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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3화 (23/1,559)

# 23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권 23화

"이번엔 요행으로 해결되지 않아요. 마나 한 줌 느껴지지 않는 당신이라면 당장 찢겨나가겠죠. 어떻게 멀쩡한진 모르겠지만 도망치세요."

"저놈은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만."

"제가 막아보겠어요!"

내가 본 그녀는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소녀였다.

황녀라는 위치가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그녀는 과할 정도로 집착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마치 뱀파이어를 불구대천 원수로 보듯 말이다.

속으로 쓰게 웃으며 쥐어짜듯 마나를 활성화 시키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멋대로 방해를 한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 정도이리라.

"엇?!"

동시에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모아 그녀의 뒷목 부분을 가볍게 찔렀다.

"꺅?!"

갑작스런 충격에 크게 움찔한 그녀가 나를 돌아보려던 순간.

다시 한 번 내질러진 검지와 중지가 그녀의 쇄골 부분을 정확하고 빠르게 찔렀다.

"컥?!"

동시에 그녀의 육체가 그대로 실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져 내려버렸다.

"이...... 이게 무슨?!"

제 몸에서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당황하는 그녀.

빨리 해명을 요구하는 듯한 그 시선이 미안해서라도 한마디도 없이 돌아서진 않았다.

"그쪽이 무슨 이유 때문에 뱀파이어에 그렇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일이니까, 방해하지 마시라고."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살기에 그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뜨여졌다.

"다, 당신 도대체......."

멍하니 중얼거리는 그녀를 뒤로 한 채 주먹을 가볍게 말아쥐고는 왼손으로 거리를 재듯 내 뻗었다.

그리고 왼발을 끌듯 내밀며 짧게 숨을 들이켰다.

"까드드득!! 까득!!"

동시에 핏빛 안개를 원 없이 들이키던 발르티앙이 포탄과도 같은 속도로 쇄도해 들어왔다.

핏빛 안개는 녀석에게 최적의 환경. 그만큼 안개를 다량 흡입한 녀석의 속도나 힘은 훨씬 강해져 있었다.

확실히 검기는 잘 먹히지 않고, 마법도 일정 내성을 지닌 놈이다.

언데드 류 계통의 몬스터는 딱 한 가지만을 제외하면 상당한 내성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까드드득!!"

다른 이들에게 덤벼들 때와는 다르게 내게 만큼은 확실히 지독한 살기를 내뿜었다.

이성을 잃어도 나를 극도로 싫어하는 놈의 본능이나 다름없었다.

거대해진 주먹으로 완전히 곤죽을 만들어버리겠다는 듯 내리찍는 놈의 공격에 앞으로 내밀었던 다리를 강하게 고정한 뒤 거리를 재고 있던 왼손으로 놈의 손목을 옆으로 쳐냈다.

굉장한 힘이다만.

내 첫 검술 스승의 영향 때문인지 전부터 근력 하나만큼은 확실했다는 점.

그 탓에 강한 힘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선 굉장히 잘 알고 있다.

이렇게 가볍게 중심을 뒤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격을 흘려버릴 수 있으니까.

같은 속성에 뒈져버려라.

[천마공 혈마폭쇄장]

파괴적인 마공의 검은 권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하자 나는 망설임 없이 놈의 심장을 향해 손가락을 접은 손바닥을 회전시키듯 찔러넣었다.

퍼엉!!!

동시에 놈의 심장 부근과 닿은 내 손을 기준으로 검은빛의 악마의 손 같은 잔상이 놈을 집어삼키고 그대로 거대한 진동을 일으키며 뒤편의 벽면에까지 거대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 * *

금발의 소녀는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경악스레 바라보았다.

마치 거대한 악마가 작은 존재를 짓눌러버리는 게 이런 느낌이 들었을까.

온몸에 돋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저게 대체 뭐야?"

거대한 진동으로 인해 겨우 몸을 가누고 있던 그녀는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던 괴물이 된 발르티앙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침묵했다.

멍청이가 아닌 이상 발르티앙의 힘이 전보다 강해졌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놈의 공격을 그는 너무 가볍게 흘려버렸다.

그리고, 그가 내지른 손바닥을 이용한 밀치기에 가까운 한방에 놈의 몸에 기괴한 구멍이 뚫려버렸다.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른 검기, 그리고 파괴적인 중검을 이용해도 작은 상처에 그쳤던 놈이, 그것도 거기에서 더 강해진 놈이 손도 쓰지 못하고 터져버리는 모습은 쉬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의 몸에서는 한 줌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이 저런 것이 가능할까.

마나가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인간이 검은 기류와 흰 기류를 흘리며 괴물을 일격에 날려버리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그녀는 제 눈을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후우."

속이 시원하다는 듯 손을 털어낸 그가 검은 피를 울컥울컥 흘리는 발르티앙을 무시한 채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좀 전에 그가 내보인 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보여준 이해 못 할 정체불명의 힘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그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저벅저벅 걸어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탓!

"꺅!"

충동적으로 움직인 탓에 저도 모르게 발이 꼬여버린 그녀가 귀여운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왜 겁을 먹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평소의 차가운 모습도 잃어버린 채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던 흑발의 소년은 뭔가를 생각하듯 가만히 있더니 이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좀 전의 살기등등하던 차가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네."

"네?"

"검 좀 빌립시다."

갑작스런 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가진 검은 반쯤 부러진 거검 하나뿐이었다. 비록 세간에선 신검 칼디라스의 주인이라곤 불리지만.......

정확히 그녀는 검을 실체화시키는 수준에까지 이르진 못했다.

