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38화 (238/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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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의 빛(4)

콰직!

혈령의 어깨를 뚫고 나간 전격의 작은 줄기.

푸른 뇌전이 붉은 기운으로 구성된 육체를 헤집고 빠져나간 순간, 혈령의 눈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상식을 초월한 움직임으로 대부분의 낙뢰를 피하고, 뇌전의 줄기가 아닌 수없이 갈라진 가지들 중 하나에 맞았을 뿐이지만.

[크으···!]

초월자들 사이의 팽팽한 싸움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승리를 점치기에는 충분한 변곡점이었다.

두두두두두두───!!

빗발친다.

하늘과 땅을 잇는 수백의 불기둥. 그 사이로 쉴 새 없이 꽂혀 드는 푸른 번개의 향연.

빛의 속도로 내리꽂히는 전격은, 마력의 흐름으로 전조를 읽어내더라도 완전히 피해내기란 불가능한 종류다.

인과를 끼워맞추는 신위의 기적을 파훼할 수 없다면, 그 기적을 꺾을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을 때려박을 뿐.

피하는 대신 막기를 강요하고, 막는 대신 흘려내듯 맞는 걸 강제한다.

전격술식의 특성상 스치기라도 하면 그 여파가 점차 누적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

혈령을 구성하는 붉은 기운이 조금씩이지만 뚜렷하게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댈런은 분신을 앞세워 혈령을 붙잡아두는 한편, 한 걸음 물러나 의지를 집중했다.

이미 두 개의 영역을 극한까지 활성화했기에 조금 무리일 수도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확실한 승기를 잡아둬야 하는 법.

「용의 숨결이 흩어지는 대장간」

저 머나먼 산봉우리 너머, 거대한 굴뚝 형태로 솟아오른 대장간이 주인의 부름에 화답한다.

「만병지주(萬兵之主)」

수세에 몰린 악신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능선을 넘어 수 킬로미터 거리를 주파하는 병장기들.

초월의 위에 닿은 대장장이의 손끝에서 탄생한 무구들이, 불과 벼락으로 가득한 전장에 도달했다.

뿌우우우―!

나팔수 없이도 전장 위에 아득하게 울려 퍼지는 뿔나팔의 외침.

철컥! 철컥!

사용자 하나 없이 스스로 짜 맞춰진 전신 갑주들이, 말 없는 마갑을 타고 일제히 하늘을 내달린다.

세검과 투창이 불기둥을 뚫고 혈령의 사각을 노린다. 칼바람을 두른 철퇴와 용암을 쏟는 대방패가 공기를 찢으며 움직임을 제약했다.

힘의 충돌을 이기지 못하고 발밑에서 으스러지는 대지. 뒤틀리고 찢어지는 공간은 마치 거대한 회오리처럼 보였다.

스물세 분신과 수백 정의 무구,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무수한 불벼락이 일점으로 모여드는 무식한 힘의 태풍.

그 태풍의 눈에서 혈령은 양손의 쌍대검을 필사적으로 휘둘렀지만, 점차 밀리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지금.’

그 속에서, 댈런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바로 지금이다.’

검을 오래 쥐다 보면 신기한 감각이 생긴다.

승리에 대한 감각. 어떤 논리나 생각을 앞서간 직관.

이 순간에 마지막 일격을 찔러 넣으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본능적인 깨달음.

수없는 전투에서 느껴온 감각을 다시 한번 느낀 댈런은, 댈루카힘의 병기고에서 나온 대검 한 자루를 쥔 채 태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셀 수 없는 무구의 폭격과 수십 가지 술식이 흘러넘치는 전장 위, 그의 검이 혈령의 목줄기를 파고들려는 순간이었다.

‘······!’

승리감 위로 저릿한 육감의 경고가 덧씌워진다.

악신 쑴의 화신체를 상대할 적에, 단 한 번 느껴봤던 저릿한 위기감.

「답보(踏步)」

찔러 들어가던 검을 내던진다. 관성을 뿌리치고 가까스로 몸을 뒤로 빼냈다.

직후 코앞에서 핏빛 기운이 솟구치며, 방금까지 그가 서 있던 공간을 붉게 물들였다.

치지지지지···!

노이즈가 낀 듯 사정없이 흔들리는 반구형의 공간.

