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188화 (188/288)

188

전쟁신의 검(1)

구우우우우···!

두 영역의 공명으로 탄생한 신수(神樹)의 주변.

하늘과 하늘 사이를 잇는 뇌전의 줄기를 기점으로,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파동이 퍼져나간다.

신수의 가지를 딛고 선 댈런은 그 중심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푸른 전격의 구체가 흘러나와 댈런의 손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방금까지 지축을 울리던 공명이 돌연 뚝 멎었다.

···콰지지지지직!!

손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눈부신 전광.

그 여파만으로도 주변 마력풍의 흐름을 모조리 으스러뜨린다.

두 하늘의 공명으로 빚어낸 심상의 정수. 아무리 댈런이라도 이걸 오래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터어엉―!

허공에서 거꾸로 몸을 뒤집은 댈런이, 신수의 가지 하나를 짓밟고 뛰어내리며 갑주를 향해 주먹을 뻗어낸다.

머릿속에 그리는 건 푸른 번개의 형상.

본디 성층권의 구름 사이에 있어야 할 그 파괴적인 뇌령을, 두 하늘 사이인 이곳에 증폭해 강림시킨다.

「청뢰조(靑雷條)」

찌지지━━━!!

허공에 거꾸로 심겨진 두 번째 전격의 나무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거침없이 가지를 뻗어낸다.

묵빛 갑주가 선 지점을 넘어서서, 그 주변 일대까지 통째로 짓이기는 푸른 뇌전의 폭격.

그야말로 도망칠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

세계의 법칙을 갉아먹는 영역의 특성상, 대악마라도 이걸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

그러나 묵빛 갑주는 쓰러지지 않았다.

“타알마드 공···!”

“크흐으···내 비늘이 찌릿할 정도의 뇌전은 오랜만이군.”

어느새 놈의 정면에서 모습을 드러낸 붉은 눈의 용인이, 동료에게 쏟아지는 모든 전격의 폭풍을 전부 받아낸 것이다.

“의외인걸. 아까 잡아먹은 대마탑의 주문쟁이들보다 훨씬 낫잖아?”

살짝 벌린 주둥이에서 새어나오는 연기.

거뭇하게 겉표면이 타들어간 비늘 위에서, 푸른 스파크가 산발적으로 튀어오른다.

세로로 찢어진 붉은 눈이 기묘한 열의로 번들거렸다. 길게 뻗어 주둥이를 핥는 갈라진 혀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두 가지.

광기. 그리고 식탐.

“이거···내 생각보다 더 맛있겠잖아?”

용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꽈광―!

잿더미가 된 땅이 폭발하듯 뒤집어진다. 먼지 구름을 뚫고 용인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촤악!

등 뒤에서 펼쳐진 피막 날개가 가속을 더하고.

콰지지지직─!

압도적인 벼락의 폭풍을 정면에서 받아내면서도, 그 속도는 한 치도 줄지 않는다.

[댈런, 조시···!]

경고를 들을 틈조차 없다.

내지르던 주먹을 억지로 비틀어내며, 남은 공세의 여력를 갈무리해 방어로 전환한다.

「술식갑주 : 삼중첩」

「청뢰갑(靑雷甲)」

「백풍갑(伯風甲)」

「화염갑(火焰甲)」

쿠지지지직!

뚫린다.

푸른 뇌전의 폭우를 거침없이 찢어발긴 손톱과 이빨이, 번개와 바람의 갑주마저 으스러뜨린 뒤 불꽃의 저항을 만나서야 한순간 멈칫했다.

그럼에도 시간벌이 수준에서 그쳤을 뿐.

재빠르게 번개로 빚어진 신수의 뒤로 피한 댈런을 향해, 피막 날개를 꺼내든 용인이 지체 없이 달려들었다.

“어딜 달아나는 거냐!!”

으지지지직──!

두 하늘의 공명으로 빚어진 첫 번째 신수마저 허무하리만치 손쉽게 으깨진다.

비늘을 두드리는 수백 가닥의 전격에도 불구하고, 용인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이 이빨을 들이밀었다.

힘의 총량이 밀린다거나, 기예가 부족하다거나 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건 완벽한 상성의 문제.

용혈의 배반자인 대악마 타알마드에게, 전격이라는 속성 자체가 통하지 않기에 생기는 일이었다.

‘용혈의 배반자. 그 옛 혈통이 뇌룡이었다고 하지.’

본디 용인이라 함은 근원 자체가 진룡에 닿아있는 종족.

