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36화 (136/288)

경계선 마을(3)

퀴퀴한 악취. 기울어진 간판. 쓰레기 널브러진 길거리.

댈런과 시에나를 반긴 건 인기척 하나 없는, 을씨년한 마을의 정경이었다.

찰박.

길가의 웅덩이를 밟자 물 튀는 소리가 건물들 사이를 메아리친다.

그만큼 고요한 정적이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는데.”

시에나가 입을 열었다. 댈런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낮은 거리의 경계선 마을.

밀수꾼들의 성지로 알려진 장소가 이토록 조용하다는 건,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정리해보자.’

감각을 넓혀낸다. 반경 백 미터의 기척이 모조리 탐색권 안에 들어온다.

높은 공동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하나까지 인지하에 욱여넣음과 동시에, 눈앞에 놓인 정황들을 빠르게 취합해낸다.

‘미궁도시의 청동 구역은 동서남북 네 지구로 나뉜다.’

무역항이 있으며 양식업의 중심지이기도 한 북부 지구.

거대한 농장과 축산 단지를 운영하는 서부 지구.

수십 개의 광산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공방들이 발달한 동부 지구.

그리고 용병과 상인들을 포함해, 끝없는 외부인들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남부 지구.

이중 외부에 가장 개방되어있는 건 남부 지구였다. 형식상의 검문은 마물 대란으로 인한 난민들조차 무더기로 받아줄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

그렇기에 남부 지구는 청동 구역에서도 경비대의 역할이 제일 축소된 곳이었고, 마약과 매춘을 포함해 수많은 불법 사업들의 성지가 되었다.

‘경계선 마을이 생긴 건 그런 이유지.’

반쯤 무법지대에 가까운 남부 지구에 비해, 꽤나 치안이 잘 잡혀있는 다른 지구들.

하지만 치안이 조금 좋아졌다고 해서, 청동 구역 특유의 마약쟁이와 범죄자들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불법적인 품목들이 대놓고 뒷골목 상권으로 자리 잡은 남부 지구와 달리, 다른 지구는 더 깊은 음지에서 상권이 발달했을 뿐.

경계선 마을이라 불리는 장소들은, 그런 음지 상권들 사이의 통로를 의미했다.

지구 간의 경계에 걸쳐진 채, 남부의 넘쳐나는 마약과 매춘, 밀수품, 그밖에도 불법적인 품목들을 흘려보내는 통로이자 거점.

빛 한 점 안 드는 땅속의 낮은 거리에는, 이만큼이나 본격적인 인프라를 갖춘 마을이 한두 개도 아니고 십수 개나 있었다.

일곱 성벽의 위용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이 거대도시에도, 그 빛만큼이나 짙은 그림자가 깔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어쨌거나 그런 그림자의 결정체 중 하나인 경계선 마을이,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다는 건 뭔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댈런. 이리 와봐.”

길거리의 가게 안쪽을 둘러보던 시에나가 그를 불렀다. 다가가 보니 그녀는 마룻바닥의 얼룩을 유심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손끝으로 얼룩의 위치와 크기를 어림잡고, 약간 떨어진 다른 얼룩에 가서도 같은 일을 반복하는 그녀.

“흐음······.”

마력광을 번뜩이는 마녀의 눈이 묘하게 휘어졌다. 그녀의 행동을 보던 댈런 역시 어렵지 않게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거, 뭔지 알겠지?”

“사람이군.”

“맞아. 사람이 서 있던 흔적이지. 저기 의자에는 앉았던 흔적. 가판대 옆에는 손을 짚고 기대선 흔적.”

물 흐르듯 끊김 없는 추론이 오간다. 마치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듯한 대화.

“필로폰에게 준 유리병. 그 안에 담겨있던 액체 역시 원래 사람이었다. 마약에 중독된 부랑자였지.”

“···마을 전체가 유행하는 마약에 심취해 있던 거야. 이런 경계선 마을에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긴 하니까. 그 상태로 일상을 살아가다가, 모종의 이유로 같은 순간에 모두 함께 펑.”

입으로는 의태어를 뱉으며, 양손을 모았다 떨어뜨려 폭발을 그려내는 정보상.

칠흑 같은 어둠 속, 희미하게 남은 얼룩들. 두 사람이 도달한 결론은 그게 사람의 자취라는 사실이었다.

중독된 인간의 공격성을 폭주시킬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육체를 녹여버리며 영혼을 가로채는 마약.

필로폰의 걱정처럼, 그 마약이 가져온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평소 경계선 마을의 유동인구를 생각하면 못해도 오백 명. 요즘 들어서 난민들 때문에 이쪽 숫자도 불어났을 테니까, 어쩌면 그 두 배가 죽었을지도 몰라.”

