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57화 (257/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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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룡의 자식(4)

꽈과과과광!

정면에서 내뿜어진 수백 문의 집단 포화.

[······!]

사실상의 영거리 포격에 얻어맞은 아룡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걸레짝이 되어 지면에 쿵 떨어진다.

[뒈져서 땅이나 기어라, 도마뱀 자식아!]

거병의 어깨 위, 넝마나 다름없어진 아룡을 바라보며 비요른이 외쳤다.

난쟁이 종족에게 대대로 각인된, 용에 대한 공포심마저 망각한 듯한 모습.

곁에서 영역의 힘으로 거병이 입은 피해를 복구하던 펠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말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자네는 그 다혈질적인 성미를 좀 다뤄야 하네.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에 용 몇 마리는 더 잡았겠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소! 전 포대 조준선 재정렬!”

구그그긍···!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하늘을 향하는 수백의 포문.

동체 안쪽에서부터 지축이 진동하는 듯한 굉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왕가 대대로 내려온 원한이라는 독특한 심상의 근원을 바탕 삼아, 거병의 동력을 통상적인 한계 이상으로 과부하시킨다.

사실상 동체가 견디지 못하고 손상되는 걸 넘어, 내부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까지 다분한 도박수.

그럼에도 네 자릿수의 용을 상대로, 위계의 제약을 넘어서서 화력을 쏟아내려면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손을 들어 이마를 슥 닦은 난쟁이가, 용이 가득한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발사!”

투과광!

꽈과과과광!

포성과 함께 원한의 탄막이 펼쳐진다.

이전까지의 포격과는 차원이 다른 화력.

굉음과 함께 꽃피어난 화구에 날개가 천처럼 찢겨나가고, 깨지고 으스러진 비늘과 뼛조각이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이전까지의 포격에 비교적 잘 버티던 진룡들도, 하나둘씩 중상을 입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두둑 떨어지는 동족의 육편과 핏방울 사이, 용 군단이 혼란에 빠졌다.

[――! ―――!]

[거병이 멀쩡하다! 어떻게!]

[하늘 위로 올라가라! 체력을 갉아먹어!]

[아니, 수적 열세는 저쪽이다! 그냥 내리꽂아!]

앞다퉈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용들과, 정반대로 급강하하는 용들.

포격으로 제약된 시야와 기감 탓에, 몸길이 수십 미터의 거체들이 서로 충돌하며 아수라장이 되어간다.

날 때부터 한계 없는 수명을 약속받은 용들이었으나, 그렇다고 죽음의 공포를 모르는 건 아니다.

노화와 죽음이 자연스러운 운명이 아닌 만큼, 오히려 불멸자들이야말로 생의 의지가 더 강한 편.

비늘과 가죽을 뚫고 안쪽에서 터지며, 내장을 진탕으로 만드는 포격 앞에서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확산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공포를 몰고 온 장본인 역시,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구르릉! 기긱! 치이이이!

붉게 달아오른 판금. 거칠어져가는 톱니와 피스톤의 마찰 소리.

안쪽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기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관절부 마디의 틈 사이로 새하얀 증기가 칙 뿜어진다.

거병의 내구성이 빠르게 한계에 가까워지며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열기에 강한 편인 비요른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계에 다다를 즈음, 함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던 펠버가 수인을 맺었다.

“엘르. 메멘토 엘레구스.”

우우우웅······!!

황금빛 동심원이 거병 중심으로 맴돌며 그 상태를 호전시킨다.

과부하된 열기를 식힌다기보다, 그 열기가 발생하기 이전으로 시간대를 돌리는 개념.

허나 황금빛 마력을 끊임없이 회전시키며 거병의 기능을 회복하는 펠버 역시, 썩 표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물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겠나?”

“완파 수준의 피해를 기준으로 세 번 정도.”

비요른이 수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 이상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네.”

뻐어어엉!

그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뻗어낸 거병의 열 손가락 중 하나가 굉음을 내며 터져나갔다.

황금빛 마력이 아무리 모여들어도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 손가락. 펠버는 그 모습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쯧.”

당연한 결과였다. 누군가의 시간선에 개입하는 건 굉장히 섬세하고 어려운 일.

더군다나 지금 펼치고 있는 술식은 타인의 물리적인 육신이 아니라, 심상 너머 영역이 빚어낸 산물에 개입하는 기적이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펠버라 해도, 얼마 전까지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권능.

