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42화 (242/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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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4)

댈룸 자이브는 사령술사였다.

누가 부모인지,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사실 그에게는 유년기의 기억 자체가 부재했다.

처음 눈을 뜬 곳은 외딴 설산의 한 오두막이었다. 살을 에는 눈보라가 하루종일 불어닥치고, 산짐승들이 만만한 먹잇감을 노리는 산골짝의 오두막.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느 도시에나 고아는 썩어 넘치다시피 많았고, 개중에는 이따금씩 어릴 적의 기억이 없는 아이들도 있었으니까.

으레 흑마법이나 주술 따위의 실험체가 된 뒤, 기억이 지워진 채 버려지는 경우들이었다.

물론 용도가 다한 실험체를 폐기하기 위해, 굳이 이런 외딴 산골의 오두막까지 올라온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언제 세상이 이성적으로만 돌아가던가. 기억을 잃은 댈룸 자이브도 세상이 비상식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긴 했소. 기억은 없으나 말하는 법과 싸우는 법 따위는 잊지 않았으니까.”

“······.”

“허나 그 덕분에 난 살아남았지. 그리고 당시 내게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 하나뿐이었소.”

사령술사는 더러운 수염을 움찔거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본능적으로 산에서 내려간 댈룸은 용병일을 시작했다.

미등록 용병을 거쳐 동패와 은패를 받고, 돈이 된다는 이야기에 마약 거래에도 발을 담그다 보니 어느새 흑마법사가 되어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설계한 것 마냥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졌던 인생.

거기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흑마법을 배우고 실전을 거칠수록 그의 재능은 더욱 빠르게 성장해갔다.

재능만이 아니었다.

온갖 유물과 영약들이 그의 앞에 나타나는 건 일상. 기연이라 할 법한 인연들은 소모품에 가까울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났다가, 그의 발전만을 도와주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즈음 댈룸은 확신했다.

자신의 인생은 거대한 의지의 설계 아래 있으며.

그리고 그 의지는 다름 아닌 그가 모시는 악신, 모든 언데드들의 아버지 테모므론일 것이라고.

“신의 보호 아래 있다고 생각한 뒤로부터 난 거칠 것이 없었소. 그즈음에는 종말이 다가온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더 이상 나의 힘을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

그때부터 그는 은패 용병이라는 위장 신분을 벗어버리고, 사령술사 댈룸 자이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마을과 도시들을 불태우고···수천, 수만의 사람들을 잡아서 제물로 바쳤소.”

테모므론은 열렬한 신도이자 수하인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리고 은총을 얻을 때마다 댈룸은 더 많은 제물로 보답했다.

거리낌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버려진 자식으로 태어난 신세.

부모나 가족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고, 용병과 마약 업계에서 일하며 마주한 인간군상은 더럽기만 할 뿐이었다.

애당초 기존의 인간 사회도 어차피 힘 있는 자, 권력과 신분을 움켜쥔 이가 모든 걸 독차지하는 세상이었다.

힘을 얻은 이상 못 할 게 무엇이겠는가?

죽은 이의 힘 없음이 잘못이지, 힘 있는 자신이 잘못된 게 대체 뭐란 말인가?

[사유하는 방식이 그야말로 간악한 지옥의 기수 그 자체로구나.]

“맞소이다, 잊힌 용이여. 나는 저주받아 마땅한 존재였소.”

[···지금 그대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니라. 분명 그대에게도 중대한 반환점이 있었겠지.]

“있었지. 아마도···혈귀전쟁의 막바지였던 것 같구려.”

도시를 넘어 왕국을 무너뜨렸다.

혈귀전쟁에 동참해 제국을 불태우고, 그 여파를 몰아 성기사단 본단을 폐허로 만들었다.

‘사령술사, 신께서 너를 영원토록 벌하실 것이다······.’

무너진 전쟁신의 성소 한가운데서, 악마 살해자가 죽어가며 내뱉은 저주를 들었을 즈음부터일까.

정말 그 저주가 통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뜻언뜻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살생의 기쁨이 점차 희미해졌소. 학살 끝에 남는 건 점점 커져만 가는 공허감뿐이더군. ”

후우.

흰 입김이 찬 공기를 적셨다. 눈보라는 잠잠해져 있었다.

