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오크(3)
“잉간. 여기는 왜 왔나?”
밥을 다 먹어서일까. 아니면 부하들이 집으로 돌아가서일까.
족장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우렁찬 함성에서도 느낄 수 없던 강한 힘이 묻어났다.
댈런은 족장의 수준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못해도 완숙한 4위계. 어쩌면 그보다도 더 위.
아직 완전히 제것이라 할 수 없는 적창의 힘을 배제한다면, 족장 타룸은 그와 동격을 이루고도 남을 실력자였다.
“머리 좋은 전사는 대접받아야 한다. 그래서 밥부터 먹었다. 하지만 보통 잉간은 여기까지 잘 오지 않는다. 온다면 주로 두 가지 이유지.”
어둠 속.
모닥불의 일렁임을 머금은 검은 눈이, 찰나의 순간 자줏빛으로 번뜩였다.
“반짝이. 아니면 싸움.”
“무역이나 오크 사냥을 위해서라는 거군.”
“그렇다. 하지만 너는 반짝이 때문에 온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너를 의심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겠지.”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 오크의 가죽은 귀족들, 특히나 아인종 멸시 풍조가 있는 제국 귀족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물건이었다.
별도의 가공이 없어도 매우 질기고 단단하며, 수십 년이 지나도 좀처럼 변형이 되지 않는 하이 오크의 가죽.
어지간한 마물 가죽을 능가하는 좋은 원재료였지만, 사치스러운 장식품으로서의 가치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
‘하이 오크의 워 페인트 때문이지.’
하이 오크와 일반적인 오크를 가르는 가장 큰 기준점, 워 페인트.
하이 오크들의 피부 위에 자연적으로 새겨지는 흰색 문신은, 제국 귀족들의 뒤틀린 심미안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형태를 보존해서 벗긴 가죽을 벽에 걸어 장식하거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여러 장을 자르고 묶어 깔개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지.
그런 맥락에서 족장의 경계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머나먼 북부의 산골짜기의 아인종들이라 할지라도, 귀족들의 탐욕스런 손길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기에.
“모지리 오크들을 사냥하는 건 상관 없다. 하지만 하이 오크를 사냥하려는 놈들은 찢어 죽인다. 반짝이. 아니면 싸움. 너는 어느 쪽이냐, 잉간?”
“둘 다 아니다.”
댈런은 접시에 남은 고기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성소를 방문하러 왔다.”
“···성소?”
“그래. 너희 대족장이 지키는 곳. 높은 산봉우리들 사이에 숨겨진 선조들의 무덤.”
“흐음······.”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타룸이 깊은 침음을 흘렸다. 그는 잔에 남은 술을 죄다 들이킨 뒤, 뒷목을 긁적이며 이야기했다.
“오해해서 미안하다, 잉간. 그런데 안타깝지만 성소를 방문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어째서지? 자격을 증명할 준비는 됐다만.”
댈런이 물었다. 타룸은 씁쓸한 얼굴로 손을 저었다.
“자격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성소에 들어가지 못한 지 벌써 두 달이 됐으니까.”
“두 달?”
내가 아는 대족장이라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이 오크들 중에서도 가장 현명하고, 가장 강한 개체만이 대족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나 현 대족장은 댈런도 지난 회차들에서 몇 번이나 함께했던 뛰어난 전사.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종족을 지킨다는 의무를 위해 목숨을 바치던, 완성된 영웅 NPC들 중 하나였는데.
‘썩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불길한 예감.
이 땅에 떨어진 뒤로 몇 차례나 겪었던 은근한 직감의 경고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너는 하이 오크에 대해 잘 아는 것 같다. 성소나 대족장에 관해서도. 그렇기에 우리만큼이나 혼란스럽겠지.”
타룸은 무슨 생각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큼직한 손 안에서 나무 술잔이 으직 하고 으깨졌다.
“대족장 쓰툼파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
“자네가 온 걸 보니 뭔가 일이 생기려나 싶었는데···역시 이번에도 피해가지 않은 모양이군.”
점토를 주무르며 껄껄 웃는 펠버를 보고, 댈런은 미묘하게 눈꼬리를 비틀었다.
“노인장까지 그러기요? 요즘 들어 왜 다들 나를 저주 인형 취급하는지 모르겠군.”
“끌끌, 하지만 사실 아닌가? 자네는 가는 곳마다 상식을 뛰어넘는 영웅적인 행보를 보이지. 그 말인즉, 상식을 뛰어넘는 대적자가 가는 곳마다 자네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뜻도 된다네.”
