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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32화 (232/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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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잠입(1)

“혈령의 제단? 그게 진짜 존재하는 거였나?”

“존재하오.”

난쟁이의 놀란 목소리에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혈령의 제단.

모든 사령술사들이 갈망하는 성지이자, 사람의 심장을 태운 연기가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는 마경.

항간에는 악신 테모므론이 자신의 화신체를 강림시키기 위해, 제단 위에서 지난 사백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을 죽여 바쳤다는 소문까지 떠돌 정도였다.

댈런은 그게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모니터 너머에서나마 두 눈으로 혈령의 제단을 봤으니까.

단순히 목격한 걸 넘어서서, 그 제단을 직접 이용한 적도 있었고.

“자네가 그렇다면 정말로 있는 것이겠지. 그저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여겼거늘. 어찌 그리 참혹한 일이 이 땅에서······.”

“헛소문으로 치부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야. 혈령의 제단은 소문만 무성했지, 아무도 찾아낸 적 없었거든.”

혈귀전쟁 이후 지난 사백 년 동안, 뱀파이어 백작의 영토에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건 아니다.

대륙 각지에서 쫓겨난 흑마법사와 사령술사들이 이 땅을 도피처 삼았고, 그들을 쫓는 성기사와 현상금 사냥꾼들 역시 뒤따라 들어오곤 했으니까.

혈귀전쟁으로 큰 피해를 본 제국 역시, 새벽 기사단을 위시한 첩보를 파견해 주기적으로 이 땅을 정찰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혈령의 제단은 소문만 무성한 전설 속 산물이나 다름없었다. 제대로 된 증거는커녕 목격담마저도 거의 없을 정도.

“한때 성기사단이 무력 분쟁까지 각오하고서, 작정하고 추적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평범한 방법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게 맞소. 제단은 끊임없이 이동하니까.”

“이동···? 다리라도 달려서 움직인다는 소리인가?”

“비슷하지.”

댈런은 모닥불 안에 삭정이를 몇 개 던져넣었다. 반쯤 불붙었던 소시지가 순간적으로 바스러지며 불티를 탁 튀겼다.

“설령 어디 있는지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들어가는 건 또 다른 문제요.”

아커만의 작도법에서 비롯된 고유 스킬, 몽환추적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였다.

제단은 위치를 안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종류가 아닐 뿐더러, 쑴의 화신체가 그랬듯이 혈령 역시 댈런이 추적했을 경우 그 시선을 눈치챌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현지인 가이드를 이용해야지.”

“현지인?”

펠버가 고개를 기울였다. 반면 시에나는 그 한 마디만으로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었는지, 손뼉을 짝 치며 입을 열었다.

“혈령의 제단이라도 결국 제물은 공급받아야 해. 그렇다고 아무 제물이나 바치지는 않겠지.”

“맞소.”

“인간 사냥. 뱀파이어의 인간 사냥 문화가 그래서 나온 거였다니.”

눈을 반짝이며 끌어올려지는 정보상의 입꼬리. 댈런도 마주 웃었다.

“놈들의 인간 사냥 문화를 역으로 이용할 생각이오. 우리가 직접 아주 먹음직스러운 제물로 위장하는 거지.”

***

국경선 근처의 어둑한 숲속. 루카는 달리고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목구멍에서 신물이 넘어왔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크르르르···.

등 뒤에서 사냥개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가죽과 살이 전부 썩어 문드러지고, 더러워진 백골만 남은 사냥개들.

뱀파이어들은 키우는 사냥개마저 언데드였다. 놈들이 빨아 마신 인간의 고혈은 죽은 시체를 무덤에서 일으키는 주문이 되었다.

그렇게 일어난 시체는 다시금 인간을 통제하며, 신선한 피와 노동력을 갈취하는 힘이 되었고.

그건 혈귀들의 땅에서 지난 수백 년간 지속되고 있는 끔찍한 순환이었다.

루카는 며칠 전, 동네 친구들과 함께 그 순환에서 도망치기로 결정을 내렸다.

“루카! 이쪽이야!”

