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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43화 (143/288)

천변만화(2)

“윽! 비겁한!”

그 손에서 번개나 불덩이라도 날아오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움찔하며 옆으로 구른 난쟁이의 예상과는 달리, 댈런의 손에서는 어떤 주문도 뻗어나오지 않았다.

[뿌ㄲ···크르르르!]

그 대신 튀어나온 건, 문신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가 본체로 돌아온 푸른 비늘의 새끼용.

용은 습관처럼 내뱉던 애교 섞인 울음을 황급히 집어삼키고,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맹수의 그르렁거림을 흘려냈다.

“어, 어어······.”

한 바퀴 구르고 일어서던 드워프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생사가 오가는 전투 상황.

그로 인해 한껏 예민해진 감각과 본능.

예상치 못하게 직격한 용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방금까지의 싸움으로 심상이 흔들린 상태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불 일듯 일어나는 두려움을 억누르기란 불가능한 일.

“허억, 커허···.”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저 혼자 헛숨을 들이키며 눈이 반쯤 풀려간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는 듯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짓씹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굳이 여유를 줄 이유는 없는 법.

어느덧 성인 남성의 상반신 크기로 성장한 청린용은, 뻣뻣하게 굳은 난쟁이의 앞에서 주둥이를 쩍 벌렸다.

[――――!]

마력이 요동한다.

아직까지 온전한 진룡이라기에는 너무나 작은 체구.

허나 용언으로부터 퍼져나오는 울림은 진짜였고, 입안에 모여드는 극한의 냉기는 균열의 용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콰아아아―!

부채꼴로 뻗어나간 청백색의 숨결이 난쟁이의 상반신을 가볍게 집어삼킨다.

용의 마력이 갑옷에 내장된 룬 마법을 찍어눌러 부수고, 파괴적인 냉기가 단단한 피부를 파고들어 조각낸다.

이내 난쟁이의 상반신은 산산이 부서진 파편이 되어 후두둑 떨어졌다. 허리 위를 잃은 땅딸막한 하반신 역시 털썩 무릎을 꿇었다.

[뿌우···.]

숨결이 지나간 뒤의 정적.

쉬익―!

살짝 가쁜 숨을 몰아쉬는 새끼용을 향해, 날카로운 비수 한 자루가 날아들었다.

[――!]

본능적으로 주문을 쥐어짜낸다. 조금 늦었다.

보호막이 구축되는 속도보다, 비수가 날아드는 속도가 아주 약간 더 빨랐다.

굴절시킬 수는 있어도 완전히 피해내기는 어려운 상황.

패래랙!

그때 어디선가 공기 찢는 소리가 들리고, 은빛의 손도끼가 검은 비수를 강타했다.

***

카앙!

도끼에 맞은 비수가 저 멀리 튕겨난다. 하지만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대신,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고 재차 목표물을 노렸다.

이번에는 용이 아닌, 손도끼의 주인을 향해서.

그리고 손도끼 역시 돌아온 비수와 재차 얽혀대며, 기묘한 공중전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뿌까···?]

“일인분은 충분히 했다. 좀 쉬어라.”

댈런은 낮게 웃으며 새끼용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몇 달 사이에 숨결까지 사용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본격적인 전투에 참여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듯했다.

도담거리는 손길이 기분 좋은 듯 몸을 부르르 떠는 녀석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쓰다듬어주고는 앞으로 나섰다.

‘염동력자. 그리고 가시갑옷.’

남은 건 두 명이었다.

카강! 카가각!

그 와중에도 손도끼와 비수는 끊임없이 충돌하며 주인 없는 춤사위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댈런은 비수의 주인인 염동력자를 쳐다봤다.

두 눈이 각기 다른 색인 놈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비수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시선을 비수에 고정한 채, 양손으로 뭔가 복잡한 동작을 반복하며 힘을 끌어올리는 듯한 모양새.

척 봐도 뭔가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확실히 초능력이 효율이 좋군.”

댈런은 그 행동에 대응하는 대신, 턱을 긁적이며 한 마디 던졌다.

“···뭐?”

“마력이나 신성력이라는 동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면서도, 어렵게나마 B등급 스킬에 맞설 정도의 효율을 보이고 있지 않나.”

“뭐, 뭐라는 거냐!”

“우연히 초능력을 얻었던 회차도 두어 번인가 있었지. 우선순위에 참고하겠다.”

“이익, 빌어먹을 괴물 새끼가! 죽어라!”

콰르르르륵!

남자가 두 손을 앞으로 뻗자, 거리의 건물 한 채가 그대로 무너지며 댈런을 덮쳐들었다.

염동력이라는 선천적인 이능의 범위와 강도를, 소영역의 힘을 이용해 극대화한 것.