예로부터 영웅의 길은 험난한 법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점토인형의 모양을 대략 잡은 펠버가, 어깨에 둘러멘 가방에서 작은 조각칼을 꺼내들었다.
삭삭삭삭―
노인의 얇은 손가락 사이로 곡예에 가까운 조각이 이어졌다.
댈런은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하이 오크 족장과의 저녁 만찬 이후로 사흘이 지났다. 그날 밤, 족장 타룸은 무거운 표정으로 선언했다.
‘족장 회의를 소집하겠다.’
세계의 이빨 산맥의 하이 오크 족장들이 전부 모이는 대회의.
본디 일 년에 한 번만 열리는 회의였으나, 비상시라면 긴급하게 소집하는 것도 가능하긴 했다.
물론 그럴 경우 회의의 주최자는 상당한 정치적인 부담을 떠안게 되겠지.
‘언젠가는 했어야 할 일이다, 잉간. 지금 같은 상황에 네가 성소를 찾아왔다는 건···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깨닫게 하기 위해 선조들이 개입한 걸지도 모른다.’
생각이 많아 보이던 타룸의 옅은 한숨.
댈런은 고개를 털었다. 애당초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은 하이 오크의 내부 정치에 개입하려는 게 아니었으니까.
“······우와.”
그때 소년의 모습을 한 아카샤가 댈런의 무릎 위에 털푸덕 엎드렸다.
펠버의 손에서 조각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소년.
조막만 한 입이 살짝 벌어지고, 검은 눈동자가 흥미로 반짝거린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소년이 수많은 회차에서 대륙 남부를 초토화시켰던 진룡이라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지.
“끌끌끌.”
그 순수한 모습에 펠버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한층 부지런히 놀려갔다.
삭삭삭―
점토인형을 잡은 손이 인형에 끊임없이 마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날카로운 조각칼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점토 조각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조각칼이 닿는 순간 자르기 적당하게 물러지고, 칼날이 지나가자마자 단단하게 형체를 굳혀내는 점토.
경지에 오른 대지술사의 완숙함이 손 안에서 가감 없이 펼쳐지면서, 뭉툭하던 형상에 점차 생기를 불어넣는다.
‘반쯤 농담조로 요양이라고 표현은 했지만···이곳에서의 생활이 정말 도움이 되긴 하나보군.’
공예라는 섬세한 작업을 저토록 기민하게 해낸다는 건, 펠버의 육체능력이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는 증거.
5위계에 올라 더 위쪽을 바라보고 있는 대마법사인 그가, 심상 속의 막대한 힘을 감당해낼 만한 육신을 갖춰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5위계라.’
영역의 일부분을 현실에 덮어씌울 수 있는 경지.
그건 타고난 종의 한계를 벗어던진 초월자를 가려내는 기준이었다.
댈런은 천변만화의 얼굴과 덩굴의 마녀가 격돌했을 당시, 그 미답의 길에 닿았던 짧은 순간을 떠올려봤다.
‘한 번만 더 해보면 완전히 감을 잡을 것 같은데.’
확신할 수 있었다. 그에게 남은 건 능력이 아닌 심상의 문제라는 걸.
이미 최소한의 조건은 달성한 지 오래.
기억 속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당시의 잔향을 되새겨낸다.
시간선에 직접 개입할 정도로 뛰어난 오성을 가진 마법사의 마력 조작을 보고 있으면, 그때의 그 감각을 다시금 되살릴 수 있을 것 같기도―
“자. 여기 있다.”
―툭.
무릎 위에 던져진 조각상과 함께 흩어지는 심상. 소년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그럼. 늙은이의 선물이라 생각하거라.”
“선물···감사합니다!”
뛸 듯이 기뻐하며 점토 조각상을 낚아채는 아카샤. 소년은 루시아에게 자랑하려는지 조각상을 들고 방으로 도도도 달려갔다.
펠버는 그 뒷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조급해하지 말게.”
노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소년이 사라진 복도이지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구분하기 어렵지 않다.
“처음 봤을 때부터 자네의 그릇은 남달랐지. 까마득히 높은 곳을 바라보고, 범접하기 힘든 초월자들을 상대하면서도, 깊은 곳의 평정심은 흔들리지 않았네.”
“···또 어려운 소리군.”
