“고맙게 마시지.”
쪼르르륵.
필로폰은 빈 찻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차를 우려내는 잔잔함 속에서, 그녀는 잃었던 평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스륵···.
은근슬쩍 본인의 잔에 뭔가 수상쩍은 가루를 타는 걸 보면, 이쪽도 나사 하나쯤 빠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샤니아. 제발. 그거 보통 사람한테는 치사량의 수십 배나 되는 양이야. 아직도 당신 몸을 좀먹고 있다는 걸 모르겠어?”
“홀홀, 노인네한테 너무 타박 주지 말려무나. 이 나이가 되면 다 몸이 말을 안 듣게 되는 법이니까.”
“그게 약 때문에 생긴 폐해잖아.”
“약이라니? 손님이 오해하시겠다. 활력 증진제라고 불러주려무나.”
“······.”
오해고 자시고 누가 봐도 마약이 맞는데.
그것과 별개로 투닥거리면서 걱정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니, 새삼 눈앞의 약제상이 시에나의 은인 중 하나라는 게 실감 났다.
이런 유대감은 고작 몇 줄의 설정 텍스트, 그리고 십수 마디의 대화가 끝인 게임 상의 상호작용으로는 느낄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초월자의 위계에 한없이 근접한 대마법사. 그런 존재의 마약 중독이라.’
확실히 강력한 존재들은 그 능력만큼이나 뒤틀린 면이 하나씩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강대한 힘을 얻은 폐혜인지, 아니면 그런 비틀림 없이는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해보면 펠버 그 노인장도 대단한 양반이란 말이지. 그만 한 능력에도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니.’
문득 게임에서의 펠버 발렌티노가 떠올랐다. 어느 회차에서나 그저 평범한 원로 마법사로 생을 마감했던 그의 결말.
그에게 시간을 조작할 정도의 오성이 잠재되어 있었다는 건, 수백 회차에 걸친 플레이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사실이었다.
어쩌면 이와 같이 숨겨진 인재들 역시, 종말을 막을 열쇠 중 하나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댈런이 발견하고 성장시켜야하는 건 자신의 가능성만이 아니었다.
어찌됐건 종말에 맞서기 위한 수단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았으니까.
“그럼 슬슬 의뢰 이야기를 해야겠구만. 자네라면 짐작했겠지만, 이 의뢰는 마약 조직을 소탕해달라는 것이네.”
상념을 이어가는 사이, 마약 탄 차를 반쯤 마신 필로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역시 짐작했겠지만, 놈들은 평범한 마약 조직이 아니네. 저들만의 비술로 만든 마약을 통해, 마약 중독자들을 제물로 바치려는 흑마법사 조직이지. 놈들은···.”
후우.
약효가 도는지 반쯤 풀린 눈으로, 노인이 말을 이었다.
“놈들은 이 도시에 악마를 소환하려 할 걸세.”
***
며칠이 흘렀다.
필로폰에게 마약을 유통하는 흑마법사 조직을 소탕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으나, 바로 일을 시작하는 건 불가능했다.
팔시온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도시고, 청동 구역의 남부 지구는 그중에도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있는 장소.
도시 지하를 관통하는 낮은 거리와, 그보다 더 밑으로 이어지는 하수도까지 생각하면 그 자체로 미궁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점조직으로 분포된 마약 유통로를 찾아나서는 건, 단순히 힘과 주문만으로는 불가능한 일.
시에나는 의뢰를 받은 날로부터 둥지의 정보망을 총동원해 놈들의 네트워크를 추적해가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침 수련을 마친 댈런은 곧바로 여관을 나섰다.
당장 전투에 뛰어들지 않는다고 해서, 해야 할 다른 일들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여유가 있을 때야말로 그동안 미뤄왔던 업무들을 처리해야 할 시간.
오늘의 첫 순서는 미래에 전설적인 대장장이가 될 장인, 르베론 아하킴의 대장간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깡― 깡―
아직 영업이 시작하기도 전의 이른 시간이지만, 경쾌한 망치 소리는 대장간 밖까지 울려퍼지고 있었다.