혈령을 중심으로 반경 십여 미터를 아우르는 거대한 마법진이, 새빨간 핏빛 장막을 그려내고 있었다.

찌직─────!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걸 찢어 소멸시키는 붉은 장막.

먹구름에서 떨어지는 벼락과 불기둥은 물론, 댈루카힘의 대장간에서 쏟아진 무구들과 그걸 든 분신까지도 얇은 천처럼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댈런은 새로 검 한 자루를 받아 들고 마법진을 살폈다. 혈령을 중심으로 그려진 마법진은, 교묘할 정도로 쩍쩍 갈라진 지면에 잘 동화되어 있었다.

“수세에 몰린 척하면서, 그 사이에 마법진을 그려낸 건가.”

[···모름지기 인간이란 자신이 우위에 섰다고 생각할 때 방심하기 마련이지.]

붉게 물든 반구의 한가운데, 혈령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맞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틀린 생각이었다.

댈런이 순간적으로 우위를 점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가 방심한 건 아니었기 때문.

오히려 몇 개나 되는 영역의 정경을 한 번에 끌어다 쓰면서, 오감과 육감이 평소보다 몇 배는 예민하게 돋아난 상태였을 정도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금 전의 일격을 피해낼 수조차 없었겠지.

이 경우에는 그렇게까지 예민해진 감각을 속이고, 마법진을 그려낸 혈령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하는 게 맞았다.

‘···쉽지 않군.’

아무리 화신체라도 악신은 악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상대다.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갈무리한 건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좋다.]

뿌드득.

마법의 효력이 다해가며 점차 흐릿해져 가는 반구의 장막. 그 한가운데서 혈령이 두 주먹을 가볍게 말아쥐었다.

[스으···후······.]

별다른 수인이나 주문을 외운 건 아니었다.

그저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가다듬었을 뿐.

‘숨을 쉰다고?’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댈런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본디 혈령은 호흡이 필요하지 않은 존재.

비록 인간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지만, 그 육신을 구성하는 건 살과 피가 아닌 흑마법으로 만들어낸 붉은 기운이다.

반쯤 영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 육신이 호흡을 시작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망자의 육신과 영혼을 다스리는 사령술은 과연 어디까지 그 범주를 뻗어낼 수 있는가.

추측과 가정이 뒤섞이며 어렴풋한 정답에 도달한 순간.

“···후우. 이런 감각인가.”

혈령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있었다.

***

슈르르르······.

마치 스펀지가 물감을 흡수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이글거리던 붉은 기운이 천천히 침잠하며, 그 아래에서 수면 위로 부상하듯 맨살이 드러나는 광경.

혈령의 피부는 핏기 하나 없이 파랗게 죽은 질감에, 붉은 마력광이 핏발처럼 일어선 이질적인 형태였다.

댈런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키. 근육은커녕 살점조차 거의 없어 피골이 상접한 몸뚱이.

“···불편하고, 불쾌하군. 제약투성이에 답답하기 그지없어. 인간은 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이런 상태로 살아가는가.”

육신을 입은 혈령의 목소리는 더 이상 전성이 아닌 또렷한 육성이었다.

불편하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지, 어깨를 젓고 목을 돌려보며 사정없이 구겨지는 놈의 표정

허나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힘의 수위는 붉은 기운의 육신을 입었을 때보다도 훨씬 높고 안정적이었다.

그렇게 휘휘 돌리던 목을 뚝 멈춘 혈령이, 제자리에서 자취를 감춘 순간이었다.

투확!

뒤늦게 폭탄이 터진 듯 치솟는 토사.

꽈릉─!

소리의 속도를 넘은 파공성이 귀에 들린 순간, 이미 댈런과 혈령은 검을 열 번도 넘게 섞고 있었다.

투가가가가각!

아까보다 작아진 쌍검을 거침없이 휘둘러오는 혈령. 댈런 역시 그에 맞서 무기를 바꿔가며 공격을 흘리고 받아냈다.

마법진의 범위에서 벗어나 살아남았던 분신들이 재차 합세하고, 하늘의 먹구름도 불기둥과 우레를 다시 토해내기 시작한다.

허나 이번에는 혈령 역시 당해주고만 있지 않았다.

드드드드드······!!

느닷없이 뒤흔들리는 대지.

이내 설산의 능선을 넘어 나타난 건, 거대한 시체의 해일이었다.

