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05화 (205/288)

205

용굴(3)

드넓은 공동을 넓게 둘러싼 수천 쌍의 안광. 그 앞에서 번쩍이는 만 단위의 불꽃들.

총구화염에서 시작된 궤적은 소리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어둠 속을 내달린다.

구릿빛 탄자가 사선의 끄트머리에 닿기 전, 찰나의 간극 사이에서 댈런은 검을 뽑았다.

키―잉!

선두의 총알이 튕겨 나간다. 주변을 순간적으로 밝히는 번뜩이는 섬광.

극한까지 늘어난 시간 감각에, 시야를 빼곡하게 채운 탄막이 엿보였다.

정밀한 저격은 진작에 포기하고, 총알의 비로 일대를 싹 갈아엎으려 하는 건가.

초월자라고 해서 육신을 벗어던진 존재는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리적인 내구도 자체는 그리 뛰어나지 못한 초월자도 존재했고.

그런 이들이라면 이렇게 기습적으로 빗발치는 총알 세례를 쉽게 넘기기 어렵겠지.

물론 지금은 아니었다.

쿵―

한 걸음 나아간다. 검면은 넓게 눕히고, 어깨와 수평선을 이루도록.

모든 총알을 받아칠 필요는 없었다. 댈런과 등 뒤의 일행을 노리는 탄막만을 쓸어 담으면 그만이었다.

댈런의 손끝에서 보석 같은 검신을 가진 보검, 티르빙이 오색찬란한 빛을 흩뿌리고.

까가가가각────!

검면이 수십 가닥의 검로를 넓게 펼쳐내는 순간, 수천 발의 총알이 부스러지며 공동 한가운데 빛의 막이 펼쳐졌다.

[······!]

어둠이 술렁거렸다. 정확히는 어둠 뒤에서 총구를 겨누던 드워프들이 그랬다.

공동의 삼면을 포위한 난쟁이들의 숫자는 최소 천 이상.

각자가 손수 만든 듯 가지각색의 총화기를 움켜쥐고서 이쪽을 조준한 모습.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왕관 쓴 드워프는, 수염이 난잡하게 뒤덮인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당황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일이 조금 귀찮아졌다는 듯한 표정이었을 뿐.

본신의 능력은 5위계를 넘어서지 못했음이 분명하지만, 댈런과 같은 초월자를 상대한 경험은 결코 적지 않다는 증거겠지.

[쉬지 말고 쏴라! 놈을 해치울 수 없다면 마법사라도 잡아!]

놈이 소리쳤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타다다다당―!!

검 한 자루로 수천의 총알을 막아내는 걸 눈앞에서 목격했음에도, 기죽기는커녕 더 적극적인 태도로 휘하의 난쟁이들을 지휘하는 모습.

그 자신감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놈들의 주인인 지저룡은 대악마에 버금가는 진룡이었고, 그만큼 인리를 초월한 존재들과도 숱하게 싸워왔을 테니까.

그 세월이 수백 년간 이어졌다면, 주인의 전투와 승리를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다만 수백 년 이상 지속되었을 그 오만함이, 오늘만큼은 상대를 잘못 만났을 뿐이다.

“노인장. 뒤를 맡기겠소.”

“준비되었다네.”

펠버가 입가에 주름을 만들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던 댈런의 신형이 자취를 감추고.

스가가각!

공동을 삼면으로 둘러싼 포위망 한쪽에서, 피륙이 난도질당하는 소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쉬지 말고 화망을 만들어라! 놈들을 죽···여억!]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난쟁이의 이마에는 어느새 큼직한 도끼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학살의 시작이었다.

***

공동에서 시작된 싸움은 용굴의 더 깊은 통로까지 계속 이어졌다.

용굴의 안쪽으로 내려가는 댈런 일행과, 그걸 막으려는 난쟁이들의 충돌이었다.

투다다당!

콰아아아아―!

빗발치는 총탄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고, 부비트랩이 폭발하며 화염이 방 안을 가득 뒤덮는다.

황금으로 도금된 벽면이 그 열기에 반쯤 녹아내리며 변형되었다. 화려한 촛대와 그릇, 거기 담긴 금화들 역시 총알 세례에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그아아아악!]

그리고 그 광경을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건, 아공간에 틀어박힌 불사의 악마 아르보르였다.

[보, 보물이! 내 금은보화가―!]

촤르르르륵!