“말 그대로, 이제 와서 조급해하지 말라는 이야기일세. 심상을 현실에 덧씌우는 일 따위야, 자네에게는 그저 거쳐 가야 할 과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까.”
펠버의 눈살이 자글자글 주름을 만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네를 받아들이게. 소영역을 이루는 것이 지나간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빚어지는 돌파구라면, 개방의 단계에 접어든 대영역은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되는 힘일세.”
“······.”
끼이익.
대답하는 대신, 댈런은 입을 일자로 다문 채 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탄성 좋은 원목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의 체중을 온전하게 받아냈다.
조급함이라. 언제부턴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야 종말의 요소들을 한발 앞서 박살낸다는 성취감에 젖어있었지만, 악신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자 입장이 반대가 됐다.
놈들의 파상공세를 막아서기 위해, 혼자서 대륙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게 된 꼴.
애당초 그걸 끊어내고자 이번 여정을 떠난 게 아니던가.
차르국으로 몰려오는 공세를 완벽하게 막아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댈런의 초점은 그보다는 스스로의 힘을 쌓아올리는 데 있었다.
하이 오크의 성소에 잠들어있을, 일격으로 언덕을 무너뜨리는 권사의 시체를 회수함으로써.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라.’
펠버가 남긴 화두 역시, 그런 여정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터.
자신은 왜 이 여정을 떠났는가. 그 끝에 무얼 얻고자 하는가.
그 시작점에서부터 새겨졌던 원초적인 이유와 갈망은, 가슴 깊은 곳에 지금도 여전히 잠들어 있을 테였다.
잠시 흐트러졌던 마음을 바로잡고 나자, 펠버가 점토 덩이를 하나 더 꺼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마법사가 말했다.
“자네도 하나 가지겠나?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주겠네.”
“그래준다면 고맙지.”
삭삭삭삭―
낮게 웃고 조각칼을 놀리기 시작하는 마법사. 댈런은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잔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밖에서 그를 부르러 온 하이 오크 전사장의 기척이 느껴졌다.
사흘이 지나 마침내 족장들이 전부 모인 것이었다.
***
사흘 만에 방문한 족장의 집.
돌로 쌓아올린 저택의 1층에는 성인 장정 수십 명을 수용하고도 남을 커다란 회의실이 있었다.
물론 그만큼 커다란 회의실이라도, 하이 오크들이 스물 남짓 들어서자 미묘하게 좁아 보였다.
밥손님 자격으로 일행을 대표해 참가한 댈런은, 탁자 위의 육포를 씹으며 각 부족의 족장들을 둘러봤다.
감정에 솔직한 하이 오크들인지라 속내를 파악하기는 쉬웠다.
절반 정도는 무덤덤하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심기가 불편한 얼굴.
개중 몇몇은 어찌나 화가 났는지, 넓은 돌탁자 위에 간식으로 쌓아올린 각종 음식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갑자기 웬 족장 회의냐. 족장 타룸.”
쩝쩝거리는 소리가 적당히 잦아들 무렵, 돌탁자에 둘러앉은 하이 오크 족장들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표정이 일그러져 있던 놈이었다. 이유 역시 짐작할 만했다.
“다음 족장 회의까지는 반 년이 넘게 남았지 않았나. 대족장의 허락은 받고 연 건가? 설마 대족장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건 아니겠지?”
“대족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족장 챈챈발라.”
타룸이 말했다.
“내 스승인 대족장과 싸울 생각은 없다.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초대장을 보냈지만,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응답이 없을 뿐이다.”
“그럼 거절이군. 대족장이 없는 족장 회의는 처음이다. 대체 뭐가 그렇게도 급한 사안인 건지 어디 한 번 말해봐라, 족장 타룸.”
족창 챈챈발라라 불린 하이 오크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타룸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어갔다.
“이번 회의는 두 가지 안건 때문에 열렸다. 하나는 내 옆에 앉아있는 이 칭구의 요청이지. 우리 하이 오크들의 성소를 방문하고 싶다고 한다.”
“그건 어렵지 않다! 선조들의 율법에도 기록되어 있다! 같이 밥을 먹고, 족장 셋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대족장의 허락을 받으면 된다!”
족장 중 하나가 소다리를 뜯다 말고 벌떡 일어섰다. 우렁찬 외침. 무덤덤한 표정을 짓던 쪽이었다.
“고맙다, 족장 울두캅. 하지만 알다시피 대족장은 족장 회의에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초대장에 이 칭구에 대한 이야기도 적었지만 마찬가지로 답이 없었지.”