저 앞쪽에서 들려오는 속삭임. 정신을 놓을 뻔한 소년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풀숲 사이로 다른 소년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마을에서 함께 도망친 친구들 중 하나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수풀 안으로 들어가니, 친구는 얕은 구덩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구덩이 경사면에 쓰러지다시피 등을 기댔다. 루카는 쩍쩍 마른 입술로 말했다.

“물···물 있어?”

“여기. 아껴 마셔. 그게 마지막이야.”

가죽 주머니는 가벼웠다. 한 모금을 아껴서 몇 모금으로 나눠마시고 나니, 그래도 좀 살 것 같았다.

타들어가는 갈증이 사라지고 나자, 머릿속에 지난 며칠간의 여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자라온 고향은 뱀파이어 백작의 영토 안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생기 잃은 땅. 씨를 뿌리면 반 이상이 말라 죽는 푸석한 대지.

매년 정해진 때가 되면 도시에서 온 뱀파이어들이 인간을 한두 명씩 요구했고, 마을에서는 제비뽑기를 통해 그들이 요구하는 제물을 넘겨주었다.

부모님은 대대로 그렇게 살아왔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일흔이 다 되도록 살아계신 할아버지는 거기에 한술 더 떴다.

다른 나라들은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곡식을 거둬간다는데, 뱀파이어들은 그런 건 요구하지 않으니 다행이지 않냐는 식이었다.

“···말도 안 되는 논리야. 샤비르 누나가 그랬어.”

그녀는 동네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

농사짓는 법이나 건초 엮는 법밖에 모르는 마을 어른들과 달리,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을 줄 알던 유일한 사람.

그녀는 다른 나라와 지역의 문화에 능통했고, 이따금씩 루카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도시연합이라는 나라가 있다고 했어. 사람을 바치지 않는 나라. 능력만 있으면 먹고사는 건 물론, 부자도 될 수 있는 곳.”

허약한 몸으로 뱀파이어의 언데드 군세에 저항하는 건 불가능한 일. 샤비르는 도망치는 것만이 답이라고 말했다.

도시연합으로 도망치면 가장 좋겠지만, 북쪽의 삼왕국이나 서쪽의 제국도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 함께 도망치자고 말했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을 떠났다.

바람대로 도망친 건 아니었다. 매년 있는 제비뽑기에 걸려 도시로 끌려간 것이었다.

바스락.

“······!”

수풀이 흔들렸다. 희미했지만 분명 발소리도 섞여 있었다.

회상에 잠겨있을 시간은 없다. 사냥개가 근처까지 쫓아왔다면 숨어있는 건 무의미한 일.

“···가자.”

들키기 전에 이동하는 것만이 답이다. 그렇게 판단한 루카는 친구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

정확히는 두드리려고 했다.

방금까지 곁에 있던 친구의 어깨 대신, 앙상하게 마른 해골의 견갑골이 만져지기 전까지만 해도.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려고?”

정면의 풀숲 사이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같지 않게 허여멀건 피부. 붉은 눈동자와 창백한 입술.

남자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뱀파이어였다.

“화, 환상 마법···.”

“호오, 마법에 대한 것도 알아?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무지렁이들이랑 다르게 머리도 꽤 좋은 모양이고······.

뱀파이어가 씩 웃었다. 이번 사냥은 성공적인 모양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귀한 물건인데. 남작님께 진상해도 되겠어.”

소년은 그제야 자신이 들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내려다봤다.

친구가 준 물주머니라고 알고 있던 것. 그 안에서 출렁이는 건 물이 아니라 붉은 액체였다.

“히이익! 피, 피···으읍!”

“걱정하지 말렴. 넌 이 자리에서 죽이지 않을 테니까.”

피에 탄 마취액이 소년의 의식을 빠르게 흩어갔다. 뱀파이어는 실실 웃으며 해골 병사에게 소년을 묶으라 명령했다.

이번 사냥은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젊은 피가 도는 인간 소년을 여럿 잡았고, 거기다 보기 드물게 똘똘한 녀석까지.

제물로 가치가 높은 인간을 진상하면 그에 마땅한 보상을 얻게 되겠지. 뱀파이어는 새로운 혈인 능력을 하사받을 걸 꿈꾸며 슬슬 웃었다.