“마침내 이유를 알게 되었소. 나와 같은 사람들을 잃어버린다는 상실감이었소. 나는 내가 인간이길 벗어던졌다고 생각했으나···내 영혼은 여전히 인간이었던 것이지.”

하지만 이미 굴러가기 시작한 바퀴를 멈출 순 없었다.

그는 종말의 기수이자 대행자였을 뿐, 진정한 종말의 근원인 악신이 아니었으니까.

어떻게든 속도라도 줄여보고자 손속을 무디게 했지만, 그마저도 큰 소득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해서 인류가 대비할 시간을 벌 생각이었소. 하지만 나 혼자 지체한다고 해서 종말의 속도가 늦춰지지는 않더구려. 다른 대책이 필요했지. 그즈음 테모므론과 꾸준히 갈등을 빚어오던 라필렘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소.”

“그래서 라필렘의 환영궁전에 쳐들어가, 악신을 소멸시킨 거였군.”

“맞소. 악신 하나가 사라지면 인류에게 약간의 희망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 하지만···그런 일은 없었소.”

라필렘이 소멸하고 나서도, 놈이 가졌던 권능과 수십 개의 지옥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놈의 유산을 흡수한 테모므론은 더욱더 강해졌고, 그렇게 강해진 힘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인류를 더 매섭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후회하며 마지막 가능성인 전설 속의 유물, 미궁의 밑바닥에 봉인되어 있다는 소원의 돌을 찾아 나섰지만.

하지만 반신을 넘어서 신위에 오른 그로서도, 미궁의 어느 깊이 이상으로는 내려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미궁의 5층 끝자락에서 대륙으로 복귀했을 때···인류는 이미 멸망한 뒤였소.”

대륙은 완전히 지옥이 되어있었다. 모니터 너머의 댈런이 허무함에 게임을 꺼버린 것 역시 그 시점이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 게임을 다시 켠 지 얼마 가지 않아, 사령술사는 제 주인에게 배신당했고.

“테모므론은 사냥이 끝나 쓸모없어진 사냥개를 제 손으로 처리했지. 권속인 나는 저항할 수 없었소. 그렇게 나는 죽었고, 역천의 우물은 그 세계선에서 나를 거둬갔지.”

후우.

다시 한번 깊게 내쉬는 한숨.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네 번째였다.

모니터 너머에서 보던 광경을, 그 안에서 살아가던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경험이.

“······.”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저 복잡한 심경과 생각,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들이, 정말로 단조로운 키보드와 마우스의 딸깍거림만으로 빚어진 결과물인 것일까.

방구석에서 몰두한 게임 클리어라는 단순한 목표가, 저토록 얽히고설킨 운명의 변주를 만들어낸 게 맞을까.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해결될 수 없는 궁금증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이미 죽은 이의 마지막 소고에 귀를 기울이고, 가능하다면 그 유지를 이 세계선에서나마 이어가는 것.

댈버의 마지막 일격을 계승해 쑴의 화신체를 쓰러뜨렸고.

댈타리온의 후회를 짊어진 채 소중한 이들을 지켜내기로 약속했다.

댈루카힘의 바람에 따라 르베론에게 망치를 전달해주고, 그의 선물을 동료들에게 나누었다.

눈앞의 사령술사에게도 같은 일을 해야겠지. 댈런은 잠자코 사령술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살인자가 아무리 뉘우치고 참회한다 한들,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소이다. 하물며 죽은 이의 영면을 능멸한 나의 죗값은 더더욱 클 터.”

사령술사는 피곤한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몸은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었다.

“절망하며 앉아있는 나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소. 그리고 말했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한 남자라.

역천의 우물 속, 각 세계선에서 회수되어 보관 중인 영혼에게 접근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여럿일까.

어쩌면 이미 그를 한 번 역천의 우물로 이끌어, 차리나와 대면하게 한 그 남자일지도 몰랐다.

어찌됐건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다. 댈런은 고개를 털어 상념을 떨쳐냈다.

그 사이 사령술사의 부르트고 뒤틀린 손은 비석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번에 하나씩, 내 손으로 직접 위령비를 세우기 시작했소. 그 남자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속죄의 끝에서 내게 안식을 줄 존재가 올 때를 기다리면서······.”