생사를 넘나들던 뱀파이어 백작과의 싸움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이를 갈무리하며 6위계에 오르고서야 아슬아슬하게 손에 넣은 힘이었다.

‘그럼에도 심상의 근원에 간섭하거나, 소모된 심상을 회복시킬 수는 없다.’

부서진 거병의 판금을 수복하고, 기능을 복구하는 것까지는 가능했다.

허나 결국 그 거병을 작동시키는 건 펠버가 아니라, 비요른과 칼라드라쿰 가문의 원한이 환상세계에 빚어낸 영역의 힘.

그리고 그 영역의 힘을 운용하는 비요른의 심력은, 과부하된 거병이 손상과 수복을 거듭할 때마다 빠르게 깎여나가고 있었다.

“전 포대, 재장전 속도 최대. 포신의 열기를 무시한다.”

“토미. 마력 공명의 중첩 빈도를 두 배로 늘리거라.”

허나 어느 누구 멈추지 않는다.

포격을 한 차례 더 강화하는 비요른과 발렌티노 사제의 뒤로, 일행이 품은 영역의 정경이 다시 한 번 전장에 드리워졌다.

「악의 심장을 꿰뚫는 백색 비검」

「순열낭류(純裂浪流)」

루시아의 검신에서 흘러넘친 단마의 백염이,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듯 넘실거리며 용들의 심장을 탐하고.

「빈민가의 소리 없는 날갯짓」

「흑랑백인(黑浪白刃) : 자구령(刺鳩靈)」

흑백의 깃털이 한데 모여들어 진룡에 필적하는 거대한 새의 형상을 취하더니, 청린용 아카샤와 함께 하늘을 누비며 용 군세의 전열을 사정없이 헤집었다.

「영역 완전개방 : 탁백의 눈에 맺힌 하늘의 빛.」

「엽마구속진(獵魔拘束陣) : 주렴(周斂)」

“크하하하! 모래바람 왕조의 마지막 유산이니라!”

몇 달간 체력이 소모된 상태로 적지 않은 부상을 입은 에드거 역시,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일어나 영역의 힘으로 용들의 움직임을 찍어눌렀고.

마지막을 직감한 듯 광소하는 파라오는, 남은 풍뎅이 수십과 석상 몇 기를 남김없이 돌격시켰다.

콰과과과과━━━━!!

소용돌이치는 마력풍의 격류.

건물은 물론 지반까지 초토화되는 본단의 시가지.

한계 이상의 여력을 쥐어짜는 초월자들의 힘과, 용 군세의 권능이 부딪히며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피해를 만들어낸다.

실시간으로 무너져가는 폐허 한가운데의 연병장, 루시아가 펄떡이는 진룡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은 채로 유성처럼 내리꽂혔다.

꽈과과광―!

울컥 솟구치는 혈향. 핑 도는 시야.

신비 그 자체인 진룡의 육신을 영역의 힘으로 찢어발기고, 비틀거리며 물러서 다시 검을 들어올린다.

“···쿨럭.”

어려운 싸움이었다.

오랜 전투로 상처투성이가 된 심상과 육신.

수백을 떨어뜨렸음에도 여전히 네 자릿수에 달하는 아룡과 진룡의 무리.

얼마 전 혈귀의 땅에서 벌어진 전투와는 궤 자체가 다른 전장이었다.

언데드 군세를 상대로는 시간을 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지만, 천이 넘는 용 군세는 전력을 투사해도 밀리지 않으면 다행인 상대.

“······.”

밑바닥을 긁어 가능성을 한계까지 소모하면서도, 한 치의 오차와 실수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조금만 삐끗해도 죽는다.

그녀를 포함해 이 자리에서 그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허나 일행 중 누구 하나 몸 사리지 않았다.

한계 이상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한 번도 넘어본 적 없는 본능적인 제한선을 서슴없이 넘어간다.

애초에 이런 아슬아슬한 싸움이 성립될 수 있는 것 자체가, 용신을 포함해 가장 강력한 용들의 발을 묶어주고 있는 단 한 사람 때문이었으니까.

“···댈런.”

일행 중 단연코 독보적으로 강하면서도, 가장 위험에 망설이지 않고 뛰어드는 전사.