허공에 열린 구멍에서 수십 가닥의 사슬이 연달아 튀어나온다. 사방에 널브러진 보물 중 가장 귀해 보이는 것들을 선별해 아공간에 담는 동시에, 그 보물의 위협인 난쟁이들을 후려치는 사슬들.

지옥의 냉기를 머금은 사슬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얼음의 벽이 세워지고 고드름이 화살처럼 쏟아진다.

“끄아아악!”

“엄폐해라! 사슬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주문쟁이가 하나 더 있다. 찾아내!”

예상치 못한 고드름 세례에 난쟁이들은 제각기 더 철저하게 엄폐물을 이용했다.

물론 그 엄폐물은 다름아닌 용굴의 금은보화였고, 그럴수록 아공간 속 악마의 손속이 더 잔혹해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감히 내 보물을―!]

콰지지지직!

바닥이 얼어붙어 이동을 방해하고, 천장에서 거대한 고드름이 얼어붙었다 툭 떨어지며 난쟁이의 진형을 붕괴시킨다.

그 사이사이에 검붉은 마력이 넘실거리며, 얼음 폭풍을 얻어맞고도 살아남은 난쟁이를 마무리했다.

‘정수 먹인 게 확실히 효과가 있군.’

댈런은 보물과 난쟁이들의 시체가 널브러진 방을 가로지르며 생각했다.

쑴의 군대는 악마가 수십이나 있었다. 그들을 쓰러뜨리며 얻은 정수 파편 역시 수십 개.

고위 기사가 된 루시아는 그중 아르보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몇 개를 현지에서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빼내줬다.

그 결과가 바로 눈앞의 광경.

댈런의 앞길을 막아서는 난쟁이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리면서도, 값이 나가보이는 물건은 빠뜨리지 않고 아공간에 쓸어담는 모습이었다.

“총도 몇 개 챙겨라. 비요른이 좋아할 테니.”

[알겠습니다, 주인님!]

악마의 힘찬 대답을 뒤로하고서, 난쟁이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던 문을 열어젖힌다.

그그그극···.

문 뒤쪽에는 널찍한 전당이 펼쳐져 있었다.

중앙에는 돌을 깎아 만든 높은 단상이 있고, 그 주변으로는 백에 달하는 난쟁이와 금속으로 만들어진 골렘들이 호위하는 모습.

단상 위에는 왕관 쓴 난쟁이가 금박 입힌 왕좌에 앉아, 이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아까 공동에서 봤던 난쟁이와 똑같이 생긴 놈이었다.

[저놈을 죽···억!]

쾅!

가까스로 본인 상반신만 한 방패를 들어올려 도끼를 막아낸 난쟁이왕.

아까보다 한결 나아진 반응이었지만, 댈런은 별 감흥 없이 놈에게 걸어갔다.

「홍염주(紅炎柱)」

「뇌조(雷條)」

쿠과과과과···!!

이제는 숨쉬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주문.

불기둥이 입구를 가로막은 채 채찍처럼 휘어지며, 총구를 들어 올리는 난쟁이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검게 그을린 바닥을 따라 푸른 전격이 파도처럼 몰아쳐, 화염을 견뎌낸 골렘들의 동체를 사정없이 찢어발긴다.

촤르르르르―!

남은 난쟁이 몇 명과 반파된 골렘 한 기는, 허공에서 튀어나온 사슬이 휘감아 산 채로 얼려버렸다.

어렵지 않게 호위병을 처리한 댈런은, 단상의 계단 위로 올라가 왕관 쓴 난쟁이에게 손을 뻗었다.

[이, 이익!]

놈이 도끼 박힌 유물 방패를 휘둘렀지만, 자연스럽게 방패째로 빼앗아 던져버린 뒤 머리통을 잡아챈다.

굳이 무기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 그저 손가락에 조금 힘을 주면 되는 일이었다.

[감히 드워프 왕조 벨라고르의 혈통을···끄아아악!]

퍼걱!

곰 발바닥 같은 손아귀 안에서 난쟁이의 머리가 수박처럼 으스러진다. 그 안에서 흘러나온 건 피와 뇌수가 아닌 톱니와 윤활액 따위였다.

“썩을. 또 가짜군.”

댈런은 얼굴에 튄 기름을 닦으며 말했다. 공동에서부터 지금까지, 그의 손에 으스러진 가짜 난쟁이 왕만 다섯이었다.

겉보기에는 다른 난쟁이들과 똑같은 모습. 호흡과 심장박동까지 거의 완벽하게 동일했다.

