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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18화 (218/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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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신(3)

쿠구구구구구······.

상승한다.

단순히 허공을 딛고 뛰어오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각.

드넓게 펼쳐진 땅 자체가 바닷속이라는 환경 자체를 거부하고, 어마어마한 중량의 해수를 밀어내며 수면을 향해 솟구친다.

“으윽···!”

그 충돌의 경계에 선 댈런이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어지럼증에 휘청일 정도.

인간을 한참이나 뛰어넘은 균형감각마저도, 세계와 세계가 부딪히는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쿠르르르륵──!!

계속해서 더해지는 가속.

심해의 압력을 부수고 탈출한다.

댈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발밑의 정경을 내려다봤다.

그의 두 발을 단단히 받친 건 광대한 면적의 영구동토였다.

[서릿발 전당의 풍경과도 비슷하구나.]

심상 너머에서 적창이 말했다.

[네 영역에는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다. 언제 이 힘을 얻게 된 것이냐?]

“차리나가 줬소.”

[차리나가? 어떻게···아니, 우물의 힘이겠구나. 근래 들어 나무를 오염시킨 악의 기운이 희미해진 것 같았는데, 그게 그런 이유였을 줄이야······.]

되묻다 말고 혼자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한 고룡.

댈런은 생각에 잠긴 그녀를 내버려 두고, 해수면을 향해 솟구쳐오르는 대지를 둘러봤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광활한 영구동토.

이건 북부의 전쟁이 끝난 뒤, 역천의 우물 앞에서 목도했던 설원의 풍경이었다.

차리나가 심상 너머에 맺었던 얼어붙은 하늘, 그리고 그 하늘 아래 펼쳐진 설원과 고성.

북부를 다스리는 지배자이자, 백성을 지키는 군주가 일생을 바쳐 갈고닦은 의지.

쑴과의 사투 끝에 처절한 최후를 맞이했음에도, 그 의지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사후에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안식하는 대신, 댈런에게 찾아와 그 힘과 의지를 물려줄 정도였으니까.

‘후후, 뇌물을 받아본 적은 많지만 주는 건 처음인데요.’

머릿속을 희미하게 울리고 사라지는 그녀의 웃음소리.

육신이 부서진 뒤에까지 이어진 고결한 심성은,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지켜내지 못한 전우를 떠올리는 사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던 빛살은 시시각각으로 강해져 갔다.

심해의 어둠을 파고들던 한 줄기 빛에서, 대륙붕의 얕은 해저를 밝히는 칙칙한 음영으로.

그리고 이내···.

푸화아아악!

해수면에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생각한 순간, 이미 몸은 물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

촤아악! 쏴아아아······.

바다가 지면으로 대체되며 거칠게 일어나는 수 미터 높이의 파도.

얇은 접시에 담긴 물처럼 요동치다가, 이내 동토 아래로 스르르 흡수되는 해수를 지켜보던 댈런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게 무슨······.]

아공간 속 악마의 당황한 목소리. 눈앞의 광경에는 댈런도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머리 위에 펼쳐진 밤하늘. 그 너머에 존재하는 건 달이나 별이 아니었다.

구름 한 조각 없는 창공을 뒤덮은 건 찰랑거리는 광대한 물결.

드넓은 바다를 거꾸로 뒤집어서 하늘 위에 올려두면 저런 모습일까.

마치 거대한 돔처럼 하늘을 뒤덮은 바다는,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게 만드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인간은 은혜를 모르는 족속이다. 강과 바다가 준 모든 걸 거저 받았음에도, 신을 찾을 때면 언제나 하늘 위를 올려다보곤 하는 무익한 종자들이지.]

찰박.

얕은 물가를 딛는 듯한 발소리.

[허나 나는 자비로운 여신이니라. 강의 유함은 책망하기보다 용서하고, 바다의 광대함은 교정하기보다 품어주는 법이니.]

여사제는 허공을 디디며 걸어오고 있었다. 어느새 새하얀 사제복 대신 푸른 비단옷을 걸친 모습.

손에 든 지팡이는 안개비 같은 마력을 흩뿌리고, 맨발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서 파문이 퍼져나간다.

화살 한바탕 거리에서 멈춰선 그녀가 말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신을 찾는 게 인간의 배은망덕한 본성이라면, 내가 친히 그들의 하늘이 되어주면 될 일 아니겠느냐?]

대답을 바라는 질문이 아니다. 댈런 역시 그녀의 헛소리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었다.

심해의 물살에 엉망진창이 된 갑옷을 가볍게 점검하고, 성검에 묻은 물을 휘둘러 털어냈을 뿐.

