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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81화 (181/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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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라힘 방어전(3)

“썩을.”

욕을 씹어뱉은 댈런이 몸을 일으켰다. 구멍 숭숭 뚫린 갑옷 사이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괘, 괜찮으십니까···?”

곁에서 주저앉아 있던 용병 소년이 덜덜 떨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댈런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봐야 찰과상이었다.

아군을 지키느라 붉은 뇌전에 직격을 허용하긴 했지만, 대부분 상쇄하고 조금 남은 마력이 피부를 그을렸을 뿐.

치지직···.

용혈의 재생력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흉터조차 없이 상처를 회복시킨다. 연기가 흩어진 갑옷 틈 사이로 돌덩이 같은 근육이 내비쳤다.

“어, 어라···?”

눈이 휘둥그레진 용병 소년을 향해 댈런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날 수 있겠나?”

“네, 네!”

용병 소년이 벌떡 일어났다. 다릿심이 풀렸는지 손을 놓자마자 휘청거리면서도, 어떻게든 가까스로 균형을 잡는 모습.

주변에서 웅크리고 있던 다른 병사들 역시 한 마디씩 감사 인사를 건네며 일어섰다.

댈런은 고개를 들고 성벽을 둘러봤다.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살아남았지만, 모두가 그들처럼 운이 좋은 건 아니었다.

“끄아아아아!.”

“커, 허어, 죽여···줘······.”

곳곳에서 들려오는 신음과 비명.

하반신이 사라진 병사가 단말마의 신음을 뱉고, 복부에 구멍이 뻥 뚫린 용병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기 내장을 쓸어담는다.

악신 쑴의 권능으로 빚어진 먹구름. 거기서 쏟아진 붉은 뇌전의 폭격은 실로 어마무시한 위력이었다.

단단하게 지어올려진 삼중의 성벽 중, 첫 번째 성벽이 사실상 기능을 반쯤 상실했으니까.

콰르륵. 우르르르···!

여기저기서 성벽이 붕괴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닥까지 무너진 부분만 십여 곳이었다.

그밖에 반파된 곳이나 무너진 망루 등을 합치면 오십여 군데에 달하는 손상.

벼락이 직격한 곳에서 살아남은 이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직접적인 타격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파에 휩쓸려 죽거나 중상을 입은 이가 수백에 달할 정도.

쿠르르릉···.

그때 새까만 먹구름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건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듯, 살아있는 생물처럼 기괴하게 꿈틀거리는 먹구름.

실제로 그 안에 응축된 뇌전의 마력은, 조금 전 떨어졌던 폭격의 배 이상 되는 힘이었다.

댈런은 성검의 손잡이를 조금 세게 움켜쥐었다. 저걸 막으려면 최소한 영역을 개방해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건 제가 맡도록 하죠.]

어디선가 불어온 가느다란 바람 한 줄기가, 희미한 전성을 남기고 전성을 사라졌다.

쩌저저저적···!

공간이 얼어붙는 기이한 소음.

오싹하게 돋아나는 소름에 성벽 위 대부분이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얼어붙은 궁전에 뾰족하게 솟은 첨탑이었다.

평소에는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궁전 한가운데 피뢰침처럼 솟아오른 탑.

“차리나시여···?”

첨탑의 존재를 아는 걸 보니 특무대 요원인 걸까.

댈런의 곁에서 살아남은 병사 중 하나가 중얼거린 것과 함께, 차리나의 전성이 도시 전역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에펠.]

[라치나.]

[카스타.]

[발케르···.]

단어 하나하나에 막대한 마력이 녹아난다.

한 어절이 곧 대규모 술식의 시동어나 다름없었다.

켜켜이 쌓여가는 수십 갈래 주문의 영창. 서로 공명하면서 점점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다.

구우우웅···.

첨탑을 감춰두던 결계마저 물린 채, 탑의 모든 여력은 그 공명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변을 눈치챈 북쪽의 검은 먹구름이, 성벽을 향해 붉은 뇌전을 뿜어내기 직전 멈칫하고.

[···스타티아.]

어느새 아득하게 멀어진 차리나의 목소리가 마지막 영창을 내뱉은 순간.

쩌적!

「영역 완전개방 : 창공 위 서릿발의 수호자」

하늘이 격변했다.

