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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0화 (20/1,559)

# 2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권 20화

상처라도 있었다면 아마 에이미가 아득바득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며 매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라고 할 것도 없었기에 에이미는 그저 우리 셋의 기묘한 분위기에 의아한듯한 시선만 보내왔다.

이렇게 보면 시녀가 아니라 유모 같은 느낌이다.

나보다 어린 소녀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에이미는 유별날 정도로 나를 챙기는 편이었다.

훅!! 훅!!

고요한 밤.

연회 홀에서 그런 일이 있었지만 펠리스티 공국은 여전히 축제 분위기를 유지했다.

애초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귀족들이 그런 알량한 싸움을 한들 이곳의 사람들에겐 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괜찮을까요."

말없이 책을 읽고 있던 도중 검을 휘두르다 멈춘 바리스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뭐가."

"발르티앙 왕자는 그래 보여도 일단은 볼티즈 왕국의 가장 유망한 왕태자 후보입니다. 괜히 이번 일로 앙심을 품진 않을는지."

"마음대로 하라고 해."

담담하게 시선을 다시 책에 묻어버리자 녀석이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검을 내려놓은 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윈리는?"

"걱정이 심했는지 지쳤나 봅니다, 좀 전에 잠들었습니다."

"너도 내일부터 대회에 참가할 텐데? 대진표엔 1회전 경기라고 알고 있다만."

"잠이 안 와서 말이죠."

마음속에 무슨 불이 지펴졌는지 녀석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모양이 이상하긴 해도 형님이 한차례 박살 내버리긴 했지요. 하지만 저는 그걸로 만족 못 합니다."

"그러면?

"발르티앙 왕자는 제 손으로 박살 내버릴 겁니다."

제 손으로 박살 내버리겠다.

그 단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바리스의 경지는 익스퍼트 중급.

나와 상대했던 볼티즈 왕자, 발르티앙은 초입이었다.

경지만 따져도 실상 바리스가 우위에 있지만 익스퍼트든 마스터든 같은 경지에 있으면 특출난 차이가 있지 않는 한 마냥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일 테지.

씁쓸하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마음 같아선 내가 배웠던 검술을 가르쳐보곤 싶지만 이제 와서 녀석의 검술을 하루 봐준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걱정 마라, 넌 잘해낼 거다."

내 말에 눈을 감은 채 마나를 고르던 녀석이 피식 웃었다.

"그럼요. 제가 누구 동생인데."

"그놈 혓바닥 기름칠 한번 제대로 해놨네."

"하핫!"

서글서글하게 웃은 녀석이 곧 미소를 지웠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흐음......."

괜히 호기심이 동한 탓일까.

나뭇가지에 앉아 정원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바리스를 지켜보던 나는 곧장 마나를 안구 쪽에 집중시켰다.

우웅.......

동시에 바리스의 몸속에서 회전하는 마나들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고 곧 넓고 고르게 퍼져있는 녀석의 마나 유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갈하다.

처음 녀석의 마나를 보고 느낀 생각은 그것이었다.

정직하고 부드럽다.

나쁘지 않은 흐름이기도 했다.

다만, 조금 막혀있는 부분이 있다는 느낌은 없잖아 있었다.

'조금, 도와줘 볼까.'

이 방식이 알려졌다 하면 난리가 나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알려진 수련방식의 상식을 그대로 박살 내 버리는 다른 세계의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괜히 무림에서 수많은 거대 문파들이 기를 쓰고 벌모세수를 시행하는 게 아니다.

어지간해선 꺼낼 일이 없는 방법이긴 하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동생의 일에까지 인색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앙심을 품은 녀석이 괜한 짓을 바리스에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바리스."

"예?"

"내가 안마라도 해주마."

담담하게 가지에서 내려선 내가 앉아 있는 녀석의 등 뒤로 다가가자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감고 내 손길을 기다렸다.

조금, 아플 거다.

"커헉?! 혀, 형님?!"

"흐음, 근육이 조금 많이 긴장했나 본데?"

"자, 잠깐!"

"확실히 단단하게 뭉쳐있는 것 같다."

