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52화 (152/288)

타오르는 마을(3)

“나이스 샷.”

폭약으로 박살난 여관 앞. 댈런은 손을 털며 중얼거렸다.

사방에서 불길이 피어오르고, 무너져가는 건물들 사이로 매캐한 연기가 눈앞을 가렸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무리 그라도 육안으로 목표를 확인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차선책으로 수정구의 마력 연결을 역추적해서 던진 것이었는데, 보아하니 제대로 적중한 듯했다.

‘금강궁에서 보수로 받은 유물 무기도 효과가 괜찮은 것 같고.’

덩굴의 마녀를 처리한 대가로 받은 손도끼. 그건 금강궁의 무기고에 오랜 세월 잠들어있던 물건이었다.

관리를 하지 않아도 항시 날카로운 예기가 유지되고, 아룡의 턱 힘에도 부서지지 않는다나.

거기다 특수한 마법이 내장되어 있어, 탄착 지점에 닿는 순간 폭발하기까지 했다.

마지막에 들려오던 잡음 섞인 소란을 생각해보면, 놈이 이끌고 온 병력이 그의 폭발에 휘말린 모양.

단순한 도끼 투척이 아니라 사실상 좌표 찍고 미사일로 폭격하는 거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우지직. 쿠구구구···.

폭발에 살아남은 여관 골조가 넘실거리는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기 시작한다.

비요른이 그 광경을 보며 허허 웃었다.

“이거 자네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구만. 화약 냄새를 맡지도 못했으니.”

화약통을 마법적인 수단으로 꽁꽁 밀봉한 것일까. 르비바흐에서 귀신 같이 화약 냄새를 간파하던 비요른도, 이번 기습만큼은 알아채지 못했다.

여관 2층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들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건, 댈런이 최근에 습득한 풍운계 마법 때문이었다.

‘필즈의 바람 결계.’

델로스 마탑의 마법 중 하나로, 시전자의 주변 일대를 뒤덮는 다양한 효과의 결계술.

공기 그 자체를 매개로 하는 만큼, 실질적인 효율은 물론 위장이나 응용 면에서도 나쁘지 않은 주문이었다.

스킬 숙련도를 꾸준히 상승시킬 겸 잘 때마다 항상 펼쳐뒀던 건데, 그게 결정적인 순간에 방어벽 역할을 해줄 줄이야.

‘빌어먹을 악신 새끼들.’

방심하는 순간 삐끗하면 목이 달아난다.

이 간단한 명제는 초인적인 육신을 입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했다.

큰 고비 없이 몇 주를 여행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약간은 느슨해졌던 것일까.

일말의 여유는 언제나 필요하지만, 결코 만용이 되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머릿속을 가다듬으며 불타는 여관 건물을 벗어나자, 거리에는 비요른과 아카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주위로는 이미 마을 주민들의 시체가 몇 구 널브러져 있었다. 비요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요원이 걱정했던 대로구만. 이놈들 완전히 지옥 마력에 물들었네.”

발끝으로 툭툭 차는 시체를 보아하니, 확실히 평범한 사람의 외견에서 벗어나 있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와 비정상적으로 뾰족하게 솟은 송곳니. 몇몇 시체에는 뿔이며 갑각, 가시 따위가 돋아나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얼마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수상한 행동거지를 보이고 있다는 요원의 말을 생각했을 때, 이것들은 악신에게 굴복하기로 결정한 자들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서 반란군들의 감언이설과 교묘한 설득이 있긴 했겠지. 그러나 결국 선택은 스스로가 내린 것일 터.

“어떻게 하겠나?”

난쟁이가 물었다.

마을이 망해버린 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

스스로 선택해서 악신과 손을 잡은 마을이니, 이대로 자멸하도록 내버려 두던가.

혹은 굳이 나서서 지옥 마력에 물든 주민들을 처리하고, 혹시나 남아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들을 구조하던가.

“특무대 요원을 찾고 생존자들을 구하도록 하지.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소.”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작금의 차르국은 꽤나 위태로운 실정.

서리고원 너머에서는 악마들의 군대가 연합하고 있고, 원혼의 밤 사태로 불만을 품은 민심은 수습조차 되지 않았다.

여기서 반란군이 뒤통수를 치게 되면, 빠르던 느리던 차리나와 왕실의 기세가 꺾이게 되는 건 필연.

그리고 차르국이 멸망하면 그 뒤는 도시연합과 팔시온 차례였다.

‘남부에서 주변 나라들을 집어삼키는 제국이라면 몰라도, 오랫동안 북부의 방파제 역할을 해준 차르국이 이대로 몰락하는 건 곤란한 일이지.’

실제로 게임 극후반부에 도달한 몇몇 회차들에서, 차르국은 쑴의 군세를 막아내며 상당한 시간을 끌어주곤 했었다.

