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29화 (229/288)

229

혈귀의 땅(5)

“아주 단체로 염병을 떠는군.”

찍찍거리는 쥐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댈런은 적당히 감각을 조절하며 숲 안쪽으로 걸어갔다.

눈을 감아도 숲속을 걷는 것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변에 빼곡한 쥐새끼들의 기척을 감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

“···찍!”

굳이 숨기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니, 어둠 속에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는 시선들.

킁킁거리고 찍찍대는 짐승의 소리. 위협을 느끼고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는 발걸음.

바글거리는 기척들은 어느 지점 이상 물러나지 않고 넓은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지닌 실력에 비해 거리를 재는 능력이 탁월한 놈들이었다.

댈런은 그런 부류들이 대부분 암살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암살자들의 집단 중 지금처럼 쥐새끼의 울음소리를 내는 곳이 어디인지도.

“암월단.”

“···인간.”

눈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댈런은 눈을 떴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숲 중앙의 공터 끄트머리였다.

수년 전 마녀가 에낙사구스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 대가로 힘을 얻은 제단이 있는 공터.

당시 수많은 사람이 바쳐진 제단 곁에는, 이제 사람으로 스튜를 끓이던 마녀 대신 수많은 쥐인간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이미 한바탕 의식을 치르고 난 뒤인 건지, 제단 근처에 갈기갈기 찢긴 채 널브러진 사람의 조각들.

피범벅이 된 옷자락들 사이에는 도시연합군의 갑옷 조각도 섞여 있었다. 아마 이쪽 방면으로 야간 정찰을 나왔던 정찰조인 듯했다.

“시에나.”

푸드득― 까악.

나무 위에서 불현듯이 등장한 까마귀 한 마리.

“에버론에게 습격을 대비하라고 알리시오. 이미 낌새를 눈치챘을 것 같긴 하지만.”

까마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쏜살같이 하늘로 솟구쳤다. 검은 그림자가 나무 사이를 뚫고 올라가는 걸 확인한 댈런은 고개를 돌려 제단을 바라봤다.

암월단 놈들이 저 제단에서 의식을 치른 건 이번 한 번만이 아닌 듯했다. 뒤쪽에 산더미처럼 쌓인 백골들까지 포함하면 못 해도 수백 구쯤 되어 보였으니까.

아마 제국군의 침공을 피해 숲속에 숨어들었던 난민들이겠지. 도시에 오랜 기간 머문 약초꾼들이라면, 익숙한 숲으로 피신하는 게 당연한 판단이었다.

“······.”

댈런이 유골 더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사이, 제단 곁에서 서성거리던 쥐인간들이 다시 찍찍거리기 시작했다.

댈런은 고개를 돌려 놈들의 면면을 뜯어봤다. 아는 얼굴들이 꽤 있었다.

“찍! 저놈이 내가 말한 그놈이다. 여섯째 손가락을 죽인 놈. 우물이 예언한 장본인!”

갈비뼈가 앙상한 저놈은 암월단의 다섯째 손가락.

“예언의 주인공이라. 신께서 저놈을 죽이면 큰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지.”

팔과 목, 가슴께까지 불경한 상징물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저놈은 암월단의 대사제.

“죽여라! 목을 꺾고 팔다리를 잘라!”

“산 채로 심장을 꺼내 바치면 더 큰 축복을 내려주실 거다!”

그 밖에도 암월단의 중책들 반수 이상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 말인즉 암월단의 전력 역시 절반쯤은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다는 이야기겠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에낙사구스 역시 도시연합의 대대적인 반격 소식을 들었을 터.

놈은 팔시온 공략에 실패해 불리해진 전황을 뱀파이어 백작이라는 지원군으로 만회했지만, 계략에 능통한 악신이 한 가지 수에만 의지할 리는 없었다.

‘군대가 제국 국경을 넘어가기 전, 여기서 기세를 한 번 꺾으려 했던 거군. 비슷한 상황에서 몇 번 당해본 적이 있지.’

다만 아무리 간교함의 대명사인 에낙사구스라도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놈의 다양한 계책을 수백 번에 걸쳐 당해본 댈런의 입장에서는, 이 역시 언젠가의 회차에서 겪었던 이벤트일 뿐이라는 사실.

“죽여! 죽여!”

“산 채로 뜯어먹자!”

“찍찍! 숫자로 밀어붙여!”

간부들의 독려에 사사삭 소리를 내며 몰려드는 기척들. 공터를 옥죄어오기 시작하는 짐승 무리의 살기.

허기에 이빨을 부득부득 가는 불쾌한 소음이 숲속을 가득 채운다. 공터를 중심으로 포위한 쥐인간의 숫자는 못해도 천 단위였다.

[산 채로 뜯어먹힌 순은 기사단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셋째 손가락의 머리 가죽 수집품이 된 용병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침소에서 암살당한 고위 기사의 시체를···.]

[다섯째 손가락에게 내장을 파먹힌···.]

어둠 속에 주르르 떠오르는 알림창들. 암월단의 손에서 끝나버린 회차들의 결말.