마치 어깨를 안마하듯 주물러주자 녀석이 이를 악물고 숨을 헐떡거렸다.

발버둥 치고 싶은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통에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게 훤히 보였다.

"커헉?! 큭!"

"이야, 이거 심한데?"

그냥 안마해주듯 꾹꾹 주물러주는데, 왜 온몸이 아픈 것인가.

녀석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냥 안마가 아니다 이놈아.

손으로 어깨를 자극하며 퍼뜨린 마나가 녀석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마나들을 자극하고 뒤흔들어 강제로 활동성을 부여한다.

간단한 설명으로도 이 차이가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킬지는 뻔했다.

x국식 안마가 그렇게 대단하다던데.

"욜라 뽕따이!"

"흐읍! 끅! 무슨 말...... 끄아악?!"

바닥에 엎어져 부들부들 떠는 녀석의 몸 안에 굳어있는 마나를 세심하게 주물러 유연하게 만들기를 한참.

제법 만족스럽게 변한 녀석의 마나 유동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아 참, 보험을 깜빡했네.'

숨을 고르는 녀석을 무시한 채 오른손바닥을 펼치고는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러자 마나가 내 의지를 따라 작고 정교한 마법진의 형태를 띠며 빛나기 시작했고, 그것이 완성되기가 무섭게 그대로 녀석의 등짝을 시원하게 후려갈겨 버렸다.

"으억?!"

"자식아. 몸이 이 지경인데 수련은 무슨, 들어가서 잠이나 자."

타박하듯 쏘아붙이며 녀석의 등을 한번 더 때려주자 비명이 시원하게 울려퍼졌다.

그러면서도 녀석의 등뒤에 새겨진 금빛의 아주작은 마법진의 형태가 고정되는지 확인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사용할일이 없으면 좋겠다만.

묘하게 불만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는 듯했지만 녀석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몸이 조금 전의 안마를 핑계로 뒤틀어버린 녀석의 근골 일부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말이다.

* * *

날이 밝고 정식적으로 대륙 검술대회가 개최되기 시작했다.

전통 자체가 제법 오래된 대회지만 지금껏 한 번도 사고 없이 국가 간의 화합을 이뤄왔던 나름대로 중요한 경기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생긴 불화는 곧 국가 간의 분쟁으로 번질 테니 말이다.

대륙에 전쟁이 근절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 화합형 대회가 그 전쟁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리라.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숙소에 남은 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손끝으로 마나를 응축시켰다가 풀어헤치길 반복하고 있었다.

바리스의 경기는 오후부터 있을 테니 지금 가본들 보는 거라곤 이기적일 정도로 재능 좋다 알려진 햇병아리들의 재롱뿐이다.

"오러 블레이드가 발현될 만큼의 마나는 들어왔는데, 왜 환골탈태가 안 되는 거지?"

정작 남들 다 밀어주면서 내 몸은 제대로 확인하질 못하고 있다.

명백히 말해서 내 몸이 정상의 궤도와 많이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예상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나고 있었다.

환골탈태.

회랑의 영웅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것을 그렇게 표현했었다.

육체가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변하는 자기 진화라고.

엘프와 같은 정령 친화력과 오랜 수명도, 드워프와 같은 강인함과 섬세함도, 마족처럼 강력한 마력도 얻지 못한 인간이 가진 유일한 장점.

모든 것을 포용하였기에 허락된 유일한 변화가 바로 환골탈태였다.

보통의 환골탈태는 인간이 유지하지 못할 양의 마나나 이외의 힘을 품기 시작할 때 변한다.

그래서 익스퍼트가 소드마스터에 이르면 한계까지 성장한 마나가 일정 깨달음을 기준으로 급속도로 모이며 스스로 진화한다.

근력이 강해지고 몸이 튼튼해지며 젊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 수명 또한 늘어난다.

그야말로 노력에 따른 어마어마한 보상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대부분이 잠들어있다곤 하지만 이미 나는 말도 안 되는 양의 마나를 몸 안에 품고 돌아왔다.

천천히 쌓아야 할 마나가 한 번에 들어찬 꼴이다.