그 무덤덤한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눈가를 일그러뜨린 여사제가 손가락을 들어 성검을 가리켰다.

[네 칼에 서린 힘. 그건 북부 차르의 혈통을 따라 전승되는 서릿발 왕좌의 힘이겠지.]

“······.”

[네가 전쟁에 참여했다는 건 알고 있다. 차리나에게 협조하는 척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뒤통수를 치고 힘을 빼앗기라도 했나?]

비열하게 끌어올리는 입꼬리. 저열한 도발이었지만, 그 일그러진 표정마저도 아름답게 내비친다.

그녀에게 깃든 신성력의 광채가 인지 자체를 비틀고 있다는 의미겠지.

댈런은 뚱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한참 전에 던져버렸던 도끼가 자연스레 손아귀 안에 나타나 잡혔다.

[기고만장할 자격 정도는 갖췄구나. 허나 필멸의 몸으로 나에게서 살아남지는 못할···!]

“말 존나 많네.”

쉭―

도끼가 공기를 가르고.

딱!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쪼개진다.

백수십 개로 분열된 채, 소리의 속도마저 뛰어넘고 짓쳐드는 융단폭격.

[이런 쇳덩이 따위로 신을 어찌할 수 있을 것···으윽?]

그 앞에서 코웃음을 친 여사제가 가볍게 파도를 일으켰지만, 도끼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회명 : 비검(飛劍)」

「철조격류(鐵潮激流)」

단순한 융단폭격처럼 떨어지던 궤적이 한껏 비틀린다.

지금까지의 속력과 관성을 무시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다시 한번 공간의 틈을 가르고 뛰어넘는 도끼의 궤적.

슈르르르륵!

이내 점멸하듯 수십 번씩 공간을 넘나들며, 일백이 넘는 날붙이가 여사제를 중심으로 거대한 원을 그리며 날기 시작한다.

공간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일렁이는 잿빛 그림자. 그 음영 안쪽에서 번뜩이는 유물 도끼.

여사제를 둘러싸고 몰아치는 유물 도끼의 움직임은, 마치 서늘한 금속광을 머금은 잿빛 폭풍과도 같았다.

[이런 날붙이 따위!]

쿠르르르르···!

여사제가 전성을 토하자, 허공에서 수십 갈래 물줄기가 쏟아지며 잿빛 폭풍을 밀어낸다.

아무리 공간을 넘나들며 빈틈을 노리는 도끼라도, 몇 겹으로 중첩되어 부딪쳐오는 수류를 거스르는 건 불가능했다.

순간적으로 주춤하는 공세.

허나 이내 서리의 권능이 도끼 위에 내려앉기 시작하며, 앞을 가로막는 물을 피하는 대신 얼려버리기 시작한다.

투가가가가각!

단순한 날붙이의 폭풍이 점차 날카로운 얼음과 냉기의 폭풍이 되어가고.

그 한가운데서 희미하게 베여나가는 여사제의 옷깃.

여사제는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양상은 아니었다.

비검의 신비를 한껏 비튼 유물 도끼가 여사제를 공격하는 동안, 시셀라의 권능으로 빚어진 신역 자체가 댈런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

쿠구구구구구···!

얼어붙은 지면이 통째로 요동친다.

단단한 영구동토가 물결처럼 출렁거리고, 잔잔한 호수 위에 돌을 던진 듯 곳곳에서 파문이 일어난다.

댈런은 균형 잡는 걸 포기하고 땅을 걷어찼다. 순식간에 하늘 위로 치솟은 그의 신형.

허공을 딛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기괴하게 뒤틀린 지형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르륵! 그르르르···!

거품이 끓어오르는 괴이한 소음.

출렁거리다 못해 한없이 부풀어 오른 지면.

뻐어어어엉―!

머지않아 마치 오래된 고름이 터져 내용물을 쏟아내듯, 거대한 지하수 줄기가 부푼 지면을 뚫고 솟구쳤다.

쿠과과과과과···!

밀려드는 용오름. 날카롭게 회전하는 첨단은 사람은 물론 바윗덩이도 갈아버릴 기세였다.

댈런은 지면을 뚫고 솟아오른 물기둥을 향해 성검을 휘둘렀다.

쩌저적―

검끝에서 흩뿌려진 냉기가 순식간에 용오름을 얼려버리고.

콰지지직···!

직후 잠깐의 여유도 없이 십수 개의 물기둥이 얼음 기둥을 부수며, 거대한 뱀처럼 입을 벌리고 침입자를 집어삼키려 든다.

‘아르보르.’

속으로 이름을 부르자마자 아공간에서 수백 가닥의 사슬이 튀어나온다.

촤르르르륵!