"이건 이미 부러진......."

"그거 말고."

시원하게 미소 짓는 채로 소년이 그녀의 가슴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그녀의 겉옷을 여미고 있는 작은 브로치였다.

"이거."

뜨드득!!

대답 따윈 들을 생각도 없었다는 듯 브로치를 뜯어가 버리는 소년의 행동에 그녀의 눈이 더없이 크게 뜨여졌다.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보스는 아이템 빨 좀 받아야 하니까, 힘 좀 빌리자. 신검 양반."

12. 9 위계 성마법, 변화.

세상을 구할 검을 포함한 수많은 무구를 만드는데 일생을 바친 덕분에 영웅으로서 승격한 천일야장 수르트.

그는 일생의 역작 중 하나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칼디라스.

고대 정령어로 백색의 수호자라는 뜻이었다.

같은 재료라도 그의 손에 쥐어지면 명검이 탄생한다.

고물 검도 그의 손을 거쳐 새로이 제련되면 질을 따질 수 없는 힘을 지닌다.

정령의 축복을 받은 마법 대장장이.

마나를 다루어 검을 제련하는 그의 실력은 익히 대륙 전체에 알려져 있을 만큼 유명했다.

그가 만든 일생의 역작 2자루의 검. 그리고 나머지 10자루의 명검은 아직까지 대륙에 남아 국보급의 대우를 받는 물건으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하나같이 대단한 마법 검이지만 칼디라스는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뛰어난 편이었다.

친우였던 검신 하레스를 위해 그의 수명까지 불태워가며 만들었다는 이 검은 너무 잘 만들어진 탓에 에고가 붙어버렸다.

에고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자아라는 소리였다.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 힘을 방출하는 검이라니.

솔직히 듣기만 하면 대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지만 진실을 아는 나는 이놈이 어떤 놈인지도 잘 알았다.

어떤 놈이냐고?

-야! 네가 뭔데 나를 잡아? 이거 안 놔?!

머리를 징징 울리는 이 땍땍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시끄럽다.'

당연히 세간에 유명하던 그 신검의 주인에게 녀석의 성질머리에 대해선 질리도록 들은 후였다.

-뭐, 뭣?!

'협조 좀 해라.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네 주인도 죽는다.'

담담한 말에 녀석이 움찔한 듯 옅게 진동했다.

"진동기능 추가된 검이라니. 듣던 대로 진짜 변태 같은 악취미네."

검을 만든 천일 야장 수르트가 이 말을 들었으면 제자고 나발이고 당장 때려죽이겠다며 소리 지를 만한 발언이다.

물론 이미 그는 회랑에 있으니 여기서 내 말을 들을 리는 없을 터.

안 듣는 곳에선 임금님도 욕한다는데 무슨 상관이랴.

-야!! 감히 나를 그런 용도로 여기는 거야?!

빼액 거리며 소리 지르는 녀석의 목소리는 다른 이에겐 들리지 않았다.

"이...... 이봐......."

내가 브로치를 뺀 덕분에 신검의 힘으로 겨우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그녀가 힘겹게 나를 불렀지만 신검의 힘이 빠진 터라 이 이상 버티고 있는 것도 한계처럼 보였다.

아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힘들 터.

그녀의 재능은 뛰어나지만 상대가 나쁜 것뿐이다.

우웅.......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린 채 브로치를 쥔 손을 내리자 강렬한 백색의 빛이 터져 나왔다.

천 년 동안 공들여서 주조된 오리하르콘 괴를 압축해서 만든 녀석이다.

괜히 신검이 아니란 소리지.

담담하게 기운을 흘려 넣자 거대한 폭풍이 내 몸을 감싸는 듯하더니 이내 빛으로 된 검이 거대한 거검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길이는 대략 120센티에 검면의 넓이만 10센티가 넘는다.

현 주인인 일리나 황녀의 키가 고작 150대 중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녀의 몸집만 한 검이리라.

순백색의 대검.

놀라울 정도로 매끄러운 검면과 보는 것만으로도 베여버릴 것만 같은 예기.

따스한 신성력의 힘이 머리가 징징 울릴 만큼 강렬하게 느껴져 온다.

검신의 검이고 대륙에 유일하던 마법 대장장이가 제련한 무기이니 당연한 걸까.

말없이 검을 들어 올려 손끝으로 검면을 쓸어넘겼다.

"확실히 좋긴 하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했던가.

좋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주저 없이 이놈의 검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렸다.

애초에 내 것도 아니고 나와 그리 맞지도 않는 검일 뿐이다.

-아직 계약자도 깨우지 못했는데 어...... 어떻게 내 힘을?!

비명을 지르는 듯한 칼디라스의 말을 무시한 채 그대로 허공을 베어 넘기듯 검을 휘둘렀다.

파앙!!

동시에 거대한 힘의 파장이 나를 감쌌다가 서서히 흩어졌다.

붉은 안갯속에서 멀쩡히 돌아다니던 괴물이 된 발르티앙은 좀 전 내가 힘 조절을 하지 않은 혈마폭쇄장에 몸이 터져나가 버렸다.

적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해도 사실상 그건 아니었다.

이성을 잃어버린 괴물인 발르티앙이 이 사태를 주도한 장본인은 절대 아니었을 테니까.

당연히 이 상황을 유도한 것은 그를 감염시킨 고위 뱀파이어.

말없이 허공에 검 끝을 겨눈 채 그립을 쥔 손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는 검 끝을 아래로 내렸다가 그대로 쳐올리듯 베어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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