용굴에 서린 주문이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지금, 댈런조차도 직접 붙잡아보기 전까지는 알 방법이 없을 정도.

그리고 이렇게 보이는 족족 붙잡아서 머리뚜껑을 열어대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이 용굴의 주인을 유인해내기 위해서.

‘진룡에게 용굴은 악마의 지옥과 비슷하지. 자신의 진체가 머무는 동시에, 수많은 권속을 들이고 힘을 키우는 장소.’

차이점이라면 진룡의 용굴은 지옥에는 없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는 것이었다.

용굴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대공동. 용이 성체가 되어서부터 수백 수천 년간 몸을 누이는 처소가 바로 그곳.

‘대공동은 용굴의 주인인 용의 힘이 가장 극대화되는 장소···아직 그곳에서 싸우는 건 피해야 한다.’

지저룡은 대악마에 버금가는 진룡. 용신의 휘하 진룡들 중에서도 적창과 엇비슷한 격을 가진 몇 안 되는 존재다.

용굴 입구에서 놈의 화신체 하나를 순식간에 쓰러뜨리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용의 화신체이기에 가능했던 일.

악마와는 달리 용은 화신체에 그리 막대한 힘을 담지 않는다.

지상에 강림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화신체인 악마들과 달리, 용은 원래부터 이 대륙에 자리하고 있던 존재들이기 때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진체를 끌고 나갈 수 있는데, 화신체 하나하나에 그렇게까지 힘을 분산할 이유가 있을까.

어찌됐건 지저룡의 본신은 대악마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수준으로 강력한 게 사실이었고, 그 힘은 대공동에서 평소의 배 이상으로 강해질 게 분명했다.

[권갑은 이미 오래 전 6위계에 다다른 용이니라. 반신의 위를 얻은 지도 수천 년이 흘렀지. 네 방대한 영역의 잠재력이 위계에 구애받지 않는 건 사실이나···굳이 놈의 장단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느니라.]

“그래서 이렇게 난쟁이 왕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 아니오. 놈을 찾아 죽이면 분노한 지저룡이 대공동을 버리고 뛰쳐나올 거라고 그쪽이 말했으니까.”

[···그랬지. 허나 이토록 철저하게 방비했을 줄은 나도 몰랐느니라.]

적창이 약간 질린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용굴에서 들어온 지 꼬박 한나절이 흘렀다.

댈런이 드넓은 용굴을 온통 헤집고 다니는 중임에도, 지저룡은 섣불리 대공동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용굴 입구에서의 격돌로 느낀 바가 있는 것일까.

6위계에 근접한 초월자와 시간선을 다루는 대마법사를 상대한다면, 아무리 오래된 고룡이라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적창은 어떻게 하면 놈을 대공동 밖으로 유인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 방법은 바로 놈이 기르는 애완용 난쟁이의 왕을 잡아 죽이는 것.

지저룡은 숭배받는 느낌을 즐기기 위해, 일만이 넘는 난쟁이를 잡아다가 기른다던가.

적창은 놈이 그중에도 특별히 왕으로 삼은 개체에 많은 애정을 쏟아붓고, 그 개체가 죽었을 때는 앞뒤 가리지 않을 정도로 슬퍼하고 분노한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더미를 만들어둔 것 역시, 난쟁이가 혹시 모를 침입자에게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모래바람 왕조의 흔적이 남아있구나. 우호적인 협력 관계일 당시 그들이 넘겨주었던 기술의 일환임이 분명하다.]

“굳이 이럴 것 없이 그냥 자기 대공동에서 기르면 되는 것 아니오? 아무리 간 큰 침입자라 해도 거기까지 들어갈 일은 없을 텐데.”

[그건 안 된다고 하더구나. 왕과 신은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던가. 지저룡은 신위에 유독 집착하는 놈이었으니까.]

별 미친 용이 다 있군. 댈런은 대답 없이 턱을 긁적였다.

초월자들 중 많은 숫자가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모습이긴 하지만, 용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줄이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용이 이런 것은 아니다. 권갑의 기행은 용들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회자된 바이니까.]

“···그렇군.”

[안 믿는 눈치로구나. 나를 보거라. 얼마나 정상적인 진룡이냐.]

“······.”

“댈런! 진짜를 발견했다네! 이쪽으로 오게나!”

그때 저 멀리서 펠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댈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미로 같은 용굴 속에서 한나절 넘도록 헤매게 만든 놈의 얼굴을 보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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