비석 외에는 일절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얼어붙은 땅을 맨손으로 파고, 흑마력으로 빚은 비석을 꽂은 뒤 다시 맨손으로 흙을 덮었다.

영겁에 가까운 장례는 신위에 오른 육신마저 부르트게 했다.

악신에게 제물을 바쳐 얻었던 흑마력은 비석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씩 사라져갔다.

대륙을 불태운 지옥의 기수에게 남은 건,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마력과 노쇠한 육신뿐.

“하나만 약속해주시오.”

빛의 가루로 천천히 흩어져가며, 사령술사가 말했다.

“말하시오.”

“복수는 필요 없소이다. 나는 그럴 자격조차 되지 않는 놈이야. 허나 부탁이니···내 힘으로 죄 없는 영혼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말아주시오.”

발목. 무릎. 허리를 지나 어깨까지.

서서히 빛의 가루로 흩날려 사라지는 사령술사의 얼굴에는, 희미한 초조함이 깃들어 있었다.

댈런은 턱을 긁적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고맙네······.”

사령술사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그의 머리가 빛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댈런은 그 가루가 이 세계의 일부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의 시체를 더 회수했고, 한 사람의 회고를 수습했다.

사령술사와의 대화는 짧았지만, 다른 어떤 초월자보다도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다만 이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건 다음 기회에 해도 되는 일.

현실에서 그를 기다리는 동료들이 있었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

핏─!

한 줄기 검은 선이 되어 지나가는 깃털.

콰지지직!

오와 열을 맞춰 나아가던 해골 기사들이 한순간에 우르르 무너진다.

허나 그것도 잠시. 내려앉은 뼈 무더기에 음산한 기운이 돌더니, 순식간에 새로운 형태로 조립되기 시작했다.

구으으으으······!

뼈들이 짜 맞춰진다.

원혼들의 울부짖음이 마디마다 깃들었다.

눈 깜짝하기도 전에 뼈 무더기는 5층 건물 크기의 기괴한 해골 토템으로 변해, 수십 개의 팔과 다리를 덜렁거리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꽈과광! 쿠르르르!

곧바로 쏟아진 폭약 세례에 토템은 다시금 폭삭 주저앉지만, 허공에 멤돌던 음산한 기운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너진 해골 더미에 다시금 달라붙었다.

빌어먹을 원혼들. 시에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칙칙한 하늘 위에는 거대한 회백색의 구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저건 다름 아닌 뱀파이어 백작의 영역.

놈이 수백 년간 테모므론의 밑에서 쌓아 올린, 한없이 비틀린 심상의 결정체였다.

「영역 완전개방 :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의 아비규환」

어지간한 도시의 광장만 한 규모임에도, 단 한 점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

수만의 원혼이 뭉쳐 만들어진 거대한 구체는, 끊임없이 땅 위의 육신을 탐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평범한 마을이나 도시 위에 저 원혼의 구가 드리워졌다면, 반나절 안에 원혼에 잠식당한 사람들이 도시에 흘러넘쳤겠지.

물론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한낱 원혼에 몸을 뺏길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조금 더 퍼부어, 영감! 뼛가루도 안 남을 정도로 부숴야 해!”

“폭약이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이대로는···!”

[――――!!]

바로 뱀파이어 백작이 소환한 언데드들이, 별다른 주문이나 의식 없이도 끝없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

용숨결로 얼어붙게 만들고 폭약으로 바스러뜨려도, 대지 계열 술식으로 파묻거나 마녀의 권능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려도 소용없었다.

하늘에서 떠도는 원혼이 다발로 들러붙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언데드 군세의 일원이 되어 다시금 달려들었으니까.

“토미! 탑주님은 어때!”

“아직 버티고 계십니다. 하지만 언제까지일지는···크윽!”

시간선을 멈춰버릴 수 있는 펠버의 영역이 사실상 유일한 대항마였으나, 노년의 마법사는 뱀파이어 백작과 일 대 일로 치고받는 중이었다.

쿠드드드드드──!!

하늘에 떠오른 회백색 원혼 덩어리 바로 밑, 특유의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구체.

그 안에 자신과 백작을 함께 가둔 채, 주문과 마력을 한계까지 뽑아내며 공방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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