진룡 수준의 강력한 조상이라면, 머나먼 후대에까지 용혈의 힘이 일부 닿는 건 말 그대로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악마로 타락하기 이전, 타알마드는 자기 일족에서도 혈통의 능력이 강력하게 발현되었던 존재.

불완전한 용혈이기에 벼락을 다루거나 뇌우를 부르는 능력까지는 손에 넣지 못했으나, 뇌전에 대한 저항력 자체는 뇌룡이었던 선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준이라던가.

‘···그러니 천공요새도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졌지.’

아무리 대악마라고 해도 혼자, 거기다가 화신체에 불과하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마탑 중 하나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영역의 공명으로 만들어낸 창공 너머의 전격조차도, 기껏해야 비늘 표면을 그을리는 데 그쳤다.

전격술사의 성지인 바르샤바크에서, 저 뇌룡의 후예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술사는 존재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기세만 요란하군! 어떻게 된 거냐!”

꽈광! 꽈르릉―!

땅으로 내려앉은 초월자와 대악마의 공방에 실시간으로 지형이 변해간다.

회백의 투사가 남긴 깨달음으로 그 공세를 받아내며, 댈런은 번개를 갈무리하고 화염의 기운을 꺼내들었다.

무기 봉인의 권능에 더해 뇌룡급 전격 저항력까지 가진 대악마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댈런이 아는 바로 타알마드의 약점은 두 가지.

‘불과 신성력.’

놈을 상대로 영역의 일면인 닫힌 설산의 하늘을 개방한 이유는, 사실 뇌전이 아닌 화염의 힘 때문이었다.

영역을 이중으로 개방한 뒤에도, 놈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때 벼락을 사용하지 않은 것 역시 마찬가지였고.

「대하주염(垈煆柱炎)」

쿠과과과과···!!

다만 여기서도 문제는 있었다.

싸움 도중에 난입했던 두 번째 대악마, 지옥 무기고의 대공 투르 아라둔.

지옥의 수많은 무기를 제련하고 관리하는 대장장이이자 무구 그 자체인 놈에게는, 파멸궁전의 지옥불마저도 익숙한 열기일 뿐이라는 사실.

“타알마드 공! 내가 막겠소!”

잿빛 지면을 뚫고 용인을 덮쳐가는 화염 기둥.

용살창을 앞세운 묵빛 갑주가, 용인을 제치고 그 열기의 폭풍을 정면에서 막아선다.

쉬이이이──!

장엄한 불기둥의 향연을 거스르는 창끝.

이번에는 정말로 피해낼 틈조차 없다.

짧은 시간에 영역의 힘을 두 번이나 교차해서 전력으로 쏟아냈기에, 다시 태세를 전환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

「회명(回冥)」

「사연답산(四聯踏散)」

황급히 공간을 빗겨넘어 회피하고, 그림자를 쪼개 분신을 만들어냈음에도 소용없었다.

충분하게 예열된 지옥의 무기와 대악마의 창술이 만나, 거무튀튀한 창끝이 십수 개의 잔영으로 갈라진 건 한순간.

스가가가각!

눈으로 따라갈 수조차 없는 연격은 모든 그림자를 찢어발긴 것도 모자라, 공간의 틈바구니를 뒤따라 비집고 댈런의 옆구리를 길게 찢어놓았다.

“···크윽!”

탁 하고 힘이 풀리는 다리.

가까스로 한쪽 무릎을 꿇고 버티자, 옆구리에서 뜨거운 핏줄기가 왈칵 흘러내린다.

여느 때처럼 용혈에서 새하얀 김이 치솟지만, 벌어진 상처가 저절로 다물어지는 일은 없었다.

용 사냥꾼이라 불릴 정도의 대악마가 사용하는 무구다.

진룡도 해칠 수 있는 수준의 저주에, 아직 완벽하게 용혈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 댈런이 저항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겠지.

“···과연 제법이군. 허나 주군의 명예를 욕하기에는 너무도 일천한 실력이다.”

뻗어냈던 창을 회수한 묵빛 갑주가, 창끝에 묻은 피를 휙 털어내며 말했다.

“수천 년 묵은 고룡이라도 이 창으로 입은 상처는 쉽게 치유할 수 없지. 네가 용신이 아닌 다음에야 회복하는 데 족히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크흐흐, 아쉽게 됐어. 모처럼 재미있는 사냥이었는데 금방 끝나게 생겼군.”

그 곁으로 다가온 용인이 광기로 눈을 번뜩이며 말을 받았다.

놈은 갑주가 들고있는 창끝에 혀를 가져다대고는 잠시 음미했다.