“혈령께서 군대를 모으고 계시니, 잘하면 거기에서 한자리할 수 있을지도···.”

“아, 드디어 찾았군.”

부스럭.

그때 수풀이 흔들리더니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뱀파이어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재빠르게 무리를 훑었다.

북쪽에서 내려온 듯한 전사 하나. 난쟁이 하나에 소년 하나. 마법사 둘과 여자 하나.

또 다른 사냥감인가? 그러기엔 아무리 봐도 이곳 출생이 아닌 것 같다.

거기다 이 정도로 가까이 올 때까지 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은 걸로 봐서 상당한 강자인데. 제국과 휴전을 맺은 상황에서 이런 놈들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새끼 눈 굴리는 거 봐라.”

전사가 씩 웃었다. 뱀파이어는 저도 모르게 주춤하고 물러났다.

그러고 보니 소년들을 잡기 위해 주변에 넓게 흩어놨던 언데드 수하들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남은 거라고는 소년을 어깨에 둘러멘 해골 병사 하나뿐···.

쐐애애액―!

남은 하나가 두개골이 반으로 쪼개진 채 무너지자, 뱀파이어는 이제야 자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는 말없이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그 태도를 본 전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야 눈을 착하게 뜨네. 너, 우리 길잡이가 좀 되어줘야겠다.”

***

뱀파이어 백작의 땅에도 인간은 산다.

피에서 비롯된 생명력을 필요로 하는 종족 특성상, 인간의 마을이 자생하도록 두는 건 당연한 일.

뱀파이어 백작은 지난 혈귀전쟁 이후, 휘하 흡혈귀들이 안정적으로 피를 수급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정보를 원천적인 수준에서 차단하고, 외부로부터 마을들을 고립시킨다.

지배당하는 이들이 각자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믿게 만드는 게 이 체제의 골자.

“시발, 무슨 이세계판 북한도 아니고.”

“북한? 그건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

“···아니오.”

물론 아무리 통신이며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중세랜드라 해도,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불가능한 일.

탈출하거나 저항하려는 사람들이 나오는 건 불가피했다.

뱀파이어들이 백작의 땅에서 벌이는 인간 사냥은, 그런 사람들을 사냥하는 문화였다.

“도시나 마을마다 주술이 걸려 있다지.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면 뱀파이어들이 알 수 있게 만드는 식으로.”

“···예, 맞습니다.”

“그리고 너 같은 사냥꾼들이 그렇게 벗어난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거고.”

“정기적으로 거두는 세금만으로는 혈족을 유지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으니까요. 사령술의 연구를 위해서라면 싱싱하고 질 좋은 제물이 필요합니다.”

루시아가 여기 있었으면 단칼에 이놈 목이 날아갔겠군.

어쨌건 별다른 고문이나 협박 없이도, 무릎 꿇은 뱀파이어는 순순히 질문에 대답했다.

주변의 언데드들을 순식간에 처리해버린 것에서, 이미 현격한 수준 차이를 느꼈기 때문일까.

헛짓거리를 하는 순간 해골 병사의 두개골을 쪼갠 도끼가, 자신의 머리 역시 쪼개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듯했다.

“흠······.”

포박된 뱀파이어의 증언을 한 귀로 흘려넘긴 댈런은, 바닥에 기절해있는 소년소녀들과 일행을 차례대로 둘러봤다.

마을에서 탈출한 소년소녀들의 숫자는 모두 여섯. 마침 일행의 숫자 역시 여섯이었다.

“그 주술, 성별이나 나이는 분간할 수 없겠지.”

“아, 예. 주술이 적용되는 범위가 원체 넓은지라, 그 정도의 정밀성은 없습니다요.”

“그럼 됐군.”

댈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공간에서 은화 몇 개를 꺼내 아이들의 품속에 넣어주고,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는 뱀파이어에게 고갯짓했다.

“저 여섯 명은 국경선에 데려다주고, 대신 우리를 잡아가라.”

“···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의 뱀파이어. 댈런은 허리춤의 도끼머리를 툭툭 두들기며 다시 말했다.

“우리 정도면 상당히 값어치 나가는 제물이겠지. 네가 섬기는 남작에게 우리를 진상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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