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성전(2)
오랜 시간 고민했다.
이 땅에서 처음 눈을 뜨고, 현실을 받아들인 뒤로부터 계속해서.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종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번도 클리어해본 적 없는 게임의 끝을 보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가.
단지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았다. 다섯 악신이 대륙을 지옥도로 만들 때까지 살아남는다한들, 게임의 엔딩 크레딧은 올라오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단 두 가지.
“미궁의 끝에서 소원의 돌을 얻고, 다섯 악신을 전부 쓰러뜨릴 거요.”
푹신한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은 채로, 댈런은 한 번 더 강조했다.
“얼마나 걸릴지, 그 과정에서 어떤 싸움에 휘말릴지는 나도 알지 못하오. 하지만 나에게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오.”
“자네···굉장히 낡은 구전을 믿고 있었구만.”
달칵.
펠버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소원의 돌은 미궁도시의 지배자들이 만들어낸 여러 허상들 중 하나일세. 탐험가들을 인류의 보루를 지키는 전사들이라 띄워주는 풍문과 더불어, 도시로 더 많은 탐험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책략의 일부일 뿐이야.”
한 마탑을 이끄는 위치에 올라있는만큼, 이야기가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미궁으로부터 올라오는 마물을 막아내는 인류의 보루.
팔시온에 붙은 수많은 이명들 중 하나는, 사실 반쯤은 금강궁의 초월자들이 흘린 허명에 불과했으니까.
미궁도시가 미궁의 가장 큰 입구를 틀어막고, 그 아래에서 올라오는 마물들을 저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허나 그건 다름아닌 결계탑의 역할이었다. 매 주기마다 미궁으로 내려가서 마물을 사냥하는 탐험가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뜻.
그건 단지 더 많은 탐험가들을 도시로 끌어들이고, 그로서 인류 최후의 방주를 더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금강궁이 퍼뜨린 소문에 불과했다.
다만 소원의 돌에 얽힌 전설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소원의 돌은 분명 존재하오. 그 전설을 금강궁이 이용하는 건 맞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가려진 비밀이지.”
“으음···자네가 그렇게 확언한다면야, ”
근거조차 없는 주장. 그럼에도 펠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도 댈런을 회귀자라 믿고 있는 그였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라도 그냥 수긍하고 넘어간 것이었다.
물론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소원의 돌은 게임을 홍보하는 문구에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 단어였으니까.
그리고 댈런의 경험상, 그건 이 빌어먹을 게임에서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목표였다.
“하지만 설령 그 전설이 사실이라 하더라도···미궁의 끝에 닿는 게 가능한 일이기는 한 겐가?”
“어렵소. 매우 어렵지.”
“미궁의 심층인 무저갱에는 지옥에서 쫓겨난 악마들이 도사린다고 전해집니다. 악마를 담은 고독은 환상세계에서도 가장 뒤틀린 곳이라죠.”
루시아가 조용히 말했다.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당장 미궁을 돌파할 거란 이야기는 아니오. 그 전에 얻어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다만 그 과정은 이번 싸움만큼이나 어려울 거요.”
댈런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악신의 화신체와 싸워야 하는 건 당연하고···어쩌면 진체와도 부딪혀야 하겠지.”
“······.”
등받이에 깊게 묻은 고개를 돌려, 무덤덤한 시선으로 탁자에 둘러앉은 이들을 천천히 훑는다.
루시아 카스타챌드. 펠버 발렌티노. 비요른 칼라드라쿰.
아카샤 리울라크, 그리고 토미와 파른까지.
적어도 한 번씩은 그의 곁을 짙게 거쳐갔던 인연들. 함께 사선을 몇 번이고 넘은 동료들이다.
이들은 모두 종말에 맞서기 위해 누구보다 필요한 영웅들이었다. 혹은 모니터 너머에서는 발굴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의 일면이었거나.
다가오는 끝을 대비하기 위해서, 이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지금껏 짐을 지워온 것도 사실.
