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에클라힘(4)
암월단의 중급 간부, 투크탈라 스카이마스는 예지 능력자였다.
예언자라고 불리기에는 조금 과한 감이 있었다. 그가 예지할 수 있는 미래는 기껏해야 1초 정도였으니까.
거기다 예측 가능한 대상 역시 본인에게 제한되기에, 점쟁이의 재능으로는 전통적인 수정구 점이나 별점보다도 하잘것없었다.
다만 시간이 가지는 가치라는 건, 사람과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해지는 법.
대륙의 미래는커녕 한 개인의 앞날조차 내다보기 어려운 예지력이라도, 일 초에 공방이 수 차례씩 오가는 초인들의 싸움에서는 수십 번이고 생명을 구할 절기였다.
비교적 뒤떨어지는 신체 능력을 가지고서도, 투크탈라가 암월단의 중급 간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이런 미친···!”
콰과과광!
머리 위를 희끗하고 지나간 손도끼에 목숨을 잃지 않은 것 역시, 예지 능력의 극적인 발현 덕분이었고.
“차르국 대포도 아니고 무슨 도끼가 저딴 파괴력을···!”
1초 뒤를 예지하고도 가까스로 피해낸 도끼가, 하수도의 통로 저편에 처박히며 벽이며 천장을 죄다 우르르 무너뜨린다.
조금 더 강했으면 아예 근방의 하수도가 죄다 붕괴할 뻔했다. 도끼 투척 한 방의 결과물이라고는 믿기 힘든 위력이었다.
아니, 애초에 저렇게 굴리고도 도끼가 남아나나? 저 도끼는 무슨 금강궁의 보고에서 나온 물건이라도 된단 말인가?
더 큰 문제는 저런 도끼가 하수도의 벽을 죄다 건너뛰고 날아왔다는 이야기.
그래놓고서도 어떤 마법이나 주술의 전조조차 없다니, 절로 찍 소리가 나올 상황이었다.
“임무 중지! 임무 중지! 현 시간부로 임무에 투입된 암월단원은 전부 퇴각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투크탈라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며 통신용 마석에 대고 소리쳤다. 그의 주변으로 인간 어린아이 크기만 한 쥐떼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공간을 아에 뛰어넘고 무기를 투척한 기예는 놀랍지만, 그 역시 날고 기는 초인들을 상대한다는 암살단의 중급 간부.
암월단은 다른 건 몰라도 치고 빠지는 전략만큼은 도가 튼 집단이다. 아직 도망칠 기회는 남아있었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암살 목표가 공간 전이 주문을 익혔다는 내용은 없었으니···.
[선빵 갈겨놓고 어딜 도망치냐.]
관자놀이를 찌릿 울리는 통증.
귓가보다 먼저 머릿속에 메아리친 문장.
의미 모를 단어가 섞여든 굵직한 목소리는, 다름아닌 예지 능력의 결과물이었다.
“임무 중―찌이이익!”
평소처럼 명령을 내릴 틈조차 없다.
비명에 가까운 절박한 외침. 그 의지의 발현에 거대 쥐떼가 우르르 방벽을 만든다.
거무튀튀한 털가죽들 너머로 잿빛 그림자가 흩날리고, 다음 순간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근육질의 전사.
그가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뭐야, 투크탈라였냐?”
“찌, 찍?! 어떻게 내 이름을···!”
“하다하다 도저히 안 되니까, 신을 암살할 수는 없을까 싶어서 암월단에도 들어가봤잖냐.”
그것도 열 번 넘게.
씩 웃으며 덧붙이는 말. 투크탈라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덩치가 암월단에 들어왔었다고? 용살자에 마녀 살해자라 불리는 저 용병이?
아니, 애초에 암월단은 근 수십 년간 암면에 들어있었는데? 그럼 인간 주제에 백 살이 넘었다는 이야긴가?
찌릿.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 사이.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어떤 장면이 파고들었다.
남자가 성검을 휘두르는 장면. 벼락같은 그 궤적에 끊어지는 자신의 허리.
투크탈라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단번에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려냈다.
콰지지지직!
큼직한 쥐들이 수수깡처럼 우수수 잘려나가고, 가까스로 검을 피해낸 투크탈라는 곧장 도망쳤다.
“계획 변경! 암살을 속행한다!”
후퇴 중이던 근방의 부하 암살자들을 불러모으는 한편, 품속의 연막탄을 죄다 터뜨리며 도주를 이어간다.
찍찍찍―!
그의 부름에 하수도의 어둠에서 단검이며 꼬챙이를 꼬나쥔 쥐인간들이 튀어나왔다. 암월단원들은 그렇게 등장한 지 수 초도 지나지 않아 무기 째로 절단되어 진창에 처박혔다.