푸른 귀화가 붙어 타오르는 뼈와 내장, 팔다리와 머리통의 파도가 능선을 넘어 댈런과 혈령이 있는 곳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신위가 무엇인지 아느냐?”

시체의 파도를 등진 채, 혈령이 말을 걸어왔다.

댈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사족을 붙일 여력이 없었다.

투가가각! 꽈릉─!

반쯤 영체였을 때보다 물리적인 저항에 더 취약한 형태임이도 불구하고, 혈령의 속도와 힘 모두 이전과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기 때문.

오히려 검격마다 녹아나는 마력의 밀도는 더 크고 거칠어져, 이전에는 대충 흘려낼 수 있었던 공격도 만만하게 볼 수가 없게 된 상황.

‘인간의 육신으로 스스로를 대체하고, 아예 사령술로 자기 몸을 제어하는 건가···!’

모든 언데드들의 아버지이자, 네크로맨시의 원천.

테모므론이 사령술사들의 신이라 불리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강력한 사령술사는 산 사람의 육체와 그대로 영혼을 빼앗아, 죽음이라는 과정을 생략한 채 망자로 만들어 부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 잔혹하기 그지없는 술식의 출처가 누구인지는 너무나도 자명한 일.

테모므론은 화신체를 인간의 육신으로 변환시켜 사령술로 제어함으로, 단순한 화신체로서의 제약을 뛰어넘기로 결정한 것.

‘현실에 동화율이 높아지면서 흑마법 술식의 위력 자체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겠지만, 화신체의 죽음을 상정한 만큼 오래 버틸 수는 없을 텐데···!’

“이 상태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군. 맞지?”

“······!”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검을 맞댄 찰나의 순간에 혈령이 웃으며 물었다.

“네 생각이 옳다. 얼마 버티지 못하겠지.”

쿠구구구구···!!

그즈음 머나먼 능선에서 시작된 해골과 시체의 파도가 전장을 덮쳐든다.

먼 거리를 달려온 만큼 닳아 없어졌어야 할 파도는, 오히려 그 크기를 배 이상으로 키운 상태였다.

“허나 말하지 않았느냐. 너는 제물로서 너무나 탐스러운 존재라고.”

이미 근방의 산봉우리 중 몇 개가 시체로 뒤덮였고, 얼어붙었던 골짜기에는 피와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하지. 신이라고 다르지 않느니라.”

어느새 혈령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다.

사방을 뒤덮은 건 끝이 없는 시체의 언덕과 골짜기. 덕지덕지 뭉쳐서 일어나는 시체 거인들뿐.

걸음을 옮기자 바스락거리며 잔뼈들이 부서진다. 신발 밑창에 썩어가는 내장이 찐득하게 엉겨 붙었다.

[여섯 번째 위계는 밟고 있는 세상 위에 자신의 세상을 덧씌울 수 있지. 일곱 번째 위계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어딘가에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혈령의 목소리.

[자고로 세계 자체를 움직이는 건 신만이 가질 수 있는 권능.]

우우우우······.

사방에서 시체 거인들이 일어나는 도열하는 걸 보며, 댈런은 그제야 이곳이 어딘가 낯이 익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군.”

모니터 너머에서 단 한 번 목격했던 광경.

사령술사 캐릭터로 플레이하며, 더 큰 권능과 술식을 얻기 위해 직접 방문했던 테모므론의 영토.

“여기는 네 대지옥인 건가.”

다섯 악신의 대지옥 중 하나, ‘망자의 땅’.

혈령이 스스로의 육신을 사령술에 희생하면서까지 하려고 했던 일은, 지옥 자체를 이 현실에 강림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 내 너를 사로잡고 산 채로 피와 영혼을 제물로 바쳐, 이 땅 위에 나의 진체를 온전히 강림시키겠노라.]

혈령이 웃었다. 그 웃음만으로도 지면을 뒤덮은 시취가 살기가 되어 육신을 짓눌렀다.

과연 대지옥 그 자체가 강림했다면, 혈령이라도 한시적으로나마 진체에 근접한 힘을 내는 게 가능하겠지.

[혹은···네가 내 권위에 복종하고 나의 수종을 들 의향이 있다면, 함께 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온몸을 압박하던 지옥의 기운이 순간적으로 옅어진다.