벽돌이며 나무판자, 회반죽과 기왓장이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되어 거리를 가로지른다.

“어디 그 잘난 얼음 폭풍으로 이것도 막아보시지!”

과도한 이능의 사용으로 실핏줄이 터져, 벌겋게 된 눈을 치켜뜬 채 놈이 말했다.

그 유치한 발언에 어울려주는 대신, 댈런은 양손으로 빠르게 수인을 맺어냄으로 대답했다.

쿠구구구···.

사정없이 뒤틀리는 마력풍이 하늘 위의 먹구름을 끌어당긴다.

염동력자와 댈런 사이를 가로막고 폭포처럼 떨어지는 검붉은 구름.

잔해의 파도를 마치 방파제처럼 막아서는 동시에, 나선형으로 겹겹이 얽혀들며 순식간에 십수 미터에 달하는 구름기둥의 형태를 빚어낸다.

콰르르르―!

칼카스의 두 번째 페이즈. 그 지옥의 환상 속에서 사용했을 때와 달리 원본 주문의 영창은 필요없었다.

지금의 댈런은 모든 능력치가 30을 돌파하고, 용의 심장을 얻으며 인간의 한계를 명확하게 벗어난 상태였기에.

필요한 건 간결한 의지의 발현.

영역의 심상을 현실로 끌어내는 작은 노력뿐.

「홍염주(紅炎柱)」

검붉은 먹구름의 색깔이 반전되고, 거대한 불기둥이 잔해의 파도를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아!”

자신의 공격이 삽시간에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한 염동력자가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토했다.

양손을 부들거리며 더 힘껏 내뻗자, 곁에 있던 건물 두 채가 추가로 무너지며 파도가 되었다.

원래의 두 배 이상으로 거대해진 돌과 나무의 파도.

본인의 한계 이상으로 이능을 발현한 놈이 눈과 코, 귀에서 피를 철철 흘려댔다.

“이건, 이건 못 막을···!”

벌겋게 물든 이빨로 외치던 놈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불기둥과 잔해의 파도를 크게 돌아서 날아든 손도끼가, 목을 스치고 지나가며 기도와 성대를 함께 잘라버린 것.

“커, 커헉···!”

“그러게 한눈을 팔지는 말았어야지.”

댈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불기둥의 기세에 압도당해 도끼를 막던 비수에 신경을 소홀히 한 순간, 승부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사실 그 전부터 승패는 정해졌다고 봐야겠지.

염동력이라는 하나의 힘에 몰두한 남자와는 다르게, 이쪽은 수많은 주문과 무예, 거기에 비검이라는 스킬까지 겸비했으니까.

결국 초인들끼리의 결전은 첨예한 수싸움에 가깝다.

아무리 강력한 카드를 손에 쥐었더라도, 상황에 따른 대처와 응용력이 부족하다면 돼지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인 셈.

댈런 역시 지난 시간동안 숱한 싸움에 휘말리며,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려 노력했기에 이곳에 도달한 게 아니었나.

“커흑, 컥······.”

“이만 끝내야겠군.”

상념이 길었다. 댈런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불기둥이 천천히 기울기 시작했다.

지면으로 쏟아지는 화염이 목을 부여잡고 주저앉은 염동력자를 집어삼키고, 전투불능이 된 다른 문지기들 역시 휩쓸어버렸다.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거리. 시야 한켠에서 빠르게 차오르는 경험치 막대.

“······쯧. 하나는 놓쳤나.”

검게 탄 시체들을 둘러보던 댈런은, 가시갑옷 전사의 시신이 없는 걸 보고 혀를 찼다.

아무래도 그가 염동력자를 상대하는 사이 모종의 수법으로 도망간 모양.

전투로 한창 달궈진 그의 감각을 속이고 도망갈 정도라면 둘 중 하나일 테다.

놈이 본 실력을 숨기고 있었거나, 아니면 아껴두었던 강력한 유물을 사용한 것이거나.

‘당장 쫓기는 어렵겠군.’

감각을 예민하게 벼려봤지만, 육감은 물론 파영의 마안에도 잡히는 게 없다.

흐릿하게 남은 마력의 흔적은, 놈이 굉장히 먼 거리를 도망갔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해주고 있을 뿐.

다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든 그 자취를 쫓았겠으나, 지금 중요한 건 악마의 하수인 하나 더 죽이는 게 아니었다.

애당초 놈 역시 그걸 노리고 도망친 것일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대로 도망에 성공하면 목숨을 건지는 것이고, 만약 자신을 쫓아온다 해도 마녀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었으니까.

‘언젠가 다시 보게 되겠군.’

댈런은 추격을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놈과 댈런은 종말을 기준으로 대척점에 선 사이.

