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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9화 (19/1,559)

# 1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권 19화

대련은 엉망진창이었다.

마치 검을 막 쥔 아이들이 막싸움을 하면 볼법한 그런 엉성하고 볼품없는 대련이었다.

문제는 그 볼품없는 대련을 보여준 이 중 하나가 볼티즈 국가의 대표로 온 볼티즈 7 왕자 발르티앙이라는 점이었다.

이미 대화의 흐름에서 내가 오랜 시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유약한 왕자라는 것은 모두가 들은 사실이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내게 관심 없는 타국의 왕족이라도 내 상황을 알 터.

검에 재능이 있는 천재라 불리던 그가 이런 나를 상대로 선점은커녕 엉성한 공격에 당해 바닥에 쓰러진 건 절대 가볍지 않은 전공이었다.

웃지도 못할 이 광경 때문에 침묵에 휩싸인 홀은 누가 말을 하기 전엔 침묵이 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취검, 아니 예능검의 장점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내 수준을 절대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

누가 봐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검이다.

하지만, 훈수 두는 것과 직접 두는 건 다르다고 했던가.

다만 당사자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피할 수 없다.

그게 예능검의 최대 유일 장점 중 하나이기도 했다.

본래는 상대의 방심을 끌어내는 검술이지만 마냥 두서없이 운에 맡기는 건 아니니 말이다.

"끄응...... 팔다리 삭신이 쑤시네."

엉성하게 일어난 내가 검을 떨어뜨린 채 약하게 비틀거리자 윈리가 급히 달려와 나를 부축했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잔뜩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친 녀석이 나를 올려다보며 혹여나 내가 다치지 않았나 이리저리 확인했다.

"형님!"

동시에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바리스가 달려와 소리쳤다.

"무모하게 왜 그러신 겁니까!"

"운이 좋았네. 하하."

"형님!"

당장에라도 잔소리를 쏟아부을 것 같은 그 모습에 어색하게 웃어주자 녀석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승부는 결정이 났네요."

이윽고 차갑게 침묵하던 일리나 황녀가 조용히 말했다.

"화...... 황녀님! 이, 이건!"

이에 발르티앙이 급히 일어나 변명하듯 소리치려 했지만 이 차가운 미녀는 더욱 싸늘한 시선만 보낼 뿐이었다.

"기사의 맹세를 한 분이 승부에 번복하실 생각인가요?"

"이건 정당한 대련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요. 발르티앙 왕자가 주도한 정당함과는 거리가 먼 아주 비열한 경기였죠. 그래놓고 패배한 주제에 더 할 말이 남았나 봐요?."

사교계의 레이디에게선 볼 수 없는 직설적인 화법이었다.

벙찐 얼굴로 서 있는 발르티앙을 노려보던 그녀는 곧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몸을 돌려버렸다.

"흥, 저는 돌아가겠어요."

그리고는 관심을 잃어버렸다는 듯 가볍게 걸어가 버렸다.

어이구 차가운 미녀라.

예쁘기도 하고 적당한 호의도 고맙긴 한데, 저런 차가운 시선은 취향이 아니다.

그녀의 뒤를 따라 퇴장하는 몇몇을 제외하고 남은 이들은 곧 발르티앙 왕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뭐가 되었건 약속은 지켜야지."

빙그레 웃으며 내가 말하자 녀석의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크윽......."

"설마 이제 와서 아니라고 말하진 않을 테고."

"......."

내 말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설마 볼티즈 왕국의 대표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건가?"

담담한 말에 그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볼티즈 국가에서 발르티앙을 따라온 젊은 귀족들 또한 이 상황을 말려야 하는데 말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지 전전긍긍하는 표정만 지어 보였다.

"사과는 받아야지."

내 말에 그가 이를 악물었다.

당장에라도 때려죽이고 싶지만 억지로 참고 있는 듯 보였다.

"약속을 지키시오! 발르티앙 왕자."

이에 싸늘한 표정으로 바리스가 쏘아붙이자 그가 이를 악문 채 주변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레...... 이디 윈리 왕녀, 그리고 데이비 왕자에게 저지른 무례를...... 까드득. 사죄드립니다."

체면을 구길 대로 구긴 그는 당장 사람 하나를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를 갈아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약속은 약속인데.

수많은 사람 앞에서 저를 그렇게 농락하듯 한 내게 사과를 하는 게 쉽진 않을 것이다.

까드득!

"부디...... 용서를......."

씹어뱉듯 중얼거리는 그 모습에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이 어려있었다.

보통 때라면 사과를 받아들였을 윈리도 화가 단단히 난 듯 내 손을 잡아끌었다.

"흥, 돌아가요. 오라버니."

"가시죠. 형님."

그로 인해서 생긴 불화 때문에 더 이상 연회장에 남아 있긴 힘들어 보였다.

그러기에 누가 귀한 동생 건드리랬나.

속으로 샐쭉이 웃으며 돌아선 나는 부러질 듯 주먹을 꽉 쥐는 그를 무시한 채 연회 홀을 벗어났다.

그가 이 일로 인해 내게 어떤 앙심을 품을지는 몰라도 관심 밖의 일이었다.

10. 괴인.

"형님! 무모하셨습니다!"

"맞아요! 자칫 큰일 날 뻔하신 거 알아요?!"

돌아오는 마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쏟아지는 이 두 앙큼한 쌍둥이의 잔소리에 허허 웃음만 흘렀다.

"잘 됐으면 된 거지."

"운이 좋으셨던 거에요! 그놈이 성격은 그런 놈이지만 재능만큼은 볼티즈 왕국에서도 유명하던 녀석인걸요"

"잘 알고 있나?"

