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34화 (234/288)

234

위장 잠입(3)

덜커덩! 덜컹!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제물로 진상할 사냥감을 실은 해골 수레가 서서히 속도를 줄여간다.

주변을 둘러싼 호위대가 넓게 자리를 잡은 뒤, 머지않아 수레가 완전히 멈췄다.

“열어라.”

수레의 주인인 라비루스크 자작은 본인의 해골 마차에서 내려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망령 기사 하나가 주인의 명에 따라 수레 뒤쪽의 문을 열었다.

곧이어 수레에서 내린 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제물로 진상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여느 때의 제물과는 조금, 아니 많이 느낌이 다른 사람들.

“공기에 희미하게 소금기가 묻어나. 백작령 남동부의 해안가 근처인가?”

검은 가죽 갑옷 위에 복슬거리는 털옷을 걸치고, 허리춤에 길고 얇은 칼을 찬 여마법사가 첫 번째.

“에잉, 쯧쯧. 사백 년을 살면 뭐 하나. 짐수레 하나 제대로 못 몰아서 시도 때도 없이 덜컹거리는데.”

“······.”

덥수룩한 수염을 긁적거리면서 투덜거리는 난쟁이와, 어딘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자작을 노려보는 청백색 머리칼의 소년이 그다음.

“자작. 곧 안 보게 될 사이에 괜한 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며칠씩 달려가는 걸 생각하면 환기구를 조금 더 만드는 게 좋을 걸세.”

“···한 번 알아보도록 하지.”

“대지 계열 술사들이 의외로 이런 쪽 전문이니 초빙해보게나. 지하에 마탑을 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환풍구 뚫는 데는 도가 터서 말이지. 아, 우리 마탑은 제외해 주게나. 엘가이아는 혈귀와 거래하지 않거든.”

“···명심하겠다.”

지팡이로 땅을 툭툭 두드리며 쓸데없는 첨언을 늘어놓는 노년의 마법사.

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이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젊은 금발의 청년 마법사까지.

‘제물’이 한 명씩 내릴 때마다, 자작은 어째선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해골 수레를 가만히 바라봤다.

오늘 진상할 제물은 총 여섯.

아직 한 명이 수레에서 내리지 않았다.

쿵―

묵직한 발소리.

수레가 뒤쪽으로 출렁이듯 크게 기울어진다.

끄기이이익···.

나무판자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흑마법으로 강화된 뼈들이 불길한 소리를 흘려댔다.

순간적으로 수레 안쪽의 어둠이 일렁거리는 듯한 착시가 보였다. 자작은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좁군.”

그 일렁임은 거대한 덩치의 전사였다. 사람 한 명이 넉넉하게 통과할 수레 문을 꽉 채우고도 남는 체구의 사내.

문 안쪽에서 잠시 멈춰선 사내는, 이내 열린 문을 반쯤 부수다시피 비집고 밖으로 나왔다.

우지지직! 콰직!

문틀이 부서지고 열어놓은 문짝이 쿵 하고 떨어졌다. 후두둑 비산하는 뼛조각들을 보며, 자작은 지끈거리던 두통이 한층 더 심해짐을 느꼈다.

해골 수레의 뒷문을 두 배쯤 넓힌 전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태도로 어깨에 붙은 뼛조각을 툭툭 털어냈다.

그가 말했다.

“문짝을 좀 넉넉한 크기로 다시 달아야겠소.”

자작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그야 다시 달아야겠지. 네가 방금 부숴 먹었으니까.

“물론 그 목이 몸통에 무사히 붙은 채로 성채에 돌아간다면 말이지만.”

“······.”

“잘 해보라는 소리요, 자작. 표정 좀 풀고.”

격려하듯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손길.

곰 발바닥 같은 손이 어깨를 두드릴 때마다, 튼튼한 뱀파이어의 몸이 눈에 띄게 휘청거린다.

철그럭! 철그럭!

두 손을 묶은 사슬이 그 손길을 따라 흔들리며, 채찍처럼 갈비뼈를 퍽퍽 두드리는 건 덤이었고.

“대답.”

“···고맙네.”

댈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얼굴로 손을 뗐다.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하는 게 예의지.

지난 며칠간 주입한 동방의 예의가 잘 붙어있음을 확인한 그는, 뱀파이어 자작에게서 몸을 돌려 일행에게로 향했다.

일행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물론 볼 건 별로 없었다.

이곳은 인적은커녕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찾아보기 힘든 황량한 벌판.

지평선까지 아득하게 뻗어나간 대지 위에는, 푸석한 흙과 돌만이 복사 붙여넣기를 한 듯 펼쳐져 있을 뿐이다.

