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권 7화
"왕비 저하."
"......."
"제 수하들은 모두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은 달 길드에서 네 수하들은 C급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지."
"......."
C급. 낮은 직위 같지만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불안함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등급과 관련 없는 비장의 수를 지니고 있지요, 이 이상 제 수하들을 욕보이신다면."
"어머, 나는 우려를 표한 것뿐이야. 정말로 자신이 있다면."
말을 끊은 그녀가 옅게 웃었다.
샤리 못지않은 음산한 미소였다.
"데이비, 그 천박한 녀석의 변수는 얼마든지 차단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명심하지요."
더 에둘러 말할 것도 없다는 듯 그녀가 미소를 거두고 홍차를 음미했다.
"맛이 별로구나."
담담하게 중얼거린 리네스가 샤리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돌아가자꾸나."
"예."
"어쩌면 말을 듣지 않는 개는 빨리 치워버려야 할지도 모르겠어."
"때가 되면 명을."
담담한 대답을 하는 샤리의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5. 특이한 재활 훈련.
"저...... 데이비 저하? 도대체 이곳에 왜......."
왕자궁 내부에서 가장 잡초가 많이 우거진 곳.
정원의 한편에 도착한 나를 따라 도착한 에이미가 조심스레 물었다.
시녀는 함부로 질문을 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내 노력이 빛을 발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람이 질문도 좀 하고 할 수 있지.
그리 생각하는 편이다.
이 세계의 토박이 인간이 아니기에 가질 수 있는 사고방식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에이미가 적당 선에서 끊을 줄 아는 눈치 빠른 성정이라 그리 시킨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녀석의 의문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풀숲을 이리 치우고 저리 치우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관리 되지 않은 정원은 그야말로 야생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얼마나 관심을 못 받았기에 내궁에 이딴 공간이 생겼는데도 아무도 건들지 않은 건지 참 우스울 따름이다.
"그만 돌아가 봐. 혹시 누가 날 찾거든 먼저 와서 내게 말해주고."
"네."
"혹시라도 묻거든 내가 여기 있다곤 말하지 마."
내 말뜻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는지 에이미가 의욕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몇 차례 끄덕이고 물러났다.
"자...... 그럼 한번 시작해볼까."
그리 말하며 입고 있던 활동복을 당기고는 천천히 풀숲 한복판에 양반다리를 하듯 편안하게 앉았다.
누워도 상관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잡초가 우거진 곳에 드러눕긴 싫었다.
꽤 지저분한 곳이거든.
당분간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을 자세를 잡고 나서야 주변이 안정적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말없이 쓰고 있던 안경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마법의 영창을 내뱉었다.
"오퍼레이션 필드."
동시에 미약하게 남아 있던 마나들이 내 의지와 연동되어 주변과 천천히 동화되기 시작했다.
영혼에 새겨진 신성력이나 스스로 잘 크는 사령 마나와 다르게 마나는 좀 까다로운 녀석이었다.
그냥 두면 몇 년이고 마나 부족현상을 벗어날 수 없기에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마나가 가장 잘 모여드는 자연적인 공간.
옅은 마나를 펼쳐 주변과 연동시키는 고유적인 공간을 만들어내자 주변을 떠돌던 마나들이 서서히 내 몸 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폐 속으로 들어간 공기가 작은 구멍을 통해 여러 영양소를 몸에 남기고 다시 빠져나가듯, 마나 또한 내 몸에 들어와 필요한 순수한 마나만을 남기고 다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획기적인 마나 호흡법, 아니 정확히는 기적에 가까운 호흡법이다.
마나를 쌓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쌓여 마법 사용에 방해가 되는 노폐물은 모조리 빼내고 증폭시키는 순수 마나만을 몸에 남긴다는 게 가지는 의미는 꽤 큰 편일 테니 말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이 대륙 마법사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마법사의 신이라 불리던 고대 영웅, 성격 나쁜 그 여자인 오딘이 개발한 이 마나 호흡법을 보는 순간 기겁하며 원리를 파헤치려 들 것이다.
그들이 수개월에 걸쳐 쌓아 올릴 마나를 고작 며칠 만에 쌓게 해줄 테니 말이다.
물론, 그 방법을 세간에 공개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거니와 알려준다고 해도 사용할 인간은 극히 드물 것이다.
결과적으로 재능있는 놈만 할 수 있는 호흡법이라는 소리다.
재수 없다고?
억울하면 재능 가지고 태어나시든가!
크흠!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마법에 관련해선 오딘의 여파가 심각하게 느껴진다.
스스로 반성을 하면서도 몸은 꾸준히 호흡법에 맞춰서 마나를 받아들이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꾸역꾸역 받아들여 마나를 쌓아두기만 하는 방식에 비하면 굉장히 속도가 느려 보이지만 노폐물이 적기에 그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가히 어마어마한 속도로 쌓인다.
호흡법을 시전할 때 들어오는 마나를 모두 잡는다는 마음으로 해라!
기본적인 일반 마법 상식이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런 상식을 개 박살 내버리고 역으로 호흡법을 만들어낸 그녀의 수준은 솔직히 성격을 떠나서 대단하다고 칭송할 만했다.
속도가 굉장히 느려서 그 누구도 뒤에 이런 효과가 따라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오랜 시간 할 짓 없이 연구만 거듭해온 그녀였기에 이런 방식을 만들어낸 건지. 아니면 생전에 천재라서 만들어낸 건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괜한 질문을 던지면 재수 없는 자뻑과 함께 딴생각을 한다며 지팡이로 머리통을 후려갈겼을 테니 말이다.