밀수꾼과 그 밀수꾼이 쉴 곳을 제공하는 장사치 및 매춘업자들, 거기다 그 ‘쉴 곳’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손님들까지.

수백 명 이상의 인파로 바글바글하던 경계선 마을이 통째로 증발했으니, 대체 얼마나 많은 영혼이 흑마법사들의 술식에 바쳐진 것일까.

현대에서야 음지의 범죄자들은 몰살당해 마땅한 존재라 하겠으나, 이 세계를 오랫동안 지켜본 댈런은 알고 있었다.

음지의 세력은 무슨 짓을 해도 다시 채워지기 마련이고, 소환될 악마가 저지를 파괴는 밀수꾼자 백 명을 모아와도 비교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 일이 아직까지도 소문을 타지 않은 건, 아무래도 근처 일대를 지키고 있던 암월단의 쥐새끼와 놈이 몰던 동굴쥐떼 때문이겠지.”

“그럴 거요. 넓은 범위를 아우를 수 있고, 낮은 거리라는 환경에 전혀 위화감 없는 하수인들까지. 집 지키는 용병으로 쓰기에 딱 좋은 놈이니까.”

“추적 주술이 끊긴 걸 보니 내 정보상들은 이 근처에서 죽었어. 그렇다는 건 놈이 일대를 지키던 건 어젯밤 이후부터라는 거고. ”

“잠시.”

가게 밖으로 나와서까지 빠르게 이어지던 의견의 교환. 그걸 끊은 건 댈런이었다.

“누가 다가오고 있소.”

“···녹스, 리눅스.”

긴말은 필요 없었다. 시에나는 곧장 손을 위로 뻗어올리며 주문을 외었다.

파앗―

공동 높은 곳까지 쏘아올려진 구체에서, 마을 전체를 비추는 섬광이 터져나왔고.

패래래랙―!

“커헉!”

밝은 섬광에 건물들의 음영이 뒤집힐 즈음, 댈런의 도끼는 이미 주문쟁이 한 놈의 미간을 파고들고 있었다.

***

‘기척은 총 일곱.’

허리띠에서 도끼를 꺼내든 순간, 댈런의 머릿속이 셈한 숫자였다.

다섯과 둘. 총 두 무리로 나눠진 기척들.

하나같이 은신 계열의 주문이나 마도구가 있는지, 오감만으로는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다.

「파영의 마안」

두 눈에서 마력을 번뜩임과 동시에 댈런이 도끼를 던진 방향은, 빠르게 접근하던 다섯 기척이 느껴지던 방향.

패래래랙―!

하늘을 밝혀내는 섬광 아래, 르베론에게 새로 받은 손도끼가 빛의 원반이 되어 날아갔고.

“커헉―!”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던 흑마법사는, 제대로 된 대처를 하기도 전에 미간에 도끼를 꽂고 넘어갔다.

파아아앗―

그 사이 더 강렬하게 빛나며, 공동을 낮처럼 바꿔버리는 섬광의 구체.

“둥지의 마녀, 실력이 늘었군.”

이 정도 일광이면 기척을 감춰주는 망토라도 희끗거리는 어색함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군데 아는 척이지?”

망토를 벗어 던진 네 명의 남녀를 향해 시에나가 날카롭게 물었다. 가장 선두에 선 흑색 판금갑옷 차림의 남자가 픽 웃었다.

“모를 수가 있겠나. 에낙사구스 님께서 그토록 눈독 들이시던···.”

“아, 벌레 새끼의 하수인이었구나. 어쩐지 냄새가 구리더니.”

이번에 웃은 건 시에나였다. 판금갑옷은 열린 바이저 안쪽으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어쩌지. 우리 쪽에는 벌레 즈려밟는 게 전문인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 악마들 때려잡는 전사 하나랑, 아직도 모습을 감추고 있는 성기사 하나.”

“···눈치가 빠르시군요. 깃털의 마녀.”

스아아아···.

시에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뒤쪽에서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모아 묶은 금발과, 신성력으로 번뜩이는 푸른 눈. 성기사단의 문양이 수려하게 새겨진 판금갑주의 기사.

루시아 카스타챌드.

“성기사단이 주로 쓰는 양산형 성물이라봐야 몇 개 안 되잖아? 마력 패턴만 익숙해지면 금방이지. 방금 쓰던 건 오브리도스의 차폐 반지 맞지?”

“인간에게 대대로 우호적이지만, 현 깃털의 마녀는 그 누구보다 유의해야 할 인물이라던 이유를 알겠군요. 그 세 치 혀로 댈런에게 빌붙어서 기생하는 겁니까?”

“기생은 무슨. 댈런과 나는 친구야.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이번 일에 끼어드는 이유가 뭐지? 요즘 성기사단 특유의 오지랖이 다시 도졌다더니, 이것도 그런 건가?”