지옥의 정경 위에서 악신의 목소리는 마치 나긋한 속삭임처럼 귓가를 파고들었다.

“푸흐.”

댈런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얀 김이 입 밖으로 스르르 흩어졌다.

폐부를 침투한 지옥의 유독한 기운에, 용혈이 극렬하게 저항하며 세포 조직을 재생하는 것.

“예전에도 그런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지.”

[흐음?]

“그리고 곧바로 설득당했었다. 그땐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릴 때였거든.”

목구멍에 잔잔한 피맛을 삼키며 하늘을 응시한다. 검붉은 먹구름은 대지옥의 칙칙한 잿빛 하늘에 서서히 잡아먹히고 있었다.

홀로 클리어를 위해 노력하던 시절. NPC들을 그저 알고리즘을 따라 움직이는 답답한 머저리들이라 여기던 시간은 꽤나 길었다.

수백 회차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개인의 힘으로는 종말을 이겨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줄곧 영웅들의 마음에 빚을 지워서라도 끌어들이려 했던 건 그때의 깨달음 때문.

[허면 이제는 그만큼 절박하지 않다는 이야기냐?]

“아니. 그때보다 더 절박하지.”

의문 서린 혈령의 목소리에, 댈런이 나직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때랑은 달리, 나 혼자 살아남는다고 끝이 아니거든.”

지금의 이 싸움은 거저 얻은 기회가 아니다. 동료들의 도움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위계와 쌓아온 시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펠버가 홀로 뱀파이어 백작을 붙잡고 시간을 끌고 있었으며.

루시아와 비요른, 아카샤와 토미는 유령선에 결집된 수많은 언데드 군세를 그들만의 힘으로 막고 있다.

동료들의 도움 덕분에 혈령과 일 대 일로 맞붙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승리를 가져가지 못한다면 그들을 볼 낯이 없겠지.

그리고 지옥이 온 산자락을 뒤덮어가는 중이지만, 아직까지 모든 희망이 사그라든 건 아니다.

비록 세계를 직접 제어해 옮긴다는 7위계의 기적에는 아직 닿지 못했지만.

다섯 대지옥 중 하나를 정면에서 때려 부순 권능은, 여전히 하늘 너머에서 도사리고 있는 바.

“토르타니스.”

성검의 이름을 부르자, 먹구름을 가르고 한 줄기 빛살이 떨어졌다.

콱!

바닥에 꽂힌 성검의 푸른 검신 위에는, 붉은 뇌전이 그물처럼 뒤덮여 있었다.

파지지지지─┴─┬──┬

전격이 가지처럼 뻗어나가며 공간을 뒤튼다.

북부에서 쑴과 일전을 치른 이후, 댈런은 오랜 기간 홀로 수련할 때마다 전격술사의 힘을 파고들었다.

당시에는 대선조로 추정되는 존재의 힘을 빌려서야, 간신히 열어낸 전격의 바다였지만.

온전한 6위계에 오른 지금, 누구의 도움 없이도 그때의 기적을 재현하는 게 가능해졌다.

쿠르르르릉······.

지옥에 먹혀 밀려나던 먹구름이 좌우로 쩍 갈라지고.

「지옥을 삼킨 뇌전의 대해」

칙칙한 하늘 너머에서 천외천의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새꺄.”

오색의 뇌전이 흉험하게 내뿜는 빛무리 아래에서, 댈런은 땅에 꽂힌 성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이미 한 번 뒤통수 친 배신자한테, 어떤 멍청이가 또 쳐맞으러 들겠냐.”

[무···.]

치직──┴─┴┬─

대답은 듣지 않는다.

어차피 이 세계선의 악신은 알지 못하는 과거. 기억하지 못할 누군가의 회한일 뿐.

그 누군가에게 직접 답을 듣기 위해, 그리고 그가 남긴 유업을 물려받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게 아니던가.

비록 그게 후회뿐일 유업일지라도.

어쩌면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남긴 오점일지라도.

‘그게 내가 짊어져야 할 과거라면, 남김없이 짊어지고 다음으로 나아간다.’

결단을 마친 순간.

「홍색정령(紅色晶囹)」

━━━━━┳┻┳┻┳┻

파멸궁전을 갈랐던 붉은 번개가, 지상에 강림한 망자의 땅을 찢어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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