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권 18화
비틀거리던 내 목검이 허공을 향해 아무렇게나 휘둘러지며 정확하게 그의 턱을 차올려버린 것이다.
"커헉!"
당연히 예고 없는 그 클린히트에 그의 몸이 부웅 떠버렸고 그대로 튕겨 나가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반대로 이미 균형을 잃은 나는 오히려 검을 겨우 지지대 삼아 넘어지는 사태를 피했지만 말이다.
"어라?"
제대로 된 히트 때문에 순식간에 침묵이 주변에 감돌았다.
"크윽?!"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당황하는 표정을 지은 채 일어서는 발르티앙을 향해 나는 중심이 안 잡혀 불균형하게 흔들리는 목검을 가볍게 내리 세웠다.
이놈의 검술의 기본 기수식은 빈틈을 최대한 내보이는 것.
그리고, 상대를 철저히 농락하는 데에 있다.
"푸훕......."
분노하는 그와는 다르게 주변에선 억지로 짓누른 듯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의 일격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으니 말이다.
"죽여 버리겠어!!"
선공을 양보한 주제에 제대로 한 방 먹어버린 것 때문일까.
섬뜩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녀석이 검을 겨눈 채 빠르게 파고들어 왔다.
역시 썩어도 준치.
그래도 볼티즈 국가를 대표해서 참가한 재능아답게 녀석의 검은 제 나잇대 소년들보다 확실히 날카로운 편이기도 했다.
자세는 그럭저럭 잘 잡혀있고 검결도 꽤 날카롭게 파고들어 온다.
하지만.
경험이 너무 부족한 탓에 검로가 정직하다는 점.
이건 비단 발르티앙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터엉!!
검을 내려 든 내가 놈을 향해 한발 내디디고 검을 쳐올렸다.
다리 축부터 허리 어깨까지, 단 한 곳도 제대로 지지 되는 것 없이 휘둘러진 엉성한 자세의 검술이라 그를 제지하는 건 실상 불가능에 가깝게 보였다.
순식간에 그가 휘둘러 쳐올린 검에 내 검이 몸 밖으로 튕겨 나가자 사방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놀란 윈리의 걱정 어린 외침 또한 들려왔다.
상황을 잘 안다 자부하는 이들도 내가 방금 우연스레 발르티앙의 검을 쳐냈을 뿐 두 번 다시 그런 우연은 생기지 않으리라 여기는 듯 보였다.
글쎄.
파앙!
봐주지 않겠다는 듯 내 목적을 향해 목검을 쳐올리는 그 모습에 나는 곧장 다리에 힘을 풀어 균형을 흩어버렸다.
"어엇?!"
동시에 내 몸이 놈이 쳐올린 목검의 힘에 이끌려 그대로 빙글빙글 돌아 무너져 내려버리듯 그의 검을 피해내 버렸다.
빠아아악!!!
그리고, 잠깐의 틈으로 그의 검을 빗겨낸 내 검이 갈 곳을 잃은 채 아무렇게나 휘둘러지며.......
놈의 미간을 다시 한 번 날려버렸다.
* * *
"커헉!!"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었다.
주변은 순식간에 벌어진 참상에 놀라듯 입을 쩍 벌렸다.
발르티앙이 누구이던가.
비록 성격 더러운 녀석이긴 해도 이번 검술대회에 참가하는 유망주 중 하나였다.
반대로 나는 알려진 대로 6년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린 유약한 왕자.
검을 제대로 배웠을 리 없다.
실제로 내가 보여준 엉성한 자세는 그들이 가진 생각에 확신을 끼워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이 예상한 것과 달랐다.
순식간에 검을 놓치고 제압당할 거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엉성하게 휘둘러진 검이 두 번이나 발르티앙을 녹다운 시켜버린 것이다.
대련이 아니라 실전이었으면 벌써 두 번은 죽었을 결과였다.
"같잖은 술수를!!"
"음, 내가 이기고 있는 건가? 생각보다 맹탕인가 본데."
내 말에 벌떡 일어난 발르티앙이 수치심으로 가득한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푸훕."
급기야 참지 못했는지 멀찍이서 누군가가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하자 불난 집에 기름이 끼얹어진 것마냥 놈의 기세가 흉흉해졌다.