“적창···신기하군. 이미 천 년도 더 전에 유폐된 존재의 피를 손에 넣다니. 용신이 반역자의 피를 에낙사구스에게 팔아넘겼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과연 뜬소문이 아니었던 건가.”

“······.”

“적창의 피를 이어받은 아비에 청린용이 그 자식이라···이제 저 새끼용의 육즙만 즐기면 완벽한 식탁이겠군. 어린 용의 고기가 야들거리고 맛있지.”

주둥이에 피를 잔뜩 묻힌 용인이 비릿하게 웃었다.

미친 새끼. 댈런은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싸우려 하는가.”

갑주가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사실 어느 면에서건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화염과 뇌전. 댈런이 이번 회차에 얻어낸 가장 강력한 두 종류의 힘.

쑴 휘하의 대공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이 두 속성에 가장 강한 대악마들을, 한 전장에서 동시에 상대하게 될 거라고 누가 예측했겠는가.

그러나 댈런은 끝끝내 일어섰다. 이대로 포기할 싸움이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저쪽만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 하나만 말해두지.”

“···뭐냐?”

“너 뱀대가리 새끼야, 네가 부모 없는 놈이라는 건 알겠다 이거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남의 부모 앞에서 자식 욕 하면 안 된다는 것도 못 배웠냐?”

“······.”

“생각해보니 못 배워먹은 게 당연하긴 하네. 부모가 없는데 누구한테서 이런 예의범절을 배우겠어.”

쏟아지는 욕설에 용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게 뱀대가리라는 말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가 없다는 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곧 죽을 놈이 입 하나는 잘 놀리는구나. 번개와 화염으로 우리의 비늘과 갑주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비의 사랑? 그딴 헛소리를 하려는 건가?”

“아니. 뭔가 이해를 제대로 못 한 것 같은데, 방금 그건 애당초 내 이야기가 아니거든.”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용인의 표정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그 얼굴이 마치 동물원 우리에 갇힌 뱀을 연상시켜, 댈런은 무심코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너랑 달리 쟤는 엄마도 있어서.”

──────푹.

별다른 파공음은 없었다.

그저 주변의 공기에서 기이한 이질감이 느껴진 다음 순간, 무언가 뾰족한 것이 용인의 가슴팍을 뚫고 나와있었을 뿐.

“커···허억!”

튀어나온 건 번쩍이는 검신의 첨단이었다.

화륵.

백색 화염이 새하얀 검신을 따라 순식간에 불붙어 피어오르고.

“크아아아악!”

조금 전까지 비릿하게 웃던 용인의 몸을, 그 내부에서부터 통째로 태워버리기 시작한다.

촤아악―!

내장에 불을 지르자마자 뽑혀나와 휘릭 하고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검.

어느새 댈런의 곁에 다가온 성기사가, 백염으로 타오르는 그 검을 자연스레 잡아챘다.

“왜 이렇게 늦었소.”

“죄송합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완벽하게 기습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농담이요. 좋은 판단이었소.”

댈런은 낮게 웃으며 루시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피 묻은 두터운 손. 원래부터 피범벅이던 금발.

잠시 그 손길을 즐기던 성기사는, 이내 검에 묻은 피를 휙 털어냈다.

구우웅···.

그 단순한 동작에 은빛의 파문이 퍼져나간다.

단순히 악마를 추적하는 걸 넘어서서, 악의 심장에 직접 칼을 꽂아버리는 강력한 권능이 개화했다는 증거였다.

「영역 개방 : 악의 심장을 꿰뚫는 백색 비검」

게임 속에서 루시아를 악마 살해자라고 불리게 만든 권능이자.

동시에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종말의 마지막 순간까지, 반드시 함께해야 할 영웅 중 하나로 그녀를 꼽게 만든 영역의 힘.

모니터 너머에서는 단순히 방어력이고 뭐고 무시한 즉발 피해로 나타나던 그 이해불가의 힘이, 마침내 이 시간선에서도 꽃을 피워낸 것이었다.

스으―

백염으로 뒤덮인 검의 첨단이 두 대악마를 향한다.

놈들을 노려보는 푸른 눈동자에는 신성한 광채가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갑주 틈 너머로까지 시리게 내비치는 신성 문신의 성광.

전설에 기록될 성녀의 모습은 어쩌면 이런 형상일까.

주변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기라도 할 기세로 뿜어지는 밝은빛의 중심부에서, 루시아의 입이 열렸다.

그녀가 말했다.

“대륙의 균열을 수호하는 성기사단의 일원이자, 기사단 내부의 악을 척결하는 심문관 루시아 카스타챌드는, 지금 이 시간부로 대악마 타알마드와 투르 아라둔의 화신체를 처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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