'애초에 혼수상태에 빠져서 그곳으로 간 것부터가 정상은 아니었지.'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고 내가 회랑에 흘러들어 가게 된 이유가 있겠지만 그건 내가 현재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저 나는 편하게, 그리고, 오래 살면 그만이니까.

전생이나 현생이나 내 삶은 지나치게 짧았기에 삶에 대한 집착이 적진 않았다.

내 삶의 목적은 오래도록 잘 먹고 잘사는 것.

그것에 방해가 되는 놈들을 두눈 시퍼렇게 뜨고 구경할 생각이 없다.

왕자라는 신분은 안전성만 따지면 보통의 평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안전하다지만 다른 의미로 보면 더욱 위험했다.

세력 하나 없는 만큼 내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법.

그런데 환골탈태가 이뤄지지 않으니 곤란하기 이를 데가 없다.

"회랑에선 잘만 변하더니."

절로 터져 나오는 불만을 억누른 채 고민했다.

'그냥 강제로 변화시켜버릴까.'

경지를 개척하길 고대하는 수많은 기사가 들었다면 기함을 토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방법은 많지만 하나같이 효율이 떨어진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결국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보류.

환골탈태는 육체에 직접적인 부하를 주거나 계기를 주면 스스로 변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여러 경험이 있다곤 해도 인체와 마나의 영역은 미지의 영역.

억지로 시도했다가 실패라도 한다면?

강화 성공 확률 1%짜리 아이템을 막연하게 나는 된다! 라고 외치며 강화기에 밀어 넣는 꼴이다.

그게 데이터 쪼가리도 아니고 소중한 내 몸이라면 고려할 가치도 없었다.

"저하, 이제 곧 바리스 왕자 저하의 경기가 시작될 시간이에요"

"그래?"

"더 늦으시면 경기를 놓치시게 될지도......."

말없이 마나를 수련하길 한참. 조용히 에이미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불안한 표정으로 보고해왔다.

또 내가 황당한 짓을 할까 봐 걱정스런 모습이었다.

내가 뭘 했다고?

비록 그녀의 눈앞에서 보통 이상의 짓을 자주 하긴 했지만 꽤 불손하지 않는가!

"에이미."

"네, 네?"

"가자."

"핫! 넵!"

불안한 얼굴로 나를 보던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알아볼 건 많지만 지금은 현실에 충실하자.

조급하면 안 된다는 걸 회랑에서 충분히 배우지 않았는가.

천천히 편안한 활동용 복장의 장식을 여민 채 걸음을 옮겼다.

* * *

펠리스티 공국의 원형 경기장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경기장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대회에 참가 가능한 인원의 나이제한은 20세 미만.

아직 젊은 소년들의 경합이지만 그들의 재능을 생각하면 그리 저급한 경기가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이들 모두가 국가를 대표하는 재능아들이니 말이다.

실제로 보통 평기사들이 실력을 인정받고 기사가 되어도 익스퍼트에 들어서기 쉽지 않다.

왕실 기사급 정도 되면 익스퍼트들이 대부분이지만 보통의 기사들은 마나를 조금 다루는 정도에서 그친다는 소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바리스의 재능은 제법 뛰어난 편이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관객석의 위로 자리한 귀족들의 특별 관객석으로 향한다.

이 특별석만 없었어도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을 것 같긴 하다만, 그것까지 신경 써서 이건 옳지 않습니다! 라고 외칠 만큼 좋은 성격은 아니었다.

"우와아아아아!!!"

긴장한 얼굴로 손에 땀을 쥐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한다.

경기장 위로 승리의 세레모니를 취하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앗 오라버니!"

유리로 된 바깥을 지켜보며 전투적으로 쿠키를 씹어먹고 있던 윈리가 나를 발견하곤 반색해왔다.

"오셨어요? 몸은 괜찮으신 거죠?"

"그래."

죽어도 배가 아파서 못 갔다고 말 못 한다.

망할 장 활동!

환골탈태로 해결할 수 없다면 신성력이라도 이용해야 할 판이다.

"바리스는?"

"이제 곧 시작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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