허나 그 짐을 지우기 위해 함께해온 시간들이, 이제는 오히려 댈런의 가슴 한켠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당장 다음 목적지로 정한 곳 역시도···머지않아 악신의 화신체가 강림하는 땅.’
그리고 악신에게 맞서는 전장은 북대륙을 지배하던 6위계의 초월자마저 덧없이 쓰러지는 곳이다.
지금부터 헤쳐나갈 여정에서, 이곳의 누구 하나 죽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스스로의 죽음은 두렵지 않다. 지금까지 헤쳐온 싸움 중, 어느 하나 목숨을 걸지 않았던 적 없었으니까.
허나 테이블에 둘러앉은 동료들의 목숨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전장의 이슬로 스러졌을 때, 과연 주저앉지 않을 수 있을지 댈런은 장담할 수 없었다.
이들은 더이상 폴리곤과 데이터 쪼가리가 아닌, 체온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전부 잃어버리고서야 소중함을 느낀 끝에, 기적적으로 다시 되찾은 가족이자 친구였으니까.
“크흐흐, 크하하하!”
갑자기 터져나오는 거친 폭소. 테이블의 시선이 그 주인에게 집중되었다.
비요른은 조금 짧아진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자네는 정말 미친 사람이야.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구만. 역사에 남을 세기의 영웅이라도 대악마 한 마리 잡기 힘들었는데, 악신을 무더기로 때려잡을 거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다니!”
“······.”
“하지만 댈런, 그런 이야기로 우리를 겁먹게 할 생각이면 자네도 아직 멀었네.”
웃음기를 지운 난쟁이가 테이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높은 의자에 앉았음에도 앉은 키가 작아 반쯤 테이블에 가슴을 걸친 모양새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자네를 따라온 이유가 뭔지 모르겠나? 내 몸 하나 건사할 생각이었으면 진작에 발을 뺐을 거야.”
“댈런, 우린 다가오는 미래의 편린을 조금씩이나마 봤다네.”
펠버가 난쟁이의 말을 받았다. 노인의 갈색 눈은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끝이 다가오고 있지. 우리는 그 마지막에 누구와 함께할 지 정했을 뿐이라네. 자네가 어떻게 생각할 지는 짐작이 가네만···이 시간선에서 우리의 결정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이 짊어질 무게야.”
부드러운 미소 뒤에 서린 굳센 의지.
대지의 기억을 읽을 정도로 폭발적인 재능을 쥐고 태어나, 이 자리에서 가장 먼저 초월의 자리에 오른 대마법사의 선언이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마음에 그 어떤 빚을 지우려 했든, 스스로 생각하고 내린 이 결정에 네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는 선언.
나의 운명은 오롯이 나의 것이라 주장하는 그 선언이야말로, 댈런의 부채감을 덜어줄 가장 좋은 수단임을 펠버는 알았던 것이곘지.
마법사가 말을 맺고 찻잔을 들어올림과 동시에, 테이블 위의 다른 일행들도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댈런 님이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하수도에서 마법사의 실험체로 희생되거나, 프로그맨의 한 끼 식사가 되었겠죠.”
하수도에 납치당한 젊은 마법사.
“본단을 떠나기 전, 단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파른, 내가 네게 가르침을 전수할 수 있었던 건 누군가 네 운명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란다. 은혜를 결코 잊지 말아라.”
마녀의 제물이 되었던 용병 소년.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신 걸요. 제 눈에 아버지의 영혼은 날이 갈수록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남부 대륙을 불태우는 재앙이 되었을 진룡까지.
모두 댈런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들의 발아였다. 허나 심중 깊은 곳을 누르던 부담감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펠버의 눈에 서렸던 것과 동일한 의지가, 이들의 눈빛에도 맺혀 있기 때문이겠지.
그 눈빛에는 대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손을 부드럽게 감싸는 온기가 느껴졌다.
“댈런, 두 번이나 잃을 수는 없다고 했었죠?”