지금의 위기만 잘 넘기고 나면 그런 활약을 한 번 더 기대해봐도 괜찮을 터.

“요원은 오늘 밤 마을 회관에서 장로와 함께 업무를 처리할 예정이랬지.”

댈런은 창을 뽑아들고 거리를 걸어나갔다. 오랜만에 뛰어드는 제대로 된 전투였다.

심상을 가다듬고 구체화하는 수련을 게을리한 적은 하루도 없지만, 실전에서 그 역량을 시험해보는 건 또 다른 일.

“쑴의 하수인들은 몸뚱이가 단단하기로 유명하지.”

“일반적인 화약으로는 피해를 주기 힘들 것 같네. 나는 최대한 룬 마법을 조합해서 사용하겠네.”

“인간형 전투에 익숙해질 기회군요. 후방 보조와 화력 투사 위주로 싸우겠습니다.”

그의 뒤를 용과 난쟁이가 따르며 빠르게 계획을 주고받았다.

일행의 양옆에서 건물들을 집어삼킨 불꽃이, 밤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붉은 춤사위를 벌여대고 있었다.

***

칙―

심지에 불이 붙는 소리. 후웅 하고 체공하는 주먹만 한 묵빛 덩어리.

이내 짧은 심지가 전부 타들어간 끝에, 2미터 높이에서 폭발하는 유탄.

콰아아앙!

고막을 두드리는 굉음과 사방으로 비산하는 철편에, 몰려 있던 마을 주민들 중 일부가 우르르 쓰러졌다.

탕탕탕!

크레이그는 빠르게 권총을 쏘아내고 곧장 자리에 엎드렸다.

그가 머리를 내밀었던 마을 회관 옥상 위로 즉시 화살이며 과도, 사냥용 투척창 따위가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크윽!”

그 찰나의 순간에 팔뚝을 꿰뚫은 식칼 한 자루.

신속하게 옷깃을 찢어 팔을 묶은 뒤, 재생 포션을 부어 출혈을 틀어막았다.

“빌어먹을.”

차르국 왕실 특무대 요원, 크레이그 비드로프는 이를 악물었다.

‘조만간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짐작은 했지만···이 정도 숫자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시기도, 숫자도 모두 예상 밖이었다.

하룻밤 사이 어림잡아 마을의 7할 이상이 반란군의 편에 섰다. 그것도 모자라 지옥 마력에 스스로를 내던지기까지 했다.

반란군의 감언이설이 주민들을 부추겼겠으나, 그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변두리 마을이 짊어지게 된 중압감에, 원혼의 밤 사태가 더해지며 국가를 향한 분노가 끓어올라 벌어지게 된 일.

재화나 권력, 힘을 향한 탐욕과 갈증에 화답해 힘을 내려주는 다른 악신들과 달리 쑴이 자신의 추종자에게 요구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바로 끝을 모르고 타오르는 분노.’

울화통에 눈 돌아간 마을 주민들은, 놈의 지옥 마력을 받아들이기 누구보다 적합한 대상이었으리라.

‘그나마 마을 회관이 멀쩡해서 다행이지.’

오랜 시간 외세의 침략을 견뎌온 차르국에서는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반드시 목책을 둘렀다.

이곳처럼 오크나 야만인의 위협을 받는 동쪽과 북쪽 접경지 인근이라면, 한술 더 떠서 마을 회관을 일종의 요새처럼 지어두기까지 했고.

그런 회관이었기에 그를 포함해 몇 없는 자경단과 생존자들만으로도 지켜내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갈까.

반란군 역시 이 회관이 주요 지점이라는 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근처 술집 주인이 새로 사들여온 맥주 맛 좀 보라며 수레에서 내려 들여오려던 나무통을, 뭔가 수상한 느낌에 제압하고 까봤더니 화약이 가득했던 걸 보면 알 수 있는 부분.

곳곳에 매설된 화약이 폭발하고 마을이 불바다가 된 지금, 마을 회관을 포위한 채로 어느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

마을 밖에 있던 반란군 본대가 생존자들을 천천히 쓸어버리는 사이에, 회관으로 피신한 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가둬두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변이된 마을 주민들이야 어떻게 상대할 수 있다고 쳐도, 반란군이 직접 들이닥치면 답이 없어.’

피해를 감수하고 지금 포위망을 돌파하느냐.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대로 버티느냐.

십 년이 넘도록 마을 주민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더없이 잔혹한 이지선다였다.

허나 특무대의 혹독한 훈련에는 이런 극한 상황의 결정력도 포함되어있는 바.

“크으······.”

모든 건 차리나와 왕실을 위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건 아프지만 필요한 선택이었다.

결심을 마친 크레이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번쩍!

맑은 밤하늘 위.

어디선가 튀어나온 한 조각짜리 구름에서 난데없는 번개가 내리꽂혔다.