소리로 추측해보건대 지금 일하고 있는 장인의 숫자만 적어도 대여섯 명 이상.
기초를 잡은 미스릴 제련소는 이제 공격적으로 크기를 키우는 중이었다.
장인들을 여럿 영입해 생산량을 몇 배로 늘린 것은 물론, 규모를 넓히기 위해 옆 가게까지 인수해 공사를 시작했다.
‘반년 만에 이런 성취라니. 과연 영웅은 영웅인가.’
고작 금화 몇 닢 때문에 건달들에게 쩔쩔매던 때가 얼마 전이었는데, 마치 그런 과거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급격하게 성장하는 모습.
발돋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장본인의 입장에서, 이런 성장에 감회가 새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으윽, 무거워라아···어? 댈런 씨! 일찍 오셨네요?”
때마침 큼직한 타워 실드를 진열대로 옮기던 페니가, 가게 앞의 댈런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쿵.
저 무거운 쇳덩이를 진열대 위까지 얇은 팔로 잘도 번쩍번쩍 드는 모습.
확실히 영웅의 조카라 그런지 이쪽도 평범한 부류는 아니었다.
“영업 중에 오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 것 같아서 좀 일찍 와봤소. 영감은 안에 있나?”
“당연히 계시죠! 어, 그런데 지금은 중요한 손님이랑 이야기 중이시긴 한데······.”
“괜찮소. 일찍 온 건 나니까 조금 기다리지.”
르베론이야 댈런이 왔다고 하면 금강궁의 귀족이라도 팽개치고 달려올 테다. 하지만 댈런은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미래에 르베론이 곳곳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실력만큼이나 인맥을 넓혀가기 좋을 시기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들 중 일부는 언젠가 종말과의 전면전이 시작되었을 때, 누구보다 든든한 우군이 되어줄 터.
“이번에 미궁에 다녀오셨다면서요?”
“누구한테 들었소?”
“시에나 언니한테요! 언니가 댈런 씨 자랑을 얼마나 했는데요?”
“···그건 몰랐군. 그나저나 이제 언니라 부르기로 한 거요?”
“하수도 청소부 일은 그만뒀으니까요. 언니의 정보망은 낮은 거리 사람들이랑 하수도 청소부들이···이크, 이거 비밀인데.”
“알고 있던 사실이오. 그래도 다른 데서는 말하고 다니지 않게 입을 유의해야겠군.”
“에헤헤, 정보원 일은 처음부터 잘 안 어울렸을지도요.”
잠시 페니와 한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안쪽 응접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야기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려는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은 걸로 봐서, 보안을 위한 주문이나 마도구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지.’
손님이라는 사람이 예상보다 더 높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니에게 물어보니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들려왔다.
“아, 성기사단에서 오신 분이래요! 갑옷이 어찌나 번쩍거리던지!”
“성기사단···?”
문득 금발의 성기사가 떠오른 건 우연일까.
댈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망상이었다.
이 몸뚱이의 입술을 처음으로 소유했던 그녀는, 아직까지 수련을 위해 저 남쪽 본단에 있을 테였으니까.
“허허허, 기사단과 거래하다니 영광이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기사단도 미스릴 제련소의 장인과 인연을 맺게 되어 기쁩니다. 앞으로 양질의 무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응접실 밖으로 나온 이를 본 댈런은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금빛으로 길게 늘어뜨려 찰랑이는 머리칼.
지금껏 마주한 그 누구보다 맑은 푸름을 간직한 눈동자.
성기사단의 문양이 정교하게 세공된 전신 판금 갑주를 입은 기사는, 다름 아닌 머지않은 미래에 악마 살해자라 불릴 영웅.
“어, 어어···? 어어어어?”
“···오랜만이오.”
“대, 대, 댈런? 어째서 여기에···?”
그리고 은근히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기사.
루시아 카스타챌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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