검게 탄 사막이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자 펠버가 입을 열었다.

“이상하구만.”

“뭐가 말이오?”

“아까부터 살펴봤는데, 이 근처 어디에도 주술이나 마법의 흔적이 없어. 환술로 숨겨져 있는 것조차 아니군.”

그 짧은 사이에 이 드넓은 황야를 어떤 마력의 요동도 없이 훑어내린 건가.

댈런조차 손에 넣지 못한 시간선을 직접 다루는 영역의 힘. 그 신적인 공능을 꽃피운 재능은 과연 범상치 않은 종류였다.

펠버는 사슬에 묶인 손으로 수염을 슬슬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네가 혈령의 제단은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해서 하늘도 훑어봤네. 혹여 천공요새 바르샤바크처럼 떠다닐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노인의 눈이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둘 중 하나라는 이야기겠지. 자작이 목적지를 착각했거나···혹은 의도적으로 다르게 온 것이거나.”

“···아니다. 여기가 접선 장소가 맞다.”

“방금 그 말. 증명할 수 있겠나?”

스으으으···.

소리 없이 주변을 옥죄는 마력.

자작은 살짝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한 걸음 더 물러났다.

외견상 노쇠해 보이는 육신과 달리, 흘러나오는 마력의 밀도가 예상을 아득히 상회한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 자신의 성채를 두어 시간 만에 박살 낸 기습에서도, 저 노마법사의 술식은 다른 초인들보다 월등한 효율로 활약했었지.

5위계에 오르고서 이백 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저 노년의 마법사의 마력에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엿보였다.

5위계의 끝자락. 반신의 위에 손을 뻗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

이대로 끝인가 싶은 생각이 들려는 찰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노인장. 혹시 땅 아래도 찾아보셨소?”

“음?”

순식간에 잦아든 압박감. 순식간에 인자한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바뀐 노마법사를 보며 자작은 혀를 내둘렀다.

한편 댈런의 말대로 땅 밑을 살피던 펠버의 시선이 어느 한 점에서 멈췄다. 노인이 물었다.

“댈런, 설마 저···.”

“맞소.”

대답을 들은 마법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땅 깊은 곳 어딘가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는, 평소답지 않게 경계심이 한껏 묻어나 있었다.

다른 일행들이 그 눈빛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을 정도.

그리고 다음 순간.

드드드드···!

지진이 난 듯 땅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그르르르르륵···!!

끓어오른다.

달궈진 돌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끊임없이 거품이 솟아오르는 화산 곁의 온천수처럼.

수백 미터 반경의 검은 대지가 통째로 지글거리는 광경은,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무언가였다.

유독성의 매캐한 탄내가 코를 찌르고, 상승기류에서 비롯된 열풍에 피부가 바싹 말라간다.

댈런은 숨을 깊게 들이쉰 폐부 안쪽에서 용혈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저 먼발치에서 끓어오르는 지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우으으으으···.

그 시선의 끝.

끓어오르는 흙더미 사이로 길쭉한 물체 하나가, 기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서서히 부상하고 있었다.

“······저건.”

“돛대군.”

비요른의 멍한 중얼거림에 댈런이 대답하자마자.

투확!

길쭉한 물체가 느닷없이 치솟으며, 땅 위로 온전한 형태를 드러냈다.

우우우우우······!

비명의 합창이 대지 위에 울려 퍼졌다.

수백 명의 인골을 퍼즐 짜 맞추듯 조립한 세 개의 기둥.

그건 인피를 이어붙여 돛을 만들고, 밧줄 대신 힘줄과 근육으로 묶어놓은 돛대였다.

“···맙소사.”

기괴한 문자들이 새겨진 돛대를 단 함선은, 그 선체 역시도 인간의 뼈를 촘촘하게 쌓아 올린 결과물이었다.

갑판 위에서는 새까맣게 탄 해골들이 부산스레 움직이고, 배의 옆구리에는 거인의 팔뼈처럼 생긴 노 수십 쌍이 허공을 휘젓는다.

배 아래쪽에 주렁주렁 늘어뜨린 네 개의 닻은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는 용의 머리뼈였고, 선미에 붙은 수천의 얼굴들은 끊임없이 비명의 합주를 내지른다.

“저래서 위치를 알아도 들어가기 어렵다 말한 거요.”

멍한 얼굴로 거대한 유령선을 올려다보는 일행들 사이에서, 댈런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혈령의 제단은 저 유령선 안쪽에 있거든. 수천 미터 땅굴을 파고 내려갈 수는 없는 일 아니겠소.”

망자들이 파묻힌 대지 아래, 햇빛 한 점 들지 않아 시간의 개념조차 잊혀진 삭막한 공간.

