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6화 (16/1,559)

# 1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권 16화

윈리와 바리스, 두 사람과 함께 도착한 펠리스티 공국의 대연회장 플란더스 홀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도착해있는지 음악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데이비 왕자님, 그리고 바리스 왕자님과 윈리 왕녀님. 펠리스티 공국 시종장 크람이라고 합니다."

"수고가 많습니다. 시종장."

홀에 도착하자마자 일렬로 늘어선 채 고개를 숙여 보이는 시종들과 시녀들을 두고 바리스가 사람 좋은 미소를 띠어 보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싶네요."

"별말씀을."

정중하게 대답하며 그가 한 손을 조용히 연회 홀의 입구 쪽으로 뻗었다.

"드시지요. 귀빈 대부분이 이미 도착해 계십니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맡겨주시지요."

담담하게 말한 그가 눈짓하자 문을 지키고 있던 시종들이 조용히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화려한 연회 홀의 내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홀의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9. 대련.

대륙 검술대회의 참석인원 나이제한은 모두가 20세 미만.

그런 만큼 대부분의 참석인원은 젊은 축에 속했다.

물론, 나와 윈리처럼 동행해온 이들의 경우엔 나이제한이 가지각색이었지만 그럼에도 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순식간에 모여드는 시선에 조금 부담스러울 법도 하건만.

바리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글서글한 웃음을 띠며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오라버니, 가실까요?"

"그래."

이어서 윈리가 곱게 웃어 보이며 조용히 말해왔고 바리스를 따라 천천히 홀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시선이 집중된다는 게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소리일까.

우리 세 사람의 출현에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아낌없이 보내왔다.

개중 가장 시선을 많이 받는 건 다름 아닌 바리스였다.

저래 봬도 제 나잇대 아이들의 기준으로는 굉장한 수준인 익스퍼트 중급에 이른 실력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어느 정도 소문은 들은 것일 터다.

어떻게 보면 경쟁자이니 그에 대한 관심이 표출된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일단은 경쟁자일 테니 말이다.

"젠장, 재능도 좋다더니 생긴 것도 이기적이네."

"그나저나 저 레이디가 바리스 왕자의 쌍둥이 동생인 윈리 왕녀인가?"

"굉장한 미녀인데?"

문득 먼 곳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 딴에는 들리지 않게 한다고 하는 소리 같은데 내가 청각이 워낙에 좋아야 말이지.

실제로 바리스나 윈리는 그런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반갑습니다. 바리스 왕자님. 저는 페르디샤 왕국 콜디움 후작가의......."

"처음 뵙겠습니다. 후샨 왕국 볼티스 백작가의.......

경쟁상대로서의 경계는 있지만 반대로 친해질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긴 것일까.

사방에서 겉보기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띤 채 그에게 다가가는 소년들의 모습에 바리스가 구원의 눈빛을 보내왔다.

물론,

"윈리. 한 곡 출까?"

깔끔한 무시도 가끔은 좋은 선택이리라.

"혀, 형님......."

죽어가는 듯한 바리스의 애절한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하도록 한다.

* * *

홀의 음악이 바뀌며 파트너를 대동한 이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연회의 분위기가 가볍게 무르익기 시작했다.

"오라버니와 춤을 춰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죠?"

음악이 끝나고 곱게 손을 내려놓은 윈리가 여상히 웃어 보였다.

"그러네."

"오라버니께서 혼수상태에 빠지셨을 땐 저는 아직 사교계에 데뷔하지도 못한 8살 꼬맹이였으니까요."

티오니스 대륙의 국가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귀족, 혹은 왕족 여성의 사교계 데뷔는 대개 열네 살에서 열다섯 살 사이에 치러지는 편이었다.

그리고 왕족은 그보다 조금 빠른 편에 속한다.

그러니 결국 윈리의 사교계 데뷔는 내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사이 이뤄진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 아이를 변방의 화적떼 소탕에 보내다니.

마치 예전을 떠올리듯 윈리는 연회 홀 쪽으로 시선을 꽂은 채 헤헤 웃어 보였다.

"정말 다행이에요. 지금은 회복 중이시지만 나중엔 언젠가 모두가 오라버니의 진가를 알아볼 거에요."

가식 없는 그 미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왕궁에서 태어난 것치고 굉장히 정이 많은 녀석들이다.

라운 왕국의 왕궁 내의 인물은 어지간해선 정이라곤 쥐뿔도 남지 않은 차가운 이들 뿐이지만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 이런 녀석들이 나왔는지 새삼 궁금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오라버니는 검술에 엄청 재능이 좋으셨죠."

잊은 사실을 떠올린 듯 녀석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검이야 뭐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겠냐."

"그런 소리 마셔요. 오라버니는 아직 젊으신걸요."

"고작 열네 살짜리 꼬마 숙녀님한테 듣기엔 조금 이르지 않니?"

"히힛."

헤실헤실 웃은 녀석이 포도로 만든 주스를 가볍게 들이켰다.

그때였다.

"윈리 왕녀님."

좋게 표현하면 많이 부드러운, 평범하게 답하면 굉장히 느끼하다는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다.

대부분의 관심사는 귀족 소년들과 소녀 사이에 섞인 바리스에게 가있는 줄 알았더니 윈리도 한시선 받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남녀 비율이 남성 위주로 몰려있는 데다가 윈리는 꽤 앙증맞은 귀여움을 가지고 있으니 시선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

다만, 윈리는 상대가 누구인지 이미 아는 듯했다.