루시아였다. 곰 앞발 같은 큼직한 손 위로, 성기사의 굳은살 박힌 작은 손바닥이 덮였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에야 알게 됐어요. 악마를 향해 겨눠진 신의 검끝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벼려진 것이라는 사실을.”
“······.”
“우리의 검끝은 댈런과 같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자의로.”
푸른 눈이 웃었다. 댈런은 그제야 깨달았다.
저 눈빛은 그에게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소년이 벌떡 일어났다.
“잠깐. 누군가 다가옵니다.”
“음?”
살짝 찡그린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아카샤는, 이내 반가운 눈빛으로 해맑게 웃었다.
“두 번째 어머니의 전령이군요.”
“두 번째 뭐···?”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루시아의 손길이 멈칫하는 순간.
푸드드득─!
탄환보다 빠른 속도로 감각권 안쪽을 파고든 까마귀 한 마리가, 마치 허상처럼 창문을 휙 통과해서 테이블 끄트머리에 내려앉았다.
푸드득! 푸득!
“······.”
테이블 위에 소란스럽게 내려앉은 정적. 댈런은 저도 모르게 허리춤으로 내려간 왼손을 쳐다봤다.
만약 손도끼가 부서지지 않았다면 던졌을 게 분명했다. 이런 짓은 주문쟁이밖에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까마귀는 새까만 눈동자로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댈런의 손이 향한 곳을 보고 흠칫 물러섰다.
“···대륙 중앙에서 여기까지 날려보내는 데 사흘 밤낮이 걸렸어. 아무리 당신이라도 보자마자 죽이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날개를 푸드득 털면서 깍― 하고 우는 까마귀.
울음소리 사이에 들려오는 음성은, 미궁도시 제일의 정보상의 목소리였다.
댈런은 허리춤의 손을 들어 턱을 긁적였다. 그가 말했다.
“예고를 하고 등장했어야지, 시에나.”
“그건 내가 실수했네. 급한 마음에.”
다시금 짧게 깍 하고 운 까마귀가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이 겹쳐있는 루시아와 댈런의 손에 잠시 머물렀다. 정말로 잠시뿐이었다.
“좋은 소식 하나. 애매한 소식 하나. 그리고 정말로 나쁜 소식 하나.”
까마귀가 말했다. 댈런은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로 나쁜 소식부터 듣지.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은 법이니까.”
“그럴 거라 생각했···아니, 매는 안 맞을 생각을 해야지. 그건 대체 어디 속담이야?”
“고향.”
“···참 나.”
까마귀는 총총 테이블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녀는 날개와 가슴을 쭉 펴고 말했다.
“남부 제국과 만신전이 주변 국가들에게 성전을 선포했어.”
“쯧쯧, 황제와 그 신하들의 야심이라면 언젠가 그럴 거라 생각했네.”
“문제는 그 대상에 성기사단도 들어 있다는···.”
콰앙!
난데없는 굉음이 까마귀의 목소리를 끊었다. 폭발물에 금속판이 터지는 듯한 소리였다.
댈런은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렸다.
자신의 손을 덮고 있음에도 힘이 꽉 들어간 성기사의 왼손.
그녀의 반대쪽 손은 주먹을 말아쥔 채 아예 철제 테이블을 깊이 파고들어 있었다.
“이 좆대가리 황실 새끼들이···감히 누가 누구한테 전쟁을 선포해? 버러지 같아도 꼴에 황제라고 지금껏 참아줬더니 아주 물로 보이나 보네?”
오른손이 잡힌 댈런은 왼손으로 긁던 턱을 마저 긁적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욕쟁이 성기사 돌아오셨군.
***
밤하늘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별들이 움직이고, 지평선까지 닿는 수면이 아득한 천구를 담아내는 장관.
마치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볼 법한 정경이었으나,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챘을 것이다.
일반적인 천구라면 행성의 자전에 따라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별들이, 제각각 밤하늘 위를 완전히 제멋대로 유영하고 있었으니까.