그렇게 몇 명의 암월단원이 갈려나가는동안, 투크탈라와 남자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벌어져갔다.
사실상 다른 암살자들을 고기 방패로 써먹겠다는 심산.
허나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게 아니었기에, 투크탈라의 양심에는 한 점의 가책도 없었다.
암월단이 암면에서 깨어난 건 고작 몇 달 전이다. 원래라면 조직을 정비하고 세력을 규합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시점.
허나 무슨 생각에서인지, 암월단의 수장인 여섯 손가락의 다른 판단을 내렸다.
‘끝이 머지않았다. 바로 활동을 개시한다.’
문제는 수십 년만에 깨어난 터라, 이 시대는 물론 암살 대상들에 대한 최신 정보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
그중에도 암살 대상 중 중요도에서 여섯 손가락에 꼽는 목표물, 댈런이라는 전사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더욱 드물었다.
놈은 난데없이 등장한 용병 출신. 아무리 조사해도 출신 신분이나 태생은커녕, 어릴 적의 행적조차 알아낼 수 없었다.
허나 그런 불투명한 과거가 무색하게, 그는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 속도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전사이자 마법사였다.
이런 종류의 암살 대상은 한 번에 처리하는 게 불가능한 법이다.
중요한 건 수십 자루의 단검을 던져서, 그중 한 자루라도 제대로 들어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암살 시도를 통해 정보를 쌓아가야 했고, 공간을 뛰어넘어 도끼를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은 가지고 돌아갈 가치가 있는 정보였다.
‘거기다 몸뚱이 자체로 공간을 넘나들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주문이 아니었어···!’
지끈.
다시 한 번 두통이 엄습한다. 예지력으로 빚어진 장면이 보일 때의 전조였다.
다만 이번에는 투크탈라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야를 한가득 뒤덮은 시뻘건 색조.
눈앞으로 다가오는 곰발바닥 같은 손아귀.
“이게 뭐···.”
의문을 품는 순간, 그 해답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휘릭―
눈앞에 잿빛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허공에서 등장한 남자는 약간 짜증난 어조로 말했다.
“어딜 도망가냐니까. 사람 무시하냐?”
콰아앙―!
전사의 신형이 흐릿해진 자리. 얼어붙은 하수도의 구정물이 돌바닥 째로 깨져나가고.
뻐어어어엉!
재빠르게 전사를 막아선 거대 쥐떼의 선두에서, 가죽으로 된 북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단말마의 비명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어깨에 부딪힌 뱃가죽이 터져나가고, 조각난 척추며 으스러진 내장 파편이 사방팔방 튀어나간다.
그리고 그건 시작이었다.
뿌드드드드드―!
터지고 또 터진다.
전사의 무자비한 돌격에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어떤 성명절기나 주문도 아니었다. 그저 단단한 육체와 압도적인 힘을 앞세운 무식한 육탄돌격일 뿐.
그건 마치 공기를 가득 불어넣은 포도주 부대를 줄지어 늘어놓고, 차르국 특제 포탄을 정면에서 쏴재낀 것 같은 광경이었다.
투크탈라는 그제야 예지력으로 내다본 장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야를 가득 메운 붉음. 그리고 그 붉음을 뚫고 다가오는 손아귀···.
턱!
“능력치의 증가에는 어느정도 무감각해졌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근력 수치가 50을 넘어가니 감회가 새롭군.”
“무, 무슨 소리···찌이익!”
“알 것 없다. 그보다 아까 말한 건 들었겠지?”
머리통을 잡은 큼직한 손아귀 너머, 손가락 사이로 남자의 검은 눈이 보였다.
색채를 잃은 듯 거무튀튀한 눈동자. 거기에 어떤 정교한 살심이나 타오르는 분노는 없었다.
거대 쥐 수십 마리를 육편으로 만들고서도, 별 일 아니라는 듯 그저 착 가라앉은 눈.
남자가 말했다.
“먼저 손을 쓴 이상 각오는 되어있길 바란다. 너나 암월단이나.”
꾸드득···.
우악스런 손아귀에 조금씩 힘이 들어간다. 투크탈라는 숨이 턱 막혔다.
붉게 물드는 시야. 턱 관절에서 뼈마디가 어긋맞는 소리.
“······!”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팔다리를 휘저었지만, 소용없었다.
남자는 사무적인 태도로 손아귀에 힘을 조금씩 더해갈 뿐이었다.
뇌가 마비된 듯 예지 능력조차 발현되지 않는 상황. 그때였다.
“그쯤 해라, 인간.”
먹먹해져가는 귓가 사이로, 하수도 저편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
댈런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등 뒤, 하수도의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쥐인간이었다.