혈령의 제단은 그 지저세계를 표류하는 유령선의 심장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찌하려는 건가?”

유령선의 등장에 약간이나마 용기를 회복한 걸까. 댈런의 곁에 다가온 자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댈런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긴 뭘 어째?

“별 거 있나? 그쪽한테 한 것처럼 하는 거지.”

“나한테···?”

“안에 들어간다. 부순다.”

미친놈. 자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눈으로 욕하는 게 보였지만, 댈런은 딱히 신경 쓰지 않고 덧붙였다.

“아직 거래는 끝나지 않았소. 우리를 저 안까지 무사히 들여보내는 건 그쪽 몫이라는 소리지.”

툭. 툭. 묵직하게 어깨를 두드리는 곰발바닥 같은 손길.

한 번 어깨를 두드릴 때마다 움찔하는 자작을 보면서, 댈런은 입꼬리를 길게 끌어올렸다.

***

승선하는 것 자체는 예상외로 어렵지 않았다.

갈비뼈를 엮어 만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남작급의 고위 뱀파이어 하나가 일행을 맞이하러 나온 게 전부.

사실 모니터 너머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배에 타기 직전에도 온갖 절차와 과정을 밟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지 않는 건 아마 자작이 뒤에서 미리 절차와 과정들을 다 밟아둔 것이겠지.

모르긴 몰라도 자작 본인의 목숨, 그게 아니라면 못해도 자작이라는 작위 정도는 걸었을 것이다.

“앙헬라크 남작.”

“라비루스크 자작님.”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자작과 일행을 이끌고 갑판 아래의 복도로 이끄는 고위 뱀파이어.

제물이라기엔 뭔가 이상한 댈런과 일행의 모습에 약간 의아한 얼굴이긴 했지만, 본인이 간섭할 일은 아니라 생각했는지 남작은 별다른 첨언 없이 일행을 이끌었다.

댈런은 물론 일행들 역시 스스로의 힘을 숨길 정도의 실력은 되는 이들이었기에 그런 것이기도 했고.

그렇게 복도를 한참 걸어가던 중, 자작이 문득 입을 열었다.

“자네가 온 걸 보니 백작께서 돌아오신 모양이군.”

“예. 남서쪽 국경선 인근에서 백작님과 함께 승선했습니다. 혈령께서 명령하신 대로, 병력을 결집시키며 백작님의 성으로 가는 중입니다.”

“흐음···그렇군.”

뒤쪽의 댈런과 일행을 슬쩍 돌아보는 자작의 시선.

이 새끼 봐라. 댈런은 한쪽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다.

자작의 생각은 뻔했다. 뱀파이어 백작 역시 오래전 반신격에 오른 존재.

얼마 전에 강림한 혈령에 뱀파이어 백작까지 있다면, 여기서 한 번 붙어볼 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겠지.

댈런은 별말 없이 허리춤을 툭툭 건드렸다.

딱히 도끼가 메여있지는 않았지만, 자작은 그것만으로도 기겁하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아닐세. 제물들의 상태를 한 번 확인해봤어.”

“그러고 보니 자작님께서 제물을 직접 진상하고자 하신 건 오랜만이죠. 예전부터 진상해오신 제물들의 질이 항상 좋아, 백작님께서 이번에도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렇군. 그래. 기대하고 계시는구만.”

유령선은 겉으로 보는 것보다도 훨씬 넓었다. 댈런의 예민한 감각으로 계산해봐도, 선체의 물리적인 크기를 이미 한참이나 넘어선 규모.

악신의 제단이 있는 곳이니만큼, 공간의 개념 자체가 왜곡되어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그렇게 기나긴 복도를 한참이나 걷고, 몇 번이나 계단을 내려간 끝에 일행은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백작과 혈령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그그극······.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도시의 성문만큼이나 크고 높은 금속 문짝이기에, 열리는 속도는 한세월이 걸린다 싶을 정도로 느렸다.

언제부턴가 식은땀을 줄기줄기 흘리는 자작의 뒤통수에, 댈런은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여기까지 온 이상 숨길 필요는 없었다.

억눌렀던 존재감을 풀어놓고, 마력의 바람을 한껏 휘어잡는다.

보스몹이 하나건 둘이건 간에, 보스룸이 열릴 때 해야 하는 일은 하나뿐.

오른손이 허리춤을 훑는 순간, 허공에 틈이 열리며 냉기 품은 사슬 한 가닥이 아공간에서 도끼를 배달하고.

[들어오거라. 먼 길을 지나 충성을 증명하고자 한 내 자식-음?]

문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말을 맺기도 전, 흐릿한 빛의 원반이 문틈 안쪽으로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