[파멸궁전의 주인이 칩거에 들어갔군.]
뒤틀린 별들의 궤적 한가운데. 망망대해 위의 옥좌에 앉은 존재가 입을 열었다.
옥좌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던 대악마는 부리를 움찔 떨었다.
그건 조류와 사자, 뱀과 인간을 뒤섞은 기괴한 형태의 생명체였다.
“나의 주군이시여. 제 심장들이 떨립니다. 당신의 예지는 어제나 오늘이나 정확하시군요.”
[싸움에 미친 돌대가리 새끼의 행동은 예지력이 없어도 예상할 수 있다. 비록 네가 새대가리라지만, 그래도 좀 더 열심히 굴려봐라.]
“······.”
[쯧, 어찌됐건 쑴 그 놈은 결국 이 시간선에서도 저 혼자 나대다가 뒈지는군. 변함이 없어도 너무 없어.]
혀를 차는 주군의 앞에서, 새대가리 신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섯 위계를 뛰어넘어 일곱째 신위의 꼭대기에 앉았다 해도, 그가 알기로는 결국 세계의 시간선에 예속된 존재.
수없이 갈라진 시간선을 논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신하는 잠시 눈을 빙글거려봤지만, 이내 고민을 그만두기로 했다.
주군이 그렇다면 그렇다는 거겠지. 자기 같은 새대가리가 뭘 어쩔 건가.
쓸데없는 물음을 머릿속에 굴리는 대신, 신하는 조금이라도 주군에게 도움이 될 의견을 제시하기로 했다.
“주군이시여, 쑴의 뒤를 이어 라필렘과 테모므론도 직접 몸을 움직이려 합니다. 주군의 솥구덩이의 풍성함을 위해서라도, 저희가 늦어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생각 없다. 필멸자의 세계를 불태우는 시답잖은 경쟁에 뛰어들고자, 수천 년에 걸친 안배를 쌓아온 게 아니야.]
군주가 손을 내저었다. 휘적휘적 흔들리는 열일곱 개의 손.
그를 오래 보좌한 신하는 열 개 이상의 손이 움직이면 그 말이 진심일 확률이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신하는 눈치껏 대답했다.
“주군의 심계에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입니다. 온 우주를 꿰뚫어보시는 눈동자는 전지시며, 운명을 자아내는 손길들은 전능이시니. ”
[하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머지않아 의심을 사겠지. 파멸궁전의 주인과 달리, 나머지 놈들은 그렇게까지 돌대가리는 아니니까.]
토도독.
옥좌의 팔걸이를 두드리는 손가락들.
군주는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테모므론에게 클라카로스를 보내라. 만신전의 높은 자리에 혈령을 끼워준다고 전해. 이쪽에서 기왕 성전을 선포했으니, 함께 움직이는 편이 좋겠다는 말도 함께. 혈귀전쟁 이후 오래 참아온 만큼, 이런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긴 힘들 거다.]
“그야말로 신묘한 계책이시옵니다.”
[그리고 너는 나랑 같이 가자.]
“···예?”
대악마가 머리를 기울였다. 방금 직접 움직일 생각 없다고 한 거 아니었나?
“어디를···말씀이십니까?”
[역천의 우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말이다.]
“······예?”
[이 멍청한 새대가리 새끼. 가능성들을 모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감이 온다는 이야기다.]
새대가리가 조금 더 기울어졌다. 여전히 알아듣지 못할 소리였다.
[우리는 파멸궁전으로 간다. 모두의 시선이 필멸자들의 세계에 향해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지.]
“······.”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따라와라. 종언의 선고자가 꼭 다섯일 필요는 없다는 걸 보여주겠다.]
옥좌에서 일어난 거체가 바다 위를 걷기 시작했다. 새대가리 대악마는 여전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그 뒤를 바쁘게 따라갔다.
신위의 움직임에 밤하늘을 담은 물결이 가볍게 출렁였다.
세 번의 물결이 출렁인 순간, 거대한 두 존재의 흔적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