허공을 열어젖히고 적재적소를 가로지르며, 물기둥을 휘감고 그 진로를 틀어막는 사슬 더미.

본래의 주인인 아르보르에게로 돌아간 이후, 서리를 품은 사슬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져 왔다.

근래 들어서는 이 사슬을 수백 년 이상 능숙하게 다뤄온 칼카스의 권능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

꽈광───!

그때 광선 같은 물줄기가 창공을 가로질러 댈런의 신형에 적중했다.

성검을 들어 흘려냈음에도 수십 미터가 넘게 밀려나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언제까지 시간만 끌 생각이냐.]

고개를 돌려보니 여사제가 그의 도끼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하늘을 뛰어다니며 물기둥을 피해내는 사이, 비검의 힘을 비틀어낸 댈런의 공세를 전부 파훼해낸 것.

그녀 역시 성한 몰골은 아니었다.

도끼날에 옷자락과 피부 곳곳이 찢기고, 상처마다 내려앉은 냉기에 피부는 보랏빛으로 괴사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땅에서 솟아오른 물줄기가 그녀의 몸을 감싼 순간, 군데군데 나 있던 상처들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얇은 물줄기를 꼬아 부러진 지팡이를 새로 만든 그녀가 천천히 날아오르며 말했다.

[그 마법사 앞에서는 금방 끝낼 거라더니, 실상은 사냥꾼의 덫 안에서 이리저리 도망치는 족제비 같구나.]

“······.”

[죽고 싶지 않다면 네 본신의 영역을 내보여라. 서릿발 왕좌의 힘만으로 언제까지고 나를 막아낼 수 없다는 걸 잘 알 텐데?]

지팡이를 겨눈 여사제가 입매를 비틀었다.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시셀라의 힘에 맞서기 위해서는, 성검을 통해 개방된 차리나의 영역이 가장 효율적인 건 자명한 일.

다만 거대한 신역을 하나의 영역만으로 상대한다는 건, 그 전제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쿠르르르······.

바다를 뚫고 솟구친 광대한 동토는 어느새 바깥부터 무너져내리는 중이었다.

지평선을 수평선이 대체한 지는 오래였고, 사방에서 부스러진 흙과 얼음을 비집고 올라오는 거친 파도.

애초부터 이건 신비를 뒤틀어 단발적인 공세를 이어가는 게 아니라, 아예 몇 개의 영역을 끌어와 신역 자체에 통째로 들이받아야 결착을 지을 수 있는 승부.

허나 당연하게도 댈런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는 뻐근해진 어깨를 슬슬 풀며 대답했다.

“너 같으면 알아서 뒈질 이벤트 몹한테 굳이 힘을 빼겠냐.”

[이벤···무슨 말이지?]

“슬슬 올 때가 됐군.”

눈을 찌푸린 채 뭔가 말하려던 여사제가, 다음 순간 입을 다물었다.

황급히 저 먼 수평선을 향해 돌리는 시선.

[오랜만이에요. 강과 바다의 여신이여.]

저 멀리서부터 하늘을 울려오는 전성은, 여사제의 것보다 더 가녀린 목소리였다.

댈런은 여사제의 시선을 따라 수평선을 바라봤다.

그러자 시야 저 너머에서부터, 한 줄기 의념이 그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영역 완전개방 : 시간을 노래하는 별들의 연회장」

츠즈즈즈······.

바다가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수평선이 갈라지며 단단한 지면이 모습을 드러내고, 하늘 위의 바다가 유리처럼 깨져나가며 어둑한 밤하늘이 창공을 뒤덮는다.

칠흑 같은 천구는 수십만 개의 별로 수놓아져 있었다.

기이한 색채의 성운이 이리저리 흘러가는 사이로, 점점이 박힌 섬광들이 신비로운 빛을 흘리며 세계를 굽어본다.

거친 파도와 용오름이 저항했지만, 그런 물길마저도 밤하늘의 캄캄한 어둠 속에 삼켜질 뿐.

[네, 네가 왜 여기에···! 너는 더 이상 금강궁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는 것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섭섭한걸요.]

소녀는 어떤 전조도 없이 나타났다.

멀리서부터 뛰거나 날아온 것도, 공간을 가르고 튀어나온 것도 아니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곁에 있었다는 표현이 그나마 정확할까.

그저 이 순간, 이 자리에 서 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등장이었다.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더라도 너무 긴 시간 칩거를 이어오긴 했지만···그렇다고 해서 한물 간 사람 취급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

백발의 소녀가 웃었고.

[가짜 신 주제에 아주 방자하군요.]

우주 같은 빛깔의 눈 한가운데, 순백으로 점 찍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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