"이렇게 또 뵙는군요."

"아...... 네, 발르티앙 드 볼티즈 왕자님."

잔뜩 굳어진 얼굴로 어색하게 말을 내뱉은 그녀가 저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녀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부디 저에게 당신과 담소를 나눌 시간을 할애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어지간해선 사람을 안 가리는 성격인 윈리가 이렇게 칠색 팔색하며 물러나는 인물이라.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죄송합니다만 발르티앙 왕자님, 저는 오라버니와 담소를 나누던 중이라."

그녀의 말에 그제야 그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처음부터 보고 있었던 주제에 이제 와서 발견한 척은, 쯧.

속으로 혀를 차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놈의 귀족들은 당장 때려죽이고 싶어도 겉으론 웃는 게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일이다.

"아. 제가 결례를 범했군요. 볼티즈 왕국의 7 왕자 발르티앙 드 볼티즈라 합니다."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짧게 답해주자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미안한데 이미 좋은 감정이 들기엔 늦지 않았냐.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녀석이 나를 보며 잠깐 비쳤던 감정은 경시였다.

제아무리 왕자라고 해도 타국의 왕족을 저런 시선으로 본다는 건 굉장한 무례에 해당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한데, 데이비 왕자께서는 어인 일로 이곳에?"

"동생 녀석의 경기를 참관하러 왔습니다."

"그렇군요. 부디 좋은 모습을 담아가시길."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그가 윈리에게 시선을 돌린 뒤 느끼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윈리 왕녀님, 이번 대륙 검술대회 우승의 영광을 그대에게 안겨드릴 테니 기대하십시오."

느끼한 어조로 말하는 그의 말투에 윈리가 대놓고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아무리 왈가닥이라도 공적인 자리에선 상당히 자기관리가 철저한 녀석이 이렇게 인상을 구길 정도면 안 봐도 답안지가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그 말씀은 이곳에 모이신 분들께 무례가 된다는 걸 아시나요?"

"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 되면 무례가 아니겠지요."

"이번 대회엔 제 쌍둥이 오라버니도 참가하세요, 그런 상황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 무시하는 처사라고밖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싸늘하게 일갈한 윈리는 더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오라버니, 가요."

"......."

그저 묵묵히.

나서는 거야 어렵진 않지만, 괜히 윈리나 바리스 녀석에게 부담을 줄 생각은 없었다.

가볍게 몸을 돌려 그녀와 그 자리를 벗어나려던 찰나.

"감히 저를 무시하는 겁니까?! 윈리 왕녀!"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돌아서는 그녀에게 미련이 남았는지 발르티앙 왕자가 잽싸게 다가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은 것이다.

여기까지면.

'많이 참았지. 이정도면 천하의 망나니 제자 성격 다 죽었다.'

팍!

우드득!

"크아악?!"

기회가 생겼으면 잽싸게 이용해먹는 게 답.

늘 드는 생각이지만 입에 칼을 물고 천을 덮어 싸우는 건 맞지 않는다.

도를 넘는 무례를 참는 것도 성격 안 맞는 짓거리였다.

* * *

공과 사를 구분하는 건 왕족이나 귀족에게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기분 더러워도 참고, 기분 좋아도 함부로 웃지 않는다.

그것이 귀족의 삶이고 책임이다.

솔직한 심정으론 개소리라 생각한다.

그저 사람을 제 입맛대로 써먹기 위한 빛깔 좋은 구실에 불과할 터.

"으, 으아악!"

한쪽 무릎을 털썩 꿇은 발르티앙이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덕분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이곳으로 모이고 말았다.

"오라버니?"

"다른 건 몰라도 남의 귀한 동생에게 함부로 손대면 쓰나."

담담하게, 또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해주자 발르티앙 왕자의 눈에 핏발이 어렸다.

"크으......."

"운 좋은 줄 알라고, 뼈는 그냥 남겨놨으니까."

"커헉!"

단단히 틀어쥐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자 그가 숨을 헐떡이며 제 손목을 부여잡았다.

가볍게 잡아 비트는 것만으로도 이런 녀석의 팔뼈를 부러뜨리는 건 일도 아니다만, 그렇게 되면 일이 좀 커질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바리스가 역으로 실격 처리를 당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 되었건 증거가 남지 않으면 괜찮은 법.

이 일로 인해 그가 길길이 날뛰어도 시간이 좀 흐르면 몸이 멀쩡해질 테니 그로서는 뭐라 항의하려 해도 할 건더기가 없을 것이다.

독기어린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던 그가 내게서 한발 물러났다.

좀 전의 여유롭던 느끼한 인상은 온데간데없고 성깔 더러운 소년이 자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내게 던졌다.

"결투를 신청한다!"

그 외침에 관심이 없던 이들까지도 내게 시선을 돌렸다.

참가를 위해 방문한 각국의 귀족자제나 젊은 왕족, 그리고 그들이 대동해온 소수의 동행인들까지도.

아이고, 부담스럽게 시선 집중이.......

흠흠.

바닥에 떨어진 장갑을 흘끗 바라본 뒤 차갑게 그를 올려다보자 윈리가 격하게 화가 난 듯 소리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