"최악이군."
"어떻게 검을 휘두르는 법도 모르는 초짜에게......."
"발르티앙 왕자라면 신경 써야 한다고 하더니, 이정도 수준이면......."
"이익!!!"
그들에게 따질 순 없으니 놈이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벌써 두 번이나 당한 만큼 그의 패배는 기정사실이 되었지만 그는 애써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 조금만 더 자극을 줘볼까.
처음과는 다르게 몸이 신중하다. 반사적으로 또 말도 안 되는 우연에 당할까 봐 겁을 지레 먹은 것이다.
그러니 신중하게, 신중하게 상대하면 절대 질 일이 없다.
뭐 그렇게 생각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듯한데.
그쪽에서 안 오면 내가 가는 수밖에.
엉성한 자세 그대로 그에게 덤벼든다.
그리고는 마구잡이식으로 검을 휘둘렀다.
간격도 힘의 배분도, 방향도 정형화되지 않은 말 그대로 아이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 듯한 엉성한 검술이었다.
따악!!
실제로 무게중심도 제대로 잡히지 않아 검로에 담긴 힘조차 그리 높지 않았다.
따악!! 따악!!
내가 보인 연격을 침착하게 막아내는 놈의 모습을 보며 그제야 연회 홀 내부의 사람들은 내가 곧 그의 검에 당하리라 생각한 듯했다.
하지만.
빠아악!!
기다렸다는 듯 눈먼 검이 놈의 관자놀이를 후려치자 모두가 경악한 듯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 * *
"커헉?!"
마구잡이식 검술.
제대로 배운 이라면 절대 허용하지 않을 느리고 약한 일격이다.
그건 모두가 보아서 알고 있는데.
어째서 또 당한 것일까.
머리를 맞아 비틀거리는 발르티앙의 표정은 이미 혼란 그 자체였다.
"으음, 맞은 건가?"
스스로 휘두르고도 예상 못 했다는 듯 내가 얼빠진 소리를 내며 멈칫하자 주변에서 다시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익스퍼트 초입이라며?"
"우리와 같은 경지 맞아? 어떻게 저런 검에 당하는 거지?"
"어쩌면 정말 별거 없는 것일 수도......."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그랬으면 확실한 거겠죠."
그 누구도 내가 의도해서 이런 사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다.
"아, 아니야! 아니라고! 이건!"
"변명이 구차하네요."
"쯧쯧."
그즈음 되니 발르티앙의 표정은 그야말로 미치고 펄쩍 뛸 만큼 억울해 보였다.
그는 분명히 침착하게 막았을 것이다.
처음 우연, 두 번째 우연도 그렇고 어지간해선 당할 리가 없는 검로였다.
그런데 당했다.
남들은 보이지 않겠지만 나와 직접 대면하고 있는 발르티앙만 느낄 수 있는 기묘한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그걸 그들에게 변명한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겠지만 말이다.
씩씩거리며 흥분하는 녀석을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놈의 검술은 이 맛에 배웠지.
말 그대로였다.
술에 취한 검술.
[취검.]
말 그대로 술에 취한 듯 휘둘러지는 검이라는 소리였다.
영웅의 회랑 최고의 술고래 독고준이 고안해낸 검술로, 흥미를 느낀 검신 하레스가 끼어들면서 태어난 최악의 이단아 같은 검술이었다.
-망할, 이건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악(惡)한 검술이다!
그 성격 나쁜 독고준도 혀를 내두른 검술.
-진짜 사회적으로 매장해버리고 싶은 놈이 아니면 가급적 쓰지 마라. 같은 사람으로써의 양심이 있다면.
완성된 검술의 구결을 정리하던 하레스도 인상을 찡그린 채 가급적 꺼내 들지 말라 했던 검술이다.
묵직해서? 날카로워서?
아니었다.
검술 구결 전체에 깔린 빌어먹을 정도로 치밀한 사기성과 농락성 때문이었다.
제 나름의 정도(正道)를 걷는 두 노인조차 이건 아니라고 느낄 만큼 악의가 가득한 검술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지키겠다, 혹은 누군가를 죽이겠다. 무언가에 도달하겠다라는 거창한 목표가 아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저 새끼를 개 쪽 주겠다! 라는 목적을 가진 검술이다.