***

쩌저저적─────

그건 마치 호수가 얼어붙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하늘을 담은 잔잔한 호수가, 갑작스런 냉기에 얼어붙으며 하얗게 뿌예지는 듯한 모습.

그러나 얼어붙은 게 호수가 아닌 하늘 그 자체라는 점에서, 이건 주문이라는 상식의 범주를 깨부수는 이적이었다.

쩌적───쩍──

탑을 중심으로 얼어붙은 하늘이, 부채꼴로 퍼져나가며 북쪽으로 진격한다.

그 아래에서 내달리는 회색 먹구름은, 일반인의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눈폭풍과 우박을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얼어붙은 하늘에 둥근 태양이 굴절되어 타원형으로 비치고.

검은 구름이 붉은 뇌전을 뿜어낸 순간, 회색 먹구름에서 서릿발이 몰아쳤다.

꽈광━━쩌저저적!!!

하늘과 하늘의 싸움이었다.

거대한 눈보라가 파도처럼 밀려들고, 붉은 뇌전이 그 폭풍을 파고들어 깨부순다.

수십 갈래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뇌전이 일순간에 공간째 동결된 순간, 검은 구름이 급격하게 몸집을 불리며 냉기를 밀어냈다.

모든 걸 얼려버리는 극한의 한기와, 고열의 전격을 내뿜는 검은 먹구름이 얽혀든다. 한 뼘이라도 상대방의 세력을 갉아먹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내기 위한 처절한 사투.

꽈과광! 꽈릉━쩌저적!

지상에서 올려다보기에, 그건 마치 신과 신의 대결과도 같았다.

“오오······.”

“대륙 북방을 다스리던 대정령의 후예······.”

“설마 인신(人神) 차르의 전설이 사실이었나?”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경탄.

초대 차르가 왕권을 다지기 위해 만든 전설이, 마치 정말 있었던 일인 듯 느껴지는 정경.

그걸 멍하니 바라보던 댈런은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

차리나의 영역 개방은 그의 심상에도 깊은 깨달음을 남겨내고 있었다.

태곳적의 고룡이나 대악마와 동격인, 6위계의 초월자에게만 허락된 영역의 완전개방.

단순히 기상을 트리거나 도구로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세계의 법칙과 구성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대체하는 기적이다.

압도된다기보다는 호승심이 꿈틀거린다. 미궁도시에서 처음 영역 간의 충돌을 목격했던 때와도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고양감에 함몰될 때가 아니었다.

얽히며 충돌하는 두 하늘 아래, 적의 군세가 밀려오고 있었으니까.

“정신 차리시오.”

낮고 굵은 목소리.

마력으로 증폭된 음성이 성벽을 따라 아스라이 퍼져나간다.

넋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던 병사들이 나직한 일갈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궁병대가 시위에 화살을 메기고, 살아남은 대포에 산탄이 장전된다.

끄아아아아아아!

어느새 화살 한 바탕 남짓 거리까지 다가온 타락한 북방인들. 절규인지 함성인지 모를 놈들의 괴성이 성벽 위까지 들려왔다.

“산탄 발사!”

콰과과광!

하늘의 싸움 아래에서, 땅의 접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

쉬이이익―

목표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

“크학!”

어깻죽지의 갑옷 틈을 관통당한 야만인이, 비틀거리며 몇 걸음 물러났다.

“크···으아아아!”

우득!

야만인은 괴성을 지르며 손을 뻗어 어깨의 화살을 부러뜨렸다. 울컥 흐르는 핏줄기. 붉어진 눈이 희생양을 찾았다.

“히익!”

놈의 눈에 먼발치에서 그 광경을 보고 주저앉는 궁병이 들어왔다. 방금 전에 화살을 쏜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야만인의 눈에 그건 야들야들한 고기였다. 놈의 우악스런 손아귀가 도끼를 던지기 위해 어깨 위로 들렸다.

타아앙!

지근거리에서 발사된 산탄의 폭풍. 들어올려진 손목이 그대로 끊어져 날아간다.

동시에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크레이그가 야만인의 목줄기에 검을 박아넣었다.

“꺽···!”

치솟는 핏방울을 재빠르게 피해낸 뒤, 아룡의 비늘로 만든 은신 망토로 금새 몸을 감춘다.