지금 그의 손아귀에서 두개골이 박살나기 직전인, 암월단의 중급 간부와 같은 종족.
놈의 키는 보통보다 좀 더 작았다. 어림잡아 난쟁이인 비요른 정도 될 법했다.
허나 사슬갑옷 너머로 느껴지는 입체적인 근육의 굴곡은, 결코 그 체격을 왜소하다고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찰박.
“다시 한 번 말하지. 그쯤 해라, 인간.”
놈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다.
다른 쥐들보다 더 풍성하게 자라난 하얀 수염. 그리고 놈의 뒤를 줄지어서 따르는 수십 마리의 쥐인간들.
정체를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놈은 모니터 너머에서도 숱하게 마주쳐왔던 존재.
횟수로만 따지면 지금 머리통이 잡혀 죽어가는 투크탈라보다도, 배는 더 많이 조우한 암월단의 상급 간부였으니까.
“암월단의 여섯째 손가락. 픽카케 스카이마스.”
“···나를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생긴 것과 달리 그렇게 무식한 놈은 아니라더니, 입수한 정보가 정확했어.”
시발, 생긴 게 뭐 어쩌고 어째?
댈런은 그렇게 발끈하는 대신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져있던 성검이 날아와 손에 안착했다.
오른손에는 쥐인간의 머리, 왼손에는 번뜩이는 성검.
거기에 피와 살점을 뒤집어쓴 댈런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사냥꾼 같았다.
암월단의 여섯째 손가락, 픽카케는 그걸 보고 수염을 살짝 떨었다. 놈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나는 암월단의 여섯 손가락 중 하나다. 암월단의 손가락이라는 직위가 누구에게 주어지는 자리인지는 들어봤겠지.”
“들어봤지. 초월자를 암살한 자에게만 준다던가. 그래서?”
“그래서라니? 말 그대로다. 나는 초월자는 아니지만, 5위계의 초월자를 암살한 적이 있다. 네가 대영역을 이뤘다고 해서 나에게 죽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협박이라는 거군. 거기다 시간 끌기인가.
머릿속에 그려진 회색 지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덕분에 근방 하수도 일대를 수십 마리의 쥐인간들이 둘러싸는 걸, 댈런은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눈앞의 쥐인간, 암월단의 여섯째 손가락이 말을 길게 늘이는 것도 보다 완벽한 암살 기도를 위한 블러핑이겠지.
그런 수싸움이 좋다면 같은 방식으로 응수해줄 뿐이다. 댈런은 피식 웃으며 검자루를 슬슬 매만졌다.
스으으으···.
순간 뻗어나가는 위협적인 살기. 기이하게 뒤틀리는 마력의 흐름.
초월자의 의지는 단순한 발현만으로도 일대를 짓누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픽카케는 침을 꿀꺽 삼키며 몇 걸음쯤을 더 물러섰다.
댈런은 그에 맞춰 앞으로 걸음을 천천히 내디뎠다. 다시 물러서는 픽카케와 암살자들.
찰박. 찰박......
미묘한 균형이 이어졌다. 댈런이 나서면 암살자들이 물러선다. 가까스로 유지되는 거리는 끊어지기 직전의 밧줄처럼 위태로웠다.
물러서다보니 어느새 막다른 곳까지 다다랐다. 먼젓번의 도끼질로 무너진 하수도 통로였다.
아직 조금 더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판단이었을까. 구석까지 몰린 상황임에도 픽카케는 굴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요구하는 건 하나다. 네 손에 들린 그놈은 내 아들이지. 아들만 백이 넘긴 하지만, 내 능력을 가장 잘 물려받은 건 그놈 하나야. 놓고 물러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그럼 나도 하나 묻자.”
“뭐지?”
“아들이 백이 넘는다고 했지. 이름은 다 외우고 있나?”
쥐인간의 눈이 찡그려졌다. 놈이 물었다.
“···그건 왜 묻는 거지?”
“왜 묻기는.”
으직!
댈런은 손아귀에 힘을 조금 주었다.
단단한 무언가가 손 안에서 부서지는 감각. 바들거리던 머리통이 희고 붉은 조각이 되어 후두둑 떨어진다.
쥐인간의 눈이 큼직해지고, 놈의 기세가 일순 흔들린 걸 본 댈런이 씩 웃었다.
“당연히 블러핑이지, 새꺄.”
도끼 투척으로 무너진 통로의 잔해 안쪽. 돌더미들 사이로 황금빛 광채가 터져나온 건 그 순간.
“이런 고양이 같은 새···!”
콰아아앙―!
뒤늦게 함정이었음을 눈치챈 쥐인간의 괴성은, 황금빛 폭발에 묻혀 휩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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