불가능한 싸움에 정면으로 부딪쳐 맞서고,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붙잡고 기적을 이뤄낸 영웅.

기적은 눈으로 보기 전에는 그저 미신에 불과하다던가.

허나 이 자리에서 그가 이뤄낸 기적적인 승리들을 지켜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사실 이들이 지금 이 전장을 딛고 선 것 자체가, 그 기적의 결과로 목숨의 빚을 졌기 때문 아니던가.

하수도에서. 미궁에서. 북부의 전장에서. 혈귀의 땅에서.

“크으.”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는 팔심을, 억지로 부여잡고 걸음을 내디딘다.

바닥난 심력을 긁어내, 루시아가 다시 한 번 단마의 흰 불꽃을 성검에 붙인 순간이었다.

[그륵···!]

그녀가 방금 심장을 찢어발긴 진룡의 시체가, 희번떡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후우.”

댈런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입과 코에서 연기가 흘러나오며, 거듭된 충격으로 인한 내상을 회복시켰다.

[정말 끈질기기 그지없군.]

새하얀 대검을 든 전사, 백검이 그 앞에서 질린 듯 중얼거렸다.

[영역 없이 무리하게 버틴 것도 모자라, 우리의 합공을 받아내면서 동료들을 도울 생각까지 한 거냐?]

“한두 번 맞아보니 간지럽더라고. 적당히 맞아줘도 괜찮겠다 싶었지.”

[그래봐야 저열한 사령술. 용의 시체를 되살렸다고 해서 그게 생전의 용만큼 강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백검이 눈살을 찌푸렸다. 댈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무리해가면서까지 사용한 스킬은, 얼마 전 댈룸 자이브의 시체를 회수하며 얻었던 S급 스킬 ‘망자들의 왕’.

테모므론의 이인자였던 7위계 사령술사가 주력으로 삼은 대술식인 만큼, 널브러져 있는 용 군단의 사체들과의 시너지는 흔한 사령술을 가볍게 뛰어넘겠지.

숙련도가 낮은 만큼 진룡의 생전 권능을 완전히 이끌어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남은 용 군세를 상대로 동료들이 충분히 버티고도 남을 지원 병력이 되어줄 수 있을 테였다.

[대답이 없군. 하긴, 스스로도 자신이 없을 테니.]

물론 대술식의 발동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굳이 오해를 풀어줄 이유는 없겠지.

자기 패를 꺼내면서 힘의 원리를 낱낱이 까발리는 건, 삼류 만화에 나오는 악당이나 할 법한 짓거리다.

치이이이······.

대답할 여력으로 용혈을 회전시키며, 재생력을 끌어올려 몸 안팎을 빠르게 회복한다.

슬쩍 돌아보니 이제 천 마리 안쪽으로 줄어든 용 군단은, 섣불리 달려드는 대신 하늘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시체들이 일어난다!]

[사령술! 고위계 사령술사가 숨어있다!]

[―――!]

메아리치는 전성. 멀리서 볼 때 그건 마치 까마귀 떼의 끊임없는 울부짖음 같았다.

전장을 뱅글뱅글 도는 것 역시, 시체 위에 모여든 까마귀 떼를 연상하게 하는 광경이었고.

차이점이라면 그 까마귀 떼가 셀 수 없는 주문으로 끊임없이 전장을 두드리고 있다는 점이겠지.

두두두두두두!

제대로 된 조준조차 없이 쏟아붓는 포격에 시가지가 뭉그러진다.

절반이 넘는 주문이 애먼 건물과 거리를 으스러뜨리고, 나머지의 절반 이상도 황금빛 장막에 가로막혀 튕겨나간다.

그러나 문제는 남은 반의반이었다. 착실하게 일행의 주변으로 떨어지며, 바닥에 달한 체력을 깎아 먹어가는 주문 세례.

아무리 죽은 용들을 부활시켜 고기방패로 쓴다 하더라도, 무한정 버틸 수 있는 건 아닐 터.

그렇다면 이쪽이 빠르게 끝내야겠지.

판단을 마친 댈런이 성검을 들고 발을 뗀 순간이었다.

[신위의 권능이라.]

지금까지 묵묵히 상황을 관망하기만 했던 잿빛 머리 소년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본신의 위계가 닿지 못한 힘을, 무슨 수로 손을 넣은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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