크레이그는 다시금 성벽 위를 내달리며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았다. 망토 아래에서 입꼬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씰룩거렸다.

“으하하! 이 산탄총 정말 쩔어주는군! 외눈의 명공이라는 칭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니야! 이게 낭만이지!”

댈런이 들었다면 미간을 문질렀을 소리를 거침없이 뱉어대며, 적과 아군이 뒤엉킨 성벽 위를 순식간에 주파.

그 과정에서 여덟 명의 타락한 야만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크레이그는 무너진 망루의 잔해 사이에서 산탄총을 장전하며 숨을 돌렸다.

“그래도···이건 좋지 않군.”

아군의 머릿수가 시시각각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접전이 시작된 지 고작 한 시간.

첫 번째 성벽은 손쓸 틈 없이 밀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접전 직전에 쏟아졌던 붉은 벼락의 포격 때문이었다.

“첫 번째 성벽은 어차피 포기할 생각이었고, 그에 대비한 작전도 세워뒀다고 듣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빠르지 않은가. 오 미터에 달하는 장벽이라면 적어도 하루는 버텨줄 거라 생각했는데.

철컥!

생각을 이어가는 한편 손은 습관처럼 움직였다. 재빠르게 총신 정비를 끝내고, 화약과 탄을 묶어놓은 종이 탄피를 밀어넣은 뒤 탄창 막대를 끼워넣는다.

사실 일선에서 전황을 가지고 지나치게 심사숙고해봐야, 별다른 차선책이 나오지는 않는 법이다.

빠져야 하는 타이밍만 잴 수 있다면, 그 전까지 한 놈이라도 더 쓰러뜨리는 게 최전방 전력의 임무 아니던가.

호흡을 가다듬은 크레이그는 은신 망토를 점검하고 일어섰다. 다시 전장에 뛰어들 시간이었다.

으직―

“커어···?”

느닷없이 복부를 뚫고 튀어나온 손만 아니었다면.

“감각이 좋군. 심장을 노렸는데 피했어.”

“크, 무···슨······.”

“은신 망토를 쓰는 걸 보니 특무대인가? 집행관급이 아니라면 받지 못하는 마도구라 들었는데.”

비릿하게 웃는 목소리. 크레이그는 이를 악물고 등 뒤로 검을 찔렀다.

“흡···!”

“오, 이런.”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는지, 야만인이 황급히 물러서며 손을 뽑았다.

크레이그는 복부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훈련받은 대로 재빨리 포션을 끼얹자, 즉시 어마어마한 격통이 몰려왔다.

“끄으윽···!”

“흐흐, 제법 강단도 있군. 집행관의 고기 맛은 어떨지 궁금한데.”

할짝.

야만인은 손에 묻은 살점과 피를 핥았다. 놈의 몸 곳곳에 자라난 붉은 갑피가 번들거렸다.

“나는 두카차. 원래부터 부족 최고의 전사였고, 신의 축복을 받은 지금 주변 부족 중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대전사다.”

“지, 랄······.”

“신의 제단에 해골과 피를 바치면 북방인 중 최고가 되기까지도 머잖았지. 어쩌면 승천해 필멸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그분의 대공이 될지도 모르고 말이야.”

“미친 놈···. 악마 새끼가 되고 싶다는 말을···거창하게도 하네.”

흐릿해지는 시야. 크레이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털며 말했다. 야만인이 웃었다.

“얼마 전 시체늪의 대공이 한 전사에게 소멸당했다지. 그 장본인이 북방인 출신일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워낙 부족이 많다보니 어느 부족 출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전투에서 기회를 노렸다가 놈의 수급을 취하면···응?”

야만인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갑자기 세상이 뒤집힌 것이었다.

머지않아 세상이 두어 바퀴쯤 더 돌고, 자신의 몸뚱이가 내려다보였다.

느릿하게 길어진 시간감각 사이로 보이는 것들. 번뜩이는 성검과 몸뚱이 뒤쪽에 일렁이는 잿빛 그림자.

그 그림자 앞에 선 전사를 확인하고서야, 야만인은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머리가 방금 잘려나갔다는 것을.

“무···흐···!”

“머리 잘린 새끼가 말도 하네. 악신 따까리라 그런가.”

콰직!

잘린 머리가 땅에 닿기도 전, 벼락같이 떨어진 검이 머리통을 두 쪽으로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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