분명 머지않은 시점에 다시 만나게 될 테다.

그리고 다시 마주쳤을 때, 이번처럼 도망칠 기회가 주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댈런은 죽은 이들의 시체에서 쓸만한 게 있나 뒤져봤다.

단체로 댈런 한 명에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영역을 이뤄낸 강자들.

하다못해 재생 포션이라 해도 평범한 용병들보다 더 나은 걸 들고 다니지 않을까.

[어유, 주인님. 안 그래도 비좁은 집안에 뭘 더 밀어넣으시려고 그러십니까.]

날이 갈수록 덩치가 커져가는 악마가 조심스레 항변해봤지만.

“비좁으면 몸을 접어라.”

[그, 그게 얼마나 불편한 건지 아시긴 하는지···.]

“내가 알 바냐?”

[······.]

댈런은 목줄 묶인 노예의 집 평수까지 신경써줄 생각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호신용 마도구는 댈런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죄다 박살났고, 다른 용도의 마도구들 역시 이어진 주문의 폭격을 견디지 못하고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

그나마 건진 건 드워프의 반쪽 남은 사체에서 나온 룬 보석 몇 개와 그림자 엘프의 손목에 매여있던 팔찌.

더불어 소환된 악마에게서 나온 주먹만 한 크기의 정수 조각 정도.

‘그레도 레벨은 두 개 올랐군.’

수확물을 아공간에 넣은 댈런은 상태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홉 중 하나는 도망갔고, 하나는 새끼용이 처리했지만 아슬아슬하게나마 두 번의 레벨업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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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댈런

레벨 : 27

[근력 : 40] [기량 : 37] [체력 : 31]

[감각 : 32] [지능 : 31] [마력 : 33]

스킬 : 데하만의 갑주격투(D), 야간 시야(E), 도약(E), 불꽃 화살(D), 라판텔라의 분쇄검(C), 헤갈레우스의 화염의 비(C), 쏘아지는 번개(D), 저주막이의 인장(D), 레레도나라의 비검(B), 성화의 불씨(C), 검붉은 용의 피(A), 지옥문의 열쇠(C), 아커만의 작도법(C)

*고유 스킬(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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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은 어느덧 20대 후반. 두 개의 능력치는 모두 근력에 투자했다.

이로써 근력 수치가 처음으로 40에 도달했다.

오랜만에 사지로 뻗어나가는 묵직한 상승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늘어난 힘에 익숙해질 즈음 에버론이 도착했다.

“호오, 벌써 끝내셨군요. 이 정도면 4위계를 넘어 5위계를 향해 달려가고 계신 듯한데······. 얼른 마무리하고 도와드리러 올 생각이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던 같네요.”

“이런 놈들 상대로는 괜찮소. 같이 싸우면 괜히 경험치만 깎일 테고.”

“경험치···?”

의미 모를 단어에 갸웃거리는 금발의 청년. 그러나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는 문지기들이 지키던 결계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결계의 방어장치는 모두 무력화했습니다.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가도 마녀가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거예요.”

휘릭.

마치 보이지 않는 열쇠를 돌리듯, 청년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간단한 동작이지만 흘러나오는 마력은 예사롭지 않다.

기기기기긱―!

이내 철판을 긁는 듯 기괴한 소음과 함께 결계의 한쪽 면이 무너져내리고.

후우웅···.

지독한 악취가 뒤섞인 녹색 안개가 결계 안쪽에서부터 밀려왔다.

“···흠.”

자연스럽게 활성화되는 어깨의 신성 문신. 눈앞을 자욱하게 매운 독기 너머로, 죽은 자들의 꿈틀거림이 엿보였다.

그어어어······.

무너진 결계 안쪽은 지옥도였다.

결계의 능력으로 밖에서는 멀쩡한 시가지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초토화된 건물들 사이로 암녹색의 덩굴들이 빽빽하게 자라난 상태.

부서진 도심지의 풍경 안쪽에서, 죽은 자들의 울부짖음이 불협화음을 이뤘다.

부상당한 경비병이 증언했던 것처럼, 갈기갈기 찢겨나간 인간의 조각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시체 골렘들이었다.

“다만 마녀가 하수인들을 좀 많이 풀어둔 터라···약간 소란스럽게 입장하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소.”

휘릭―

댈런이 손끝을 까딱이자 악마의 불타버린 사체에서 성검이 날아왔다.

수없이 휘둘렀음에도 전혀 무뎌지지 않은 칼날. 손을 단단하게 받쳐주는 십자막이와 착 감겨드는 손잡이.

이 지옥도의 너머에 있을 강적을 의식한 것일까.

우웅···.

오랜만에 울림을 토해내는 성검을 쥐고, 댈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나갔다. 그가 말했다.

“경험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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