이걸 악(惡)한 검술이 아니면 무엇이라 설명할까.
술에 취한 듯 휘청휘청하며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상쇄시키고 유효타를 불시에 먹인다.
솔직히 꽤 효율 높은 검술이긴 하지만 그 검술 패턴이 상대를 말려 죽이는 역할을 해버린다.
그것이 누군가가 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효과는 더욱더 높아졌다.
지금처럼 말이다.
"음, 내가 운이 좋은 건지. 상대가 생각보다 맹탕인 건지."
"빌어먹을!!
한없이 예능에 가까운 검술이라 실상 이 검술을 배울 때 나는 취검보다는 예능검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극도의 재미를 추구하는 검술.
그야말로 예능 메타 그 자체라 불러도 손색은 없다.
물론, 그저 재미만 추구하고 약하다면 의미가 없는 법이다.
애초에 예능을 위해 만들어진 검술이라 해도 검신들이 만들어낸 검술이 약할 리가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결과, 주변의 인식.
현재 상황에 당황한 발르티앙이 급기야 마나를 끌어올려 검기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발르티앙 왕자! 비 살생 대련에서 기사가 아닌 이에게 검기를 내뿜다니! 제정신인가요?!"
동시에 격분한 바리스보다 더 빨리, 일리나 황녀가 소리쳤다.
하지만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에 머리가 핑핑 돌기라도 했는지 발르티앙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내게 덤벼들어 왔다.
"죽여 버리겠다!"
서늘한 검기까지 내뿜으며 덤벼드는 그 형세에 나는 곧장 한발 뒤로 뺐다.
마치 겁을 먹은 것처럼 말이다.
"피하기엔 늦었다!"
"형님!"
격하게 외친 바리스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뛰쳐나오려던 순간.
'이 이상 우연이 지속되면 의심받을 수밖에 없나.'
좀 전부터 딱 한 명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이가 있다.
결국 나는 이 이상 농락하는 것을 관두고 뒷걸음질 치다 그대로 다리가 걸린 척 무너져 내려버렸다.
파앙!!
동시에 검기가 머금어진 검이 내 머리통이 있던 애꿎은 허공을 가르며 부질없이 흩어져 버렸다.
"읏?!"
갑작스레 내가 뒤로 넘어지며 검을 피해버리자 그의 눈이 크게 뜨여진 게 보였다.
멍청한 새끼.
남들에게 들리지 않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뻐끔거리듯 중얼거리자 홉뜬 그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뭔가 잘못된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도망치려는 듯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가기엔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
이제 와서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그저 취검만이 있을 뿐!
"으억!"
비명을 내지르며 버둥거린 내 발이 놈의 다리를 절묘하게 걷어 넘겨버리자 놈 또한 균형을 잃고 내 쪽으로 넘어져 왔다.
쿠당탕!!
그리고는 마치 막싸움이라도 하듯 그대로 얽혀 바닥을 뒹굴었다.
이 비참하고 꼴사나운 대련을 보고 있던 이들은 할 말을 잃은 듯 그대로 침묵했다.
터엉!!!
그리고, 잠시간의 구름이 끝났을 즈음.
기적적으로 그를 위에서 내리누르는 자리를 선점한 내가 반사적으로 검을 내질러 놈의 머리 바로 옆 바닥을 내리찍어버렸다.
마치 몸을 지탱하려 내지른 검이 클린히트가 된 것 같은 모양새였다.
"......."
바닥에 쓰러진 발르티앙.
그리고 그를 제압하듯 올라앉아 역수로 틀어쥔 검을 그의 머리 바로 옆에 내리찍은 나.
기가 막힌 우연으로 인해 승부의 결과가 정해지자 경악과 싸늘한 침묵이 연회장을 감쌌다.
이 말도 안 되는 우연에 모두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이에 시선을 깔자 나와 함께 바닥을 굴렀던 발르티앙이 내 아래에 깔린 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 놀랄 것도 많네.
가볍게, 또 아무렇지도 않게 느릿하게 그의 머리통 바로 옆을 내리찍은 검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싱긋 웃어 보이자 주변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째, 내가 이긴 거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깔고 중얼거렸다.
침묵은 생각보다 오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