"알고 있다마다요, 이전에 합동 행사를 할 때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기분 나쁘다는 듯 윈리가 팔을 쓸었다.

"그때 이후로 녀석이 끈질기게 혼담을 밀어 넣었거든요. 나 참, 머리가 나쁜 놈이니 보는 눈도 없지."

"야!"

"헤헹!"

윈리에게 찝쩍댄 전적이 있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팔 하나 못 쓰게 해버릴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조금 후회됐다.

검을 수련하는 이가 마나를 느끼는 것도 보통 재능 이상을 요구하지만 단련을 이뤄 익스퍼트에 들어서는 건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기사 대부분이 평생을 달려도 마스터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니 말이다.

라운 왕국엔 소드마스터가 셋이나 있다지만 대륙 전체를 합쳐보아도 소드마스터의 수는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인구수가 생각보다 많은 이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라버니...... 어디 아프고 그런 곳은 없으신 거죠? 그쵸?"

울먹거리는 얼굴로 윈리가 내 손을 꼭 잡고 물어왔다.

"뭐, 맞은 곳은 없긴 하지."

맞은 게 없을 수밖에. 놈이 내 술수에 놀아난 건데.

다만 보는 이의 입장에선 내가 정말로 위태위태해 보였을 것이다.

내 존재감을 적당히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물 먹이려고 고른 게 바로 예능검이었다.

그 결과는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제법 만족스럽지 않았던가.

그와의 불화로 안 그래도 서로 냉전인 볼티즈 국가와 국가문제로 번질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저는 정말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형님이 다치시면 제가 형님을 무슨 낯으로 뵌단 말입니까."

바리스가 타박하듯 말하자 나는 거침없이 녀석의 이마에 딱밤을 꽂아넣었다.

"끄악?!"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녀석을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신경을 써주는 게 이렇게 고맙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이 두 녀석을 더 아끼는 것일 테고.

"형님, 무슨 힘이 그렇게 장사입니까?"

"요령이지. 그리고, 나는 참을성이 별로 없어서 일단 저지르고 보는 주의라."

"후우...... 거짓말하십니다."

바리스의 시선은 나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이의 시선이었다.

그런 눈빛이었다.

"됐다. 잘 됐으면 된 거 아니냐."

"후우...... 뭐 형님이 다치지 않으셨으니 저도 더는 아무 말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턴 정말 그러지 마십시오. 차라리 제가 하겠습니다. 형님."

"정말 하늘이 도왔어요. 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비틀거리시던 게 오히려 놈의 허를 찔렀으니까요."

윈리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게. 놈도 이렇게 황당하게 패배할 줄은 몰랐겠지."

"꺄르륵! 솔직히 말은 안 했지만 정말 속이 후련했답니다. 정말 오라버니는 대단하셔요!"

꺄르륵 거리는 그 말에 바리스도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인지 입가가 씰룩거리고 있었다.

* * *

"으아아아악!!!!"

격하게 분노한 소년이 숙소에 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고 박살 냈다.

"와...... 왕자 저하! 고정하십시오!"

"놔!"

격하게 소리친 소년은 당장에라도 사람 하나 베어버릴 듯 차갑게 소리쳤다.

"감히...... 감히! 차대 볼티즈 왕태자가 될 나를 능멸해?!"

"왕자님......."

"꺼져."

"왕자님!"

소년의 싸늘한 일갈에 그를 막아 세우던 귀족이 바들바들 떨었다.

"죽여 버리기 전에 꺼져!!"

"......."

더는 말려도 소용이 없다.

귀족은 결국 말없이 고개만 숙인 채 밖으로 나가버렸고 소년은 다시금 물건을 집어 던지고 부숴버리며 씩씩거렸다.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리겠다!!"

격한 외침이 향하는 이는 정해져 있었다. 그의 생에 다시 없을 굴욕을 안겨준 이를 향한 증오와 분노가 이글거렸다.

"하아...... 하아......."

"죽이고 싶니?"

그때였다.

쉽게 식지 않는 그 분노 속에서 이글거리던 그가 멈칫했다.

반사적으로 인상을 찡그린 소년, 발르티앙 드 볼티즈가 시선을 돌리자 창가에 앉아 있는 붉은 눈빛의 여성이 보였다.

20대 초반 정도 될까.

붉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여인은 밤중의 어두운 공간 속에서도 유일하게 홀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누구냐."

"그를 죽이고 싶니?"

고혹적인 목소리였다.

당장에라도 정신을 놓으면 그 목소리에 홀려버릴 것처럼 말이다.

"누구냐고 묻지 않았느냐!!"

격하게 소리친 발르티앙이 곁에 있던 롱소드를 뽑아 들고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서슬 퍼런 날이 무서울 법도 하건만.

여성은 그저 창가에 앉은 몸을 일으켜 다가올 뿐이었다.

"죽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단다."

마치 아이를 다독이는 어머니처럼, 동생을 아끼는 누나처럼.

사랑을 속삭이는 여인처럼.

다가오는 그녀의 행동에 발르티앙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단다. 아가."

고혹적이 말투에 바들바들 떨리던 손이 서서히 멎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멍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죽여......?"

"그래, 네 분노가 나를 불렀단다. 그의 살을 찢고 뼈를 취하도록 도와줄게."

"네...... 이름은......?"

"샤리, 기억해주겠니?"

멍한 동공으로 그녀를 보던 발르티앙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붉게 빛나던 여성이 서서히 싸늘하고, 차가운 미소를 흘려 보였다.

그리고는 발르티앙을 껴안듯 다가와 그의 목에 얼굴을 묻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착하지. 모두 내게 맡겨. 넌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야."

동시에 그녀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고 어두운 방 안에서 그녀의 송곳니가 가차 없이 그의 목에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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