“그래서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거냐, 족장 타룸?”
챈챈발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툭 튀어나온 송곳니 때문에 안 그래도 험악한 얼굴이, 원래보다 배는 더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타룸은 진중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말했다.
“나는 대족장의 안위에 문제가 생겼다고 본다.”
“말도 안 된다!”
쿠당탕!
챈챈발라를 비롯해 족장 몇 명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댈런은 육포를 씹다 말고 반사적으로 도끼를 던질 뻔했다.
‘썩을.’
이 자리에 있는 하이 오크 족장들은 전원이 영역을 이룬 강자들.
눈대중으로 봤을 때 그를 넘어서는 실력자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머릿수가 스물이 넘어가는 만큼 그도 약간은 긴장해야 했다.
하이 오크들의 생각은 외지인인 그마저도 밥 먹자는 말 하나로 친구가 될 정도로 단순했다.
그 말인즉 지금처럼 머리 아픈 회의를 할 때는,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갈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고.
“다들 진정해라. 나도 너희들만큼이나 대족장을 따른다. 하지만 대족장이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다. 선조들도 죽어서 흙과 바람으로 돌아가지 않았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차기 대족장 후보인 너의 말을 들어보겠다.”
당장에라도 무기를 뽑을 듯 으르렁대던 하이 오크들이, 침착한 타룸의 말에 서서히 기세를 가라앉힌다.
그저 단순한 종족이기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
타룸이라는 하이 오크 족장의 권위와 신뢰도가, 족장들 사이에서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는 이야기일 테였다.
“고맙다, 족장 챈챈발라.”
“하지만 네 말에 동의할 수는 없다. 지금 대족장은 늙어 죽기에는 젊다. 그리고 대족장이 성소에 있는 한, 성소 수호자들이 대족장을 지킨다. 어떻게 대족장이 위험할 수 있나?”
“그건···.”
뭔가 말하려던 타룸이 입을 닫았다. 그리고 댈런 역시 육포 씹기를 한 번 더 멈췄다.
“······.”
피부 위에 오소소 돋아나는 위기감.
경종을 울리며 사선을 경고하는 육감.
콰지지직!
인지한 순간 돌벽을 뚫고 십수 자루의 투창이 날아들고 있었다. 몇몇 족장들이 능숙하게 무기를 뽑아 쳐냈지만, 다른 몇몇은 그러지 못했다.
“크아악!”
“습격이다! 싸움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하이 오크 족장들. 댈런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오롯이 감각에 집중했다.
허리춤에 걸쳐진 손. 던져달라는 듯 진동하는 도끼.
첨예하게 돋아난 기감이 넓은 돌저택을 포함해 일대의 정보를 뇌리 안에 때려박고.
신비를 꿰뚫는 파영의 마안이 번뜩이는 안채를 발하며, 극에 달한 지능 수치와 함께 그 모든 정보들을 낱낱이 분석해낸다.
영역을 이룬 전사 수십 명의 경계를 뚫고 들어왔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있을 수 없는 일.
호흡 한 줌, 심박 한 번까지 놓치지 않는 이들의 감각을 속였다는 건 둘 중 하나다.
그 모든 기척을 감추고도 남을 정도로, 압도적인 역량을 가진 5위계 이상의 실력자이거나―
‘혹은 생명체로서 감춰야 할 기척이 흐릿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술식으로 재구성된 무생물에 가까운 존재이거나.’
콰르르르―
천장이 무너진다. 그 사이로 거뭇한 인영이 떨어졌다.
눈앞에 또렷하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흐릿한 기척.
가장 기초적인 생명력조차 느껴지지 않아, 달아오른 전사의 감각에도 사실상 돌덩이나 시체와 다름없었다.
쿵―
돌탁자 위에 내려앉은 거무튀튀한 거체에, 회의장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
쉬익― 콰직!
매끈하게 마감된 도끼 손잡이가 그 미간에 돋아남과 동시에, 놈이 마치 꼭두각시의 줄을 당긴 것처럼 뒤로 넘어갔다.
쿠궁!
돌탁자를 부수고 쓰러진 거체.
3미터가 훌쩍 넘어서는 거대한 덩치에, 하이 오크와 쏙 빼닮은 형상.
까맣게 착색된 피부 위, 흔적만이 남아있는 빼곡한 문신을 확인한 족장들이 눈을 부릅떴다.
타룸이 검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성소 수호자다! 대족장이 우리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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