사각을 비집고 칼날이 밀고 들어온다. 독 바른 단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손목을 꺾어버렸다.

우드득!

허리춤에서 도끼를 뽑아 휘두른다. 머리를 세로로 쪼개고, 그대로 끌어당기며 몸을 비튼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쥐인간의 사체가 뒤에서 덤벼들던 다른 놈을 덮쳤다. 아공간에서 창을 꺼내 찔렀다.

죽은 쥐인간의 등판을 뚫고 들어간 창이 추가로 두 놈을 꼬챙이처럼 꿰었다. 오른손의 도끼는 이미 다른 놈의 두개골을 개봉하는 중이었다.

찍찍찍!

찌이이―찍!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쥐새끼들의 울음소리. 숲속에 나무보다 쥐인간이 더 많았다.

세뇌와 약으로 절여진 암살자들은 두려움을 알지 못했다. 그저 명령에 따라 달려들고, 달려드는 족족 토막날 뿐이었다.

「룰리아의 샘물」

「천진려(泉振吕)」

발밑에서 터져 나온 샘물이 토사를 뒤엎고, 나무들 사이를 휘감으며 수압으로 쥐인간들을 눌러 터뜨리는 사이.

「스카디의 해일」

「청파벽조(淸波劈肇)」

어둠을 뚫고 밀려든 집채만 한 파도가 쥐인간들을 후려치고, 뒤엎어진 흙더미와 나무뿌리까지 일거에 휩쓸어버린다.

“나무! 찍찍! 나무 위로 기어올라라!”

“잘못 휩쓸리면 죽는다! 찌이이―켁!”

눈치 빠른 몇몇은 재빠르게 물살을 버텨낸 나무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개중 하나의 머리에 도끼를 꽂아놓은 뒤, 댈런은 휘몰아치는 마력의 바람 위에 가볍게 수인을 더했다.

출렁이는 수면 위를 단단한 땅처럼 밟고 선 채, 허공에 띄워올린 여섯 개의 얼음 결정.

「빙정(氷晶)」

「육화개벽(六花開闢)」

얼음꽃이 일제히 봉오리를 열어젖히며 흐드러진 꽃잎을 떨쳐내는 순간, 숲을 쓸어버릴 기세로 휘몰아치던 물살이 거짓말처럼 얼어붙고.

「적화주란(赤華株亂)」

물보라와 함께 얼어붙은 쥐인간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지나치며, 붉게 달아오른 미스릴 창이 다시 한번 꽃잎의 향연을 피워냈다.

스파파파팟──

실력 있는 놈들은 나무 위로 기어올라 목숨을 건졌지만, 그렇게 부지한 수명이 오래 가는 건 아니었다.

어둠 속을 넘나들며 쥐인간들을 도륙하는 수십 자루의 창과 검.

어둠을 제집처럼 누비던 암살자들이, 번뜩이는 섬광이 스치는 순간 마지막 숨을 내뱉는다.

밤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은 언젠가부터 벼락과 불을 비처럼 쏟아붓고, 얼어붙은 지면은 혹한의 냉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죽은 동료의 사체가 중력을 무시하고 둥실 떠오른다. 숲속을 누비는 잿빛 그림자들 사이로 단말마의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에낙사구스여···당신의 종자를 수호할 사냥개를!”

구으으으으―!

이따금씩 흑마법을 익힌 간부 암살자들이 축적해둔 영혼을 바쳐 지옥의 마물을 불러냈지만.

캬아아───!

그럴 때마다 전격과 화염이 뒤섞여 만들어진 용이 나타나, 아가리를 쩍 벌리고 마물과 시전자를 함께 집어삼킬 뿐.

“이게 어떻게···5위계란······.”

어둠 속에 잠긴 학살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댈런은 암월단 셋째 손가락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한 인간의 심상에 대체 몇 개의 정경이 깃든 거냐. 자아가 여러 개가 아니고서야···어떻게 이토록 이질적인 정경을 홀로 품을 수 있단 말이냐!”

죽음을 코앞에 둔 형편에 뭐가 그리 억울한지, 거멓게 죽은 피 튀기며 울분을 토하는 암살자.

댈런은 말없이 반쯤 으스러진 놈의 머리 위를 응시했다. 거기에는 선명한 글씨체로 그가 계승해야 할 캐릭터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셋째 손가락의 머리 가죽 수집품이 된 용병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누군가의 종착지.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존재의 결말.

꿈꾸던 미래를 직접 보지 못했음에도, 단 하나의 끝을 위해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던 사람.

자연스럽게 손아귀 힘이 풀어진다. 반송장이 된 쥐인간을 동토 위에 던져두고, 댈런은 오른손의 성검을 고쳐 쥐었다.

“다들 그걸 물어보긴 하더군. 그동안은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

“어쩌면 이건 내게 주어진 기회인 동시에,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일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내가 그려야 할 미래는 나 하나만을 위한 결말이 아니어야 할 거다.”

“지금이다! 놈을 죽여!”