괜히 영웅의 회랑에서 있었던 소소한 기억들을 털어내며 다시금 집중을 시작했다.
한번 모았던 마나였다.
이번엔 쌓는 게 아니라 잠든 마나를 깨우는 것이니 활용 가능 마나가 몸 안에 축적되는 속도는 기가 막힐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 * *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며칠이라는 시간 동안 내 몸 안엔 일정량의 마나와 신성력, 그리고 사령 마나들이 뒤엉켜 유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나에 대한 개념을 아는 이들이라면 죽고 싶어 환장한 미친놈이라 나를 칭할지도 모른다.
신성력과 마나는 서로 반발하고 그 둘과 사령 마나 또한 반발하는 별개의 에너지이니 말이다.
사제가 마법을 쓰지 못하고 마법사가 신성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이유도 실상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세 가지를 모두 다뤘다.
어떻게 했냐고?
머리를 마주 대고 연구한 두 미치광이와 두 괴짜가 만들어낸 연구의 산물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니까.
입이 거칠고 술을 좋아하는 성격 나쁜 성녀 [다프네].
수틀리면 지팡이를 둔기마냥 휘둘러대고 절벽이라고 놀렸다 하면 눈 돌아가서 다 태우려 드는 성격 나쁜 마법사 [오딘].
데스로드라 불리던 네크로맨서인 주제에 사실은 이쪽이 진짜 성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착한 심성을 지닌 여자, [로 아이아스]
마지막으로 인체의 거의 모든 것을 파헤쳤다는 업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신의(神醫) [히포크리아].
이 정신 나간 네 여자가 만들어낸 기적은 나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영웅의 회랑은 그런 곳이었다.
수많은 영웅이 도착했고 그중에서도 각 분야의 최고만이 남은 장소.
생전에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해도 어마어마한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니 친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서로 간에 그렇게 교류를 하는 건 외로웠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성녀 다프네와 궁수 아폴론의 경우가 그러했다.
둘은 생전에 같은 세기를 살았던 영웅이었지만 다프네는 툭하면 아폴론을 죽이려 으르렁대던 불구대천의 원수였다고 한다.
그런 둘이 툭하면 투덕거리며 싸우면서도 증오하지 않는 건 시간이 흐르면서 미운 정이라도 든 게 아닐까.
물론, 그 느끼한 버터 아폴론은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 작자지만 말이다.
다프네와 대작을 할 때면 가끔 그녀는 생전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때 들어보니 둘의 관계가 참 가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 아이아스]에게 사령 마법과 저주에 대해 배우던 어느 날이었다.
다프네가 밤중에 찾아와 대작을 벌이던 중,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취해버린 그녀가 아폴론의 조인트를 갈기고 쓰러진 그의 가운데 다리를 무식하게 짓밟았던 해프닝이 기억났다.
-뭐? 아이아스를 건드렸다고? 씨발! 좆을 좆대로 놀리면 뒤진다고 했냐 안 했냐! 생전에 나 하나 따먹은 거로는 만족 못 해 이 좆같은 개새끼야?!
다른 건 몰라도 다프네는 입이 굉장히 험했다. 하지만 반대로 욕데레 같은 느낌이 없진 않았다.
조금 험하게 표현하면 시발데레가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실제로 내게도 그렇게 욕설을 쏟아부었지만 툭하면 찾아와 술을 건네곤 했으니까.
물론, 아폴론은 예외.
'하.'
절로 웃음이 나와 흐름이 끊기자 다시금 집중하여 마나를 끌어모았다.
투덜거리는 것처럼 반항하던 마나들은 다시금 내 유도를 따라 몸 안을 누비다가 빠져나갔고 순수한 마나만을 남겨놓고 다시금 떠나기 시작했다.
* * *
마나가 모이는 대로 서클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성장 속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마나를 빨아들이면서 일정 마나가 완성되면 서클을 만드는 데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시간이 훌쩍 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소설에서나 나오듯 서클은 단시간에 뚝딱 고리 채워버리고 마는 그런 부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 물론,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그리할 것이다.
다만, 그런 그들의 경우 성장이 굉장히 더딜 수밖에 없다.
"후우......."
절로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고 순수한 마나를 천천히 움직였다.
보통 마법사들은 심장에 서클을 만들고 회전시킨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론 도저히 신성력과 사령 마나의 충돌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장에 몸이 뻥 터져버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리라.
그런 점에서 현재 내 몸은 꽤 위험한 상태였다.
양이 조금만 늘어도 내 힘을 내가 견디지 못해서 죽을 터.
그렇기에 나온 방식이 바로 혈도 서클이었다.
무슨 소리냐고?
전신을 도는 혈도.
그 혈도의 라인에 맞춰서 정교한 서클을 만들어 회전시킨다는 것이다.
거의 신체 개조에 가까운 방법이고 조금만 엇나가도 그대로 피를 쏟고 죽기 쉬운 미친 짓이지만 한번 성공해본 나로선 그저 기억을 되짚어 길을 다시 여는 과정일 뿐이다.
에이미에게 절대 근처에 오지 말고 누군가가 접근해도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해두었지만 솔직히 조금 불안한 감은 없잖아 있었다.
일단은 나를 감시하는 시선이 있으니 말이다.
대놓고 감시할 수 없으니 멀찍이 숨어서 지켜보겠지만 애석하게도 주변에 깔린 잡초 때문에 내가 뭘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진 못할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의 여지를 줄 수밖에 없긴 하다.
천천히 마나를 소주천 시키자 미묘한 진동이 온몸을 덮기 시작했다.
간단히 움직이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기에 이정도의 진동에 괜히 몸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자세를 고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