그리고 회관으로부터 뻗어나가는 마을의 넓은 거리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크와악!

괴성과 함께 달려드는 주민. 가볍게 창을 내질러 심장을 꿰뚫는다.

쿠직!

사람보다는 마물에 가까운 질긴 피부가 뚫리고, 심장과 폐가 찢겼음에도 주민은 죽지 않고 팔을 휘저었다.

크어어···어컥!

댈런은 무시하고 횡으로 그어버렸다. 변이된 주민 셋의 가슴팍을 쪼개는 창날. 검붉은 피가 긴 호선으로 궤적을 남겼다.

르베론 아하킴에게 새로 주문한 창은 날 부분이 길고 넓었다. 찌르기뿐 아니라 베고 쪼개기에도 적합한 형태.

새롭게 배운 스킬 중 하나, ‘화영창술’과 상성이 좋은 무기였다.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변이된 인간들을 상대로, 댈런은 창술의 숙련도를 착실하게 쌓아갔다.

캬악! 크아악!

들이미는 아가리. 창대로 후려갈긴다. 으깨지는 두개골과 흩뿌려지는 내용물. 그 사이를 누빈 창끝이 늑골과 목덜미를 자유자재로 훑으며 네 놈을 더 쓰러뜨렸다.

파바바박!

짧은 순간 연이어 펼쳐지는 세 번의 찌르기와 두 번의 베기. 넓게 펼쳐진 세 점과 길게 이어지는 두 개의 곡선이 꽃봉오리를 그려낸다.

솟구치는 핏줄기와 창날의 잔영이 만나면서 검붉은 꽃이 수놓아지는 광경.

간편하게 시체에서 회수했으나 본디 바다 건너에서 넘어온 무술은, 그 잔혹함과 별개로 한 편의 아름다운 춤과 같았다.

“으하하하! 이거지! 아름다운 폭발과 불꽃! 다 덤벼라 악신의 버러지들아!”

반면 좀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폭발과 충격파는, 어지간히 뒤틀린 심미안이 아니고서야 아름답다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스가각!

콰광! 콰과광!

창 한 자루로 적진을 누비는 전사와 아낌없이 폭약을 퍼주는 난쟁이.

거기다 간간이 지면을 강타하는 벼락과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냉기와 얼음덩이들까지.

마을 회관을 둘러싸던 포위망은 머지않아 깨졌다. 변이된 마을 주민들은 댈런과 비요른을 향해 앞다투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을 회관의 문이 열리며, 자경단과 생존자들이 무기를 꼬나쥐고 뛰어나왔다.

“영웅들이다! 영웅들과 함께 싸우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넣은 배신자들을 죽여라!”

변이된 주민들은 금세 앞뒤로 포위당했다.

물론 회관에 대피해있던 자경단과 생존자들은 다 합쳐봐야 고작 서른 정도.

그러나 시선을 분산시키기에는 충분한 숫자였고, 댈런과 일행이 반란자들을 정리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크하악!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변이자의 목이 떨어졌다. 창에서 핏물을 털어내는 댈런을 향해 요원이 다가왔다.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는 목소리. 그 배경에 어떤 감정이나 갈등이 있었는지 헤아리는 건 힘든 일이겠지.

“아직 안 끝났소.”

그러나 댈런은 요원을 위로하는 대신, 그의 몸을 가볍게 밀어내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향하는 곳은 그가 지나왔던 거리 방향.

거리 안쪽으로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 사이, 넘실거리는 화염을 뚫고 뭔가가 날아들었다.

패래랙―턱!

두꺼운 손아귀에 잡혀 파르르 떠는 손도끼. 머리 부분에 새겨진 룬 문자에 반쯤 빛이 차올랐지만, 어떠한 폭발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길을 뚫고 나온 노년의 사내가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서 안 터지는 거지?”

댈런은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사내의 얼굴은 화상으로 울긋불긋했고, 길게 기른 수염은 열기에 그을려 볼품없이 꼬부라져 있었다.

놈이 이 사태의 주도자라는 것과, 도끼의 폭발에 휘말린 당사자라는 게 뻔히 보이는 상황. 댈런은 피식 웃으며 대답해줬다.

“물건을 사용하기 전에는 설명서를 잘 읽어봤어야지.”

“···뭐?”

“이건 날아간 거리가 일정 이상이어야 폭발하거든.”

패랙―

그의 손이 흐릿해졌다. 다음 순간 도끼는 노년 사내의 팔뚝에 박혀있었다.

이미 도끼 투척을 한 번 경험했기에, 긴장하고 있던 중 가까스로 팔을 들어올려 막아낸 것.

고통에 이를 악문 사내를 향해, 댈런이 덧붙였다.

“참고로 그 거리는 누적이다.”

“무스···!”

콰과과광―!

황금빛 폭발이 거리를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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