비명처럼 내지른 셋째 손가락의 목소리에, 어둠 속에 숨어있던 쥐인간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암령대주, 넷째 손가락, 대사제를 필두로 한 수십의 그림자들.

극한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전원이 중급 간부 이상이었고, 개중 서넛은 암살의 극에 다다라 종을 초월한 개체들이었다.

일제히 개방되는 영역이 일대의 마력풍을 뒤흔든다. 이지러지는 공간과 덧씌워지는 심상 너머의 세계들.

댈런은 성검을 가볍게 쥔 채,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 모든 광경을 가만히 응시했다.

여관에서부터 이어져 온 복잡한 생각들은 어느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끝이 가까울수록 선명해지는 참혹한 현실과, 모니터 너머에서 이미 종말을 맞이한 수백 개의 세상.

그 부산물들을 모두 끌어안고 가는 그는, 대체 어떤 미래를 꿈꿔야 하는가.

무의식 속에서 오래도록 품어온 질문에는 정답이 없었다. 허나 답이 나오지 않는 건, 처음부터 생각의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둘 필요도 있는 법이다.’

차리나에게로 그를 이끌었던 사내. 대선조로 추정되는 북부의 전사가 했던 이야기가 머리를 스친다.

미래를 바라볼 자격을 거머쥐지 않고서, 하염없이 머릿속으로 그 정경을 그려봤자 허황된 꿈일 뿐.

종말에 파묻혀 어느 것도 구해내지 못한 이들에게, 가장 바라마잖는 미래는 닫힌 결말을 열어낼 수 있는 자격 하나뿐이었다.

그저 당장을 살아남아 다음을 내다보는 것.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소중한 인연들을 지켜내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빌어먹을 중세랜드를 지켜내는 것.

“빌어먹을 중세랜드 같으니라고.”

현실을 침범하는 영역들과 살의로 번뜩이는 새빨간 눈동자들 한가운데, 댈런은 피식 웃으며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우웅······.

왼손에 도끼를 거머쥐자 정말 오랜만에 성검이 울었고.

키이잉─

발밑에서 선명한 백색의 파문이 동심원을 그렸다.

그리고.

「영역 완전개방」

밤하늘에 가득한 먹구름을 찢어발기며, 한 줄기 빛이 내리꽂혔다.

***

암월단의 다섯째 손가락, 룩시시투카 타브렐라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달렸다.

상급 간부씩이나 되어서 줄행랑이 부끄럽지 않냐는 자책도 순간 들었지만, 조금 전까지 목격했던 광경을 떠올리는 순간 그런 생각은 싹 달아났다.

‘괴물···아니, 악마······.’

그녀는 숲속에서 벌어진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월자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지는 그녀도 알았다. 애당초 여섯 손가락 안에 들기 위해서는 초월자를 죽여본 경험이 있어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여섯째 손가락 픽카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대는 분명 대단한 강자일 거라 확신했다.

그녀보다 조금 뒤떨어지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픽카케 역시 여섯 손가락의 일원.

초월자를 한 번 암살해본 만큼, 방심하거나 실수할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를 죽인 전사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룩시시투카는 조금이지만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아군의 피해가 막심할까 걱정한 것이었지, 결코 패배할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찌이···찌익······.”

놈은 달랐다.

단순한 수류계 마법에서 시작된 동토는 숲을 통째로 얼려버렸고, 언젠가부터 하늘 위에 드리운 먹구름은 불과 벼락을 뿜어댔다.

숲으로 모여든 일만의 암월단원이 도륙당하기까지는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놈이 먼발치에서 세 번째 손가락을 때려눕히는 걸 본 순간, 룩시시투카는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암월단장님께 알려야 해. 도시를 공략하는 아군에게 합류하거나, 아니면 나 혼자 돌아가서라도···!’

그렇게 숲을 완전히 벗어난 순간 아군에게 합류하는 전략은 폐기 처분됐다.

르비바흐에 주둔한 도시연합군을 공격한 암월단이, 말 그대로 갈려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두 마리 아룡이 끄는 마차가 성벽 바깥을 누비며 숨결을 뿜어댄다.

성 안쪽에서부터 쏘아진 불기둥 같은 화살은, 마치 살아있는 거대 뱀처럼 암월단 진형을 누벼댔다.

반파된 성벽은 대지계열 술식의 대마법사라도 있는 건지 단단한 토벽으로 빈틈없이 보강된 상태였고, 곯아떨어졌어야 할 병사들은 그 위에서 총이며 쇠뇌를 퍼붓는 중이었다.

“······!”

불현듯 등골을 스치는 서늘한 감각.

룩시시투카는 반사적으로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내 찢으면서도, 불안감을 못 이긴 채로 뒤를 돌아봤다.

━━━━━━━!!

텔레포트 마법으로 희뿌예지는 그녀의 눈에 마지막으로 맺힌 상.

그건 숲 한가운데 난데없이 솟아오른 설산의 봉우리와, 하늘을 뚫고 산 정상에 내리꽂히는 빛의 기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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