“···어이가 없군요. 간악한 흑마법사를 눈앞에 두고 성기사를 배척하다니.”

“먼저 깃털의 마녀라는 걸 까발리면서 시비를 건 게 어느 쪽이었지?”

···시발, 이건 또 무슨 일인데.

난데없이 설전을 벌이기 시작한 두 사람을 두고, 댈런은 고개를 내저으며 루시아 곁의 소년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냐.”

“예. 견습 기사 파른, 실력 정진을 위해 심문관님 곁에서 수행 중입니다. 목숨을 구해주신 일에는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래. 잘 하고 있다.”

댈런은 어딘가 군기가 들어간 소년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갑옷 위로도 단단하게 느껴지는 신성력의 기세.

외눈 외팔의 소년 용병에게서는 어느덧 굳센 성기사의 자질이 엿보였다.

‘기대 이상이군.’

댈런은 낮게 웃었다. 이로써 모니터 너머에서는 없던 가능성의 가지가 또 하나 뻗어나왔다.

그가 개척해왔고, 앞으로도 개척해나가야 할 가능성은 자신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다가오는 종말은 혼자의 힘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지금 상황에 집중하지.”

“좋아요.”

슬슬 이유 모를 견제도 마무리가 된 듯했다. 댈런은 어깨를 풀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네 명의 남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당혹감에 물들어 있었다.

그중에도 가장 동요하는 건 뒤쪽의 둘. 칙칙한 색감의 로브를 걸친 게, 딱 봐도 나 흑마법사요 하고 광고하는 놈들이었다.

“성기사라니. 이런 이야기는 없었잖습니까, 달러구드 경.”

“이건 명백한 계약 위반입니다. 마녀 곁의 전사까지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성기사라니?”

“···두 사람 모두 닥치시오.”

스르릉―

얼굴에 짜증을 한가득 머금은 채, 선두에 선 판금갑옷 남자가 검을 뽑아들었다.

“내 검이 지금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아, 잘못했다가는 적군과 우군을 가릴 수 없을 것 같으니까.”

“···크흠.”

로브 걸친 흑마법사들이 조용해졌다. 댈런은 가만히 손을 뻗었다. 그러자 로브를 쓴 두 명이 재차 흠칫 놀라고, 다음 순간 도끼는 그의 손으로 돌아와 있었다.

광 하나 없는 흑색 판금갑옷을 입어, 마치 암흑기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물었다.

“그 덩치에 북부 출신이면서 주문쟁이일 리는 없고. 마법 무기인가?”

댈런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도끼를 허리띠에 꽂아두고 성검을 뽑아들었다.

암흑기사의 기세를 보아하니 그래도 나름 한가락 하는 놈인 듯했다. 흑마법사 하나의 머리통을 쪼갠 방금 같은 도끼질은, 정면에서 던졌을 때 다시 성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물론 그 도끼질에 검은 화염이라도 덧씌우면 못 막을 터였지만, 댈런은 놈을 상대로 좀 다른 걸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볼일은 너한테 있지 않다, 성검 든 야만인. 에낙사구스 님께서는 계약을 깬 저 발칙한 마녀를 벌하기만을 원하시니까.”

“야만인이라니. 아까부터 자꾸 인종차별하는 게 거슬리는군.”

댈런은 성검을 들어올렸다.

“머리통이 반으로 쪼개져도 그럴 수 있을까 볼까?”

“···말이 안 통한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

암흑기사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곁에 서있던 그림자 엘프가 품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스아아아―

사이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뽑혀나오는 것만으로도 일대의 공기가 불길하게 반전된다.

별 반응이 없는 네 사람을 앞에 두고, 암흑기사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겠지. 이건 핏빛 제례용 단검이라고 한다. 보통 흑마법사들은 얻을 수 없는 물건이지.”

이미 제물의 영혼을 한가득 머금었는지, 검붉게 물든 단검의 검신.

그림자 엘프가 빠르게 수인을 맺어내고, 허공에 붕 떠오른 단검을 중심으로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너희는 후회하게 될 거다. 우리 넷을 상대하면서, 지옥의 거대한 아가리라 불리는 악마의 힘까지 받아내는 게 가능할 것 같나?”

쩌저저적!

공간이 비틀린다. 마력의 바람이 휘어지며, 허공에 새겨진 균열 사이로 빨려들어가는 현상.

“벨제붑― 쎄 글램.”

이내 삼 미터에 가까운 높이의 균열이 열리고, 미끌거리는 피부의 거대한 양서류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미 익숙해질 대로 봐온, 지옥문이 열리는 현장 앞에서 댈런은 사납게 웃었다.

뒤를 슬쩍 돌아본 그가 말했다.

“악마 살해자라는 이명, 지금쯤 하나 얻을 때 되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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